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368)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372화(368/675)
제 372화
– 저 짐승은…….
세운의 명령을 들은 루인이 바로 행동한 건 거인의 가죽을 씹는 게 아니었다.
비록 삼키라는 단순한 명령이었지만, 루인은 세운의 성흔에서 탄생한 존재답게 세운의 뜻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 크르릉…….
성흔에서 신성이 물 흐르듯이 빠르게 빠져나간다.
그럴수록 루인의 덩치가 놀라울 정도로 커진다.
순식간에 집 한 채 크기를 뛰어넘었지만, 루인은 아직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낮게 울었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은데.’
루인이 아무리 커진다고 해도 한계가 있었다.
거인의 크기가 워낙 거대한 탓에 단순히 덩치가 커진다고 먹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세운의 신성으로 루인을 저 거인에 맞먹을 정도로 거대하게 키울 수도 없었다.
– 대단한 힘이구나. 하지만, 욕심은 화를 부르는 법이다. 지금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잔영 역시 세운의 생각을 읽더니 고개를 저으며 만류하였다.
“다음에 또 찾아올 수 있나?”
– 그럴 수는 없다. 나라고 해도 힘이 무한하지는 않으니, 위대한 분을 드러낼 기회는 한 번뿐이다.
“그럼, 지금 끝내야지.”
기회는 한 번뿐.
그걸로 대답은 끝났다.
세운의 의지를 느낀 루인이 힘차게 하울링을 내지르더니 새로운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스스스-
늑대라는 짐승의 형상을 버리고, 안개처럼 넓게 퍼져나간다.
짙은 검붉은 색의 안개는 형상을 버린 만큼 늑대의 모습에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커졌다.
그렇게 세운의 신성이 바닥을 드러낼 때쯤.
– 이건…….
검붉은 안개는 시야를 가득 채우며 제단을 넘어 거인과 맞먹는 크기가 되었다.
크기는 어느 정도 따라잡았어도, 그것만으로는 의미 없다.
검붉은 안개가 스멀거리더니 늑대의 아가리 형상을 재현했다.
콰직!
검붉은 안개로 이루어진 늑대의 아가리.
그 날카로운 송곳니가 거인의 옆구리를 멀었다.
이대로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도 잠시, 세운은 곧 이 방법의 문제점을 깨달았다.
‘약해.’
거인을 삼키기 위해 크기에 집중한 탓에 루인의 치악력이 극도로 낮아졌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성좌급 거인을 집어삼킨다는 말도 안 되는 일은 같은 성좌라도 하기가 불가능한 일.
아직 세운의 미약한 신성으로는 그것을 재현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삼켜라.”
때문에, 방법을 바꾸었다.
세운의 의지를 느낀 루인이 뱀처럼 입을 크게 벌리더니 물어뜯기는 포기하고 거인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그 거대한 크기는 물론 압도적인 위압감 때문에 검붉은 안개가 당장에라도 흩어질 것처럼 옅어졌다.
어떻게든 거인을 그대로 삼켜오고 싶었지만, 당장은 무리라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지원이 들어왔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늑대의 어마어마한 식욕에 깊이 공감합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먹이를 입 안에 머금고도 삼키지 못하는 늑대의 모습에 답답해합니다.
-성좌, ‘배고픈 왕자’가 이대로 먹이를 뱉는다면 자신이 다 억울할 것 같다며 안절부절못합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고민 끝에 늑대에게 ‘폭식의 어금니’를 빌려줍니다.
거인을 머금고 있는 루인의 이빨이 베엘제붑의 신성을 표하는 노란색으로 물들었다. 흔히 알고 있는 개나리처럼 아름다운 노란색이 아닌, 어딘가 위험해 보이는 짙은 노란색으로.
그와 함께.
콰직!
루인의 이빨에 걸쳐 있던 거인의 피부가 처음으로 꿰뚫렸다.
이빨이 생겨난 부분은 단순히 이빨 부분만이 아니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얼른 삼키라며 답답함을 토로합니다.
