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03)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07화(403/675)
제 407화
명백한 도발.
방금 한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듯, 두 소녀는 거대한 성 위에서 대놓고 팝콘을 뜯어 먹고 있었다.
그 모습에 절로 이가 갈렸지만, 남자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어 이성을 되찾았다.
이대로 섣불리 분노에 몸을 맡겼다가는 또다시 함정에 빠지게 될 뿐이다.
“세쉐 님.”
“응? 벌써 찾아왔니? 생각보다 너무 빠른데? 그래, 길드석은 어디 있어?”
“아직 외벽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응?”
“함정에 당해 한 명이 사망했고 절반 이상이 중상으로 몸을 회복 중입니다.”
사내는 곧바로 일행의 간부인 세쉐에게 달려가 보고를 마쳤다.
그토록 온화하던 세쉐의 표정이 한순간에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망설임 없이 채찍을 휘둘렀다.
짝!
“그래서, 임무에 실패했다고 칭찬이라도 받으러 왔니?”
이런 일이 익숙한 듯, 남자는 신도복이 찢어져 피가 철철 흐르는데도 작은 비명도 지르지 않았다.
여기서 말대꾸를 해 봤자 상황이 더욱 최악으로 치닫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쉐는 화풀이하듯 채찍을 몇 번 더 휘갈긴 뒤, 이내 한숨을 내쉬며 손에 힘을 풀었다.
“그래, 좀 편하게 가나 했는데 그럴 리가 없지. 에휴, 내 신세야.”
체벌을 마쳤지만, 세쉐 역시 깨닫고 있었다. 저 거주지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곳인지.
수하들의 실력은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으니, 그들이 외벽조차 뚫지 못했다는 사실에 놀랄 지경이었다.
강림을 받은 지금이 아니라면 자신 역시 돌파하지 못했을 정도로. 그래, 강림을 받은 지금이 아니라면
찰싹!
세쉐가 채찍으로 바닥을 강하게 내려쳤다.
땅바닥에 긴 실선이 생겨나더니, 이내 실선이 짐승의 아가리처럼 사납게 벌어졌다.
“나오렴.”
“크릉…….”
“케, 케륵.”
“캬아아아아!”
벌어진 틈새에서 온갖 몬스터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사나운 맹수 모습의 몬스터부터 시작해서 오크나 오우거 같은 인간형 몬스터에 사마귀의 형상을 하고 있는 몬스터까지.
“그르르르-”
마지막에는 좁은 틈을 억지로 벌려 넓히며 비룡이라고도 불리는 와이번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고유 스킬은 테이밍(taming).
많은 돈과 노력이 들긴 하지만, 잘만 성장하면 일인 군단의 힘을 보여줄 수 있다고 알려진 희귀 스킬 중 하나였다.
“다들 뭐 하니? 얼른 들이박으렴~”
“크앙!”
수십의 몬스터가 그녀의 지시를 따라 외벽을 향해 돌진했다.
주인의 명령에 그 어떤 의문도 품지 않는 충성심.
테이머라고 하더라도 주인의 성향에 따라 여러 종류의 충성심이 존재한다.
자신이 테이밍한 몬스터를 사랑하고 보듬어 주며 몬스터 역시 주인을 사랑하기도 하고. 마법을 이용해 몬스터를 세뇌하여 충성심을 머릿속에 박아넣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그녀의 방식은 고통과 공포를 이용한 절대복종.
테이밍에 성공하자마자 지속적인 채찍질을 통해 몬스터가 자신에게 절대 거부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케, 케륵!”
그 증거로, 그녀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몬스터들은 발작까지 일으키며 외벽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심한 놈은 명령과 함께 오줌을 지리기까지 했다.
그 수십의 몬스터 전부 동층에서 보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몬스터들이었지만.
푸욱!
쌍둥이 자매가 준비한 함정은 모두에게 공평했다.
놈들이 외벽을 타고 올라가려 하자마자 검은 가시가 튀어나와 몬스터들의 몸을 꿰뚫었다.
처음 시도했던 신도들은 이것만으로 통증을 호소하며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푸홧!
“캬흥!”
“께에에엑!”
이들은 달랐다.
이 정도 통증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가시에서 몸을 빼내고 외벽을 넘기 위해 또 한 발을 내밀었다.
그래도 트롤이 아닌 이상 몬스터의 회복력에는 한계가 있어 이런 방식에는 문제가 있다.
당연히 그래야 하지만, 몬스터들의 상처가 눈에 띌 정도로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후후, 그래. 얼른 올라가렴~”
강림.
