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383)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387화(383/675)
제 387화
건축물이라 하더라도 아이템 판정을 받는 경우가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다.
건축가의 수가 적을 뿐이지, 일단 건물이 완성되는 순간 등급 판정을 받는 건 그리 이상하지 않은 일이니까.
하지만, 세운이 생각하는 건 이 탑이 그저 평범하게 아이템 등급 판정을 받게 하는 게 아니었다.
“55층의 시련 그 자체에 이 탑이 인정받게 만드는 거야.”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시스템이 이 탑을 55층의 시련 일부로 인정받게 한다는 거지. 어쩌면 저기 밑에서 탑을 숭배하는 놈들 전체를 하나의 캠프로 인정받을 수도 있고.”
“와아아! 좋아! 난 무조건 좋아! 대환영이야!”
건축물을 시련의 일부로 인정받는 것. 이는 세운도 회귀 전에 소문으로나 들어보았던 이야기였다.
시련의 시스템은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니 어지간해서 플레이어의 건축물을 시련의 일부로 인정하여 시련의 내용에 변수가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운은 분명 들어보았다.
‘흑십자. 분명 그 사이코들이 시련에 지은 신전이 시련의 정식 건축물로 인정받았던 적이 있었지.’
흑십자.
얼마 전 경매장에서 보았던 펠체스가 길드 마스터로 앉아 있는 길드였다.
다른 길드에 비해서 유난히 사이비 종교스러운 성향을 보이는 흑십자 길드는 그 성격에 걸맞게 쉼터는 물론 시련 내에도 자신들의 신전을 쌓아 올렸다.
그 집념 때문인지 시련이 해당 신전을 인정해 주었다는 건 당시에 꽤 뜨거운 이슈 중 하나였다.
세운은 지금 그 이슈를 재현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해?”
“그저 높게 짓는다고 되는 건 아니야. 높이는 이 정도로 충분해.”
“헤헤, 좀 높긴 하지?”
“이제부터는 높이보다는 ‘의미’에 더 집중해야 해.”
“의미?”
– 성좌, ‘검은 새’가 당신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세운은 차분하게 과거의 소문을 떠올렸다.
당시 세운이 한창 흑십자의 펠체스에게 의뢰를 받고 다닐 때였기에, 그들이 자랑스럽게 떠드는 소문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애초에 인정받은 건축물의 이름도 흑십자 신전이었고, 의미도 흑십자가 따르는 신에 대한 거였지.’
그 간단한 소문으로도 여러 가지 방법을 떠올릴 수 있었다.
비단 신전이 아니더라도, 신을 따른다는 내용이 아니더라도, 해당 시련에서 무언가 역할을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건축물이라면 인정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이렇게 몇 없는 기회를 실험으로 낭비하기는 싫다.
우선은 확실한 것부터.
“이곳을 할파스의 상징으로 만드는 거야.”
“우와!”
– 성좌, ‘검은 새’가 당연한 일이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조금 아쉬워합니다.
– 성좌, ‘검은 새’가 이 ‘검은 부리’는 자신의 계약자가 자신을 숭배하며 지은 탑으로써 절대 양보할 수 없다며 날개를 내뻗습니다.
마몬이 아쉬워하는 게 보였지만, 애초에 이건 세운의 도움 없이 한아름이 짓고 있는 탑이었다.
그러니 신을 모신다면 당연히 할파스여야만 한다.
“그런데 어떻게?”
“그건…….”
세운은 언젠가 들렀었던 흑십자 신전의 모습을 떠올렸다.
검은색으로 채색된 신전의 곳곳에는 흑십자 무늬가 새겨져 있었고, 무엇보다 꼭대기와 신전의 중앙에 거대한 흑십자 조각이 세워져 있었다.
그 외에도 흑십자의 상징이 덕지덕지 새겨진 그곳은 누가 보아도 흑십자 신전 그 자체였다.
그러니 이 탑에도 할파스의 상징을 새겨야만 한다.
“아, 나 좋은 생각이 났어! 잠시마안.”
한아름이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보아하니 일반적인 종이는 아니고 설계도인 듯한데, 뒷면에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짠! 이걸 탑에 새겨넣는 건 어때? 조각상도!”
“괜찮은데?”
– 성좌, ‘검은 새’가 계약자가 그린 자신의 상징에 크게 만족합니다.
그녀가 완성한 건 할파스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검은 부리 그림이었다.
급하게 그린 스케치일 뿐인데도 할파스 특유의 날카로움이 잘 부각되어 있었다.
“할 수 있겠어? 이런 걸 새기려면 처음부터 설계를 해야 했을 텐데.”
“당연하지! 날 뭐로 보고! 금방 해 올게! 조각상도 만들어야지!”
