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393)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397화(393/675)
제 397화
세운은 마음을 정하자마자 흑십자 길드 본부를 향해 나아갔다.
기습을 위해 은밀하게 이동하는 것도, 무언가 계획을 세우고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도 아니다.
마치 미리 약속이라도 잡힌 사람처럼 당당하게 걸어갔다.
“누구십니까? 이곳은 위대한 검은 십자가를 믿고 있는 신도만이 출입할 수 있는 곳입니다. 외부인은 돌아가 주시길 바랍니다.”
건물에 가까이 다가가자 주변의 신도들이 세운의 앞을 막아섰다.
몇몇은 무기까지 꺼내 드는 게 한 발짝만 더 다가오면 찌르기라도 할 모양새였다.
“펠체스는 안에 있나?”
“주교께서는…….”
“주교는 무슨. 안에 있나 보네.”
펠체스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눈에 띄게 당황하는 모습만 보아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펠체스는 대부분의 시간을 본부 안에서 보낸다.
외출하는 시간이라고는 대부분 데스힐의 도심이나 경매장을 다녀오는 것 정도이니 어지간하면 시간이 맞을 수밖에 없다.
“저희는 분명 경고했습니다! 이 이상 다가오시면 공격하겠습니다!”
신도들이 세운을 향해 무기를 들어 올렸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여기 있는 모두가 세운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는 모양이다.
이에 세운이 걸음을 멈추지 않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치워.”
“알겠다.”
쿠웅!
“크헉!”
사과하러 찾아왔던 강한철은 세운의 보디가드가 되어 있었다.
세운에게는 따로 말하지 않았지만, 놈들의 수작에 놀아난 게 얼마나 분했는지, 강한철은 신도들에게 아낌없이 울분을 토해 내고 있다.
아무리 무기를 들고 있다고 한들 플레이어도 아닌 비전투계 거주민들이 강한철을 상대할 수 있을 리가 만무.
벌컥!
수십 명의 신도가 보호하기 무색하게 흑십자의 정문이 활짝 열렸다.
“왜 이렇게 소란스럽습니까?”
“무슨 일…… 당신은?”
정문을 열자마자 보인 건 기다란 복도 끝에 세워진 거대한 흑십자 조각상. 그리고 그 앞에서 두 손을 모은 채 기도하고 있는 수십 명의 신도였다.
개중에는 거주민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플레이어 역시 존재했다.
“이들이 주교님을 뵙겠다며 막무가내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저, 저희 힘으로는 도저히…….”
“비켜라! 겨우 한 놈 가지고.”
저 플레이어들은 흑십자의 길드원이지만 신도라고 보기는 어렵다.
지금 다가오고 있는 플레이어만 해도 기도하고 있는 신도들을 감시하듯이 옆의 기둥에 등을 기대고 있었으니까.
저들은 일종의 감시역.
흑십자의 체계를 이용하고 신도라 불리는 거주민들을 이용해 먹는 놈들이었다.
“뭐야, 디아블로 놈들이잖아? 잘됐네, 안 그래도 뭘 귀찮게 뒷 작업이나 하고 있나 싶었는데.”
실력에 꽤 자신이 있는 걸까?
강한철의 덩치를 보고 물러설 법도 한데, 다섯 명의 플레이어가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온다.
주먹까지 우득거리며 위협하는 모습이 가관이다.
그런데도 세운의 걸음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고, 표정을 찌푸리며 세운을 막아서려던 놈들은.
“이게 어디서 무시를…….”
“비켜라.”
퍽, 콰직!
“크헉!”
“커억!”
앞선 신도들과 마찬가지로 강한철의 주먹에 맞아 바닥을 나뒹굴었다.
아니, 피를 울컥 토하거나 정신을 잃는 모습을 보아하니 신도들보다 상태가 더 심했다.
아무래도 상대가 플레이어라는 것을 알고 신도들을 때릴 때보다 주먹에 힘을 조금 더 담았나 보다.
“꺄아악!”
“누가 좀 말려 봐!”
“지금 전사분들 대부분 밖에 계실 텐데…….”
“막아! 안쪽으로 가잖아! 막아!”
“커헉!”
그 이후로도 사람들이 세운의 앞길을 막아보려 하였으나, 같은 상황이 반복될 뿐이었다.
