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377)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381화(377/675)
제 381화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빛나고 있는 용의 두 눈.
그도 그럴 게, 눈앞의 용은 눈을 제외한 전신이 새까만 흑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암룡(暗龍)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렸다.
거기에 그 크기는 또 얼마나 거대한지, 세운의 눈높이로 내려오는 눈동자가 꼭 두 보름달이 가라앉는 모습을 보는 듯했다.
‘성좌들도 차단됐나 보네.’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마몬의 메시지가 보이지 않는다.
아마 지금쯤 마몬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고 있고, 레비아탄은 세운이 걱정된다며 당황하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중에 두 눈동자는 세운의 코앞까지 내려와 있었다.
“제대로 용의 자격까지 갖추었군. 용이라도 헤츨링급이라면 통과하지 못한 난이도였을 텐데.”
“시련을 직접 설계한 건가?”
“그렇다. 내 목숨을 걸고, 드래곤 하트에 의지를 부여하여 만들어 낸 시련이지. 다시 생각해 봐도 놀랍군. 인간이 그 시련을 통과하다니 말이야.”
용의 큰 두 눈이 깜빡였다.
굳이 입을 벌려 울부짖지 않아도 그의 몸에서는 드래곤 피어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루시퍼를 마주쳤을 때와는 비교하지 못하겠지만, 평범한 플레이어라면 곧바로 정신을 잃었을 정도의 위압감.
성흔이 힘을 발휘하지 못해도 튜리크 덕분에 세운은 멀쩡하게 그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게다가 내 시련이 아니더라도 그대에게서는 용의 잔향(殘香)이 흘러나오고 있군. 용을 사냥한 건 아니고…… 용의 은혜를 받은 거군.”
그의 말에 세운의 뒤에서 은은한 한기가 흘러나왔다.
현실이 아닌 심상 공간이기 때문일까?
세운의 블루 마나 서클에 깃들어 있던 설룡의 기운이 안개처럼 미약하게나마 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전의 시련에서 세운의 그린 마나 서클을 강화해 주었던 녹풍. 화이트 마나 서클을 생성하는 데 일조하였던 산호탑주까지.
지금까지 세운의 서클에 영향을 미친 이들의 의지가 희미하게 일렁거리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었다.
“그들의 잔향만 보아도 그대의 성향은 믿을 수 있겠군. 충분히 용의 자격을 갖출 만한 인재야. 강함 역시 마찬가지다.”
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시련을 통과하고 용의 자격을 갖춘 자라도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용혼석이 깃든 오래된 용의 옅은 의지일 뿐이라지만, 그 힘은 심상 세계로 빨려 들어온 자의 정신을 깨부수기 충분했다.
아마 동진어귀하여 자신의 의지와 함께 상대의 정신까지 망가트려 놓지 않았을까?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새삼 세운의 뒤에 덤덤하게 서 있는 잔향들에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물론, 서클에 그들의 잔향 같은 게 남아 있다는 사실은 지금 처음 알았지만 말이다.
“아, 소개를 잊고 있었군. 그대의 자격과 성향을 알아보는 게 우선이었기에 조금 늦었어. 미안하네.”
“정세운.”
“그래, 정세운이라고 하는군. 아무래도 내가 있던 차원의 인간은 아닌 것 같아. 나는 라프텔 대륙에서 활동하던 금향룡(金香龍), 고르퀴니안스라고 하네.”
“금향룡이라면…… 골드 드래곤?”
“금의 성질을 타고나긴 하였지. 아, 놀랬나 보군. 지금 이 몸은 누가 보아도 골드 드래곤보다는 진암룡(眞暗龍)이라 불리는 블랙 드래곤을 떠올릴 테니.”
골드 드래곤의 특징이라면 금의 기운을 내뿜는 브레스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딱 보았을 때 보이는 화려한 금빛이다.
드래곤 중에서도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비늘을 자랑하는 게 바로 골드 드래곤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그의 몸에서 찬란한 금빛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야말로 암룡 중의 암룡.
어둠에 철저하게 동화되어 눈동자를 제외하고는 몸의 윤곽마저 간신히 보일 지경이었다.
