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385)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389화(385/675)
제 389화
56층의 시련, 무너진 왕조.
50층의 중반을 넘은 만큼 단순히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만 아니라 다양한 요구 조건 때문에 꽤 까다롭다고 할 수 있는 곳이었지만, 그건 이미 세운의 관심 밖이었다.
“어때? 이 정도면 아름이 거보다 커?”
“지름은. 높이는 그게 더 높았던 것 같긴 하지만.”
“에이, 높이가 중요하나! 역시 이렇게 크고 웅장한 게 멋있지!”
– 성좌, ‘거대한 새’가 고개를 끄덕이며 계약자의 말에 공감합니다.
한아름의 ‘검은 부리’에 이어, 이번에는 한다운의 성좌인 말파스의 상징을 건축하는 것. 그게 이번 층에서의 실질적인 목표였으니 말이다.
‘처음부터 그럴 목적으로 지어서 그런가, 생각보다 멋지네.’
한아름이 지었던 탑과는 전혀 다르다.
검은 부리가 높이에 치중되어 있었다면, 이번 건축물은 마치 콜로세움처럼 넓고 화려하게 지어졌다.
높이는 검은 부리의 절반에 못 미치지만, 올려다봤을 때 느껴지는 웅장함은 결코 검은 부리에 뒤처지지 않았다.
‘디자인도 더 화려하고.’
한아름의 탑은 그저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깔끔한 구조였다.
물론, 거기에 세운의 마법진과 그녀의 조각 등이 어울려 엄청난 위압감을 풍기긴 했지만, 한다운의 탑은 전혀 달랐다.
괜히 콜로세움을 예로 든 게 아니라, 화려한 창문이 사방에 배치되고 조각이나 구조 역시 더욱 화려했다.
게다가 화룡점정으로 건물의 천장은 거대한 새가 부리를 벌리고 있는 것처럼 두 갈래로 날카롭게 벌어져 있었다.
마치, 하늘을 집어삼킬 것처럼 말이다.
“튜리크. 괜찮겠어?”
– 응! 나 멀쩡해! 아니, 더 힘낼 수 있어!
상위 정령으로 인정받은 덕분일까?
정령계로 돌아간 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돌아온 그녀는 한층 더 밝아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전보다 힘이 더욱 강해졌다.
힘을 몇 번만 사용해도 지친 티를 보이던 게 엊그제 같았는데, 지금은 몬스터 몇 무리를 무릎 꿇리고도 쌩쌩했다.
이번에도 역시 한다운의 탑에 부여 마법진을 새겨넣고, 그 안에 튜리크의 힘을 불어넣었다.
마지막으로 말파스가 신성을 하사하자, 세운의 눈앞으로 익숙한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 플레이어 한다운의 건축물 ‘거대한 부리’가 시련의 일부로 인정받습니다.
– 공포와 나락의 성. 말파스의 ‘거대한 부리’가 56층의 히든 피스로 지정됩니다.
– ‘거대한 부리’를 숭배하지 않는 몬스터는 탑에 가까워질수록 공포와 나락의 기운에 침식됩니다.
– ‘거대한 부리’를 숭배하는 몬스터는 미약한 공포와 나락의 기운을 얻습니다.
– 56층의 시련에 절세의 건축물을 완성하였습니다. 기여도에 따라 공적치가 부여됩니다.
…….
“와아아아아! 진짜다아아아!”
혹시나 이번에는 안 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던 모양이다.
들어보니 한아름이 받았던 등급과 같은 등급이었다.
55층에 이어 56층에도 시스템에게 인정받는 정식 건축물을 지어내다니. 역시, 쌍둥이 자매의 능력은 대단했다.
– 성좌, ‘거대한 새’가 자신을 위해 이토록 아름다운 상징을 완성해 준 계약자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 성좌, ‘검은 새’가 ‘검은 부리’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볼 만한 것 같다며 헛기침을 내뱉습니다.
– 성좌, ‘거대한 새’가 검은 새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싱긋 웃습니다.
게다가 이번에도 역시 튜리크가 성장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계급은 여전히 상위 정령이었지만, 스스로도 힘이 강해진 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이 방법이면 튜리크를 정령왕까지 성장시킬 수도 있지 않나?’
이쯤 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탑을 세워 성좌의 상징을 만들어 내는 것은 세운이나 쌍둥이 자매나 성좌들이나 모두에게 이득이었다.
그러니 층을 돌아다니며 이런 상징들을 마구잡이로 지어낸다면?
