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394)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398화(394/675)
제 398화
“저희 길드가 많이 얕보였나 보군요. 이제 막 데스힐에 올라온 신규 길드에게 도전을 받을 정도라니 말입니다.”
“그 증거로 내가 여기까지 검 한 번 안 휘두르고 도착했잖아?”
“그러고 보니 저희 데니 님이 안 보이는군요. 잠시 화장실이라도…….”
쿠웅!
문이 열리며 데니라고 불린 남자가 들어왔다.
아니, 들어왔다기보다는 던져졌다는 표현이 어울리리라.
그 단단해 보이던 전신 갑옷은 전체가 손바닥과 주먹 자국으로 일그러져 있었고, 갑옷의 주인은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찢겨 나간 흉부 갑옷 사이로 미약하게 오르내리는 가슴 덕분에 그가 살아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질겨서 시간이 걸렸다.”
이어서 손바닥을 툭툭 털며 등장하는 강한철.
바닥에 쓰러져 있는 데니와는 대조되게 몸에 그 어떤 상처도 없이 깔끔한 모습이었다.
심지어 강한철은 전투 복장도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여기 쓰러져 있는 게 데니인가?”
“…….”
펠체스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미소는 잃지 않고 있지만, 세운은 놈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하하, 패기 하나는 인정합니다. 아니, 패기보다는 그녀라는 후광을 믿고 까부시는 겁니까?”
“그녀?”
“이렇게 모른 척을 하실지는 몰랐군요.”
그녀의 정체를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번 생에서 펠체스와 만났을 때, 세운의 옆에 있던 사람은 한 명뿐이었으니까.
“아르카나 말인가?”
“카지노의 여왕. 라일락의 지배자. 어떻게 환심을 끌어냈는지는 몰라도, 카지노까지 포기하게 하면서 길드로 영입을 하셨더군요.”
“남의 뒤를 캐는 게 취미인가 봐?”
“세운 님이 제 뒤를 캔 것과 별반 다를 거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건 다르지. 이쪽은 워낙 악취가 풀풀 흘러서 알기 싫어도 알 수밖에 없었거든.”
“과묵하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말이 많으셨군요?”
“글쎄, 당하고만 있는 편은 아니라서.”
펠체스가 웃음을 유지한 채로 책상에 검지를 두들겼다. 무언가 깊이 생각할 때 나오는 특징.
아마 디아블로 길드와 길드전을 벌였을 때 얻을 수 있는 이득과 손실, 승률 등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래도 머리가 잘 돌아가는 놈이라 그런지 생각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탑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길드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고나 계십니까?”
“당연하지. 서로의 모든 걸 내건 전쟁. 계약에 따라 목숨까지 걸 수도 있지.”
“호오, 잘 알고 계시는군요. 그럼 하나만 묻겠습니다. 저희가 그쪽과의 길드전을 벌여서 얻을 게 뭐가 있습니까?”
지금부터가 본론이었다.
그의 말대로 길드전은 서로의 길드가 모든 것을 내걸고 하는 전쟁.
이제 막 데스힐에 들어와 입지도 없는 신생 길드인 디아블로 길드에 비해 흑십자는 이미 데스힐에서 부와 명성이 쌓여 있다.
게다가 저쪽 입장에서는 이미 디아블로 길드의 이미지 악화 계획도 차근차근 진행 중이니 굳이 길드전을 벌일 필요가 없다.
‘어떻게 봐도 길드전을 수락하는 건 흑십자에게 손해라는 얘기지.’
길드전 같은 정식 절차를 밟을 게 아니라 그냥 이 건물을 터트리면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건 경우가 다르다.
데스힐에 지부를 두고 있다지만 흑십자 역시 디아블로 길드와 마찬가지로 전용 거주지를 가지고 있다.
기습을 하여 건물을 무너트려도 흑십자는 거주지로 도망치면 그만인 것이다.
또한 건물을 무너트리는 순간, 디아블로 길드는 데스힐에서 역적으로 확정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 당장 눈앞의 펠체스의 목을 베면 어떠냐?
가장 손쉬운 방법이지만, 세운은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저놈은 그 누구보다 보험에 확실한 놈이니까.’
