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15)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19화(415/675)
제 419화
일곱 번째 쉼터, 데스힐.
이곳부터는 라일락까지와는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여긴가요?”
바로 이곳. 플레이어가 다음 시련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자격을 시험하는 장소였다.
저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플레이어는 다음 시련에 도전할 수 없다.
게다가 이 시험은 한 번 통과한다고 평생 자격을 인정받는 게 아니라 시련을 못 이겨 쉼터로 돌아오면 또다시 시험을 통과하여야만 시련에 다시 오를 수 있다.
가혹하다고 할 수 있지만, 세운은 일종의 배려라고 생각되었다. 최소한 이 시험에서는 목숨을 잃지는 않으니까.
어쩌면 데스힐까지 올라온 플레이어들의 실력을 인정하고, 죽어가는 플레이어의 수를 줄이기 위한 시스템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이 탑이라는 곳은 위로 올라갈수록 플레이어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잔혹한 곳이었으니까.
“정찰하는 김에 잠깐 들른 적이 있는데, 다시 봐도 장엄하군요.”
“아, 먼저 와 보셨어요?”
“네. 다만, 시험 내용은 보지 못했습니다.”
해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뭐, 찾고자 하면 못 찾을 곳은 아니다. 데스힐 구역의 끝자락에 존재하여 이동 거리가 꽤 된다고는 해도 하늘에 닿을 듯이 거대한 석문은 제법 눈에 띄는 건축물이니 말이다.
“와아아, 엄청 크다!”
“지지대가 엉성하지 않아?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은데.”
“재질이 특별한가? 아니면 보기엔 이래도 엄청 밑에까지 박혀 있는 건가?”
“이거 좀 분해해 보면 안 되나?”
“해 볼까?”
“해 보자!”
쌍둥이 자매가 호기심을 못 참고 앞으로 달려 나간다.
아무래도 건축물을 다루다 보니 새로 보는 건축물에 대한 호기심을 주체하기 힘든가 보다.
그 모습을 이해는 하지만, 아쉽게도 저 거대한 석문을 해부하는 건 불가능할 테다.
그도 그럴 게, 저 문은 다음 시련으로 향하는 시험 그 자체.
일정 거리 이상 가까이만 다가가도…….
– 일곱 번째 쉼터, 데스힐의 ‘대석문(大石門)’에 도착하였습니다.
– 다음 시련에 도전하기 위한 문지기의 시험이 시작됩니다.
– 시험의 영역에 진입합니다.
자동으로 시험이 시작되며 별개의 공간으로 이동하게 되니까.
우웅-
주변의 배경이 데스힐 특유의 암울한 회색빛으로 뒤덮였다.
시험의 영역에는 한 명씩만 존재할 수 있기에, 조금 전까지 옆에 있던 디아블로 길드원들은 모두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러더니 돌이 긁히는 소리와 함께 대석문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시험 볼 자.”
저 거대한 문은 자동으로 열리는 게 아니었다. 문의 안쪽에서 문지기가 저 무거워 보이는 석문을 밀고 나오고 있었다.
“누구인가.”
가장 먼저 드러난 건 문지기의 왼발이었다. 돌처럼 단단해 보이는 왼발 위로 허름한 의복이 나풀거리며 흘러내렸다.
이어서 문이 활짝 열리며, 문지기의 거대한 형체가 온전히 드러났다.
10m는 거뜬히 넘지 않을까 싶은 키에 코주부처럼 툭 튀어나온 코. 얼굴에는 검버섯이 가득했고 손에는 고사리처럼 구불구불하게 휘어 있는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겉모습만 본다면 문지기보다는 묘지기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은 외관이다. 아니, 사실 묘지기에 어울리는 건 겉모습만이 아니다.
“시험 볼 자.”
쿵!
문지기가 지팡이를 짧게 들었다가 내려찍자 대지가 진동하더니 스산한 안개가 떠올랐다.
이는 곧 인간의 모습을 흉내 내며 문지기의 주변을 가득 메웠다.
그것들은 모두 몸 일부가 연결되어 있었는데, 하나같이 괴로운 듯이 비명을 내지르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저게 바로 문지기의 힘.
