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384)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388화(384/675)
제 388화
튜리크의 날개가 한층 더 커진다.
깃털에 윤기가 더해지고, 그 아래로 작은 한 쌍의 날개가 자라난다.
찰랑거리는 보랏빛 머리칼이 조금 더 길어지고, 품고 있는 기운이 이전보다 훨씬 더 진해진다.
그녀의 힘이 늘어난 만큼 탑이 떨려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상위 정령이라.’
정령에게는 등급이라는 게 존재한다.
등급은 기본적으로 다섯 개로 나누어지는데 가장 아래부터 하급, 중급, 상급, 최상급, 정령왕의 단계로 이루어진다.
대표적인 물의 정령으로 예를 들자면 순서대로 운디네, 운다인, 엔다이론, 엘라스트라, 엘라임이라 불린다.
물론, 이는 사람의 이름과는 다르다.
정령계에만 존재하는 고유 명칭으로, 솔직히 이것도 인간이 정령과 소통하며 해석해 낸 분류라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중에서도 알려진 것들은 대부분 사대 정령이라 불리는 땅, 불, 바람, 물 속성의 정령에 대한 거고 다른 정령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특히 튜리크는 더하지.’
공포의 정령, 튜리크.
그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하지만, 회귀 전의 세운은 대도서관에서 정령에 관해서도 공부를 했었기에, 그녀와 같은 정신계 정령에 대해서도 미약하게나마 지식이 있었다.
‘아마, 정령계에서도 공포의 정령은 튜리크 혼자일 테니까.’
정신계 정령의 수가 적은 이유는 간단하다.
땅, 불, 바람, 물은 명확하게 이 세상에 뿌리내린 원소들이었고 그 수도 엄청나다.
그 반면, 정신계 정령이 속하는 감정들은 그 개념이나 수가 불명확하여 정령이 깃들기 어려웠다.
수가 적은 만큼 원소 정령들만큼 체계적인 분류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튜리크가 지금, ‘상위 정령’으로 인정받았다.
“축하해, 튜리크.”
– 나, 나…… 내가. 상위 정령이 된 거야?
정령에게 등급이란 무슨 의미일까?
세운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튜리크의 반응을 보아하니 인간이 생각하는 계급 같은 것과는 다른 개념인 것 같았다.
적어도 인간의 귀족 계급과는 차원이 다른…… 승급보다는 진화나 초월에 가까운 뜻이지 않을까.
– 나 정말. 정말 상위 정령이…….
울컥하는 얼굴로 눈물까지 글썽이며 세운을 부여잡는 튜리크.
감격한 마음은 알겠지만, 이미 그녀의 피로는 한계에 달했다.
세운과 함께 55층의 전역을 날아다니며 공포의 힘을 발현한 걸 넘어 방금은 이 거대한 탑 곳곳에 그 힘을 불어넣었으니까.
힘이 남아 있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할 정도였다.
“얼른 가서 쉬어.”
– 나, 상위 정령이야. 그럼, 동생들도 만들 수 있어. 그럼, 거기에서도 난 혼자가 아니야. 그럼…….
“그래, 그래.”
뭔가 더 말하고 싶어 보이지만, 그녀의 몸이 반투명해지고 있었다.
몸이 점점 흐릿해지자 그제야 자신의 상태를 눈치채고 아쉬운 듯이 세운의 옷깃을 더욱 꽉 붙잡았다.
“또 부를게.”
– 응!
그래도 마지막은 활기찬 대답과 함께 인사를 건넸다.
눈물을 글썽이며 활짝 미소 짓는 게 어쩐지 안쓰러워 보였다.
그렇게 튜리크를 보내고 나니, 옆에서 폴짝거리며 신나 하고 있는 한아름의 모습이 보였다.
“오빠, 오빠! 이거 봤어? 등급 봤어? 와, 나 이런 등급 처음 받아봐!”
어디까지나 조력자이자 협력자인 세운과 달리 그녀는 어엿한 이 탑의 건설자 본인. 탑의 주인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 때문인지 세운에게 나타난 메시지 이상으로 많은 메시지가 떠오른 모양이다.
당연하게도 그중에서는 탑의 등급을 나타내는 메시지도 있었는지 어지간히도 바쁘게 호들갑을 떨고 있다.
“오빠, 어쩌지? 나 지금 너무 좋아! 이거 사진 찍어두고 싶은데 가고일 좀 빌려도 돼?”
“마음대로 써.”
“야호! 사진기 사 두길 잘했다! 아, 맞다. 깜빡할 뻔했네.”
한아름은 라일락의 경매장에서 사두었던 사진기를 꺼내려다가 멈칫하며 행동을 바꿨다.
허공에 손가락을 두들기는 것을 보아 길드챗을 이용하는 모양.