기도에 전념하며 조용하던 건물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지고, 주변에 기절한 인원이 쌓여갔다.
강한철도 울분을 마음껏 풀 수 있는 지금의 상황이 꽤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분명 여기였지.’
회귀 전에 펠체스에게 여러 차례 의뢰를 받아 수행했었기에, 놈의 방이 어디에 있는지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기둥 사이에 교묘하게 가려 있던 문이 열리고, 화려한 복도가 나타났다.
철그럭.
“이 시간에 예약된 사람은 없다고 알고 있는데.”
복도 끝에서 전신 갑옷으로 무장한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천장에 머리가 닿을 듯이 큰 키와 피부가 전혀 보이지 않도록 무장한 두꺼운 전신 갑옷.
강한철보다 거대한 덩치가 인상적인 사내였다.
‘펠체스의 보디가드. 저놈도 흑십자의 초창기 구성원 중 하나랬지.’
펠체스와 만날 때면 언제나 뒤에서 위압감을 풍겨대던 놈이었다.
마지막에 흑십자에서 쫓겨날 때 역시 녀석의 손에 쫓겨나고 말았었지.
하지만, 지금은 과거에 느꼈던 위압감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가소로운 수준.
이에 세운이 녀석을 가뿐히 무시하며 걸음을 옮겼다.
“침입자라면, 처단하겠다.”
전신 갑옷에 이어진 커다란 건틀릿이 세운의 안면을 향해 다가온다.
그 묵직한 공격이 세운에게 닿기 직전.
쿵!!
“비켜라.”
강한철의 주먹이 건틀릿과 부딪쳤다.
분명 주먹과 건틀릿이 부딪쳤는데 주먹이 아닌 건틀릿 쪽에서 우득거리며 철이 일그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둘이 대치하는 사이, 세운은 놈을 지나쳐 문을 향해 다가섰다.
이에 놈이 목소리를 높이며 세운을 붙잡으려 하였지만.
“누구 맘대로……!”
“내 맘대로다.”
콰직!
“큭! 이놈들이!”
강한철이 놈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강철로 만들어진 전신 갑옷을 종잇장처럼 으스러트리며 놈의 움직임을 막아선다.
분명 덩치 차이가 나지만, 갑옷이 으스러지며 팔에 압력을 받자 견디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만다.
강한철은 그제야 눈높이가 마음에 드는지 주먹이 아닌 손바닥을 들어 녀석의 헬멧을 후려친다.
퍽!
“그만……!”
뻑!
“그, 그만! 멈춰라!”
뻐억!
“커허억!”
뒤에서 들려오는 신음을 무시한 채로 세운이 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자 집무실처럼 깔끔하게 정리된 주교실이 드러난다.
딱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희귀 아이템들로 벽이 꾸며져 있고, 회귀 전에는 제목도 읽기 힘들었던 책들이 책장에 가득하다.
그 중앙에 놓인 새까만 원목으로 만들어진 책상 뒤에 펠체스가 특유의 작위적인 미소를 짓고 있었다.
“생각보다 일찍 오셨군요. 적어도 며칠은 더 여유를 두고 찾아오실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그러기엔 너무 열정적으로 나를 부르지 않았나? 이렇게 뒤끝이 심할 줄이야.”
“하하, 저희 신도들이 조금 열정적이긴 하죠. 그만큼 신앙심이 깊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여기까지 걸어오며 클랜챗에 적힌 글들을 쭉 읽어보았다.
흑십자의 신도들이 디아블로 길드원에게 했던 짓들은 생각 이상으로 악질이었다.
솔직히 그것을 먼저 읽었다면 아우터의 유무에 상관없이 흑십자를 찾아왔을 것이다.
회귀 전과 달리 지금의 세운은 가만히 당할 수밖에 없는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순순히 인정하는 걸 보니 숨길 생각은 없나 보지?”
“세운 님에게 숨긴다고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어차피 이곳의 사람들은 제 말을 믿을 텐데 말입니다.”
“그래, 신도들이야 그렇다 치고 데스힐에서 너희 이미지는 제법 좋은 편이니까.”
“당연하지요. 저희 흑십자는 언제나 데스힐의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습니다.”
“봉사는 무슨. 더러운 짓은 골라서 하는 주제에.”
“하하,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부정을 하고 있지만, 세운은 이미 알고 있었다.
