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398)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02화(398/675)
제 402화
확실하게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놈들이 꾸미던 게 이 ‘강림’이라는 건 확실했다.
이성을 유지하고 있던 걸로 보아 완전한 강림은 아니고 제물과 공양을 통해 누군가의 힘을 내려받은 모양.
세운이 놈들을 한 번에 태워 죽일 수 있었던 이유도 그 강림이란 게 한창 진행 도중이었던 덕분이었다.
만약 강림이 완전했다면 상대하기가 제법 까다로웠으리라.
‘다행히 이쪽은 전부 처리했지만…….’
문제는 남은 세 개의 구역이다.
이미 강림이 시작된 것을 보아 세운이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남은 구역의 강림을 저지할 방법은 없었다.
아마 한창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거주지의 초입부 부근에서도 강림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을 것이다.
[ 정세운 : 현재 흑십자 길드에서 ‘강림’을 사용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 [ 유서아 : 강림이요? ] [ 정세운 : 완벽한 강림은 아니지만, 아마 회복력이나 전체적인 전투력이 상승할 거야. ] [ 유서아 : 정말이네요. 재생하고 있어요. ] [ 정세운 : 나도 도울 테니까 조금만……. ] [ 유서아 : 아뇨, 이건 저희가 맡을게요. 세운 씨는 더 중요한 일이 있잖아요? ]더 중요한 일.
그렇게 말하면 답은 하나, 펠체스를 치러 가는 일뿐이다.
녀석이 어떤 계략을 준비하고 있을 줄 몰라서 이곳을 먼저 치러 온 건데, 강림 정도라면 예상했던 것 중 최악은 아니었다.
아니, 평범한 길드였다면 강림으로 강해진 적을 보며 기겁을 했겠으나 세운은 디아블로 길드를 믿었다.
[ 정세운 : ……괜찮겠어? ] [ 유서아 : 당연하죠. 믿어주세요. ] [ 정세운 : 믿을게. ]펄럭-
날개를 활짝 펼치고 여정의 지침표가 가리키던 거주지의 중심을 향해 날았다.
드디어 회귀 후까지 연결돼 온 펠체스와의 악연을 끊으러 갈 때다.
* * *
“으아아악, 이놈들 뭐야! 언데드야? 왜 살아나는데!”
“강림이라고 합니다. 세운 씨는 재생하지 못하게 불태워서 소멸시켰다고 했어요.”
“우리 중에 불 쓸 수 있는 사람 없잖아! 아오, 난 몰라! 모른다고! 형니임!”
세운의 연락을 받은 직후.
그 말을 증명하듯이 쓰러져 있던 흑십자의 길드원들이 자리에서 일어서기 시작했다.
부러졌던 뼈가 회복되며 관절이 맞춰지고, 찢어진 피부가 순식간에 아물었다. 동공이 새까맣게 물든 채로 미소 짓는 모습은 심히 괴기스러웠다.
“흐흐, 하마터면 진짜 죽는 줄 알았잖아.”
“조금만 늦었어도 위험할 뻔했어.”
“믿고 있었습니다. 주교님!”
“각오해라, 이놈들아!”
흑십자 길드원들은 몸이 회복되자마자 힘을 시험해 보고 싶다는 듯이 다시금 무기를 꺼내 들었다.
압도적인 전력 차에도 디아블로의 승리에 다다르기 직전이었던 정장의 판도가 순식간에 뒤집혔다.
쾅!
한 번의 충돌.
그것만으로도 디아블로 길드원들은 적의 강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단순히 생명력이 질겨진 게 아니라 근력을 포함한 전체적인 능력이 향상했다.
“형님, 어디 계십니까아아!”
“세운 씨는 안 올 거예요.”
“뭐어?”
“제가 오지 말라고 했거든요.”
“아니, 형님 없이 이것들을 어떻게 상대하라고!”
“여기까지 와서 발목만 잡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이제부터는 저희가 도움이 되어야 해요.”
“아니, 그건 그렇지만…….”
유서아가 쌍검을 바로잡고 뒤를 둘러보았다.
그녀의 말을 이해한 디아블로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 모두가 세운 덕분에 목숨을 건졌고, 세운 덕분에 강해질 수 있었고, 세운 덕분에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그런 만큼 이제부터는 은혜를 갚아야 할 차례다.
