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382)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386화(382/675)
제 386화
– 나 잘했어?
“잘했어. 정말.”
– 정말?
“응, 정말.”
세운은 지친 듯 숨을 허덕이는 튜리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기껏해야 53층의 시련에서 보여주었던 드래곤 피어를 보여줄 줄 알았는데, 여기서 루시퍼의 위압감을 재현해 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피곤하지 않아?”
– 괜찮아. 저번에는 오랜만에 무리해서 그래. 지금은 괜찮아.
“조금 쉬어도 괜찮아.”
– 아냐. 정말 괜찮아. 조금 더 있고 싶어.
“그래. 힘들면 언제든지 말해.”
– 응.
튜리크의 힘은 뛰어나다.
세운의 성흔과 어울려 놀랍도록 강한 공포를 발현하였고, 거인의 격을 소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실제로 그녀가 도와준 이후로 거인의 격을 흡수하는 속도가 두 배 이상으로 빨라졌다.
그렇다고 해도 격의 크기가 워낙 거대한 탓에 전체적인 비율로 보자면 미미한 수준이지만 말이다.
“그럼 날개는 참을게. 다음 캠프에서만 좀 부탁해.”
– 나 괜찮은데.
“어차피 신성도 회복해야 하거든.”
– 미안.
“아냐, 내 신성이 모자란 탓이지.”
거짓말이 아니다. 세운의 신성이 더 여유로웠으면 튜리크가 그 힘을 더욱 마음껏 발현할 수 있었을 거다.
다행인 점이라면 거인의 격을 흡수하기 시작하면서 전보다 신성량이 더욱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
지금만 해도 거인의 격을 흡수한 덕분에 비어 있던 성흔이 놀랍도록 빠르게 차오르고 있었다.
타닷!
신성이 회복되는 속도가 빠르긴 해도, 세운의 소모량을 따라오지는 못한다.
공포의 힘을 사용하기 위해서라도 신성은 아껴두어야 한다.
튜리크의 날개는 물론, 루인이 달리는 거도 신성이라는 연료를 요구하기에 세운은 두 발로 달리는 것을 택했다.
하늘을 비행하는 것보다야 느렸지만, 여정의 지침표 덕분에 금세 다음 몬스터 캠프를 발견할 수 있었고.
– 성흔이 혈랑 전설의 설화에 반응합니다.
– 성흔의 첫 번째 능력, ‘공포’가 깨어납니다.
튜리크의 힘을 활용하여.
– 독개구리 번식처를 상대로 승리하였습니다.
– 트롤 바위산을 상대로 승리하였습니다.
…….
그렇게 찾아낸 몬스터 캠프를 막힘없이 굴복시켜 나갔다.
그동안 세운이 튜리크에게 부탁한 건 리자드맨의 우두머리를 상대했을 때와는 다른 것이었다.
“효율에 집중해 줘. 신성이 낭비되지 않게, 딱 필요한 정도로만.”
– 응. 해 볼게. 할 수 있어.
루시퍼의 위압감을 재현했을 때야 어쩔 수 없었지만, 튜리크는 기본적으로 힘 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때문에 대부분 필요 이상의 신성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힘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지금, 그 문제를 해결해 볼 생각이다.
– 어때?
“범위는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거야? 기왕이면 단순히 원형으로 퍼트리는 게 아니라 적의 진형에 따라 조절하면 좋겠는데.”
– 할 수 있어. 그렇게 할 거야.
튜리크는 열정적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보인 소극적인 태도는 사라지고, 세운의 부탁에 따라 자신의 힘을 조절한다.
오히려 즐거워 보이기까지 한다.
아마, 아까 세운에게 말한 대로 억압하던 스스로의 힘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되어 그런 것이 아닐까?
사람으로 치자면 평생 두 손에 묶여 있던 수갑이 풀리고 팔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된 상태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 녀석, 제법 쓸 만해 보이는데?”
– 어쩌게?
“타고 다니려고.”
– 싫어. 내 날개 써.
“힘 아끼고 있으라니까. 넌 더 큰 일을 해야 하잖아?”
– 그래도.
“부탁해.”
– ……응. 알겠어.
몬스터 캠프를 찾아다니다 보니 꽤 쓸 만한 몬스터를 찾아냈다.
