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13)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17화(413/675)
제 417화
디아블로 길드의 성대한 파티가 끝나고 난 후, 데스힐에서 가장 큰 목표였던 아우터 처리를 마치고 긴장이 풀린 탓인지 다들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세운 역시 일찍 방으로 들어갔지만, 생각할 게 많은 탓에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침입자?’
여관의 창밖에서 수상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세운도 잠들어 있었다면 전혀 느끼지 못했을 정도로 은밀한 기척.
이에 세운이 곧바로 침대 옆에 기울여둔 뒤랑달을 쥐어 잡았다.
만병지함이 있긴 하지만, 회귀 전의 버릇 때문인지 자는 동안에도 항상 무기를 주변에 두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평범한 도둑은 아닐 거고.’
디아블로 길드가 머물고 있는 여관은 보통 여관이 아니다.
아니, 원래는 보통 여관이었지만 디아블로 길드가 머물기 시작한 이후부터 보통 여관이 아니게 되었다는 표현이 옳았다.
이 여관에는 쌍둥이 자매가 보안 장비를 몇 개나 설치해 두었고 세운 역시 알람 마법을 철저하게 걸어 두었으니까.
그 모든 것을 뚫고 여기까지 찾아왔다는 것 자체로 상대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끼이익-
창문에 걸린 잠금 마법이 별다른 저항도 없이 해제된 채로 열려온다.
선선한 밤공기가 흘러나와 방을 차갑게 식힌다. 그와 함께 시커먼 그림자가 방 안으로 들어온다.
침입자의 발이 카펫에 닿기 무섭게 세운의 검이 로브로 가려진 목을 향해 쇄도한다.
“누구지?”
목에 차가운 검날이 닿아 있는데도 침입자는 조금도 반응하지 않는다.
조금 움찔거리기라도 하는 게 정상일 텐데. 마치, 세운이 눈치챌 거라는 걸 예상한 것처럼 보였다.
“대답을 듣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자기소개도 하지 않고 당당하게 본론을 말하는 침입자.
이에 세운은 그의 정체를 확신할 수 있었다.
흑익.
루시퍼가 자신의 깃털 중 하나를 보내겠다고 했는데 그 깃털이 이 사람인가 보다.
“굳이 이렇게 늦은 밤에 몰래 들어왔어야 했나?”
“이것도 알아채지 못한다면 대답을 들을 가치도 없다는 거겠지요.”
“그건 동의를 얻은 건가?”
“암살자인 저를 보냈다는 것은 곧 그런 의미라 생각합니다.”
이런 말을 표정 하나 안 바꾸고 뻔뻔하게 내뱉다니.
어이가 없는 상황이지만, 상대는 흑익이니 굳이 이해하려 할 필요는 없었다.
“긴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 그저 대답만 들으면 됩니다.”
“생각해 봤는데.”
일곱 번째 쉼터에서 찾아온다는 예고까지 들었으니 대답은 이미 준비해 두었다.
루시퍼의 제안을 수락도, 부정도 하지 않으면서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대답.
자칫 버릇없게 느껴질 수는 있겠지만, 흑익의 자신감으로 거절하기가 애매한 제안.
“어차피 내가 승낙하든 부정하든 그쪽의 머리는 만나야 하지 않나?”
“……무슨 뜻이시죠.”
“같은 편이고 뭐고, 나보다 약한 사람의 아래로 들어갈 수는 없잖아? 전에 쓰러트린 놈들도 별거 아니었고. 만약 그쪽 길드장도 그렇게 약하다면…….”
챙!
세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날카로운 쇳소리가 들려왔다. 흑익의 침입자가 목덜미에 도사리고 있던 검날에서 가볍게 벗어나며 세운에게 단검을 휘두른 까닭이다.
다만, 검날의 범위 밖으로 멀쩡하게 빠져나간 건 아니다.
로브의 목 부분이 날카롭게 잘려 툭 떨어지고, 그 사이로 붉은 핏물이 흘러나왔다.
상처를 각오하고 범위를 벗어나 단검을 휘두른 것이다.