당장 놈의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만 해도 상대의 기습을 1회에 한정하여 무조건 보호해 주는 장신구다.
그 외에도 다양한 장신구로 목숨에 대한 보험을 준비해 둔 게 펠체스다.
이것 말고도 길드전이 아닌 방법으로는 승리를 거두어도 길드 경험치를 얻을 수 없거나 시스템의 인정을 받을 수 없는 등, 불확실한 요건이 너무 많았다.
그러니 확실하게 하려면 무조건 놈이 길드전을 수락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세운은 녀석이 무엇을 원하는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이게 뭔지 알고 있나?”
세운이 책상 위로 아이템 하나를 올려놓았다.
은은한 일곱 빛깔로 빛나고 있는 화려한 열쇠.
“……오리하르콘으로 만들어진 열쇠?”
세운이 튜토리얼의 보상으로 받은 아이템인 ‘작은 열쇠’였다.
이름이 형편없긴 하지만, 천상의 금속이라고도 불리는 오리하르콘으로 만들어진 열쇠인 만큼 범상치 않은 힘을 가진 열쇠이다.
그 능력은 바로 ‘만능열쇠’. 즉, 마스터키.
그 어떤 자물쇠도 열 수 있고, 그 어떤 문도 열 수 있는 열쇠였다.
“이게 뭔지는 짐작할 수 있겠지?”
“그럴 수가, 하지만 이건……. 아니, 그래도…….”
펠체스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미소가 사라진다.
그럴 만도 하다. 펠체스라면 세운과 마찬가지로 이 열쇠를 보자마자 그 능력에 대해 바로 짐작할 수 있었을 테니까.
세운이 녀석의 앞에서 이 열쇠를 꺼낸 이유는 간단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펠체스는 열쇠광이라 불릴 만큼 열쇠에 집착하는 놈이었지.’
회귀 전, 세운이 흑십자 길드에게 받은 의뢰 대부분이 열쇠에 관한 것들이었다. 숨겨진 열쇠를 찾아내거나, 그러한 열쇠를 통해 숨겨진 방을 찾아내거나.
놈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만능열쇠에 환장할 거라는 건 확실하다.
“우선 확인을…….”
척.
자연스럽게 열쇠를 집어가려는 펠체스를 저지했다.
그러자 놈의 손이 한 차례 부르르 떨리더니 이내 평온을 되찾으며 뒤쪽에 놓여 있던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내왔다.
“이걸 열면 인정해 주지요.”
상자에는 작은 열쇠 구멍이 뚫려 있었다.
세운도 처음 보는 상자였지만, 열쇠구먼 주위로 아름답게 새겨진 문양만 보아도 상자가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해봉(解封)에 얼마가 드는지는 알고 있을 텐데?”
저 상자를 열어 열쇠를 증명하는 것 따위는 쉽다.
하지만, 탑에서 봉인을 푸는 해봉이나 저주를 푸는 해주 등의 작업은 생각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여기서 열쇠를 증명한다고 생각 없이 상자를 열어주는 것은 펠체스를 위해 무료 봉사를 하는 꼴이나 다름없다.
“……A급 보물 상자, ‘베에니아의 약혼함’입니다. 정보는 직접 확인하고 성공한다면 해봉비로 천만 포인트를 드리겠습니다.”
A급 해봉에 천만 포인트.
높지도 낮지도 않은 딱 적정선의 가격에 세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열쇠 구멍에 작은 열쇠를 가져다 대자 은은한 무지갯빛이 감돌며 열쇠가 구멍에 들어맞게 변형되었고.
철컥.
“……!”
펠체스가 내민 약혼함이 열렸다.
안에 담긴 건 투명한 보석으로 장식된 약혼반지.
제법 괜찮은 아이템으로 보였지만, 펠체스는 약혼반지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진짜 마스터키라니……!”
방금의 해봉으로 작은 열쇠의 능력은 증명되었다.
펠체스의 눈이 커지며 지금까지의 작위적인 미소와는 달리 입꼬리가 쭉 찢어지며 진정한 미소가 지어졌다.
“하하, 정말 믿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경매장을 오가고 탑을 샅샅이 뒤져도 찾을 수 없었던 마스터키가 당신의 손에 있었다니!”