가고일의 한 종류였는데, 우두머리여서 덩치가 작은 일반 가고일과는 달리 크기가 커서 타고 다닐 수 있어 보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녀석은 우두머리. 쉽게 자존심을 굽히고 침입자를 등에 태울 녀석이 아니다.
튜리크의 힘을 사용해도 마찬가지.
녀석은 공포에 굴복하여 머리를 땅에 처박은 상황에서도 날개를 움직이지 않았다.
차라리 이 자리에서 죽여주라는 듯이 벌벌 떨고 있을 뿐.
그런 녀석을 향해, 세운이 손을 들어 올렸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몬스터 테이밍(Monster taming) ]– 몬스터의 정신을 조작하여 복종하게 만드는 흑탑의 세뇌 마법. 정신계 마법답게 수식이나 사용 조건이 매우 까다로워 저서클 마법이지만 상급 마법으로 분류된다.
세뇌 마법, 몬스터 테이밍.
몬스터를 굴복시켜 따르게 만드는 편리한 마법처럼 보이지만, 설명에 적혀 있듯이 그 사용법이 매우 까다롭다.
기본적으로 몬스터의 이성을 날려 버릴 정도로 철저하게 굴복시켜야 함은 물론, 몬스터에 따라 다른 수식을 인용해야만 한다.
다만, 세운에게는 문제없는 일이었다.
이미 공포의 힘으로 녀석의 이성을 날려 버렸고, 수식은 마몬의 보물을 사용한 덕분에 전부 머릿속에 들어와 있었으니까.
“주인……님…….”
펄럭-
가고일의 눈이 흐릿해지더니, 이내 세운을 주인이라 불렀다.
흑마법이 제대로 먹힌 것을 확인한 세운이 녀석의 등에 오르자, 단단한 날개가 펄럭이며 허공에 날아올랐다.
이 녀석을 타고 다니면 신성은 물론 내공이나 마나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다.
게다가 기본적인 이동 속도도 세운의 달리기보다 빠르니 더 말할 것도 없다.
– 나보다 느려.
“맞아, 너보다 느려.”
튜리크가 마음에 안 들어 했지만, 그녀에게는 비행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돌 사탕을 먹지 못해 아쉬워합니다.
뜨끔.
분명 완벽하게 세뇌되어 있을 텐데, 어쩐지 가고일의 몸이 살짝 떨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무튼, 가고일이 열심히 비행해 준 덕분에 몬스터 캠프를 굴복시키는 속도에 한층 가속도가 붙었다.
거인의 격이 수화되는 게 바로바로 느껴질 정도.
물론, 이게 완벽한 건 아니었다.
“정말 괜찮아?”
– 응……. 정말.
튜리크가 지쳐 보였다.
힘을 사용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스스로도 즐거워하고 있지만, 체력의 한계가 느껴진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세운 역시 힘을 남발할 상황은 아니다.
처음에는 신성이 회복되는 속도를 믿고 빨빨거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성흔도 피로감이 누적되는 건지 신성의 회복 속도가 느려졌다.
솔직히 이제는 가고일의 속도가 의미 없을 지경.
그래도 직접 달리는 것보다는 편했기에 이번 시련 내에서는 녀석을 계속 타고 다닐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
“음?”
세운의 기억에 존재하지 않는 구조물이 보였다.
아무리 여정의 지침표를 가지고 있는 세운이라고 해도 55층의 모든 곳을 기억하고 있지는 않지만, 저건 달랐다.
저런 독특한 구조물이었다면 자신이 잊을 리가 없고, 발견하지 못했을 리도 없다.
무엇보다…….
‘왜 반응하지 않지?’
여정의 지침표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있었다.
지금 세운이 찾고 있는 것은 몬스터 캠프이니 여정의 지침표가 반응하지 않는다는 건 저 구조물이 몬스터 캠프가 아니라는 것인데…….
그렇다고 저게 히든 피스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여정의 지침표가 저렇게 대놓고 존재하는 히든 피스를 무시할 리가 없으니까.
– 와아, 높다. 저건 뭐야?
“글쎄…….”
튜리크의 말대로 저 멀리 보이는 구조물은 매우 높았다. 가고일을 타고 비행하고 있는 세운의 눈높이보다 높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구조물이 미묘하게 더 높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말은 즉.
‘아직 지어지고 있어?’