얼마 후, 그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더니.
[ 한아름 : 언니, 이거 내가 무조건 이겼지롱! 언니가 아무리 높게 쌓든 예쁘게 쌓든 무조건 내가 이겼지롱! ] [ 한다운 : 어? 무슨……. ]“내가 이겼다아!”
가고일을 타고 날아가 자신이 세운 탑을 다각도로 촬영하기 시작했다.
* * *
한아름이 세운 탑, 검은 부리.
시스템 메시지가 설명해 준 것처럼, 이는 단순한 일회성 구조물이 아니라 정식으로 55층의 구조물로 인정을 받았다.
검은 부리가 영향을 미치는 장소는 탑이 보이는 지역 전체.
다른 건물이었으면 모를까, 검은 부리는 하늘에 닿을 듯이 높이가 높은 탓에 그 범위 또한 엄청났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영향력이 약해지긴 하지만, 몬스터들은 탑을 바라보며 두 가지 선택을 강요당했다.
“저 탑을 부숴라!”
“고개를 들어라, 전사들이여!”
“공포에 굴복하지 말지어다!”
탑에서 흘러나오는 공포의 기운에 저항하며 무기를 드는 자들과.
“쿠륵! 신에게! 고개를 숙여라!”
“오오, 죽음이시여!”
“공포이시여!”
“결국, 모두 죽음으로 돌아갈 지리니!”
탑에서 흘러나오는 공포의 기운에 굴복하여 탑을 숭배하는 자.
그 덕분에 탑 주위에서는 언제나 몬스터들의 전투가 일어났다.
55층에 존재하는 몬스터 대부분이 투쟁심이 강한 탓에 그 전투에서는 탑은 숭배하는 이들보단 탑을 공격하는 이들이 더욱 많았지만.
– 죽음과 공포의 탑, 검은 부리에 저항하여 일시적으로 최대 체력이 10% 감소합니다.
– 죽음과 공포의 탑, 검은 부리에 저항하여 일시적으로 움직임이 10% 둔해집니다.
…….
검은 부리는 탑을 공격해 오는 적군에게 죽음이나 공포와 관련된 디버프를 선사했다.
그와 반대로 검은 부리를 숭배하는 이들에게는 적에게 죽음을 선사하고 공포를 일으키는 힘을 부여받았다.
덕분에 수가 적더라도 검은 부리의 숭배자들은 강력하게 저항할 수 있었고, 덕분에 검은 부리의 주변에는 언제나 몬스터가 우글거렸다.
간혹 우두머리 격 몬스터가 숭배자들을 뚫고 검은 부리의 지척에 다가가 도끼를 들어 올려 내려치려는 경우도 있었지만.
푸부부북!
“커헉!”
한아름은 이 탑을 높게 쌓기 위해 아래층에 몬스터를 막아낼 수 있는 방어 시설을 만들어 두었다.
자동으로 적을 조준하여 발사하는 대포나 발리스타 등.
그 방어 시설은 탑이 할파스의 신성을 부여받고, 시스템에 인정받으며 더더욱 강해졌다.
하늘에서 공격해 오는 몬스터 역시 마찬가지.
시간이 지날수록 검은 부리의 숭배자들이 유리해졌고, 그럴수록 검은 부리 주변의 몬스터 세력은 늘어만 갔다.
물론, 검은 부리 주변에 모여든 건 몬스터만이 아니었다.
“저건!”
“히든 피스! 저 히든 피스 처음 발견해 봐요!”
“55층에 저런 것도 있었나? 내가 이번에 55층만 3번째 도전하는 건데, 저렇게 높은 탑이 있었으면 발견하지 못했을 리가…….”
“지금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큼, 그건 그렇지.”
검은 부리는 명백하게 55층의 히든 피스로 인정받았다.
다만, 찾기가 어려운 히든 피스들과는 다르게 검은 부리는 그 높이만큼이나 찾기가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난이도.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도 각종 디버프가 걸려오고 검은 부리 숭배자라는 강력한 몬스터들이 공격을 해 온다.
“젠장, 뭐 이거 깨라고 만든 거 맞아?”
“너무 어렵잖아!”
55층은 기본적으로 플레이어 협동 구간이 아니다.
그러니 검은 부리를 찾아낸 플레이어들은 전부 혼자이거나 우연히 만나 급작스럽게 파티를 결성한 이들이었다.
54층의 시련에서 몬스터에게 인정을 받아 몬스터 대군을 이끌고 오는 이들도 있었지만…….
“검은 부리를 숭배하라!”
“죽음과 공포에 고개를 숙여라!”
“고개를 숙이지 않는 자, 공포에 떨며 죽음에 다다를 것이니!”