그 힘은 세쉐만이 아니라 그녀가 다루는 몬스터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 덕분에 몬스터들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순식간에 외벽을 모두 넘길 수 있었다.
“와아, 쟤들 봐!”
“안 아픈가?”
“조금 징그러울지도?”
중앙의 성에서 지켜보던 쌍둥이 자매도 감탄할 정도의 집념.
몬스터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성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푹!
“케흑!”
콰앙!
“낑…….”
화륵-
“캬아아악!”
당연하게도, 외벽을 넘어서도 함정은 존재했다.
아니, 단순히 검은 가시가 튀어나오던 외벽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위협적인 함정들이 가득했다.
날카로운 가시가 설치된 구멍이라든가, 좁은 길에서 피할 수 없는 각도로 날아오는 대포알. 직접 닿지 않아도 폐가 타들어 갈 듯이 뜨거운 화염까지.
어떤 플레이어라도 견디지 못하고 항복했을 함정들이었지만, 상대가 나빴다.
몬스터들은 모두 세쉐에게서 받은 고문에 가까운 유린 덕분에 고통에는 한계까지 익숙한 상태.
거기다가 강림의 효과 덕분에 즉사 당하지만 않으면 시간이 지나며 상처를 회복하게 된다.
그 덕분에.
“이쪽이다.”
“화염 함정이 있었으니 화염 내성을 높이고 들어가야겠군.”
“황, 진입합니다.”
“허락하겠다.”
뒤따라오는 신도들 역시 수월하게 함정을 확인하고 회피할 수 있었다.
함정을 몸으로 들이박는 무식한 방법으로, 흑십자 길드는 점점 더 깊숙하게 디아블로의 거주지를 파고들었다.
“어, 언니?”
“쟤들 뭐야, 이상해. 무서워…….”
“이거 서아 언니한테 보고해야 하는 거 아냐?”
“했어. 이미 했는데, 그게…….”
[ 한다운 : 서아 언니! 침입자 나타났어! 침입자! ] [ 한다운 : 그래도 걱정 마! 아직 외벽도 안 뚫렸으니까. 우리만 믿어! [ 한다운 : 어…… 서아 언니? ] [ 한다운 : 서아 언니, 그. 그으, 이거 좀 와봐야 할 것 같은데. ] [ 한다운 : 서아 언니, 많이 바쁜가……? ] [ 한다운 : 저기요? 똑똑? 아무나 봐주시면 답장 좀……? ]“아무도 대답이 없어…….”
“어째서?!”
흑십자의 신도들이 가장 먼저 해 둔 게 바로 이 통신 차단이다.
때문에 길드챗이 차단된 거지만,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쌍둥이 자매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연락이 되지 않는 이상 지원을 바랄 수는 없었다.
한다운이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하던 중, 잠시 고민하던 한아름이 주먹을 꽉 쥐었다.
“언니, 우리가 해야 해!”
“될까……?”
“당연하지! 우리끼리 해야 해! 혈랑 오빠랑도, 서아 언니랑도 약속했잖아? 우리가 길드석을 지키고 있겠다고!”
“맞아! 약속했지!”
“그러니까!”
“맞아, 우리가 해야 해! 할 수 있어!”
“응! 할 수 있어!”
쌍둥이 자매가 방관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리 자신 있는 건축물이라고 해도 더 이상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적들은 이미 내벽을 뚫고 성의 코앞까지 다가왔으니까.
“드디어 도달했군.”
“길드석의 위치는?”
“아마, 저 성의 꼭대기겠지. 함정만 없으면 수색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물론, 그동안 쌍둥이 자매의 함정이 효과가 없었던 건 아니다.
회복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함정에 즉사한 몬스터까지 되살아나지는 못했다.
수십 마리의 몬스터 중 절반이 즉사했고, 뒤따라오던 신도 중에서도 사망자가 몇 명이나 발생했다.
그래도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내벽을 뚫고 탑의 코앞까지 도착했다는 사실이다.
“절반은 탑 내부로. 절반은 탑 외부로 올라간다.”
“적, 진입합니다.”
“백, 탑 외부로 등반 준비합니다.”
“키에에엑!”
흑십자 길드의 본격적인 진입이 시작되었다.
몬스터들이 전방을 맡아 나아가고, 그 뒤를 신도들이 따라가며 주변을 탐색하며 길드석의 위치를 찾아낸다.
그러던 중.
쿠궁!
나선형으로 이어지던 계단에 변화가 생겨난다.
직각으로 꺾여 있던 발판들이 한순간에 45도로 기울어지더니 계단이 미끄럼틀처럼 매끄러워진다.
