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391)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395화(391/675)
제 395화
“크로노스?”
모를 리가 없었다.
애초에 세운이 회귀를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마몬의 창고에 숨겨져 있던 ‘크로노스의 모래시계’ 덕분이었으니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크로노스의 모래시계 복제품’이겠지만 말이다.
“역시, 알고 계시는 눈치네요.”
얼마 전, 아르카나에게 들었던 얘기가 떠올랐다.
그녀가 세운이 회귀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티케에게 들었던 크로노스의 실종 때문이었다.
당연하게도 크로노스의 실종은 올림포스 전체에 혼란을 불러일으켰을 것이고, 아르카나가 크로노스의 실종과 세운의 회귀를 연결했을 정도면…….
“크로노스의 실종이 나 때문이라고 의심하고 있는 거군.”
“맞아요.”
이것밖에 답이 없었다.
그들은 마몬의 복제품 따위가 회귀를 가능하게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테니.
아니, 인정하지 않을 테니 분명 세운이 진짜 크로노스의 모래시계를 사용했을 것이라 추측할 것이다.
세운의 행보를 보면 올림포스와 우호적인 것도 아니니, 회귀 전에 크로노스를 죽이고 강제로 모래시계를 빼앗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플레이어가 성좌를 쓰러트린다니…….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세운은 이미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두 번이나 벌여왔다.
그들이 의심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이것만 묻겠어요. 제가. 아니, 저희 올림포스가 하고 있는 의심이…… 정말인가요?”
티케가 사뭇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만약 여기서 세운이 고개를 끄덕인다면 올림포스와의 전쟁은 피할 수 없을 거다.
‘그나저나 내 회귀에 대한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니.’
과연, 성좌는 성좌란 말인가?
그들은 결코 멍청이들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회귀에 대한 사실을 최대한 숨겨왔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세운의 착각이었다.
올림포스 대부분이 세운의 회귀에 대해 확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소문이 어디까지 퍼져나가 있을지 모른다.
잠시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지금은 티케의 질문에 답할 때다.
뭐, 고민할 것도 없다. 그저 사실을 말하면 되는 거니까.
“아니다.”
“……정말인가요?”
“믿지 못하겠다면 어쩔 수 없지만, 내가 마몬의 힘을 쓰는 건 봤지 않나?”
“설마 그 가설이 정말이었나요? 마신의 힘이 정말, 크로노스 님의 힘을 재현한 건가요?”
“맞아.”
“그럼 크로노스 님은 어째서…….”
“나를 의심하기 이전에, 답이 정해진 질문 아닌가?”
올림포스에서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아니, 간과했다기보다는 세운을 의심하느라 묻어 두었던 가장 큰 가능성을 무시하고 있었다.
“아…… 그렇네요. 크로노스 님의 사도라면.”
“그래. 나도 보지는 않았지만, 들은 적이 있어. 나 말고도 회귀자가 존재한다고. 아마 그게 크로노스의 회귀자가 아닐까.”
제헤튼의 지하에서 보았던 정체불명의 괴한.
그와 대화하던 중, ‘회귀자들’이라는 단어를 들었었다.
영문을 모르겠지만, 그는 분명 세운을 제외한 또 다른 회귀자를 알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제헤튼 이후로는 마주친 적이 없네.’
아우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듯했으니 아우터를 상대하다 보면 또다시 마주치게 될 줄 알았는데.
아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제헤튼 바로 다음으로 들른 쉼터인 라일락의 운석은 그 누구도 찾지 못하는 카지노의 주인만 출입할 수 있는 창고에 숨겨져 있었으니까.
그에 반해 이번에 찾아낼 운석은 지하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만큼, 그 괴한을 또 한 번 마주칠 가능성이 높았다.
“크로노스 님이 사라지신 건 사도를 되돌리느라 인과율을 너무 크게 어긴 탓이겠네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인과율을 어기고 존재 자체가 소멸할 정도의 권능을…… 탐욕의 마신은 어떻게 재현한 거죠?”