놈이 데스힐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경매장에서 십억이 넘는 금액을 부를 수 있었는지 말이다.
“그래?”
세운이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서클이 회전하자 오른손 앞에서 공기가 몰려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터질 듯이 뭉친 공기층이 대포처럼 오른쪽 벽을 향해 쏘아졌다.
콰광!!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눈을 반짝입니다.
벽이 무너지며 그 안에 숨겨진 보물창고가 드러났다.
저것만 보아도 현재 흑십자의 재산 상황이 얼마나 넉넉한지 알 수 있었다.
그중에서는 경매장에서 사들인 것으로 보이는 값진 아이템의 수 역시 상당했다.
“신도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받은 돈. 거기에 신도들을 사용해 데스힐의 재료를 수집하고 가공시켜 경매장에 팔아서 만든 돈들.”
“하하, 그게 뭐 어떻다는 거죠? 저희 신도들은 그저 흑십자의 교리에 따르고 있을 뿐입니다. 모두가 만족하고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러면 여기도 봐야겠네.”
세운이 그대로 왼손을 들어 올렸다.
이번에도 역시 왼손 앞으로 공기층이 모여들자 펠체스의 얼굴이 구겨지며 순간적으로 웃음기가 사라졌다.
하지만, 세운의 마법을 막을 수는 없었다.
콰앙!
왼쪽 벽이 무너지자 어두운 조명 아래 뭉쳐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흑십자의 상징이 새겨진 잔을 들어 올리며 무언가를 들이마시고 있었는데, 대부분이 눈이 풀린 채로 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었다.
“환각제에 중독시켜 강제로 따라오게 만드는 걸 여기서는 ‘신앙’이라고 표현하나?”
“……정보력이 대단하시군요. 그 짧은 시간에 어디까지 알아내신 겁니까?”
“네가 신도들을 보내 검은 숲에서 환각제의 원료인 ‘흑향초’를 채집하고 있다는 거나, 중독된 거주민을 잡고 데스힐의 주민들을 협박하고 있다는 것 정도?”
당연하게도 이는 이번에 알아낸 것들이 아니다.
당장 검은 숲만 하여도 세운이 이번에 들렸을 때는 신도들을 모두 철수시킨 후였기에 평범한 방법으로는 그들이 검은 숲에서 흑향초를 채집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들을 알아낸 건 어디까지나 회귀 전의 일.
펠체스의 아래서 의뢰하며 알아낸 것들과 펠체스에게 복수하기 위해 조사했던 것들이 지금에 와서야 빛을 발하고 있었다.
“짐승을 데리고 데스힐을 왜 돌아다니고 있나 싶었더니, 그런 걸 조사하고 계셨군요. 솔직히 놀랐습니다. 정말 상상 이상입니다.”
자신의 어두운 치부가 전부 드러났음에도 펠체스는 여전히 작위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치 세운이 대견하다고 칭찬하는 듯한 말투.
잠깐 당황하긴 했어도, 자신의 우위를 확신하는 분위기다.
“그래서 뭐 어떻다는 겁니까?”
“약, 약을…….”
펠체스가 무너진 벽의 틈에서 기어 나온 신도의 머리를 짓밟았다.
“제 악행을 데스힐에 떠벌리며 정의라도 부르짖을 생각이십니까? 과연, 그게 통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럴 리가 없다. 그 방법은 이미 세운이 회귀 전에 사용해 봤던 방법이었으니까.
이미 데스힐의 절반 이상이 흑십자와 연관되어 있는 이상, 여론 조작 따위는 불가능했다.
오히려 흑십자의 악행에 대해 떠벌릴수록 사슬은 세운을 더욱 단단히 옭맬 뿐이었다.
“그럴 리가.”
“잘 알고 계시는군요. 그럼, 저에게 고개라도 숙이러 오신 겁니까? 그렇다면 잘 생각하신 겁니다. 저희 흑십자는 고개를 숙인 죄인에게 너그럽거든요.”
놈의 착각에 세운은 대답 대신 뒤랑달을 꺼내 들었다.
날카로운 검 끝을 놈의 목젖 앞에 가져다 대고, 여기까지 찾아온 진짜 목적을 말했다.
“디아블로 길드와 흑십자의 길드전을 정식으로 신청한다.”
디아블로 길드의 첫 길드전의 예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