쌍둥이 자매의 힘이 강해질 뿐만 아니라, 튜리크도 지속해서 성장할 수 있다.
그런 희망찬 생각을 가지며 쌍둥이 자매와 대화를 해 보았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점이 드러났다.
– 성좌, ‘거대한 새’가 고개를 내젓습니다.
– 성좌, ‘검은 새’가 탑의 시스템은 그리 멍청하지 않다며 당신의 의견을 지적합니다.
– 성좌, ‘거대한 새’가 시스템의 영향이 아니더라도 성좌가 탑의 시련에 끼칠 수 있는 신성의 양에는 제한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 성좌, ‘검은 새’가 검은 부리 덕분에 격이 커졌다고는 해도 탑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신성은 이미 전부 써 버렸다며 날개를 펄럭입니다.
애초에 성좌가 탑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서는 막대한 양의 신성이 필요하다.
영향을 끼치면 끼칠수록 사용되는 신성의 비율은 극히 나빠진다.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100의 신성을 부어봤자 탑에 영향을 끼치는 신성은 1에 수렴할 정도가 된다.
할파스가 말파스가 말하는 것도 이에 관한 얘기로 보였다.
‘하긴, 격과 신성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니까.’
이미 그 두 가지 개념을 잘 알고 있는 세운이었기에 이해가 빨랐다.
그리고,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만약 된다고 해도 나랑 아름이가 안 될걸?”
“무슨 말이야?”
“우리 주머니가 무한한 것도 아니고, 재료에 한계가 있거든! 나도 이걸로 이미 가지고 있던 자재 대부분 써 버렸는걸?”
“……아.”
워낙 자연스럽게 많은 자재를 꺼내 쓰길래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이다.
그녀들의 자재는 무한하지 않다.
제헤튼의 상회나 라일락의 경매장에서 자재를 넉넉하게 구매해 뒀기에 가능했던 것뿐이다.
애초에 한 사람이 이토록 거대한 탑을 지을 정도의 자재를 들고 다니는 게 신기한 일이었다.
아, 그러면…….
“다음 층에 탑 하나 더 지을 자재는 남은 거야?”
“아름이랑 합치면 가능할걸? 이것보다 조금 작으려나.”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벌떡 일어납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자신의 상징은 무조건 저 탑들보다 크고 높아야 한다며 날개를 활짝 폅니다.
한다운의 말에 마몬의 메시지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다음에는 바로 마몬의 탑을 지어주기로 하였으니, 지금 상황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다.
“창고에서 자재로 쓸 보물들을 꺼내주면 되지 않습니까?”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자신의 창고를 거덜 낼 생각이냐며 소리를 지릅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마왕들보다 작은 탑이라니, 그럴 바에는 없는 게 낫겠다며 고개를 돌립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거주지에서 나눈 계약은 무효라며 단언합니다.
“어쩔 수 없죠.”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너무 단호한 거 아니냐며 머뭇거립니다.
튜리크의 성장 기회야 아쉽지만, 그거야 탑을 오르며 차차 해결될 문제다.
지금 당장 마몬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조급하게 굴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다음 쉼터에서 경매장을 이용할 수 있으니 자재는 그때 추가로 구매하면 된다.
“그럼 남은 자재로 다른 것도 실험해 볼까?”
“오오, 실험? 어떤 건데?”
“생각해 둔 게 좀 있거든. 굳이 성좌의 상징이 아니더라도 시스템에 인정받을 수 있을 만한 건축물을.”
“좋아! 무조건 좋아! 아, 그럼 아름이랑 같이하면 안 될까?”
“당연히 되지. 다음 시련에서 만나서 같이 하자.”
“응! 나도 뭐 지어볼지 생각해 봐야지!”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당신을 애처롭게 쳐다봅니다.
* * *
“시련에 마왕의 상징이라니, 대체 저게 왜 시스템에 인정을 받은 거야!”
“사례가 없었던 일이라 저희도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취소 안 돼? 솔직히 좀 어울리긴 해도, 형평성에 안 맞지 않나 싶은데…….”
“형평성은 맞습니다. 다른 성좌들도 사도를 통해 시련에 비밀을 숨겨두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다만…….”
“다만?”
탑의 관리소.
시련의 크기가 커지는 만큼 관리인들이 해야 할 일은 많았다.
그래도 대부분의 일은 시스템이 알아서 처리해 주니 어지간하면 기본적인 점검이나 이변을 확인하는 게 그들의 일이었는데.