저 때문에 데스힐을 지나간 플레이어 대부분은 저 녀석을 문지기가 아니라 묘지기라 표현하였다.
“망자의 벽을 뚫고 지나가리라.”
이게 바로 데스힐의 시험.
문지기가 말한 것처럼 망자의 벽을 뚫고 그 뒤에 활짝 열려 있는 대석문 안으로 들어가면 된다.
꼭 눈앞의 문지기를 쓰러트릴 필요는 없다. 목표는 어디까지나 문을 통과하는 것뿐.
문지기의 다리 사이로 빠져나가든, 망자의 벽을 찢고 나가든, 기도를 외어 망자를 정화시키든.
무슨 방법이든 상관없이 그저 문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시험이었다.
‘하긴, 말이 쉽지.’
다만, 이는 결코 쉬운 시험이 아니었다.
우선 저 망자의 벽은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체력을 빼앗고 정신을 뒤흔든다.
어지간한 공격 따위는 통하지 않으며, 가까이 다가가면 망자들이 손을 뻗어 플레이어를 물고 늘어진다.
그렇다면 문지기를 공략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에는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망자의 벽을 통과할 때는 문지기가 따로 간섭하지 않지만, 문지기의 빈틈을 공략하려는 순간 저 거대한 몸체와 지팡이가 움직이며 플레이어를 막아서니까.
‘어렵다고는 해도, 이 정도도 통과하지 못하면 안 올라가는 게 맞지.’
이 시험에서 확인하는 건 간단하다.
망자와 같이 물리 법칙에 어긋나는 이형의 적을 상대로 살아남을 수 있는지.
그게 아니라면 압도적인 무력으로 고난을 헤쳐나가거나, 새로운 방법을 찾아낼 재치를 지니고 있는지.
이 모두가 이어지는 시련들에서 필요한 능력이었다.
당연하게도, 여기서 세운이 선택한 방법은.
– 적탑의 묘리에 따라 ‘턴 언데드’의 범위가 확산됩니다.
– 백탑의 묘리에 따라 ‘턴 언데드’의 속성력이 상승합니다.
압도적인 무력으로 문지기와 망자의 벽 모두를 밟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어어어어어-”
망령을 정화하는 백탑의 마법, 턴 언데드의 강렬한 빛이 터져 나오자 망자의 벽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한 번의 공격으로 망자의 벽을 무너트리는 건 불가능하지만, 작은 빈틈을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 백탑의 묘리에 따라 ‘샤이닝 블레이드’의 속성력이 상승합니다.
그사이, 세운의 손에 빛의 검이 들려진다.
사실 빛의 검은 이렇게 직접 들거나 하는 용도로 만들어진 마법이 아니다.
적의 머리 위에 거대한 검을 소환하여 내려찍는 간단한 기술이지만, 세운이 수식을 바꾸어 이렇게 직접 들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일반적인 마법사라면 검을 직접 쥐고 휘둘러 봤자 본래 위력의 절반도 발휘하지 못하겠지만, 세운은 아니었다.
– 내공을 통해 오룡활보의 제일 초식, 백룡출두(白龍出頭)가 강화됩니다.
세운이 자세를 낮추고는 발도를 하듯이 빛의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그 순간, 내공은 물론이고 마나까지 순환시키며 빛의 검에 물리력과 마법력을 동시에 담아냈다.
잔상을 남길 정도로 빠르게 휘둘러진 빛의 검이 일순간 본래의 거대한 크기를 되찾으며 망자의 벽에 기다란 실선을 남겼다.
“그어-”
척.
세운이 납검을 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자 빛의 검이 임무를 다하고 빛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뚝 끊기는 망자의 비명.
대석문을 가로막을 정도로 길고 두꺼웠던 망자의 벽이 어긋나더니 처음 드러났을 때처럼 회색의 안개가 되어 스르르 사라졌다.
“합격한 자, 통과하여라.”
망자의 벽이 사라지자, 문지기가 세운의 힘을 인정하였다.
방해할 생각이 없다는 듯이 석상처럼 가만히 서서 세운을 내려보았다.