다른 부위였으면 몰라도 급소 중 하나인 목에 닿은 검날을 저런 식으로 피해 내다니.
어지간한 담력이 아니었다.
툭.
침입자가 어중간하게 잘려 나가 너덜거리는 로브를 벗어던졌다.
그러자 자신을 암살자라고 소개한 것답게 새까만 의복과 날렵해 보이는 손목이 드러났다.
“그분의 마음에 들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지간한 언행은 눈감아 주겠지만, 저희 마스터를 무시하는 건 용납할 수 없습니다.”
“사실이잖아? 너 같으면 너보다 약한 사람 밑으로 들어갈 수 있겠어?”
“마스터는 강합니다. 당신 따위보다도 훨씬 더. 그분의 마음에 들었다고 자신감이 과하게 부풀었군요.”
“그렇다면 증거를 보여줘. 그 마스터라는 사람이 나보다 강하다는 걸.”
“증거 따윈 필요 없습니다. 이 탑에서 마스터보다 나은 사람은 없으니.”
“말만 앞서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는데.”
“그렇다면, 부족하게나마 제가 당신의 수준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침입자의 신형이 그림자처럼 밑으로 쑥 꺼졌다.
방을 밝히던 작은 불씨가 바람이라도 분 것처럼 훅 꺼지며 방이 암전으로 뒤덮였다.
지금까지 미약하게 느껴지던 인기척마저 사라졌다.
세운이 가볍게 서클을 돌려 라이트 마법으로 불을 밝히는 순간, 라이트로 인해 생겨난 그림자에서 침입자의 몸이 쑥 튀어나온다.
“그분의 명이시니 목숨만은 살려드리겠습니다.”
팅!
그녀가 쳐올린 단검이 세운의 뒤랑달을 튕겨냈다.
곧이어 세운에게 확실한 실력 차이를 느껴주기 위해 그녀의 단검이 세운의 목 언저리를 향해 쇄도하던 중, 그녀가 뒤랑달을 쳐냈을 때와 같이 ‘팅!’ 하는 쇳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도 실내에서는 단검이 더 편하거든.”
“어느새……!”
세운의 손에 들려 있는 건 뒤랑달이 아니었다.
광룡의 송곳니.
뒤랑달의 긴 리치 때문에 방에서 다루기가 불편하다고 생각하자마자 반대쪽 손에 쥐고 있던 단검이었다.
만병지함을 가지고 있는 한, 세운에게 무기의 제약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반대로 무기를 떨어트리게 된 침입자가 재빠르게 상체를 숙이며 몸을 회전시켰다.
펄럭!
단순한 회피 동작이 아니었다.
침입자의 등 뒤에서 펼쳐진 날개가 날카로운 칼처럼 세운을 노려왔다.
흑익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면 꼼짝없이 당했을 만한 변칙적인 공격.
하지만, 세운은 이미 흑익을 상대하며 날개를 이용한 공격에 적응해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말했지?”
쿠웅!
“큭!”
상체를 기울여 날개를 가뿐히 피해 낸 후, 그대로 왼손을 뻗어 침입자의 머리를 짓눌렀다.
이미 자세가 숙어진 상황에서 세운의 압력을 버티지 못한 침입자의 몸이 바닥에 틀어박혔다.
나무로 된 바닥이 우득, 하고 부서지며 침입자의 신음이 들려왔다.
세운이 미리 사일런스 마법을 사용해 두지 않았다면 벌써 소음을 들은 길드원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으리라.
“약하다고.”
머리가 처박힌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단검을 쥐어 드는 침입자의 팔을 꺾어 올렸다.
날개도 확실히 짓누르고 있으니 더 이상 반격의 가능성은 없었다.
침입자가 분하다는 듯이 몸을 떨었지만 이내 진정하며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래요. 인정하겠습니다. 괜히 그분께서 직접 지명한 사람이 아니란 거겠죠.”
“이제야 알아들었나 보네.”
“그럼 거부 의사로 받아들이면 되겠습니까?”
“누가 거절하겠대?”
“그럼…….”
“그쪽의 마스터를 직접 만나고 싶어.”
이게 바로 세운의 목적이었다.
