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05)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09화(405/675)
제 409화
빠직!
펠체스의 몸을 감싸고 있던 검은 무언가에 생겨난 균열이 더욱 가속화되었다.
전신 갑옷처럼, 새의 날개처럼 훌륭하게 모습을 갖춰가던 그것이 더 이상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재가 되어 바람에 흩날렸다.
“그,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제 신도들이 전부? 아니,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펠체스가 다급하게 손을 움직였다.
균열을 막고 먼지를 주워 담으려고 하였지만, 그런다고 검은 갑주가 되돌아올 리가 없었다.
그의 말에 따르자면 저 검은 갑주는 강림으로 인해 생겨난 것.
정확하게 말하자면 강림을 받은 흑십자 신도들에게서 힘을 나눠 받아 만들어지는 최종 결정체이니까 디아블로 길드에게 패배하여 모든 길드원이 쓰러진 지금.
그의 갑주가 유지될 리 없었다.
그는 세운의 힘은 충분히 주의했지만, 세운의 동료들은 제대로 주의하지 못했다.
“진짜 그게 최후의 수단이었나 보네.”
“그,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세운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현실을 부정하며 부서지는 검은 갑주를 애써 붙잡아 보는 펠체스.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펠체스가 거짓말이나 연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아무리 연기라도 남 앞에서 무릎을 꿇을 성격은 아니었지.’
이성은 이미 사라진 것처럼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바닥에 흩뿌려진 검은 먼지를 주워 모으고 있다.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끝났다는 걸 알면서도 그 의미 없는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데니! 데니, 어딨습니까! 대답하십시오! 데니! 그, 그래. 세쉐! 지금 바로 직급을 올려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어서…….”
아무리 주워 담아봤자 검은 재를 주워 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걸까? 펠체스가 다급하게 고개를 들어 소리를 질러댄다.
정신병자처럼 팔을 허우적대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래, 이게 회귀 전 펠체스와 나의 가장 큰 차이였지.’
길드라는 거대한 세력.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동료의 차이.
회귀 전의 세운이 아무리 유능한 모험가라고 해도 당시에는 성좌에게 배신당하고 플레이어에게 배신당해 철저하게 혼자만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에 반해 펠체스는 흑십자 길드라는 거대한 세력의 머리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세운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끝내 녀석에 대한 복수를 끝낼 수 없었던 이유가 그것이었다.
만약, 그때 지금의 디아블로 길드와 같은 동료가 있었다면?
지금 같은 무력이 아니었더라도 결국 복수에 성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 유서아 : 세운 씨, 그쪽은 어떤가요? 일단 적은 더 보이지 않아서 세운 씨를 찾아서 움직이고 있어요. ] [ 한아름 : 아나 언니가 우리 구해 줬다? ] [ 유서아 : 조금만 일찍 알았다면 제가……. ] [ 한다운 : 아니, 언니 탓 아니야! ] [ 박정필 : 형님, 이놈들 제법 쓸 만한 거 많이 가지고 있는데 좀 챙겨도 되죠? 크흐흐. ]길드챗을 확인하니 전투는 이미 끝나고 정리를 하는 중이었다.
남은 건 하나.
세운이 길드전의 마무리를 찍는 것뿐이다.
아직까지 자신의 신도들을 애타게 부르고 있는 펠체스를 향해 다가간 세운이 자세를 낮추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미안하지만, 이번 생은 내가 혼자가 아니라서.”
“……뭐? 혼자?”
이대로 펠체스를 죽이면 모든 게 끝난다.
하지만, 알아낼 게 하나 있었다.
“아쉽게 되었군. 네가 이 열쇠를 어디에 쓸지 궁금했는데 말이야.”
“그 열쇠는!”
세운이 품에서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열쇠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펠체스에게 보라는 듯이 그의 눈앞에서 열쇠를 살살 흔들었다.
열쇠가 고리와 부딪치며 종이 울리는 것처럼 청명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자마자 펠체스의 눈이 홀린 것처럼 열쇠를 따라 흔들렸다.
“아아, 이것만. 이것만 있으면…….”
펠체스의 손이 벌벌 떨리며 열쇠를 향해 올라왔다.
