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392)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396화(392/675)
제 396화
“어때? 루인.”
– 크르릉…….
세운의 질문에 루인이 고개를 저었다.
벌써 데스힐의 도시구역 절반가량을 돌았는데 아우터의 냄새는 전혀 찾지 못하고 있었다.
‘하긴, 데스힐은 넓으니까.’
활기가 적고 조용해서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 뿐이지, 데스힐의 도시는 제헤튼보다도 넓다.
거기에 도시 바깥으로 퍼져 있는 무덤까지 합하면 그 크기는 지금까지 겪어왔던 그 어떤 시련이나 쉼터보다 거대하다.
아쉽게도 아우터의 위치는 여정의 지침표도 가리키지 못하고 있으니, 이렇게 직접 모든 지역을 둘러보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그나마 지형을 알고 있어서 다행이지.’
세운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길을 잃지 않았을까?
데스힐은 그만큼이나 길 찾기가 어려운 곳이다.
모든 건물이 칙칙한 회색으로 이루어진 것은 물론, 다섯 개의 신전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이정표도 없었으니까.
“저기…….”
그렇게 데스힐을 순회하던 중, 작은 여자아이가 세운의 전포 끝자락을 붙잡았다.
데스힐 특유의 무관심함도 있지만, 루인의 모습 때문에 사람들이 먼저 말을 거는 일은 없었는데.
심지어 이렇게 작은 아이가 루인의 위압감을 견디고 다가올 줄은 몰랐다.
“꽃 사실래요? 이쁜 꽃 많아요. 전부 헌화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에요.”
소녀가 내민 바구니에는 백합과 함께 다양한 꽃이 담겨 있었다.
다만, 꽃잎의 끄트머리에 진득한 액체 같은 게 한 방울 흘러내리는 게 눈에 보였다.
마몬의 보물로 발달한 후각으로 추측해 보자면.
‘독.’
공기에 닿으면 증발하여 가까운 사람을 서서히 중독시키는 종류의 독으로 보였다.
회귀 전에 모험가로 생활하며 독으로 몬스터를 상대하기도 했었기에, 독에 대한 지식은 충분했다.
어차피 안 사면 그만이고, 산다고 해도 지금의 세운이라면 이 정도에 중독될 리가 없었지만.
– 크릉!
“꺄앗!”
루인의 반응은 그렇지 않았다.
세운 이상으로 후각이 발달한 만큼 꽃에 묻어 있는 독 향을 금세 눈치채고 세운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 과정에서 소녀가 밀쳐져 쓰러지고, 바구니가 떨어져 꽃잎을 흩뿌린다.
무관심하던 거주민들의 시선이 세운을 향해 집중된다.
세운이 루인을 물리고 소녀를 일으키려는 순간.
“아이고, 세리야 괜찮니?”
“무릎이 까진 것 같구나.”
“아, 아저씨…….”
중년의 남성 둘이 재빠르게 다가와 세운의 앞을 막아섰다.
다른 사람이 보았다면 소녀를 걱정해서 달려온 것처럼 보였지만, 세운의 눈에는 보였다.
저 둘이 달려오는 순간 소녀의 얼굴이 공포로 질린 것과 둘이 입고 있는 새까만 신도복을.
‘흑십자.’
상황이 전부 이해간다.
하긴, 저 작은 꼬마가 세운을 노리고 독이 발린 꽃을 들고 올 리는 없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꽃에 발린 독이 너무 인위적이었다.
애초에 소녀는 저 두 남자가 시키는 대로 세운에게 말을 걸었을 뿐이고, 일에 실패하자 이후에 당할 징계가 무서워 놀란 것이다.
“아무리 외부인이시라고 해도, 너무하는군요.”
“이 작은 아이를 다치게 하다니…….”
저들의 꼼수가 눈에 보인다.
중독시키는 데 실패했지만, 이걸 기회로 세운의 이미지를 깎아내릴 심산인 것이다.
기본적으로 외부인에게 무관심한 내부인이라도 자신들을 공격하는 이에게는 가차 없으니까.
그래도 다행인 점이라면 이 주위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는 점이다.
점점 귀찮아지려는 상황에 세운이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는 어떻게 해도 귀찮아질 뿐이지.’
작정하고 이미지를 깎아내리려는 놈들을 막을 수는 없다.
아니, 막을 수는 있겠지만 그러자면 일이 심하게 귀찮아진다.
어차피 데스힐에서 아우터를 처치하고 흑익의 깃털만 조우하면 흑십자와는 더 볼 일은 없다.
예전과 달리 세운은 이곳에서 공적치나 실력을 쌓지 않아도 충분히 다음 쉼터까지 오를 실력이 있었으니까.
시련에 대비하여 이곳에 진지를 치고 이미지 관리를 하며 거주민들과 친하게 지내야 하는 플레이어들과는 달랐다.
“이건 횡포요!”
“데스힐에서 이런 일은 용납할 수…….”
