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04)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08화(404/675)
제 408화
“넌…… 아, 그래. 네가 라일락의 제왕이라는 사람이니?”
처음 아르카나를 마주하는 순간, 세쉐는 본능적으로 그녀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길드전이 시작되면서부터 그녀를 조심하라는 보고를 들어온 덕분이었다.
워낙 베일에 감싸여진 인물이라 자세한 정보는 듣지 못했지만, 저런 존재를 눈앞에 둔다면 누구든 생각했을 것이다.
저 여자가 강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머, 저에 대해서 알고 계시나요? 벌레들한테는 소개를 안 하는 편인데, 눈치가 제법이네요~”
“버, 벌레? 지금 나한테 벌레라고 한 거니? 나한테?”
“그럼 벌레를 벌레라고 하지, 뭐라고 해야 하나요?”
그렇다고는 해도 세쉐는 밀리지 않았다.
라일락의 제왕?
카지노의 여왕?
전부 다 은연중에 떠도는 소문일 뿐, 실제로 그녀가 나서서 벌인 일은 전무하지 않은가?
본래 사람들은 소문을 만들고 부풀리기를 좋아하는 편이니, 그녀의 소문 역시 거품처럼 한없이 부풀어 있을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강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세쉐는 자신 역시 밀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심지어 지금은 ‘강림’까지 내려받은 상황. 제아무리 카지노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여자가 상대라고 해도 도저히 질 거라고는 생각이 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좀 치켜세워 주니까 정신을 못 차리지?”
“저, 징그러운 걸 싫어하는 편이라서요. 그만 떠들고 얼른 사라져 주면 안 될까요?”
“이게 진짜! 제르알, 뭐 하는 거야! 당장 저X을 죽여!”
“크와아악!”
어느새 재생된 혓바닥을 날름거리던 와이번이 다시 한번 사나운 송곳니를 드러낸다.
이미 한 번 혓바닥을 잘린 경험 때문인지 바로 접근전을 벌이지는 않고 입 안에 독성을 한껏 머금는다.
블랙 와이번 특유의 포이즌 브레스.
생명체는 물론 바위까지도 녹여 버린다는 산성의 극독이 응축되고 압축되어 발사 준비를 마쳤다.
그렇게 쩍 벌어진 입에서 독성이 분출되기 직전.
“어머, 더러워라.”
서걱-
툭.
와이번의 머리가 잘리며 깔끔한 단면을 자랑한 채 바닥으로 떨어졌다.
기껏 모여든 독성은 채 뿜어지기도 전에 흐느적거리며 힘이 빠져 축 늘어진 와이번의 이빨 사이로 흘러내렸다.
하늘의 제왕이라 불리는 비룡, 와이번의 죽음치고는 너무나도 허무한 최후였다.
“저, 오늘 빨간 옷이라서 피 말고는 뭔가 묻히기 싫거든요~”
와이번의 목을 베어낸 것은 아르카나의 오른손에 들린 대낫이었다.
조커 카드를 무기화하여 만들어진 낫은 와이번의 피를 뚝뚝 흘리며 날카로운 날을 번뜩이고 있었다.
“하아…….”
머리가 사라진 와이번의 몸체가 쓰러지며, 그 등 뒤에 타고 있던 세쉐가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러곤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채찍을 더욱 팽팽하게 쥐어 잡았다.
“그래, 이딴 짐승 놈들한테 내가 무슨 기대를 하겠니? 결국 또 내가 나서줘야지.”
그녀의 채찍은 결코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힘을 주어 당기자 검은빛이 감돌더니 진한 무형의 기운을 흘려대는 게, 데니의 검과 마찬가지로 강림의 기운을 진득하게 머금고 있었다.
“내가 왜 ‘유린’이라는 이명을 가지게 되었는지 알려줄게.”
유린의 세쉐.
그녀가 이 이명을 가지게 된 이유는 단순히 짐승들을 다루는 테이머이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테이머임에도 전장의 전열에 나서서 채찍을 휘두르며 적들을 희롱하는 그 모습으로 인해 ‘유린’이라는 이명을 가지게 되었다.
촤악!
그녀의 채찍이 휘둘러지고, 찰진 타격음이 들려왔다.
무기 중에서도 다루기가 어렵기로 유명한 무기가 바로 채찍임에도 그녀는 채찍을 자신의 손처럼 자유자재로 다루었다.
다만, 채찍이 아르카나의 몸에 닿을 때쯤에는 이미 카드 하나가 방패의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있었다.
“그래, 어디 계속 숨어 있어 봐. 할 수 있다면 말이야!”