놈은 이미 마스터키가 자신의 것인 것처럼 행복하게 부르짖었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세운이 열쇠를 도로 품에 넣었다.
펠체스가 아쉬운 듯이 손을 뻗었지만, 방금의 시연으로 그는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길드전이라 하셨습니까? 하하, 당연합니다! 네, 받아들이겠습니다!”
디아블로 길드와 흑십자의 길드전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 * *
세운이 방을 빠져나간 후, 바닥에 쓰러져 있던 남자의 몸에서 어둠이 일렁이더니 몸이 꿈틀거리며 으스러져 있던 갑옷이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곧이어 갑옷이 완전히 돌아오고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투구를 벗고 펠체스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주교님.”
분명 강한철에게 기절할 정도로 당했을 텐데, 투구를 벗은 그의 얼굴은 머리카락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상태였다.
몸을 움직이는 것 역시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도저히 전신 갑옷이 구겨질 정도로 당한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하하, 괜찮습니다! 덕분에 세운 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면목 없습니다.”
“그보다, 대화는 들으셨겠지요?”
“네.”
문을 지키라는 가디언의 가장 기본적인 목적을 수행하지 못한 남자이건만, 펠체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를 용서해 주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세운과 약속한 길드전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날짜는 5일 후. 지금부터 거주지에 성역의 확장 작업을 시작합니다.”
“즉시 신도들을 전부 소집하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이번 길드전에 흑십자의 모든 힘을 투자하겠습니다. 장비, 포션, 마나석 등. 경매장에서 도움 되는 것들은 모조리 사들이세요.”
“알겠습니다.”
흑십자의 자본력은 엄청나다.
게다가 이곳에는 플레이어가 별로 보이지 않지만, 데스힐의 각 구역에서 신도들을 관리하거나 시련에 도전하는 등, 흑십자의 길드원 수는 생각 이상으로 많았다.
그 모두를 불러오는 것은 물론 모든 자원을 투자하겠다니. 신생 길드와의 길드전치고는 과한 투자라 생각될 지경이었다.
“패배 시 조건은…… 너무 불리하지 않겠습니까?”
“불리하다고요? 아, 불리하겠죠. 너무나도 불리합니다. 하지만, 데니 님은 저희가 질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디아블로. 그들이 강한 것은 알고 있습니다. 동층의 플레이어와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강함을 지니고 있다고 하죠.”
준비는 이미 완벽했다.
경매장에서 치욕을 당한 그 날부터, 그는 정보 길드를 이용하여 세운과 디아블로 길드에 대한 정보를 모아들였다.
아직 알아내지 못한 정보가 많긴 하지만, 저들의 힘은 놀랄 정도로 강력했다.
“게다가, 저들 중에서는 라일락의 지배자라고 불리는 여자까지 존재하죠. 정보 길드에서 거부했지만, 전직 하이랭커로 예상되는.”
이는 결코 가볍게 볼 사항이 아니었다.
아무리 신생 길드라 하더라도 저런 상대와 길드전을 벌이는 것은 도박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펠체스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자원’은 얼마나 사용할 생각이십니까?”
“최소 팔 할.”
“팔 할……. 너무 과도하지 않습니까? 그 정도라면 흑십자의 축이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위기의 상황이라면, 십 할. 전부.”
“…….”
그들이 말하는 자원의 정체가 뭔지는 모른다.
하지만, 굳어가는 남자의 얼굴만 보아도 그 자원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자원은 자원일 뿐입니다. 시간을 투자하면 어떻게든 다시 모을 수 있습니다.”
“흑십자가 쌓아온 이미지가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하, 이제 그런 귀찮은 걸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펠체스가 고개를 좌로 돌렸다.
세운이 부숴 버린 벽의 틈새로 보이는 진귀한 보물들. 그리고 그 가장 안쪽에 각종 함정과 봉인 등으로 감춰져 있는 비밀 공간.
펠체스가 흑십자를 세운 이유이자, 그토록 꿈꾸던 목표가 잠들어 있는 곳.
“그 열쇠만 얻는다면, 저희는 이 좁디좁은 우물 속을 벗어나 신세계를 구축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곳을 바라보며 덜덜 떨려오는 몸 위로는 주체할 수 없는 환희의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