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11)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15화(411/675)
제 415화
“위에서 보고 있길 잘했네요~ 이런 애들은 꼭 마지막 수를 남겨둔다니까요?”
어쩐지, 이번 전투에서 아르카나의 모습이 안 보인다 싶었더니. 전장에 나서는 대신 멀찍이서 전투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모양이다.
세운의 명령에 따라 내려와 아우터와 대치하던 길드원들이 보기에는 마지막에 등장해 막타만 챙긴 꼴로 보였겠지만.
‘옳은 선택이었어.’
어차피 그녀가 끼어든다고 해도 전황이 바뀌거나 하지는 않았을 거다.
아우터는 길드원들이 힘을 합치기만 해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만약 그녀가 미리 나와 있었다면 마지막 순간 몸을 내빼려던 남자에게 치명상을 남기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래도 치명상은 남긴 것 같은데.’
마지막에 아르카나가 루인의 힘을 빌려 날린 공격.
가슴부터 시작해 복부까지 긴 상처를 남긴 것은 물론, 상처의 깊이도 커 보였고 거기서 뿜어나온 검은 액체의 양도 엄청났다.
“고생했어.”
“뭘요~ 전 그저 마지막에 숟가락만 얹었을 뿐인걸요~”
“유서아 너도.”
“효과가 있었어서 다행이네요.”
사실 당장 남자의 가슴을 벤 건 아르카나였지만, 남자를 공격할 수 있었던 건 유서아의 힘 덕분이었다.
세운이 딱딱하게 굳은 아우터를 깨트린 직후, 바람처럼 빠르게 달려간 유서아가 아직 변형을 마치지 못해 남자의 하체를 구성하고 있던 아우터에 쌍검을 꽂아 ‘지배’를 사용했으니까.
그게 아니었다면 남자는 공격에 당하기 전에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을 것이다.
“다들 고생했습니다.”
그녀들만이 아니다.
세운이 중심까지 파고들어 검을 내지를 수 있었던 건 강한철의 괴력 덕분이었고, 아우터가 변형을 마치지 못한 건 길드원들이 전부 나선 덕분이었다.
세운이 아닌 디아블로 길드의 승리.
혼자였다면 절대로 성공하지 못했을 승리였다.
‘도망친 건 아마 자리 탓이 컸겠지.’
이곳은 운석 안이다.
심부에 놓여 있던 둥글게 가공된 아우터를 보관하기 위함이었겠지만, 운석 내부에서 힘이 약해진 건 남자 역시 마찬가지였을 터다.
그렇다면, 남자는 본래 얼마나 강했을까? 그 변형을 마쳤다면 얼마나 거대했을까?
잡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전투가 끝나고 환호성이 울려 퍼져야 할 길드원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세운을 바라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직도 숨길 셈인가?”
강한철이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남자가 마지막에 남긴 말 중에서 세운을 지칭하던 단어, ‘역행자’.
비록, 지금까지 세운의 정체가 궁금하더라도 궁금증을 억누르고 있던 길드원들도 더 이상은 참기가 힘들어졌다.
“아니면, 아직 우리를 믿지 못하는 건가?”
“그, 그게 아니에요. 세운 씨는 그저…….”
“우리를 믿지 못하는 거라면, 우리 탓이 크겠지. 그만큼 우리가 네놈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다는 것이니. 아니면, 우리가 아직도 약해 빠진 병아리로 보인다거나.”
강한철이 주먹을 꽉 쥐었다.
세운에 대한 원망보다는 자신의 힘이 부족하다는 것에 대한 분노가 아닐까 싶었다.
강한철이라는 남자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말해도 될까?’
아직까지 디아블로 길드에 회귀에 관해 말한 사람은 유서아뿐이다. 아르카나에게도 말했지만, 그녀는 경우가 조금 다르니까.
세운이 회귀에 관해 얘기하지 않은 것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그중에서는 강한철이 방금 말했던 신뢰의 부족 역시 존재했다.
하지만…….
“아니.”
세운은 고개를 저었다.
비록 과거에는 그랬을지라도, 지금은 디아블로 길드를 믿을 수 있다.
동료를 믿을 수 있다.
“전부 설명하지.”
세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회귀에 대해 말하는 순간, 세운은 디아블로 길드를 아우터와의 전쟁에 밀어 넣게 되고, 신과의 대립에 끼워 넣게 된다.