세운이 어림도 없다는 듯이 열쇠를 회수하려는 순간.
팅-
갑작스럽게 고리를 빠져나온 열쇠가 허공에 비상했다.
세운이 손을 뻗을 틈도 없이 펠체스가 온몸을 내던져 열쇠를 부여잡고 바닥에 몸을 뒹굴었다.
“크하하하! 이런 멍청한! 이제 끝입니다! 이것만 있으면 다 끝입니다!”
열쇠를 붙잡은 펠체스가 세운과 멀찍이 거리를 벌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하게 웃으며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저건?’
세운의 시야가 확장되었다.
펠체스가 품에서 꺼내 든 투박한 상자.
제대로 만든 상자가 맞긴 한 건지 의문이 들 정도로 투박하고 울퉁불퉁했지만, 그렇기에 세운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저 상자를 이루고 있는 소재의 정체를.
‘운석.’
착각할 리가 없다.
층을 오르며 꾸준히 보아왔고, 부서 왔던 그 운석이었으니까.
특유의 회갈색과 제대로 가공되지 않아 중간중간 구멍과 빈틈이 송송 뚫려 있으면서도 안은 완전히 밀폐되어 있었다.
그 한가운데, 열쇠 하나가 들어갈 만큼 작은 빈틈이 하나 뚫려 있었다.
아마, 저 틈이 바로 열쇠 구멍.
“오만하게 굴다가 당하고 말았군요! 역시, 운명은 저의 편이란 겁니다! 당신이 얼마나 강하든, 신도가 얼마나 죽었든 상관없습니다! 이제!”
펠체스가 열쇠를 들어 올렸다.
은은한 무지갯빛이 평소보다 더욱 화려하게 주변을 밝혔다.
입꼬리가 찢어질 것처럼 함박웃음을 짓던 펠체스가 드디어 세운의 열쇠를 운석으로 만들어진 상자에 꽂았다.
“저의 승리입니다!”
달칵.
열쇠가 돌아가고, 무언가 툭 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적으로 펠체스의 손이 멈칫했지만, 이내 정신을 되 차리고는 상자를 힘껏 열었다.
하지만.
“어, 어……?”
상자는 열리지 않았다.
마스터키. 만능열쇠라는 이름답게 지금까지 그 어떤 잠금과 봉인마저 전부 풀어왔던 열쇠가 작동하지 않았다.
펠체스가 열쇠를 몇 번 더 돌려보고 다시 뺐다가 꼽아보기를 반복해 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이, 이 사기꾼! 감히 가짜 마스터키를 조건으로 길드전을 요청한 겁니까!”
“그 열쇠가 진짜라는 건 너도 잘 알고 있을 텐데.”
“계, 계약서는 어떻게 속인 겁니까! 시스템이 인정한 계약서에는 분명 마스터키에 대한 조항이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시스템을 속일 수는 없었을…… 서, 설마!”
펠체스가 손을 벌벌 떨며 열쇠를 들어보았다.
무지갯빛으로 반짝거리던 열쇠는 맞지 않는 구멍에서 억지로 찍히고 비틀어져 상처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겉의 아름다운 색이 바래고, 정체 모를 시커먼 광석이 드러났다.
“이걸 찾고 있나 보지?”
절망하고 있는 녀석을 바라보며, 세운이 새로운 열쇠를 꺼내 들었다.
진짜 만능열쇠.
펠체스에게 넘긴 열쇠는 길드전을 준비하던 중에 세운이 고창석에게 열쇠를 보여주며 부탁하여 만들어낸 모조품이었다.
열쇠를 흘렸던 건 그가 열쇠를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려는 지 확인하기 위한 연기에 불과했다.
“이, 이리 내십시오! 그건 제겁니다! 제가 사용해야만 하는 물건입니다!”
펠체스가 품에서 검은 십자가 모양이 장식된 단검을 꺼내 들고 검은 기운을 뿜어내며 세운을 향해 달려왔다.
애초에 그의 힘은 전투보다는 전투를 대비하여 준비하거나 아군을 보조하는 데 더욱 특화되어 있었다.