이미 늘어날 대로 늘어난 검은 부리 숭배자의 세력을 물리칠 수는 없었다.
그렇게, 검은 부리는 55층의 중심으로써 세력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세운이나 한아름도 검은 부리 덕분에 많은 소득을 얻을 수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 기뻐하고 있는 건.
– 성좌, ‘검은 새’가 광포하게 울부짖습니다.
– 성좌, ‘검은 새’가 좀 더 찬양하라며 숭배자들을 꾸짖습니다.
– 성좌, ‘검은 새’가 지금부터는 자신이 55층의 주인이라며 날개를 활짝 펼칩니다.
당연코, 서열 38위의 마왕 ‘할파스’였다.
* * *
– 55층의 시련 ‘전장의 승리’를 훌륭하게 완수하였습니다.
– 공적치 집계 중…….
– 히든 퀘스트 ‘공포 정치’ 완료.
– 히든 퀘스트 ‘정복자’ 완료.
– 히든 퀘스트 ‘흑조탑(黑鳥塔)의 조력자’ 완료.
…….
– 총 누적 공적치 550,500point
– 축하드립니다! 55층의 시련을 랭킹 2위로 통과하였습니다.
– 보상으로 50,000point를 획득하였습니다.
55층의 시련이 끝나고, 무려 55만 포인트가 들어왔다.
지금까지 시련을 통해 얻어온 공적치에 비해서도 당연코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는 수치.
여기에는 세운이 공포의 힘을 이용하여 정복한 수많은 몬스터 캠프의 누적 공적치도 있겠지만, ‘검은 부리’의 영향이 컸다.
그 증거로 세운이 이번 시련에서 2위를 받은 이유가…….
“오빠, 오빠! 나 이번 시련 1등이래! 1등 먹은 거 처음이야!”
“축하해.”
“어쩌지? 이거 다 오빠 덕분인데. 내가 괜히 1등 뺏은 거 같은데…….”
“아냐, 나는 조금 거들었을 뿐인걸. 애초에 그 탑의 주인은 너였고.”
“그래도! 미안하긴 한데, 근데! 나 너무 행복해!”
검은 부리의 건설자인 한아름이 60만 공적치를 획득하며 시련의 1등을 달성하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말대로 1등을 빼앗긴 꼴이었지만, 세운은 전혀 아쉽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의 탑을 돕지 않았으면 시련 1등을 쟁취하더라도 공적치는 지금보단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모르는 사람이면 몰라도, 한아름은 세운의 길드원이다.
가까운 동료가 1등을 차지했다는데 아쉬울 건 전혀 없었다.
“언니, 언니!”
“와, 진짜야? 1등? 시련에 인정을 받았다고?”
“응! 진짜 신기했다니까? 혈랑 오빠 말 듣고 이렇게 이렇게 하니까, 짠! 하고 완성됐어!”
“부럽다아! 오빠, 나도 도와주라! 다음 시련에서는 나랑 하면 안 돼?”
“기회가 된다면.”
“아싸! 난 더 커다란 걸 지어야지!”
– 성좌, ‘거대한 새’가 계약자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며 싱긋 웃습니다.
– 성좌, ‘거대한 새’가 기회가 온다면 자신 역시 최대한 돕겠다고 약속합니다.
– 성좌, ‘검은 새’가 그래봤자 자신의 ‘검은 부리’는 절대 따라오지 못할 거라며 비웃습니다.
– 성좌, ‘거대한 새’가 다시 봐도 정말 멋진 건축물이라며 검은 새를 축하합니다.
– 성좌, ‘검은 새’가 괜히 찝찝한 기분을 느낍니다.
“아, 그리고…….”
“응?”
“다운이 것까지 도와주고 나면, 내 부탁도 좀 들어줄 수 있을까?”
“물론이지!”
“무슨 부탁인데?”
“나도 건축물을 하나 만들어야 할 것 같아서.”
세운이 괜히 이런 부탁을 하는 게 아니었다.
한아름이 탑을 완성하기 전에는 그저 조금 아쉬운 티만 내고 있던 마몬이, 검은 부리가 완성된 후로는 자신의 상징도 만들어 달라며 메시지를 계속해서 보내왔기 때문이다.
할파스에게는 내색하지 않고 있나 본데, 속으로는 어지간히도 부러웠나 보다.
과연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튜리크의 힘을 키우며 거인의 격을 흡수해 가며 탑을 올라갈 생각이니 문제 될 건 없었다.
게다가.
“허락도 맡았으니, 그럼 이제 상징을 지어주는 대가에 대해서 얘기를 해 봐야겠죠?”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합당한 대가를 치르겠다며 자신의 보물 창고를 개방합니다.
그 대가로 마몬의 보물을 빼 올 수 있다면 세운으로서는 무척이나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