“잘 만들어진 복제품은 진짜와 다를 바 없지. 마몬은 충분히 그럴 실력을 갖추고 있고. 그리고…….”
세운은 또 하나의 회귀자가 존재할 가능성을 떠올리며 생각한 추측 중 하나를 내뱉었다.
어차피 여기까지 대화가 진행된 이상, 티케에게 숨길만 한 사실은 없었다.
“이건 내 추측인데, 크로노스의 사도는 회귀 전에 가지고 있던 힘을 그대로 보존한 채 회귀했을 가능성이 커.”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 정도라면 아무리 크로노스 님이라하더라도 인과율을 피해 낼 수 없었겠죠. 하지만, 어째서 그렇게까지…….”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사도를 회귀시켜도 결과가 같을 거라 생각한 거겠지.”
“첫 번째 세계는…… 멸망한 건가요?”
“그래, 신계를 포함해 탑 전부가 무너져 내렸지.”
“아아…….”
조금 의심할 법도 한데, 티케는 세운의 대답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가 싶었지만, 곧 작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저도 도움이 되어드리고 싶지만, 죄송하게도 올림포스에서 제 발언권은 크지 않아요. 제우스 님에게 말씀드려도…….”
“말이 통할 가능성은 낮지.”
“네, 아마 일단 잡고 볼 가능성이 커요. 제우스 님은 현명하시지만, 성격이 급한 편이거든요.”
애초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같은 편이 하나 늘었다는 사실만 해도 세운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게다가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대화만 잘 통하면 올림포스도 아군으로 삼을 수 있어 보였다.
아우터를 말살시키기 위해서는 성좌들과의 전투를 꺼릴 필요가 있으니, 이는 세운에게 희소식이나 다름없었다.
“조금 더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지만…….”
“시간이 다 되어가는군.”
“네. 긴 시간이라 생각했는데, 대화 내용이 생각 이상으로 깊어지는 바람에 이렇게 되었네요.”
성좌와 알현할 수 있는 시간은 대략 10분.
일 년에 한 번, 고작 10분만 대화할 수 있다지만 이조차도 크나큰 혜택이었다.
성좌가 탑에 영향을 미치려면 엄청난 힘을 소모해야 하는데, 이 방법이라면 힘을 소모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다만, 이렇게 강림하게 되면 본래의 힘을 사용할 수 없고 오로지 대화만이 가능하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꼭 서로의 오해가 풀리기를 바랄게요.”
“가능하다면.”
“마지막으로, 그녀를 잘 부탁드려요. 저도 옆에서 가능한 한 도울게요.”
“그래.”
정해진 시간이 끝나고, 조각상에 깃들어 있던 티케의 몸이 점차 흐릿해졌다.
잘 익은 벼 이삭이 노을빛을 받으며 출렁이는 것처럼 방 안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것을 마지막으로, 티케의 형체가 완전히 사라졌다.
* * *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대체 누가 강림한 거냐며 당신에게 묻습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혹시 강림한 성좌가 기분 나쁘게 하지는 않았냐며 적대심을 드러냅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당신의 요리를 먹지 못해 아쉬워합니다.
신전을 나오자마자 성좌들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티케가 강림 되는 순간, 다른 성좌들과의 연결이 완전히 끊어졌던 모양이다.
대부분이 아쉬워하는 반응.
그중에서도 마몬이 어떤 성좌가 강림했냐고 계속 물었지만, 세운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올림포스의 성좌가 강림했다고 하면 화부터 낼 게 뻔하니까.’
신전을 나오자마자 유서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세운을 맞이해 주었다.
예상대로 세운을 믿고 차분하게 밖에서 기다려 주고 있었다.
“저도 다녀올게요.”
“그래. 만약 계약을 바꾸자고 하면 신중하게 고민하고. 너 정도라면 아쉬울 건 성좌들이니 조급하게 결정하지 않아도 돼.”