눈을 뜨지만 않는다면 저렇게 거대한 몸체라도 어둠 속에서는 아무도 그를 못 찾아내지 않을까 싶었다.
“어째서 그렇게 된 거지?”
“이상할 것도 없다. 드래곤 하트의 모든 마력을 소모해 만들어 낸 시련이니, 그사이에 어둠이 스며든 건 당연한 일이다.”
설룡의 드래곤 하트를 사용했을 때와 자신을 ‘고르퀴니안스’라 소개한 저 드래곤의 경우는 전혀 달랐다.
설룡 역시 드래곤 하트에 남은 의지가 심상 결계를 이루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고르퀴니안스가 말한 것처럼 ‘잔향’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 세운의 눈앞에 존재하는 그는 살아 있는 것처럼 선명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육체만 없을 뿐, 용혼석에는 그의 의지가 완벽하게 남아 있는 것이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아, 계획이 이렇게 성공할 줄은 몰라서 조금 들떴군. 정작 중요한 설명을 계속 깜빡해 버렸어.”
세운과 고르퀴니안스의 사이로 용혼석이 떠올랐다.
밖에서는 빛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새까맸는데, 지금 나타난 용혼석은 고르퀴니안스의 눈동자를 닮아 맹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지금부터 그대의 영혼에 용의 각인을 새길 것이다.”
“용의 각인?”
“그대의 영혼을 용의 수준까지 끌어올린다고 생각하면 편하겠군. 다른 종을 존중하긴 하지만, 드래곤이 가진 영혼의 격은 중간계의 모든 종족을 통틀어 가장 방대하고 깨끗하니. 아…….”
설명을 이어가던 고르퀴니안스가 다시금 고개를 내리며 세운과 눈을 맞추었다.
그러고는 더욱 신기하다는 듯이 세운을 이리저리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대가 가진 영혼은 정말이지 놀랍군. 도저히 인간으로 생각되지 않아. 신의 기운에, 악마의 기운. 거기에 주인을 알 수 없는…… 흐음, 그건 도통 정체를 모르겠군.”
그럴 수밖에.
세운이 가진 성흔은 애초에 처음부터 세운이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었다.
목축의 신인 판의 신성을 집어삼켜 만들어 냈고, 아우터를 쓰러트리며 강화했다.
바다의 신 트리톤을 쓰러트리기도 하였으며, 유연하게 발견한 헬리오폴리스의 케프리가 가진 신성을 빼앗았다.
거기에 여러 마신의 도움까지 받았으니.
현재 세운의 성흔은, 아니, 세운의 영혼 상태는 그야말로…….
“카오스(Chaos). 어떻게 그런 상태로 영혼을 유지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지경이로군.”
혼돈 그 자체였다.
선과 악은 물론, 아우터를 집어삼키며 폐왕이라 불리는 것들의 힘까지 어울려 있었으니 말이다.
“인간의 영혼으로 가능한 일인가? 아니, 아…… 그렇군. 그대의 영혼은 두 가지 모습을 취하고 있군.”
“두 가지 모습?”
“나조차도 의지만 남아 육체를 넘어 영혼을 관측하는 힘이 선명해지지 않았다면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 믿기지 않지만 이런 모습은 분명…….”
호기심으로 번들거리던 그의 눈빛이 깊게 내려앉았다.
그 익숙한 분위기에, 세운 역시 그의 생각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회귀를 경험한 영혼이로군.”
이미 세운의 회귀를 알아맞힌 이를 몇 번이고 보았으니까.
어쩐지 그들의 눈빛과 비슷하다 싶더니, 고르퀴니안스 역시 회귀에 대한 사실을 알아차렸다.
다만, 회귀를 통해 영혼이 두 가지 모습으로 나뉘었다는 사실은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모르고 있었다는 표정이군. 그럴 만하다. 스스로의 영혼을 관측하는 것은 초월의 영역에 오른 자들도 쉽게 이루지 못 하는 행동이니.”
“거기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문제라, 당연히 있다. 하나의 생명이 두 가지 모습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건 그만큼이나 영혼이 불안정하다는 뜻이지.”