한아름이 스케치를 들고 신나서 방방 뛰더니 밧줄 같은 걸 타고 탑의 아래로 내려갔다.
아마 저 설계대 탑의 곳곳에 할파스의 상징을 새기려는 모양이다.
물론, 세운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세운은 세운 나름대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나도 봉사하러 온 건 아니니까.’
한아름을 도와주는 것도 있지만, 세운도 여기서 빈손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튜리크.”
– 응. 내가 할 거, 있어?
“당연하지. 여기에 남은 힘 전부 쥐어짜려고.”
– 좋아. 나도 그러고 싶어.
“고마워.”
세운이 뒤랑달을 빼 들었다.
그러고는 양손으로 검을 거꾸로 잡고 바닥을 향해 내려찍었다.
콱!
어떤 소재로 만들었는지 모를 단단한 탑의 천장에 상처가 생겨났다.
제아무리 단단해도 세운의 검은 ‘바위를 쪼갠 검, 뒤랑달’. 사용자의 근력만 받쳐준다면 어떤 단단한 광물이라도 쪼갤 수 있었다.
하지만, 세운이 원하는 건 탑을 부수는 게 아니다.
세운은 손잡이에 힘을 준 상태로 검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가가각-
귀 아픈 소리를 내며 탑의 천장에 검흔이 새겨졌다.
검흔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한 바퀴를 돌아 원의 형상을 천장 가득 새겨냈다.
그 상태 그대로, 원의 안에도 복잡한 검흔이 새겨졌다.
룬어로 보이는 글자나 다양한 수식, 모형 등. 복잡한 문양이 얽히고 얽혀 하나의 마법진이 만들어졌다.
– 주인. 이건 뭐야?
“마법진. 정확하게 말하자면 부여 마법진이야.”
– 부여?
“원래라면 마법을 부여하는 거지. 실드 마법을 부여하면 탑이 공격을 당할 때 방패가 생겨나고, 불꽃 마법을 새기면 불꽃이 일어나지.”
– 그건 왜?
세운은 회귀 전에도 인챈트에 조예가 깊었다.
그 실력은 계속해서 이어져 왔고, 7서클에 다다른 지금은 이전보다 훨씬 강한 마법을 더욱 섬세하게 그려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부여 마법진에 불어넣을 건 마법이 아니다.
“여기에 공포의 힘을 부여할 거야.”
– 내 힘을?
“응. 할 수 있겠어?”
– 해 볼래.
튜리크가 날개를 활짝 펼쳤다.
곧 보라색 아우라가 어김없이 쏟아졌다.
공포의 힘이 깃든 아우라가 세운이 그려둔 마법진을 향해 스며들었다.
세운은 그와 동시에 마나를 흘려보내 마법진을 활성화하였다.
부여 마법진에 마법 이외의 것을 부여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과거에 숙달된 솜씨와 현재 7서클에 이른 지식은 그것을 가능케 만들었다.
우웅-
마법진은 곧 공포의 힘을 머금고 보라색으로 물들며 특유의 아우라를 내뿜었다.
마법진의 중앙에 제헤튼에서 잔뜩 구매해 두었던 마나석을 꽂으면 완성.
흑탑의 공포 마법과는 다른, 공포의 정령 튜리크와 세운의 성흔이 힘을 합쳐 이루어진 공포의 권능이 새겨진 마법진이었다.
“튜리크, 얼마나 더 할 수 있겠어?”
– 아직 멀쩡해. 더 할래.
“좋아. 힘 내보자.”
– 응!
세운은 탑의 정상에 이어 탑의 벽면에도 마법진을 새기기 시작했다.
* * *
한아름의 탑은 처음에 보았던 것과는 전혀 달라져 있었다.
애초에 그녀가 탑을 쌓기 시작한 목적은 한다운과의 높이 쌓기 대결에서 이기기 위함이었다.
높이에만 신경 쓴 탓에 하층의 기본적인 공격, 방어 시설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기능도, 꾸밈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우와, 이거 오빠가 다 한 거야? 진짜 멋지다!”
“너도 대단한데? 그 단시간에 예술성까지 고려해서 할파스의 상징을 새기고 동상까지 만들다니.”
“나야 늘 하던 일이니까! 근데 저 마법진 진짜 느낌 있다. 탑이 검은색인데 보라색 마법진이 이어지니까 엄청 분위기 있달까?”
기본적으로 탑은 검은 석재로 지어졌다.
그 표면에 세운이 뒤랑달을 이용하여 그린 마법진이 1층부터 꼭대기까지 길게 이어져 보랏빛으로 일렁거리고 있었다.