루인의 입천장에도 세운이 폭식의 권능을 사용할 때 떠오르던 것처럼 수십, 수백의 어금니가 나타나 거인의 피부를 짓이겼다.
자연스럽게 거인에게서 풍겨오던 위압감이 줄어들고, 루인이 목젖을 꿀떡이기 시작했다.
– 이럴 수가……. 위대하신 분을…… 정말로…….
검붉은 안개 속의 거인의 몸이 점점 흐릿해진다.
거인이 가리고 있던 태양 빛이 안개 사이로 스며 나와 51층 전체에 검붉은 빛을 흩트린다.
과연, 베엘제붑의 권능.
‘식사’에 한해서 그의 권능은 그 어떤 성좌와도 비견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거인의 몸이 짓이겨지는 잔혹한 소리로 귀가 먹먹해져 올 때쯤.
꿀꺽.
– 크르르…….
루인이 거인의 몸을 완전히 집어삼켰다.
검붉은 안개로 이루어진 늑대 머리 사이로 더 이상 거인의 시체가 보이지 않았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경악합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자기 속이 다 시원하다며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다급하게 당신에게 경고를 알립니다.
‘경고?’
레비아탄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할 때쯤, 임무를 마친 루인이 세운의 성흔으로 귀환했다.
제단 주위를 가득 둘러싼 검붉은 안개가 일순간 성흔을 향해 몰려드는 장면은 꽤나 신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하지만, 곧이어 느껴지는 뜨거운 통증에 세운은 신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큭……!”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인두로 손등을 지지는 기분?
아니, 그것과는 다르다. 비좁은 통로를 거대한 무언가가 억지로 비집고 들어오는 느낌이다.
통로가 찢어지고 무너지며 그 고통이 그대로 세운을 향해 느껴진다.
고통의 정체를 알아차리는 건 금방이었다.
‘거인이 다 소화가 안 된 건가?’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베엘제붑의 힘을 빌려 어떻게 삼킬 수는 있었지만, 마신들도 놀랄 정도로 높은 격을 가진 성좌를 한 번에 소화하기란 불가능했다.
거인은 단지 그 형체만 압축되어 루인의 배 속에 들어 있을 뿐. 아마 그것이 소화되기까지는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리라.
배 속에 거인을 품은 루인이 성흔으로 귀환하고 있으니, 이런 통증이 느껴지는 건 당연했다.
‘일부라도 버려야 하나?’
성흔이 통로라고 한다면, 통로의 끝은 당연하게도 그릇이라 할 수 있는 영혼의 격을 의미한다.
당장 여기서부터 막힌다면 더 이상 억지로 집어넣었다가는 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영혼이 터져 버릴지도 모른다.
거인을 힘들게 집어삼키긴 했지만, 세운은 오만을 버릴 줄은 알고 있다.
그리고 그때, 새로운 이들의 지원이 들어왔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당신의 터무니없는 탐욕에 고개를 저으면서도 공감을 느낍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자신이 지켜보는 이가 이미 손아귀에 돌아온 전리품을 버리는 건 용납할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당신에게 신성을 하사합니다.
세운의 오른편에서 쏟아지는 보랏빛 기운.
플레이어가 성좌에게 신성을 내려받아 사도로 임명받으면 자연스레 자신이 따르는 성좌에게 한 발 더 가까워진다.
그 말은 즉, 플레이어의 격이 성좌에 가까워진다고도 설명할 수 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마몬에게 내려받은 신성으로 세운의 격 그 자체가 격상되었다.
세운에게 내려오는 도움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다음부터는 너무 무리하지 말라며 당신을 걱정합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아직 격이 회복되지 않아 미약하긴 하지만 작은 힘이라도 도움이 되길 원합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당신에게 신성을 하사합니다.
세운의 왼편에서 쏟아지는 파란빛 기운.
레비아탄의 신성이 세운의 영혼에 깃드는 게 느껴졌다.
이렇게 정식으로 신성을 내려받은 것은 처음이었기에 기분이 조금 이상해졌다. 사도들이 왜 자신의 성좌에게 그렇게 매달리는지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이 충족감은 그 어떤 유희로 인한 쾌락보다 짜릿하고 상쾌했으니까.