– 성흔이 혈랑전설의 설화에 반응합니다.
– 성흔의 첫 번째 능력, ‘공포’가 깨어납니다.
“흐업!”
공포를 제대로 일으킨 것도 아니다.
시련에서 몬스터를 상대로 사용했던 거에 비하면 1할도 안 되는 적은 양의 힘을 사용했을 뿐인데, 둘은 곧바로 자세가 무너지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플레이어도 아닌 거주민이. 그것도 전투 경험조차 없는 일반인이 견디기에 성흔에 가진 힘은 절대적이었다.
“귀찮게 하지 말고 꺼져.”
– 크릉.
쓰러진 놈들을 살며시 짓밟고 아직 수색하지 못한 구역으로 이동했다.
루인 역시 세운을 따라 하는 것처럼 둘을 공평하게 꾹꾹 밟고 지나갔는데, 발톱을 숨기지 않은 덕에 둘의 옷이 찢어지며 발톱 자국이 남았다.
“어, 어…….”
쓰러진 두 남자의 뒤로 벌벌 떨고 있는 소녀가 보였지만, 세운은 이를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 그녀를 구해 준다고 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배신자로 오해를 받으며 화풀이를 당할 가능성이 크다.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 바에 괜한 선심은 베풀지 않는 게 나았다.
만약 정말 그녀를 위한다면.
‘흑십자.’
놈들의 머리를 자르는 수밖에 없다.
* * *
흑십자가 수작을 걸고 있는 대상은 세운만이 아니었다.
세운이 한창 데스힐의 온 구역을 수색하고 있을 무렵, 흑십자는 디아블로 길드 전체의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중이었다.
“이런 흉물스러운! 이건 저희 데스힐에 대한 모독이자 모욕입니다!”
“응? 아저씨들 누구야?”
“여기 빈 땅이라고 맘대로 써도 된다고 이미 허락받았는데?”
“이렇게 흉물스러운 건축물이 데스힐에 자리를 잡으면 조상님들의 영혼이 저희를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아저씨들 왜 그래?”
“이상한 아저씨들 같은데. 어디 아픈 거 아냐?”
괜한 트집을 잡아 쌍둥이 자매가 짓고 있는 건물을 지적하며 여론을 몰아가거나.
“자네, 신전에서 뭐 하는 짓인가!”
“이 아저씨는 뭐야? 그냥 둘러보고 있는 건데 뭐 문제라도 있어?”
“당연히 문제 있지! 이곳은 죽은 자들일 기리는 신성한 장소다. 그런 곳에서 추모는커녕 기웃거리며 사람들을 쳐다보는 건 엄연한 희롱이다!”
“희롱? 이 아저씨가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아니, 그냥 좀 보는 거라니까?”
“어허! 그래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다들 여기 보시오! 이 외부인이 저희 추모를 모욕하고 있습니다!”
“뭔 소리야, 내가 모욕을 왜 해? 아니, 아니라니까요?”
웬일로 세운의 말대로 술까지 참으며 데스힐의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빨빨거리던 박정필을 트집 잡기도 했다.
그 외에도 디아블로 길드원 대부분 검은 신도복을 입은 자들에게 난처한 상황을 겪어야만 했다.
그럴수록 디아블로 길드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하나하나 쌓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적당한 수련터를 찾기 위해 데스힐을 거닐고 있던 강한철의 앞에도 검은 신도복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당신이 그 말로만 듣던 디아블로라는 곳의 외부인이군.”
“듣던 대로 흉악하게 생겼어. 저 두꺼운 주먹으로 사람들을 막 위협하고 다닌다던데.”
“뭐지?”
강한철의 걸음이 멈췄다.
힘을 키우는 것 외에는 별 관심이 없는 그라도 이렇게 대놓고 시비가 걸려오면 수상함을 눈치챌 수 있었다.
게다가 이미 클랜챗을 통해 저 사람들로 인한 피해를 알고 있었다.
이마에 짜증이 솟구쳤지만, 강한철은 꾹 참으며 팔짱을 끼었다.
“당장 데스힐에서 나가시오! 당신들 때문에 사람들이 공포에 떨고 있잖소!”
“난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거짓말하지 마시오! 지금만 해도 이렇게 우리를 위협하고 있잖소!”
“열 명이서 찾아와 한 명을 둘러싸고 있으면, 오히려 그쪽이 위협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지 않나?”
“저, 저! 주먹 떨리는 거 보소! 또 우리를, 우리를! 커, 흐억…….”
“어르신!”
얼굴까지 뻘겋게 물들이며 노발대발하더니 혼자서 쓰러지는 남자.
그를 부축하기 위해 굳이 반대편에 있던 사내가 달려와 강한철의 어깨를 치고 지나간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나가떨어진 건 어깨를 친 사내였다.
“커헉!”
자기가 달려와 어깨에 부딪혀 놓고 땅바닥을 구르는 꼴이 가관이다.