“알겠어요.”
–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그냥 안 들어가면 안 되겠냐며 머리를 긁적입니다.
–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자신의 계약자에게 접근하는 놈이 있으면 당장 거미줄로 말아 버리겠다며 독니를 드러냅니다.
쿵!
신전의 문이 닫혔다.
과연, 그녀는 어떤 성좌와 대화를 하고 나올까?
제일 가능성이 큰 건 당연히 바알이었다.
세운의 실력에 가려져 있었을 뿐이지, 그녀의 실력은 다른 성좌들 역시 인정할 정도로 뛰어났다.
하지만, 바알이라는 막강한 성좌에게 막혀 대부분의 성좌는 그녀에게 함부로 다가올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이익-
“……세운 씨. 저 끝났어요.”
유서아가 조금 당황스러워 보이는 모습으로 신전을 빠져나왔다. 반응을 보아하니 바알이 아닌 다른 성좌와 대화를 나누고 온 모양이다.
“어려우면 말하지 않아도 돼.”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그게, 풍백이라는 성좌님이 나타나셔서…….”
“풍백?”
세운의 눈이 덩달아 크게 뜨였다.
풍백.
기후를 다스리는 삼사 중에서도 가장 권위가 높다고 알려진 바람의 신이었다.
성좌 중에서도 중립 세력으로 분류되는 성좌인 만큼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극히 드물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세운이 놀란 건 그 때문이 아니었다.
‘풍백이라면 회귀 전에 유서아의 성좌였을 텐데.’
지금이야 바알의 사도가 되었지만, 회귀 전의 유서아는 바알과 조금의 접전도 없었다.
대신 튜토리얼 당시 바람의 신의 눈에 띄어 바로 계약하게 되었고, 그 이후 탑에서 ‘신풍(神風)’이라는 이명을 가지게 되었다.
그 풍백이, 이번에 또 그녀에게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어?”
“계약을 강요하지는 않았어요. 저에게 관심이 있다고, 바람을 힘을 조금 나누어 주겠다고 했어요.”
“아무런 대가도 없이?”
“네. 저도 대가에 대해서 물었는데, 어쩐지 익숙한 향기가 난다며 대가는 필요 없다고 해서…….”
당연하게도, 풍백이 세운이 회귀 전의 세상을 기억하고 있을 리는 없다.
그저 감.
저번 생에서 유서아가 괜히 풍백과 계약한 게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분노합니다.
–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그런 미풍의 힘 따위는 필요 없다며 감히 자신의 사도에게 침을 묻힌 성좌에게 독니를 드러냅니다.
“침을 묻히다니, 그건…….”
–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당장 태백산(太白山)의 정상에 올라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미련한 짓 하지 말고 얌전히 있으라며 부리를 까딱입니다.
–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독니를 악물며 분노를 참아냅니다.
바알이 노발대발하며 날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뭐, 잘 됐지.’
조금 의외이긴 하지만, 아무런 대가도 없이 바람의 힘을 나눠 받았다는 건 분명히 큰 이득이었다.
게다가 풍백은 바람의 신 중에서도 상급으로 분류되는 강력한 성좌다.
그 힘과 유서아의 캐미는 회귀 전에 이미 증명된 것이니, 바람의 힘에 적응하면 그녀의 힘 역시 크게 강해질 것이다.
‘역시, 찾아오길 잘했어.’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디아블로 길드는 세운의 도움이 없더라도 신전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어째서인지 저 멀리서 박정필이 신전 주위를 기웃거리고 있는 모습을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럼, 이제…….’
– 크르릉…….
세운이 루인을 불러냈다.
신전에서의 볼일을 마쳤으니, 남은 일은 하나다.
루시퍼가 말한 ‘깃털’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일이니,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찾을 수 있겠지?”
– 물론이다. 나의 주인이시여.
데스힐의 지하 어딘가에 묻혀 있는 아우터의 위치를 찾아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