– 성좌, ‘잠자는 산양’이 당신이 벌써 죽으면 곤란하다며 하품을 내뱉습니다.
– 성좌, ‘잠자는 산양’이 당신에게 신성을 하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내려온 것은 벨페고르 특유의 감청색 신성.
세 가지 신성이 영혼에 새겨지며, 세운의 격은 한순간에 놀라울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이미 어지간한 사도가 지닌 신성의 양은 가뿐하게 뛰어넘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터질 것만 같던 성흔이 머뭇거리던 검붉은 안개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이제 가능하다.’
이렇게나 도움을 받았는데도 여유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불가능하다는 생각 역시 들지 않는다.
아슬아슬하긴 하지만, 지금이라면 충분히 거인의 격을 흡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흡수라기보다는 임시 보관 수준이지만 말이다.
– 크릉…….
검붉은 안개가 성흔에 모두 흡수되기 직전, 복잡한 심경이 담긴 루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배가 부른 만족감에 소화를 시키지 못한 아쉬움, 배가 더부룩해 느껴지는 불쾌감이 교차한 모양이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제단을 가득 둘러싼 검붉은 안개가 거인을 머금고 모두 세운의 성흔에 깃들었다.
“후우…….”
여유는 없었다.
세 마신의 도움…… 아니, 베엘제붑의 도움까지 받았으니 네 마신의 도움을 받았는데도 딱 아슬아슬한 수준이었다.
신성을 물로 비유한다면, 여기서 한 방울만 더해도 그릇이 넘칠 것 같은 기분.
그 와중에 아직 소화되지 못한 거인의 격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비록 거인을 모두 흡수했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다.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이 힘을 소화해야만 하니까.’
극히 미약한 일부분은 이미 소화된 상태.
다만, 소화된 부분은 1%도 되지 못한 말 그대로 극히 일부분이다.
이걸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힘을 전부 소화할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만약, 정말 만약, 이 힘을 낭비 없이 완벽하게 흡수할 수 있다면…….
‘성좌.’
항상 우러러만 보아왔던 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아아, 정말…….
아직까지 검붉은 빛을 흘리고 있는 성흔을 쳐다보고 있을 때쯤, 옆에서 잔영의 흐느끼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잔영과 거인이 어떤 관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반응이 제법 격하다.
흐릿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마치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자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 고생하셨습니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죽어서도 그 오랫동안 이루지 못한 바람을 드디어. 드디어…….
쿠구구구구-
발아래에서 격한 진동이 느껴졌다. 제단이 짙은 먼지를 휘날리며 황야 아래로 가라앉고 있는 것이다.
그와 함께 안 그래도 흐릿했던 잔영의 몸이 더욱 흐릿해지고 있었다.
– 행복하십니까? 분명 행복하실 겁니다. 진정한 죽음을 맞이하셨으니, 그토록 원하시던 ‘순환’에 빠져 드셨으니. 행복하실 겁니다.
잔영과 거인.
둘은 무슨 관계였을까?
처음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지만, 잔영의 반응을 보고 있자니 문뜩 둘의 관계가 궁금해졌다.
어쩐지 성흔 속에 잠겨 있는 거인의 시체 역시 잔영의 반응에 맞춰 미약한 기운을 흘려대는 것 같았다.
– 이제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위대한 분이시여. 당신의 죽음이 도달한 곳으로. 당신이 원하던 순환 속으로. 저 역시 따라가겠습니다.
흐릿해질 대로 흐릿해진 잔영의 몸이 잿가루처럼 휘날리더니 세운의 성흔으로 흘러들어 왔다.
세운이 허락하지 않은 이상 성흔에 무언가 들어오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지만, 어쩐지 성흔이 잔영의 입장을 허락해 주는 느낌이다.
그렇게 잔영이 전부 사라지고, 제단이 모두 황야 밑으로 가라앉는 순간.
“그어어어-”
“그어어어어-”
“크아아아아-!”
황야에 존재하는 모든 언데드가 평소와는 다른 소리를 내며 울부짖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