지금의 실력이라면 다음 쉼터에 도착하는 순간 평온한 일생을 보낼 수 있는 이들을 혼돈의 전장으로 집어넣게 된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지금 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건 미래의 공포를 알려주는 것이나 신과의 전쟁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세운이 여전히 입을 다문 채 등을 돌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일단은 자리를 옮기지.”
이들은 알 자격이 있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듣고 놀라 도망치더라도 할 말은 없다.
세운이 지금 할 일은 그저 동료를 믿고 속마음을 털어내는 것뿐이다.
그렇게 운석을 빠져나가려 할 때쯤, 아르카나가 세운의 옆으로 다가와 나긋하게 속삭였다.
“이거 보여요?”
살짝 걷은 허벅지 위로 새까만 성흔이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성흔을 새로 만들었다는 말은 들었지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다만, 조금 이상했다. 성흔이 빛을 잃어가고 있다는 건 그만큼 성흔의 힘을 사용했다는 말인데…….
거기까지 생각한 세운의 머릿속으로 한 가지의 가능성이 떠올랐다.
“설마?”
“아마, 꽤 고생하고 있을걸요?”
* * *
쿨럭!
황금으로 수놓은 듯이 아름답게 펼쳐진 사막 위.
스스로를 폐왕이라 소개한 남자의 가슴에서 검은 물이 왈칵 쏟아져 모래를 가득 적셨다.
아니, 모래를 적시는 걸로 모자라 모래 위로 작은 오아시스를 만들어 낼 정도의 양은 도저히 성인 남성에게서 흘러나올 수 있는 혈액량이 아니었다.
“크으……. 마지막 일격은 정말이지 예상하지 못했군.”
아우터를 경화시켜 만든 방패.
5초도 걸리지 않는 짧은 이동 시간을 버티기 위해 급조한 방패였다지만, 그 방어력은 어지간한 광석 이상으로 단단했다.
그런데 그 방패가 고작 3초도 버티지 못하고 부서졌다.
아니, 여기까지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다.
문제는, 아우터가 깨지고 난 뒤 갑작스럽게 몸을 굳게 하고 의지를 정지시키는 무언가의 힘이었다.
“지배의 힘을 다루는 자까지 있었나.”
그 때문에 마지막 일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솔직히 평범한 물리 공격 따위 맞아도 얼마든지 재생할 수 있지만, 마지막의 대낫 베기는 분명히 ‘파멸’의 힘이 깃든 공격이었다.
덕분에 지금도 상처를 회복하지 못해 검은 피를 왈칵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생각보다 손실이 크군.”
본래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정찰이었다.
이전의 굴레에서 쓸 만했던 허수아비가 쓰러진 걸 느끼고, 혹시나 중요한 키가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하며 간 것이었다.
그리고 보았다.
이전 굴레에서 나름대로 핵심 역할을 했었던 ‘검은 열쇠’가 검붉은 늑대에게 삼켜지는 모습을.
‘거기까지는 상관없었지.’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전 굴레의 잔재일 뿐이다.
지금은 다양한 연구와 학습을 통해 아우터의 힘을 이전 굴레보다 훨씬 강력하게 끌어 올렸다.
검은 열쇠가 없더라도 하늘을 깨트리는 방법은 무궁무진했고, 아우터의 수준이 월등하게 강해진 지금, 검은 열쇠의 필요성은 많이 줄어들었다.
문제는 검은 열쇠를 삼킨 늑대의 주인, 역행자.
예상치를 아득하게 벗어난 행보를 보이는 역행자의 힘을 파악하기 위해, 운이 좋다면 아직 다 크지 못한 새싹을 그 자리에서 짓밟기 위해 일으킨 전투였다.
“아무리 장소가 좋지 않고, 전투 준비도 하지 않았다고 해도 예상치를 너무 초월했다.”
위험하다.
아무리 역행자라고 해도 크로노스의 딸과 비교하면 그리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존재라고 생각했던 게 실수였다.
위험순위를 잘못 지정했다.
진정한 역행자는 크로노스의 딸이 아니라 그 마신의 계약자였다.
“계획을 앞당길 필요가 있겠군.”
크로노스의 딸이 고난에 빠진 모습을 보며 방심했던 것 역시 실수였다. 그 때문에 너무 안일하게도 미래를 내다보며 학습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이전 굴레와는 비교할 수 없다.