짜증이 한층 더 솟구치며 주먹이 떨려왔지만, 강한철은 눈까지 감으며 짜증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여기서 화를 내봤자 저들이 원하는 결과를 내어줄 뿐이다.
“아이고, 사람 죽네!”
“어르신! 데널! 이, 이런 괴물을 봤나! 이제 그만해 달라고 말리러 온 사람들을 이런 식으로!”
“난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지금 여기 쓰러진 두 사람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시오?!”
“난-”
콰득!
하지만, 강한철의 인내심과 달리 육체는 그 인내심을 따라주지 못했다. 전신의 근육이 당장에라도 튀어 나갈 것처럼 팽창한 것이다.
화를 애써 참으려고 몸에 더욱 힘을 주자, 그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바닥이 일그러졌다.
그가 평소에 사용하던 개전(開戰)에 비하면 별 볼 일 없는 힘이었지만, 그 작은 진동에…….
“허어!”
“아이고! 사람 잡네!”
주변의 신도들이 일제히 쓰러졌다.
우습지도 않을 연기지만, 주변의 창문이 하나둘 열리며 데스힐의 이목이 점점 더 크게 집중되고 있었다.
“어디서 개수작을……!”
“아이고, 아이고!”
가만히 서서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벌써 주변의 모두가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상황.
강한철이 화를 참지 못하고 항의하기 위해 팔짱을 풀고 앞으로 한 발을 내밀었다.
딱 한 발.
그저 한 걸음을 내밀었을 뿐인데.
툭.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자가 재빨리 다가와 강한철의 다리와 부딪쳤고.
“크헉!”
쿠당탕!
바닥을 몇 바퀴나 구르더니 앞의 벽에 부딪히며 몸을 축 늘어트렸다.
“세상에, 사람을 죽이다니!”
“맙소사! 이 괴물 놈! 당장 우리 성스러운 데스힐에서 꺼져라!”
탑에 들어온 이후로 수천, 수만 마리의 몬스터를 쓰러트려 온 강한철이다.
다리에 닿은 촉감만으로도, 쓰러진 남자의 상태만으로도 그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더 따져봤자 놈들의 올가미에 더욱더 조여질 뿐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피하고 싶었다면, 처음부터 이 자리를 벗어났어야만 했다.
거기까지 생각에 미친 강한철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으득!
“젠자앙-!!”
이빨을 꽉 깨물며 허공을 향해 울분을 토해 내는 것뿐이었다.
* * *
아우터의 수색은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데스힐의 도심 구역부터 시작해 외곽의 무덤가나 회귀 전에 히든 피스를 발견했던 검은 숲 등, 이곳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구역을 수색하였다.
시간이 오래 소요되나 ‘설마 60층과 연결이 안 되어 있는 건가?’라는 의문이 들 때쯤.
“설마 여기였다니.”
– 확실하다. 주인이시여.
세운은 마침내 아우터가 파묻혀 있는 위치를 찾아낼 수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데스힐의 도심 구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말이다.
끝에 와서야 아우터의 위치를 겨우 찾아낼 수 있었지만, 세운에게는 운명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르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묵직한 인기척이 들려왔다.
너무나도 익숙한 인기척이었기에 굳이 고개를 돌려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니?”
이곳을 어떻게 찾아냈는지는 몰라도, 늘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있던 강한철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갑자기 왜 이러나 싶었지만, 금방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흑십자인가.’
세운에게 독액이 묻힌 꽃을 넘겨주려던 것을 넘어 이미지를 망가트리려 수작을 부리던 흑십자 놈들.
세운에게 그 방식이 통하지 않으니 놈들의 다음 방향은 뻔했다. 바로, 데스힐 전체에 퍼져 있는 디아블로 길드원들을 노리는 것.
어쩐지 클랜챗이 시끄럽다 싶었더니 그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놈들의 노림수에 걸려들었다.”
변명 하나 없는 깔끔한 보고.
그 모습이 너무나도 강한철다워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어떤 짓을 했는지는 몰라도 직접 찾아와 고개를 숙일 정도라면 디아블로 길드의 이미지가 크게 추락하는 사건이라도 벌인 것일까.
하지만,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괜찮아.”
“사람을 죽였다는 소문이 퍼졌다. 실제로 죽이지는 않았지만, 놈들은…….”
“괜찮다니까.”
– 그르릉…….
세운이 루인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전방을 주시하였다.
데스힐의 분위기에 딱 어울리는 회색 석조로 지어진 건물의 꼭대기에 검은 십자가가 세워 있었다.
아래에는 검은 신도복을 입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락거리고 있었다.
흑십자.
일곱 번째 쉼터에 펠체스가 세워둔 길드. 아니, 길드라기보다는 광신도 집단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곳.
“어차피 놈들이랑 한판 붙어야 할 것 같았으니까.”
아무래도 펠체스와의 악연은 세운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질긴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