누군가가 저 구조물. 아니, 저 탑을 짓고 있는 것이다.
몬스터가 저런 탑을 짓고 있을 리는 없고, 그렇다면 플레이어가 탑을 짓고 있다는 말인데.
‘도대체 왜?’
상상도 못 한 눈앞의 상황에 당황하고 있을 때, 머릿속에 저 정도의 탑을 건축할 수 있는 플레이어의 이름이 떠올랐다.
쌍둥이 자매.
혹시나 해서 길드챗을 열어보니 쌍둥이 자매가 서로 탑을 짓겠다며 떠들던 내용이 보인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높은 탑을 지어내다니.
유서아나 강한철, 백현 같은 전투계 인원들과 달리 생산계 플레이어인 그녀들의 실력은 제대로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보니 그녀들의 수준 역시 일반적인 플레이어의 수준을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와아, 오빠아아아!”
저쪽에서도 세운을 발견했는지 소리를 지르며 손을 흔드는 게 보인다.
세운이야 다른 플레이어에 비해 시력이 강화되어 있어 먼저 알아봤지만, 저쪽에서는 아직 세운이 제대로 안 보일 텐데.
그렇게 생각하며 세운이 가고일과 함께 탑의 정상에 내려앉았다.
“와아, 이번에는 이상한 거 타고 왔네? 귀엽다!”
“어떻게 알았어?”
“그야 여기서 그렇게 날아다닐 만한 사람은 오빠뿐이잖아? 와, 얘 진짜 귀엽네. 나 얘로 내 탑 장식하면 안 돼?”
“안 될 건 없는데…….”
“아싸! 언니한테 자랑해야지!”
한아름이 세운이 타고 온 가고일을 이리저리 만져보더니 방방 뛰며 즐거워했다.
허공에서 손을 타닥거리는 게, 길드챗으로 바로 한다운에게 연락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탑은 왜 짓고 있는 거야?”
“응? 그야 당연히 멋있으니까! 아, 오빠! 나 이걸로 ‘인정’도 받았다?”
“몬스터한테?”
“응! 저기 아래에 몬스터들 보여?”
세운이 아래를 내다보았다.
까마득하게 높았지만 한아름이 설치해 둔 망원경 덕분에 아래가 선명하게 보였다.
그 아래에는 탑을 향해 무릎을 꿇고 있는 몬스터 무리가 있었다.
“중간 넘게 지으니까 쟤들이 와서 기도하고 있던데? 시련도 그걸로 깨졌고!”
“그럼 다음 시련은?”
“반대편에도 저런 무리 있어! 그걸로 한 무리는 끝났고, 쟤들이 힘을 합쳐서 주변 캠프 공격하던데?”
세운도 전혀 생각지 못한 시련 공략법이다.
아마 저 몬스터들에게는 갑자기 나타난 이 탑이 바벨탑처럼 느껴졌던 게 아닐까?
그 덕분에 한아름은 열심히 탑을 짓는 것만으로 54층과 55층의 시련을 손쉽게 공략할 수 있었다.
들어보니 지금도 이미 55층의 통과 조건을 만족했지만, 한다운과의 높이 대결을 위해 남아서 계속 높이 짓는 거라고 했다.
– 성좌, ‘검은 새’가 아랫것들이 높은 곳을 우러러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읊조립니다.
– 성좌, ‘검은 새’가 ‘검은 부리’가 높아질수록 더욱 많은 아랫것이 고개를 들게 될 것이라며 자신의 계약자를 자랑스러워합니다.
‘이렇게 높이 지어둬서 버리기에는 아까워 보이는데.’
이 정도 크기의 탑이라면 완성되자마자 아이템처럼 등급 판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아무리 할파스의 권능이라도 이 크기의 탑을 축소하여 가지고 다니지는 못할 거다.
물론, 탑을 완성하는 것만으로 쌍둥이 자매의 실력 상승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아무래도 아깝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때.
“아름아.”
“넹?”
“혹시 이 탑, 내가 말하는 대로 개조할 수 있을까?”
– 성좌, ‘검은 새’가 당신의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 성좌, ‘검은 새’가 부디 그 의견이 ‘검은 부리’의 화룡점정이 되길 기대합니다.
화룡점정.
그래, 세운의 머릿속에 이 탑의 끝에 찍어낼 화룡점정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