쩌억!
아르카나의 방패에 남은 채찍 자국이 깊어지더니 입처럼 쩍 벌어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자와 닮은 몬스터 하나가 뛰어나와 아가리를 벌렸다.
물론 그 즉시 낫에 의해 머리가 두 동강 나며 쓰러졌지만, 문제는 이게 한두 개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디, 언제까지 버틸 수 있나 볼까?”
쉴 새 없이 내려치는 채찍질.
그럴 때마다 채찍 자국 사이에서 몬스터가 기어 나와 아르카나의 목을 노린다.
그 몬스터들 모두 강림의 힘이 깃들어 있는 상태였기에 상대하기가 워낙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마침 잘됐네요~ 이거, 한번 실험해 보고 싶었는데.”
코앞까지 다가와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던 몬스터의 목을 대낫으로 베어낸 아르카나의 붉은 드레스가 살랑거렸다.
그러자 드레스 사이에 비친 허벅지에서 새까만 빛이 스멀거렸다.
아르카나의 성흔.
티케의 힘을 빌려 만들어 낸 성흔이 아니라 그녀가 이전의 시련에서 반신에 다다른 존재의 신성을 집어삼켜 만들어 낸 독자적인 성흔이었다.
“성흔?”
이를 알아챈 세쉐가 잠시 채찍질을 멈추고 거리를 벌렸다.
아르카나의 것은 독자적인 성흔이라지만, 일반적으로 성흔이라 하면 사도라 불릴 만큼 신과 가까워져야만 하사받는 징표로 알려져 있다.
그런 만큼 성흔에는 강력한 힘이 깃들어 있으니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난 것이다.
“뭣들 하고 있어? 내 채찍을 기다리는 거니?”
짜악!
“크릉!”
아르카나의 성흔이 무슨 힘을 발휘할지 모르는 상황.
때문에 세쉐는 채찍질로 몬스터를 보채어 그녀에게 내보냈다.
고통의 비명과 위협의 울부짖음을 동시에 외치며 달려가던 몬스터.
그 선두에 있던 몬스터가.
툭-
“캬릉?”
콰르릉!
어처구니없게도 바닥의 돌조각에 발이 걸려 중심을 잡지 못한 채 바닥을 나뒹굴었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선두의 이상에 뒤따라오던 몬스터들 역시 발을 멈추지 못하고 충돌하거나 다리가 꼬이는 등.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상황이 반복되며 세쉐의 몬스터 전부가 아르카나에게 채 닿지 못한 채 쓰러지고 말았다.
“이 멍청한 것들이! 얼른 안 일어서?”
공격에 당한 것도 아니고 혼자 넘어져 구르고 부딪친 것치고는 상처가 과했다.
다리가 부러지고 상처가 벌어지는 등, 심한 몬스터는 돌조각 파편에 복부가 찔려 내장이 흘러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 모두 강림의 힘을 받고 있는 상황.
상처가 빠르게 아물며 몬스터들이 하나둘 몸을 일으켰다.
그때.
부스스-
몬스터들의 머리 위로 돌가루가 떨어져 내려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들어 올린 몬스터들의 시야에 계속된 충격에 위태롭게 흔들리던 외벽이 통째로 무너지는 장면이 들어왔다.
콰광-!!
몬스터들은 끝내 아르카나의 드레스 끝자락에도 닿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상황.
당연히 몬스터들을 욕할 거라 생각했던 세쉐는 생각 외로 냉정한 눈빛으로 아르카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너무 불쾌한 힘인데?”
“어머, 그래도 눈치는 조금 있나 보네요?”
“그래서, 어떤 힘이지? 최면? 염동력?”
“그런 시시한 힘은 아니랍니다~”
“그래, 뭐. 직접 부딪혀 보면 알겠지.”
세쉐라고 해도 몬스터가 무한정 있는 건 아니었다.
탑의 함정을 뚫고 여기까지 도달하면서 절반, 아르카나를 상대하면서 절반가량의 몬스터를 사용하였다.
아직 비장의 수가 몇 개 더 남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비장의 수.
“성흔이라고 해도 생각보다 별거 없더라구요~”
세쉐가 채찍을 꽉 쥐며 앞으로 달려왔지만, 시작부터 좋지 않았다.
방금 무너진 벽의 잔해가 그녀의 발걸음을 방해했다. 시작부터 꼴사납게 넘어질 뻔한 걸 억지로 힘을 주어 균형을 잡았다.
“성흔이라는 게 상징 같은 거잖아요? 어떻게 할까 하다가, 그냥 남는 힘을 조금 담으니까 바로 만들어지더라구요~”
“안 물어봤거든!”