“회복력이 좋아진 거면 회복도 못 하게 산산조각 내 버리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제가 웅덩이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익사시키는 방법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비켜라. 내가 파묻어 주지.”
디아블로와 흑십자 길드의 이차 충돌이 시작되었다.
흑십자 길드원들은 새로운 힘에 전율했지만, 그들은 이내 당황하고 말았다.
분명 레벨도, 경력도 자신들이 우위일 텐데.
게다가 강림을 통한 힘까지 얻어 수적 우세까지 유지하고 있으니 자신들이 적을 압도해야 할 텐데.
“젠장, 이놈들 왜 이렇게 강한 거야!”
밀리고 있었다.
상처가 회복되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커버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밀리고 있었다.
강림의 시작과 함께 완전한 우위를 되찾을 거라 생각했던 흑십자 길드원들이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디아블로 길드가 이 기세를 몰아 계속 밀어붙이려던 순간.
콰앙-!!
전장의 최전방에서 여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굉음과 함께 충격파가 폭풍처럼 몰아쳤다.
그와 함께 대포알처럼 디아블로의 진영을 가르며 날아가는 투사체.
다행히도 투사체에 부딪힌 사람은 없었지만, 투사체의 정체를 확인한 사람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한철 씨……?”
“괘, 괜찮나?”
강한철.
언제나 디아블로 길드의 최전방에서 태산처럼 굳건하게 주먹을 휘둘러 온 그가 전선의 최후방까지 날아가 있었다.
충격이 얼마나 강했는지 그가 떨어진 자리로는 단단하던 땅이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나 있었다.
그리고 전장의 최전선.
강한철을 날려 보낸 장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야 신세를 갚을 수 있겠군.”
전신을 둘러싼 풀 플레이트 아머.
강림의 진짜 효과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처럼 몸에서 풀풀 휘날리는 검은 기류.
머리를 완전히 뒤덮은 투구 사이로 번뜩이는 검은 눈동자.
“그때는 소개를 미처 하지 못했었지. 정식으로 소개하겠다.”
그의 갑옷은 광물이 아닌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며 부풀어 오른 근육에 맞춰 움직였다.
쥐고 있는 대검 역시 중간에 새겨진 검은 역십자가를 중심으로 검날이 기괴하게 비틀거렸다.
“주교님의 첫 번째 수호병. 데니라고 한다.”
세운이 흑십자 길드를 찾아갔을 당시, 주교실을 지키고 있다 강한철에게 쓰러졌던 남자.
그가 ‘강림’을 받아들인 채로 전장에 나타났다.
여정의 지침표가 가리켰던 주요 포인트 중 하나에서 강림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흐으…… 여유롭게 움직이고 싶었는데, 이렇게 일찍 이교도들을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데니의 뒤에서 또 한 명의 사내가 나타났다.
비쩍 마른 체형으로 거대한 흑십자 문양이 새겨진 망토로 전신을 가리고 있는 사내.
그 역시 검은 기류를 풍겨대는 탓에 망토가 쉴 새 없이 펄럭거렸고, 검은 눈은 짙은 어둠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유일하게 보이는 거라고는 망토 밖으로 내밀고 있는 시체처럼 앙상한 오른팔.
특이한 모양의 단검에서는 새까만 액체 같은 게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뭐, 좋습니다. 안 그래도 이 힘을 사용해 보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
“크아아아아악-!!”
사내의 말을 끊고 전장의 저 뒤편에서 들려오는 포효.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전장에 서 있는 모두가 저도 모르게 귀를 막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내 대포가 발사되는 것 같은 굉음이 들려오며 강렬한 풍압이 밀어닥쳤고.
콰아앙-!!
– 플레이어 강한철이 ‘아가레스의 악어’의 형상을 받아들입니다.
악어의 가죽을 뒤집어쓴 강한철의 주먹이 데니를 강타했다.
강림을 받으며 근력만 강해진 게 아니라는 듯이 데니가 대검을 들어 올려 주먹을 막아냈다.
다만, 대검은 당장에라도 부러질 것처럼 크게 휘며 검날을 찌리리 울렸다.
끼기기기긱!
살아 있는 것 같다는 표현이 비유가 아닌 것처럼 그의 검에서 기괴한 비명이 들려왔다.