부여 마법진 특유의 복잡한 수식과 탑의 매끄러우면서도 불규칙한 패턴이 어우러져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거기에 한아름이 새긴 할파스의 상징은 어떤가?
1층부터 시작해 탑의 중간중간 눈에 잘 띄는 곳마다 과하지 않게 상징을 새겨 두었다.
밋밋하게 보일 수 있는 공간에는 검은 새의 석상을 세워 두고, 천장에는 세운이 그려둔 마법진 위로 거대한 검은 부리 석상을 일으켜 두었다.
둘 다 이 짧은 시간 안에 완성했다고는 상상하기 힘든 완성도였다.
“이제 끝이야? 아무것도 안 뜨는데?”
“그럴 리가.”
이제 남은 건 기다림뿐이다.
플레이어든 몬스터든 이 탑을 바라보며 제작자의 의도를 깨닫고 건축물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렇게 되면 시련의 시스템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건축물의 존재를 인정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탑의 완성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성좌, ‘검은 새’가 완성된 ‘검은 부리’에 크게 만족합니다.
– 성좌, ‘검은 새’가 그래도 역시 마지막 화룡점정은 자신이 찍겠다며 부리를 치켜듭니다.
– 성좌, ‘검은 새’가 해당 건축물을 ‘죽음의 성’의 아성 중 하나로 인정합니다.
가만히 구경하던 한아름의 성좌인 할파스가 나선 것이다.
죽음의 성이란 할파스가 직접 건축한 성.
침입자는 물론 감히 주제넘게 성을 우러러보기만 하여도 죽음에 이른다고 알려진 절대적인 죽음의 성이었다.
그러한 성의 아성으로 인정을 받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말뿐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한아름을 통해 할파스의 신성이 쏟아져 탑에 흘러들기 시작했다.
콰아앗-!!
탑에서 죽음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한아름이 그려 넣은 할파스의 상징들이 살아 있는 듯이 꿈틀거리며, 조각상이 눈을 뜨고 붉은 눈동자를 드러냈다.
세운이 그려둔 마법진 역시 더욱 진한 보랏빛을 내뿜으며 일렁였다.
탑에서 흘러나오던 죽음의 기운에 세운이 부여한 공포의 기운이 뒤섞이자 주변의 공기가 진득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힘이 넘실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 플레이어 한아름의 건축물 ‘검은 부리’가 시련의 일부로 인정받습니다.
– 죽음과 공포의 성. 할파스의 ‘검은 부리’가 55층의 히든 피스로 지정됩니다.
– ‘검은 부리’를 숭배하지 않는 몬스터는 탑에 가까워질수록 죽음과 공포의 기운에 침식됩니다.
– ‘검은 부리’를 숭배하는 몬스터는 미약한 죽음과 공포의 기운을 얻습니다.
– 55층의 시련에 절세의 건축물을 완성하였습니다. 기여도에 따라 공적치가 부여됩니다.
…….
한 번에 다 읽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메시지가 동시에 떠올랐다.
아직 다 읽지 못했지만, 자세한 정보를 살펴보니 세운의 생각 이상으로 뛰어난 건축물이 완성되었다.
어느 정도냐면 이 건축물이 서 있는 것 자체로 할파스의 격이 높아질 정도.
이 정도라면 할파스가 탑에 하사한 신성과는 비교도 안 되는 수치로 되돌아갔으리라.
– 성좌, ‘검은 새’가 거대한 새를 불러냅니다.
– 성좌, ‘검은 새’가 이제 자신과 거대한 새의 격차가 더더욱 크게 벌어졌다며 날개를 활짝 펴며 자랑합니다.
– 성좌, ‘거대한 새’가 검은 새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당신을 조용히 불러내 자신이 도와줄 테니 축성을 배워볼 생각이 없냐며 속삭입니다.
생각보다 보상도 크고 성좌들의 반응도 컸지만, 세운이 바란 건 이게 아니었다.
역시나, 얼마 지나지 않아 튜리크의 몸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정령이 무엇인가?
그 이름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어떤 생명이나 현상, 사물 등에 깃든 영혼을 뜻한다.
그런 만큼, 그들이 성장하는 방법은 신과 비슷하다.
자신이 주관하는 속성이 강해지거나, 자신이 그 속성에 더욱 큰 영향력을 발휘할수록 더욱 강하게 성장한다.
신의 힘이 깃든 탑에 공포의 힘을 담았으니 튜리크의 힘 역시 늘어나는 건 당연지사.
놀란 눈을 하고 있는 튜리크의 앞으로.
– 공포의 정령, 튜리크가 성장합니다.
– 정신계 정령인 튜리크가 정령계에서 상위 정령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 정령계에 공포의 영역이 확산합니다.
그녀의 성장을 인정하는 메시지들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