지금은 이번 굴레에 집중할 때라는 걸 이번 역행자와의 대치에서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또 처음 보는 신성이로군. 그 마지막 순간까지 나에게 잔재를 남길 줄이야.”
남자가 고개를 내려 자신의 발끝에서 일렁거리는 검은 기운을 바라보았다.
한 발을 앞으로 내딛자 모래가 부들거리더니 모래지옥처럼 다리를 빨아들였다.
발을 잘못 디뎠다기보다는 발이 유사를 찾아가는 수준의 불운.
남자는 이내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검은 검의 형상으로 바꾸더니 망설임 없이 발끝을 잘라냈다.
푸홧!
엄청난 양의 검은 액체가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갔다.
그 결과 작은 웅덩이만 하던 오아시스가 어지간한 연못 이상으로 거대해졌다.
검은 액체가 가진 특유의 걸쭉한 질감 때문에 모래에 잘 흡수되지도 않아 흉흉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깝긴 하지만, 앞으로의 대업에 방해될 요소를 달고 다닐 수는 없지.”
아까울 수밖에.
겨우 발끝을 잘라낸 정도라지만, 당장 눈앞에 가득 고인 채로 꿈틀거리며 괴로워하는 듯한 오아시스를 보고 있자면 지출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걸 아낄 수는 없었다.
남자는 검은 신성에 담긴 능력이 정확하게 뭔지 파악하지 못했지만, 그게 앞으로의 대업을 물고 늘어질 거라는 건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그럼, 슬슬 시작해 봐야겠군.”
남자가 고개를 들고 양팔을 활짝 펼쳤다.
이에 반응한 것인지, 갑작스러운 날씨의 변덕일지는 몰라도 쨍쨍하던 사막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며 바람이 흉흉하게 몰아쳤다.
바람은 곧 모래를 쓸어 담았고, 이는 거대한 모래폭풍으로 변모하였다.
탑의 두 번째 쉼터, 모래 도시 스카베.
그곳에 거대한 어둠이 도사리기 시작했다.
* * *
“회귀자……?”
“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 회귀자입니다.”
세운이 모든 사실을 밝혔다.
물론, 세운이 겪었던 모든 일을 말한 건 아니다.
지금 당장 길드원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탑의 멸망이나 마몬의 보물창고 같은 핵심 내용 중에서도 말해도 되겠다고 판단한 부분들만 추렸다.
당연하게도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유서아는 고개를 숙인 채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
이와 상반되게도 아르카나는 재미있다는 듯이 이쪽을 바라보며 와인을 홀짝거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잠시만. 그럼, 여기도 곧 멸망한다는 말이잖아?”
“네. 제가 아우터를 상대하는 이유도 그걸 막아내기 위함입니다. 물론, 쉼터의 아우터를 없앤다 해도 녀석들을 막을 수 있는지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
“다만, 현재로서는 이게 가장 의미 있는 수단이고, 아우터를 상대하기 위한 힘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이게 맞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세운이 입을 열 때마다 긴 침묵이 이어졌다.
당연하다.
세운처럼 회귀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누군가 갑자기 자신이 회귀자라고 밝히면 미치광이 취급하는 게 정상이니까.
세운도 그 사실을 알고 그들을 기다려 주기로 하였다.
지금 당장 이해받기를 원하는 건 아니다.
적어도 일주일.
잠시 등반을 멈추더라도 데스힐에서 시간을 보내며 그들이 세운의 말을 이해해 주기를 기다릴 생각이다.
만약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 이상 강제해서 그들을 데려갈 생각도 없었다.
세운이 향하는 길은 평범한 플레이어라면 절대로 생각하지 못할 길이니까.
멸망을 막으려 한다는 말은 곧 멸망의 앞에 서야만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때,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의외로 박정필이었다.
“혀, 형님. 그러니까. 그러니까, 저희는…….”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평소에 기억하는 박정필의 이미지라면 거짓말하지 말라고 떠들거나, 자기는 빠지겠다며 도망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 순간…….
박정필이 돌연 눈을 동그랗게 뜨며 세운의 앞에 얼굴을 내밀었다.
“저희가 히어로라는 뜻 아닙니까!”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세운이 흔치 않게 멍한 표정을 지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