공격을 제대로 막았는데도 몸이 수십 미터나 밀려났고, 검만으로는 충격을 완전히 막아내지 못했는지 갑옷 역시 크게 꿈틀거리며 충격을 흡수했다.
“아직 덜 처맞았나 보군.”
“그때처럼은 되지 않을 거다.”
압도적인 힘의 충돌.
감히 그 누구도 끼어들지 못하고 있던 그 틈 사이로, 망토를 뒤집어쓰고 있던 남자가 끼어들었다.
입꼬리를 길게 잡아당기며 강한철에게 단검을 휘두른다.
카앙!
“방해하게는 안 두겠어요.”
“흐으, 일찍 끝내고 쉬고 싶었는데 그러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전투에 합류한 유서아가 남자의 단검을 튕겨낸다.
남자의 단검에서 흘러내린 검은 액체와 유서아의 쌍검에서 흘러내린 극독이 땅을 축축하게 적셔간다.
“데니 님께서 합류하셨다! 얼른 쳐라!”
“부길드 마스터를 지켜야 합니다! 두 분을 중심으로 방어 진형을 꾸립시다!”
디아블로 대 흑십자 길드의 2차전이 시작되었다.
* * *
‘강림이라…….’
강림.
신내림이라고도 불리는 이 단어는 말 그대로 신을 불러내는 일이다.
아까의 상황으로 보자면, 실질적인 신의 강림은 아니고 신의 힘을 내려받는 강림의 하위호환 버전인 듯했다.
다만, 문제는 그 신이 누구냐는 것이었다.
‘펠체스의 성좌에 관해서는 알려진 게 없다.’
펠체스의 길드, 흑십자는 탑에 존재하는 수많은 길드 중에서도 특히나 성좌에 대한 믿음과 기도가 중요한 곳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이 따르는 성좌의 정체는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 있었다.
흑십자에서 몇 번이나 의뢰를 수행하고, 복수를 위해 정보를 캐내던 세운조차 알아내지 못했을 정도로.
‘시체를 제물로 공양을 바칠 정도라면 선신은 아닐 텐데.’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자신도 처음 느껴보는 기운이었다며 고개를 젓습니다.
강림은 강력했다.
길드원들을 믿고 본부를 향해 날아가고 있지만, 어쩌면 디아블로 길드가 밀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운은 펠체스가 준비한 게 강림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겨우 보험 하나로 만족할 놈이 아니니까.’
분명 저것 말고도 무언가가 남아 있을 것이다.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서라도 세운은 날개를 더욱 빨리 움직였다.
그 엄청난 속도 덕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여정의 지침표가 가리키는 흑십자의 본부 건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도 방어 결계인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무색 무형의 결계들과는 다르다.
강림진을 구성하고 있던 것과 같은 검은 아지랑이가 꿈틀거리며 건물 주변을 뒤덮고 있었다.
처음에는 길드원들을 들이기 위해서 ‘물푸레화살’을 사용했지만, 혼자 들어갈 때는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
– 내공을 통해 빙룡창법의 제삼 초식, 빙룡낙하(氷龍落下)가 강화됩니다.
– 빙백신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에 냉기가 더해집니다.
두 번째 방어 결계를 뚫었을 때처럼 아펠리온을 앞으로 내세운 채 돌진한다.
검은 아지랑이에 창끝이 닿는 순간, 마치 생명체의 살갗을 꿰뚫는 듯한 촉감이 느껴졌다.
쩌어어억-
단단한 결계가 아니다.
검은 아지랑이가 고무줄처럼 길게 늘어지며 세운을 붙잡고 늘어졌다.
피부에 검은 아지랑이가 끈적하게 달라붙는 촉감이 심히 불쾌했다.
세운의 창이 밀어내는 속도가 점차 느려지며 검은 아지랑이가 세운을 바깥으로 밀어내기 직전.
– 성흔이 혈랑전설의 설화에 반응합니다.
– 성흔의 두 번째 능력, ‘광란’이 깨어납니다.
세운이 아껴오던 성흔의 힘을 사용했다.
창끝이 검붉게 물들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검은 아지랑이를 꿰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쩌억!
검은 아지랑이는 상처가 벌어지듯이 찢어졌고, 세운이 그 안으로 들어섰다.
그제야 선명하게 보이는 흑십자의 건물.
그리고…….
“이런. 빠를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일찍 도착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펠체스가 특유의 인위적인 미소를 지으며 세운을 맞이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