지금, 심각할 정도의 이변이 나타났다.
바로, 죽음과 공포의 탑 ‘검은 부리’.
서열 38위의 마왕, 할파스의 상징으로 생겨난 드높은 탑이었다.
“너무 강합니다. 벌써 검은 부리를 숭배하는 몬스터 세력이 열 곳이 넘었습니다.”
“몬스터 좀 유인해서 처리하면 안 돼?”
“좀 빨리 시도했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늦었습니다. 탑의 디버프가 워낙 강해서 수로 밀어붙이는 건 의미 없습니다.”
“플레이어에게 히든 퀘스트를 내리는 건?”
“그거야말로 형평성에 안 맞지 않습니까. 게다가, 플레이어라고 해도 저 탑을 공략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주신의 계약자 정도라면 모를까…….”
“주신급 계약자가 갑자기 생겨날 리가 없잖냐…….”
“솔직히 그 정도 계약자가 와도 혼자서는 무리일 거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하아…….”
결국, 답은 없었다.
잘 돌아가고 있던 일에 새로운 이변이 덜컥 끼어 버린 탓에 팀장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을 뿐,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일단 현상 유지나 하자고. 넓긴 해도 검은 부리가 영향을 끼치는 범위는 정해져 있으니까.”
“네.”
“다가오는 플레이어들에게는 이게 난이도 높은 히든 피스라는 걸 인지시키고, 숭배자가 늘어나면 안 되니까 주변 몬스터도 더 이상 덤벼들지 않게 조율하고.”
“알겠습니다.”
시스템이 인정한 이상 방법은 없었다.
관리인들이 하는 일은 시스템을 조작하는 게 아니라 시스템이 하는 일을 보조하고 보수하는 일이었으니까.
시스템의 판단 그 자체를 바꾸려면 윗선에 보고를 해야 하는데, 보고서는 올릴 예정이지만 탑은 대체로 시스템의 선택을 존중한다.
그러니 윗선에 보고한다고 달라질 일은 없을 것이다.
“젠장, 튜닝이라고 했나? 그자의 말이 맞았네. 어지간한 이변은 다 대비 중이었는데, 이런 일을 벌이고 갈 줄이야…….”
그는 튜닝을 무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래층에서의 행보를 보고 그의 말을 최대한 존중하였다.
하지만, 시스템에게까지 인정받을 탑을 건설하는 건 튜닝으로서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도움을 빌리고 싶었지만, 세운이 이미 다음 층으로 오른 상태였기에 튜닝도 이곳에 머무를 수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다음 층은…….’
다음 층의 팀장은 성격이 꽉 막힌 편이라 튜닝의 말을 잘 안 들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던 중, 팀원 중 한 명이 그에게 헐레벌떡 다가왔다.
“팀장님!”
“왜 그래?”
“그, 저희 층 일은 아닌데 일단은 보고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그, 설마…… 위층에도 이런 게 또 생겨난 거냐?”
“네……. 이번엔 말파스의 탑이라고 합니다.”
“하아…….”
튜닝의 말을 안 듣고 버티다가 입을 벌린 채로 당황하고 있을 위층의 팀장을 떠올리며, 그는 작은 동질감이 느껴졌다.
* * *
57층의 시련, 피로 물든 대지.
58층의 시련, 썩은 강가.
59층의 시련, 쓰러진 왕조.
세운은 다음 시련도 망설임 없이 쭉쭉 헤쳐나갔다.
튜리크와 함께 성흔의 힘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덕분에 거인의 격을 생각보다 많이 흡수할 수 있었다.
성흔에 깃든 신성의 양도 전에 비해 체감될 정도로 늘어났다.
“우와, 진짜 됐어!”
“대충 무슨 느낌인지 알겠다! 언니, 우리 이런 것도 해 볼래?”
“응, 좋아! 쉼터 가면 자재 좀 더 많이 보급해 둬야겠다! 아, 여기서도 좀 채집해 둬야겠는데?”
“같이 가자!”
“응!”
할파스나 말파스에게 신성을 내려받지 않고도 시스템에게 건축물을 인정받는 것도 성공했다.
물론 이전처럼 거창한 건축물은 아니지만, 그걸로도 쌍둥이 자매의 실력은 나날이 발전했다.
세운 역시 그녀들을 도우며 추가 공적치는 물론 튜리크의 성장까지 이룰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세운 씨, 다 모였어요.”
“그래.”
50층 대의 시련을 전부 무사히 극복한 디아블로 길드가 60층의 시련에 모여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