간신히 아르카나의 앞에 도착한 세쉐가 채찍을 휘둘렀다.
아니, 휘두르려 하였다.
휘릭!
잦은 충격으로 인해 심각하게 기울어져 있던 조각상 하나가 완전히 넘어지며 그녀의 채찍에 감기고 말았다.
“아, 정확히 말하자면 남는 힘이 아니라 버려지는 힘이랄까요?”
“이게 진짜 귀찮게!”
조각상이 어찌나 무거운지 채찍과 함께 몸이 딸려갈 위기에 처해,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채찍을 놓았다.
그러곤 손톱으로 허공을 내리긋자, 허공에 긴 틈이 생겨나더니 쩌억 벌어졌다.
“크라라락!”
틈 사이에서 나타난 건 해룡이라고도 불리는 씨 서펜트의 거대한 머리.
놈은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입안 가득 해수를 머금고 있었고.
“그렇게, 제 ‘불운의 성흔’이 탄생되었답니다~”
서걱-
아르카나가 대낫을 가볍게 휘두르자, 씨 서펜트의 머리에 기다란 실선이 생겨났다.
반으로 갈라진 머리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고, 공격 범위에 닿아 있던 세쉐의 몸에서도 피 분수가 튀어 올랐다.
“말도, 안…….”
전투는 너무나도 허무하게 끝났다.
강림 따위, 아르카나의 앞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애초에 모든 전력을 쏟아낸 세쉐에 비해 아르카나는 성흔의 힘을 실험했을 뿐이지 본래 가진 실력의 절반도 드러내지 않았다.
과연, 라일락의 제왕이자 카지노의 여왕이라 불렸던 플레이어.
층을 오르며 능력치 페널티도 많이 사라진 그녀의 힘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이대로 능력치를 모두 회복하면, 성흔의 힘까지 더해 과거보다 더욱 강한 힘을 가지게 될 게 분명했다.
“우리 아름이, 다운이. 괜찮은가요?”
“응, 언니!”
“와, 아나 언니 진짜 멋있어!”
“우리 진짜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다니까?”
“영웅 등장! 이런 느낌이었다니까?”
“어머, 고마워요~”
혹여나 싸움에 방해될까 싶어 즉석 벙커까지 제조해 숨어 있던 쌍둥이 자매가 저 구석에서 튀어나왔다.
그러고는 아르카나의 양옆에 붙어 쫄랑대는 모습이 마치 아기 새를 보는 듯했다.
“근데 어떻게 된 거야?”
“언니 한동안 연락 없었잖아! 당연히 길드전에도 못 올 줄 알았는데.”
“당연히 우리 아름, 다운이 걱정돼서 달려왔죠~”
“와아, 멋져!”
“언니, 멋져!”
“그동안 뭐 하고 있었는데?”
“맞아, 나도 궁금했어!”
“개인적으로 할 일이 조금 있었거든요~ 그래도 시간 맞춰 온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아름이, 다운이도 고생 많았어요!”
“응!”
“응!”
“아, 그리고 오면서 통신 차단막도 해제해 뒀으니 길드챗도 다시 쳐질 거예요~”
“진짜다! 역시 저기서 차단한 거구나!”
“이거 우리도 쓸 수 있나? 나중에 한번 해 봐야겠다.”
“서아 언니 달려오고 있나 본데? 그래도 채팅 온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지금 안 와도 된다고 하면 되겠지?”
“어…… 저기 저 끝에 보이는 거 서아 언니 아냐?”
“와, 진짜 빠르다…….”
유서아가 채팅으로 조금만 기다리라고 적어둔 게 고작해야 몇 분 전.
길드전은 필드가 넓은 만큼 거리가 상당할 텐데, 그 거리를 고작 몇 분 만에 돌파하여 지평선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가공할 만한 속도.
일단 길드챗에 보고는 해 두었지만, 다급하게 달려오는 유서아가 길드챗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헤헤, 어쩔 수 없겠지?”
“그래도 보니까 언니 쪽도 싸움은 다 이긴 것 같은데?”
“우리, 방해된 거 아니겠지?”
“제발 그래야 하는데, 으으…….”
“걱정하지 마세요, 둘 다 놀랄 만큼 잘해 줬어요~”
“나, 역시 언니가 너무 좋아!”
“나도!”
쌍둥이 자매의 앙탈을 받아주며, 아르카나가 정확하게 흑십자의 본부가 있을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전투는 이미 승리나 다름없다.
이제 남은 건 하나.
세운이 길드전의 마무리를 짓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