이번 길드전도 강림을 사용한 이후 전선에 나서 아군을 보조했다면 지금보다 더 어려운 전투가 벌어졌을 것이다.
그가 본인의 힘을 사용하지 않은 건, 그만큼 본인의 힘을 잊고 저 정체 모를 힘에 매달렸기 때문이리라.
푹-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칼날이 살갗을 베는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세운의 얼굴에 핏방울이 튀며, 가슴이 베인 펠체스의 몸이 서서히 무너졌다.
“내 열쇠…… 무너진 영광이, 코앞인데…….”
털썩.
생각보다 허무한 결말이었다.
그에게 당하고 복수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과거를 떠올리면 조금 더 고통스럽게 죽이고 싶었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 과거에만 연연하는 순간 미래는 멀어지게 마련이다.
– 디아블로 길드와 흑십자 길드의 길드전에서 디아블로 길드가 승리하였습니다.
– 길드전의 계약서에 따라 흑십자 길드의 모든 자산이 디아블로 길드에게 이전됩니다.
– 길드전에서 승리하여 디아블로 길드의 유형 ‘등반(登攀)’이 강화됩니다.
– 길드전에서 승리하여 디아블로 길드의 성향 ‘파멸의 구원자’가 강화됩니다.
– 길드전에서 승리하여 디아블로 길드의 공격력 버프가 상승합니다.
…….
갈라진 펠체스의 가슴에서 피와 함께 부서진 길드석이 굴러떨어짐과 동시에, 길드전에 관련된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최근에 공적치를 사용하여 강화하기에는 한계에 도달한 버프들은 물론, 공적치로는 강화가 불가능한 길드의 유형이나 성향까지 그 모든 게 강화되며 디아블로 길드의 힘이 한층 더 강해졌다.
아니, 이전에 비해 몇 층이나 더 강해졌다.
그도 그럴 게, 상대는 흑십자 길드.
본래대로라면 규모로 보나 인원으로 보나 신생 길드에 속하던 디아블로 길드가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를 쓰러트렸으니 말이다.
“설마설마했더니, 진짜 아우터와 연관이 있던 건가.”
세운이 펠체스와의 전투를 떠올렸다.
분명 루인도 성흔도 반응하지 않았지만, 녀석이 사용하는 힘은 아우터와 닮은 면이 있었다.
강림 역시 지금 생각해 보면 강해지는 방식이 마치 아우터에게 기생 당했을 때의 느낌과 흡사했다.
물론, 실제 아우터에 비하면 보잘것없었지만…….
‘제헤튼에서도 비슷한 시험이 있었지.’
제헤튼의 지하에서 시행되고 있었던 실험과 의문의 남자.
그것들을 떠올리자 펠체스가 아우터의 힘을 따르고 있었다고 생각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다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더 많은 것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펠체스가 열쇠에 집착하던 건 세운이 회귀하기 이전에도 마찬가지.
그렇다면, 펠체스는 그때부터 아우터를 따르기 시작했다는 뜻이 된다.
그럼 회귀 전에 아우터가 침공하기 시작한 이유가 설마 펠체스 때문일까?
결국 열쇠를 찾아내 이 상자를 열었고, 여기서 아우터에 관한 무언가를 얻어낸 것일까?
다양한 추측을 쏟아내던 세운은 곧 고개를 저었다.
– 길드전에서 승리하여 흑십자 길드의 거주지를 획득합니다.
– 거주지를 합치는 동안 현재 거주지에 존재하는 플레이어들은 잠시 바깥으로 퇴장해 주시길 바랍니다.
– 강제 퇴장까지 5분.
– 4 : 59 …….
일단은 길드전이 끝난 정리를 할 차례이다.
펠체스의 계획에 대해 알아보고 이 상자에 대해 조사하는 것은 그 이후에 해도 충분하다.
지금은.
“세운 씨! 고생하셨어요!”
“생각보다 오래 걸렸군.”
“형님, 이거 보십쇼! 이것들 다 부자라니까요? 이거 경매장에 팔면 제대로 한탕 할 수 있겠는데요?”
고생해 준 동료들과 함께 승리의 축배를 들어 올릴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