옆에 있던 난간도 사라져 버려 계단을 오르던 몬스터와 신도들이 일순간 중심을 잡지 못해 비틀거린다.
전방을 오르던 몬스터 몇몇은 몸을 허우적대다가 결국 계단 밖으로 떨어지고 만다.
하지만, 그건 전조 현상일 뿐이었다.
쿠구구구-!
“도, 돌이!”
“도망쳐라!”
“도망칠 곳이 없습니다!”
계단의 저 위쪽에서 거대한 바위가 굴러떨어진다.
계단은 이미 계단이라 부를 수 없는 매끄러운 형태인지라 움직이기도 쉽지 않고, 피할 공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함정은 전부 피했는데 어째서…….”
“가랏!”
당연하게도, 이 모든 건 쌍둥이 자매. 그중에서도 한다운이 직접 일으킨 공격이었다.
단순히 돌을 굴리는 것만 아니라 온갖 방법을 총동원해서 계단을 오르고 있는 이들을 방해했다.
그저 가만히 앉아서 함정이 발동하기를 기다리는 것과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함정을 발동하는 것의 차이는 분명했다.
계단을 오르던 이들 전부가 계단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이 모습은 탑의 바깥에서 벽을 타거나 공중을 비행하던 몬스터와 신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도 간다아!”
성의 꼭대기에서 갖가지 사물들이 떨어져 내린다.
대포알이나 발리스타용 대형 화살은 물론이고 정체 모를 조각상이나 짓다 만 건축 자재 등.
셀 수 없이 많은 투사체들을 모두 피하기란 불가능했다.
이에 벽을 기어오르던 몬스터와 신도들 전부가 투사체에 튕겨 나가거나 깔려 뭉개지고 말았다.
“아자!”
“거봐 언니, 할 수 있댔지?”
“당연하지! 우리 둘이 함께하면 무적이니까! 그치?”
“그치!”
– 성좌, ‘검은 새’가 당연한 일이라며 부리를 높게 들어 올립니다.
– 성좌, ‘거대한 새’가 당차게 활약하고 있는 계약자를 흐뭇하게 내려봅니다.
쌍둥이 자매가 직접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불리해 보이던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흑십자의 회복력 따위, 한 번만 잘못 맞으면 즉사에 이르는 함정 앞에서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끄아아아악!”
결국, 벽을 타고 기어오르던 마지막 신도가 새 모양의 조각상에 부딪혀 떨어지며 바닥에 떨어졌다.
목숨은 부지한 듯하지만, 머리를 제외한 몸 대부분이 조각상에 짓눌린 상태라 재생도 못 하고 비명만 내지르고 있었다.
성의 주변이 순식간에 지옥도의 모습으로 변모하였다.
이에 쌍둥이 자매가 승리를 확신하는 순간.
“크아아아아아-!”
저 멀리에서 광포한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이어서 날개의 피막으로 태양 빛을 가리며 등장한 건 거대한 비룡, 와이번의 목을 채찍으로 조른 채 그 위에 탑승하고 있는 세쉐였다.
와이번은 한아름이 내던지는 투사체들을 모두 피하거나 몸으로 받아내며 탑에 들이박았다.
“꺄악!”
“후후, 꼭대기에 있으면 못 잡을 줄 알았니?”
폭발 마법으로도 흠집조차 내지 못했던 성의 일부가 후두둑 부서져 내렸다.
순식간에 성의 꼭대기에 도착한 와이번이 침을 주룩 흘리며 코앞에서 떨고 있는 한아름을 내려보았다.
“아름아!”
“어, 언니!”
위기를 알아챈 한다운이 빠르게 올라왔지만, 생산계 플레이어인 둘이 와이번을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무엇보다도 이 꼭대기의 바로 아래층에는 디아블로 길드의 길드석이 존재했다.
그 때문에 둘은 도망치지도 못한 채 이를 악물며 자리를 지켜야만 했다.
다리가 떨려왔지만, 이대로 도망칠 수는 없었다.
모두가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는데 자신들만 임무를 내팽개치고 도망칠 수는 없었다.
“도망치지 않는구나? 그래, 그럼 여기서 먹잇감이나 되렴.”
“크아아아!”
와이번이 쌍둥이 자매를 향해 입을 쩌억 벌렸다.
뱀 같은 혓바닥이 꿈틀거리며 진득한 침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 순간.
“어머, 제가 조금 늦었네요~”
서걱-
“크락! 크와아아악!”
와이번의 혓바닥을 잘라내며, 한 명의 여성이 성의 꼭대기에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