“불안정하다면…….”
“지금은 걱정할 필요 없다. 그 불안정을 해소할 만큼이나 그대의 영혼에는 방대한 힘이 들어차 있다.”
“그 힘이 사라진다면 죽을 수도 있다는 걸로 들리는데.”
“그럴 수도 있겠지. 어느 한쪽으로 힘이 기울거나 영혼을 채우는 힘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진다면, 분명 그대의 영혼은 붕괴하고 말 것이다.”
생각보다 심각한 내용.
까딱 잘못했으면 이유도 모른 채 영혼이 흩어질 뻔했다는 말로 들려왔다.
“그런 상황이라면, 지금은 용의 각인이란 걸 받기에 상황이 좋지 않을 것 같은데.”
“아아, 저것 때문인가?”
그가 세운의 뒤를 가리켰다.
어느덧 서클에 남은 잔향들은 모두 사라졌고, 그 대신 희미한 윤곽만이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도 윤곽의 끝이 보이지 않을 지경.
결국 고르퀴니안스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자신의 시야를 공유해 주었다.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시야를 빌려본 윤곽의 정체는 바로.
‘거인.’
51층의 시련에서 삼킨 거인의 격이었다.
소화를 전혀 못 해 내고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멀쩡하게 세운의 속에 남아 있을 줄은 몰랐다.
세운과 동화된 탓에 그 특유의 위압감은 더 이상 위협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다만 저 거대한 격에서부터 흘러나오는 힘의 크기는 이전보다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대체 이런 걸 어떻게 집어삼켰는지 궁금하군. 우연에 우연. 거기에 자신감이 겹친 것인가? 설사 행운의 신이라도 이런 행운을 불러오는 것은 무리일 거다.”
확실히 거인의 격을 집어삼킬 때는 무리를 한 게 맞다.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 분명 무리일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어쩐지 가능할 것만 같은 자신감이 생겨났었다.
마신들이 도와준 덕분에 가까스로 거인의 격을 집어삼킬 수 있었지만, 어쩐지 그것 역시 당연한 결말로 생각되었다.
회귀 전에 모험가 생활을 하며 도전을 일삼았던 세운이었지만, 당시에는 무력이 강하지 않았던 만큼 철저하게 안전을 우선으로 신경 쓰고 다녔다.
당시의 세운이었다면 이번 같은 무모한 일은 절대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야.’
비록 레비아탄의 조언이 있었다지만, 레비아탄도 용혼석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자칫하면 용혼석의 의지와 거인의 격이 부딪쳐 영혼이 터져나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마몬의 의심이 확신으로 키워지며 용혼석마저 당연하다는 듯이 사용하게 되었다.
이것을 과연 우연이라 할 수 있을까?
이것을 과연 자신감이라 할 수 있을까?
만약 이게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면, 무언가의 인과율이 세운을 어딘가로 이끌고 있는 게 아닐까?
머리가 아플 정도로 복잡한 생각이 빠르게 스쳐 가던 찰나, 고르퀴니안스가 세운의 고민을 끊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
“저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용의 각인은 영혼의 용량과는 상관없다는 뜻인가?”
“아까도 말했듯이, 용의 각인은 영혼을 용의 것에 걸맞게 키워주는 방법이다. 만약 진짜 용이 사용했다면 용을 넘어 준신(准神)의 경지에 도달할 수도 있었겠지.”
하긴, 그가 준비한 용혼석은 본래 용에게 사용할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시련 역시 마찬가지.
동족의 영혼을 준신급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힘인데도, 그의 모습에서 아쉬움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보다 더 큰 호기심을 담은 눈빛으로 세운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비록 그대는 준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겠지만, 성장 가능성만큼은 용을 너머서 보이는군. 무엇보다 저것을 완벽히 소화한다면…….”
그의 시선이 다시금 거인을 향했다.
그의 시선이 다시금 세운에게 전달되었다.
다시 보아도 거대한 크기.
단순히 덩치를 표현하는 게 아니라, 거인의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힘의 크기는 뭐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웠다.
“준신이 아닌, 완전한 신(神)의 경지에 도달할지도 모르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