그런 문지기를 향해, 세운이 뒤랑달을 빼 들었다.
“기왕 시험하는 거, 끝까지 봐주지.”
“시험 보는 자에게 시험을 내리는 것. 그것이 나의 역할.”
문지기는 세운의 도전장을 거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허리를 펴고 지팡이를 들어 올린다.
안 그래도 거대했던 덩치가 더욱 거대해 보였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군침을 폭포수처럼 쏟아냅니다.
‘잘 참아왔으니 첫 끼는 성대하게 차려줘야지.’
베엘제붑의 기대를 받으며, 세운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문지기의 거대한 덩치는 뒤랑달을 너무하게 초라하게 만들었지만, 세운의 머릿속에 패배란 존재하지 않았다.
“힘을 증명하고 싶은 자.”
문지기가 지팡이로 다시 한번 바닥을 내리찍었다.
다 자란 버드나무와 비견될 법한 거대한 지팡이가 땅에 닿자마자 지진이 난 듯이 땅이 떨려왔다.
그 아래에서는 먼지 대신 회색빛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그어어어-”
처음 나타났던 망자의 벽과는 달랐다.
망자의 벽을 구성하던 망자들이 편차는 있어도 일반 성인의 크기 정도였다면, 지금 나타나고 있는 망자들의 크기는 문지기의 절반.
즉, 5m에 달하는 크기였다.
그런 망자들이 한꺼번에 수십 마리가 나타났다.
녀석들이 동시에 내지르는 비명은 망자의 벽에서 들려오던 것과 차원이 다르게 기괴했다.
귀가 찢어지고 눈을 멀게 하는 망자의 비명.
인간이 태초부터 가지고 있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쿡쿡 쑤시며 자극해 왔지만, 세운은 공포 따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망자를 뛰어넘으리라.”
문지기와 유령들로 시야가 가득 차서 석문이나 하늘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귀는 망자의 비명으로 가득 채워져 다른 것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피부는 망자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살기가 바늘처럼 찔러와 따끔거렸다.
과연, 이게 가능한 시도일까?
망자의 벽을 넘어 문지기에게 검을 들어 올린 것은 오만이 아니었을까?
아니, 분명 아니었다.
– 시기의 눈초리가 ‘대석문의 문지기’를 응시하기 시작합니다.
세운은, 강해졌으니까.
– 시기의 눈초리가 ‘대석문의 문지기’의 힘을 질투합니다.
– 망자의 지배력을 앗아옵니다.
– 망자의 지배력을 앗아옵니다.
…….
강화된 질투의 권능은 시간을 끌거나 할 필요조차 없었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앗아오는 힘이 늘어나지만, 이전처럼 시간을 벌기 위해 적을 피해 다니거나 하지 않아도 됐다.
실시간으로 문지기에게서 앗아온 망자의 지배력이 느껴진다.
처음 느껴보는 힘이지만, 질투의 권능은 앗아온 힘을 주인에게 친절히 힘의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탐욕의 권능과 마찬가지.
세운의 눈빛이 회색빛으로 물들며 눈앞으로 다가오는 망령들에게 나긋하게 읊조렸다.
“멈춰.”
“그으-으어?”
거대한 덩치로 세상을 회색으로 물들여 오던 망령들이 일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물론, 아주 잠깐이었다.
잠깐 빼앗은 극소의 지배력으로 저 망자들을 완전히 멈추거나 다루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 성흔이 혈랑전설의 설화에 반응합니다.
– 성흔의 첫 번째 능력, ‘공포’가 깨어납니다.
그 잠깐 사이에 녀석들에게 ‘공포’를 각인시키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그어어어어어-!!”
죽은 자라고 하여 공포를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죽은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공포가 존재한다.
빛에 대한 두려움, 정화에 대한 두려움, 소멸에 대한 두려움, 기억과 자아가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세운의 성흔은 그 모든 두려움을 깊숙하게 자극하여 녀석들을 공포로 사로잡는다.
“그 잘난 망자들 말고, 이제 둘이서 일대일로 겨뤄볼까?”
세운의 검이 들어 올려졌고, 문지기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지팡이를 휘둘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