일단 흑익의 마스터를 만날 수 있다면 흑익의 목적을 알아낼 수 있을 거다.
목적을 알아내지 못하더라도 마스터만 무찌르면 흑익을 무너트리는 건 금방이다.
흑익의 마스터는 루시퍼와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을 테고, 그를 무찌르면 흑인뿐만 아니라 루시퍼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도 가능할 테니까.
“……꼭 직접 눈으로 보아야만 믿는 어리석은 자들이 있죠.”
“그럴 만한 실력이 있으니까.”
세운이 계속해서 허세에 가까워 보이는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흑익은 무력에 대한 자신감이 강한 곳이니까.
다른 것도 아니고 마스터가 약할까 봐 들어가지 못하겠다는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다.
심지어 그 상대가 세운이지 않은가?
허세를 부리는 것으로 보여도, 그 실력은 진짜였다.
이제 고작 일곱 번째 쉼터에 도달했을 뿐이지만, 세운의 실력은 흑익에서 간부라 불리는 플레이어들 이상으로 강력했다.
“전 어디까지나 전령일 뿐입니다.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닙니다.”
“전령으로 찾아왔으니 최소한의 발언권은 있을 텐데?”
“……알겠습니다. 상부에 보고는 해 보겠습니다. 다만, 상부에서 그 발언을 인정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 경우엔.”
“올 테면 오라고 해. 언제든지 상대해 줄 테니까.”
“과한 자신감은 독이 될 겁니다.”
“그건 실력 없는 사람에게 해당하는 말이지.”
세운이 침입자의 팔을 풀어주었다.
그래도 말귀는 잘 알아들은 듯 단검을 품에 집어넣고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려 창문을 향했다.
‘이 정도면 잘 넘긴 거겠지.’
흑익을 적으로 돌리지 않고 딱 적당한 관계로 길드장과 대면할 기회를 열어두었다.
방금 말한 대로 몇몇 간부들이 건방지다고 세운을 치려 할지도 모르지만, 간부들에게 질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들이 병력을 끌고 온다고 하더라도 세운에게는 듬직한 동료들이 함께 있으니.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루시퍼의 교활함을 가볍게 보면 안 된다며 주의합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당신의 힘은 믿지만, 루시퍼가 자신의 사도가 당할 때까지 가만히 있을 리 없다고 조언합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자신 때문에 너무 무리하는 게 아니냐며 걱정합니다.
“아닙니다.”
흑익을 무너트리는 것.
이는 레비아탄과 계약할 때 맺은 조건 중 하나였지만, 어차피 도달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탑을 뒤집겠다는 루시퍼의 야망.
그 뜻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탑의 멸망을 막으려는 세운의 목표와는 다를 가능성이 크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잠시 망설이더니 한 가지 제안을 해 옵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루시퍼를 만나기 전에 릴리스를 만나보는 게 어떻냐고 묻습니다.
“릴리스라면, 색욕의 마신을 말하는 겁니까?”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화들짝 놀랍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그 여자의 성격을 알면서도 그런 말을 내뱉냐며 화를 냅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자신 역시 알고 있지만, 어차피 거쳐야 할 일이라며 마몬을 설득합니다.
색욕의 마신, 릴리스.
세운도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 위치를 몰라 제쳐 두고 있던 계획이었다.
다만, 레비아탄의 말대로 세운은 어지간해서 칠대 마신을 모두 만나볼 생각이었다.
신마대전을 막기 위해서는 마 세력의 주축이라 할 수 있는 그들의 의견을 듣는 게 가장 중요했으니까.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이마를 부여잡으며 고개를 내젓습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자신이 최대한 도와주겠다며 꼬리에 힘을 줍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한숨을 내쉬며 벌써부터 앞길을 걱정합니다.
그런데, 마몬과 레비아탄의 연이은 걱정 때문일까?
어쩐지.
‘루시퍼야 원래 위험한 놈이고. 릴리스는 말이야. 으음, 조금 다른 의미로 위험하니까 조심하는 게 좋을지도?’
나태의 미궁에서 벨페고르에게 들었던 대사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