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16)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20화(416/675)
제 420화
쿠웅!
문지기의 한쪽 무릎이 굽혀졌다.
양손으로 지팡이를 붙잡고 간신히 버티고 있었지만, 이미 문지기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몸 곳곳에 난 상처에서 피 대신 회색 연기가 빠져나와 피부가 골판지처럼 쭈글쭈글해져 있었다.
“시험받는 자여.”
추가 공격을 날릴 필요도 없었다. 문지기의 몸은 그가 소환해 왔던 망자들과 마찬가지로 희뿌연 연기가 되어 사라져 가고 있었으니까.
베엘제붑의 비명이 메시지로 나타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세운도 문지기가 저런 식으로 사라져 폭식의 권능을 사용하지 못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으니.
“그대는.”
몸이 사라져 가던 중, 문지기가 귀기가 넘실거리는 눈빛으로 세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과 회귀 전을 통틀어 그가 시험과 상관없는 말을 하는 건 처음이었기에 세운도 귀를 쫑긋 세우게 되었다.
“무엇을 위해 대석문을 지나려 하는가?”
너무나도 간단한 질문.
그러면서도 너무나도 깊고 진지한 질문이기도 했다.
만약 회귀 전이었다면 어떤 대답을 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곧바로 대답할 수 있었다.
“탑의 멸망을 막기 위해.”
아니, 이걸로는 조금 설명이 부족했겠다.
세운은 영웅 같은 게 아니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과거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어떻게 보면 이기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유였지만, 그 끝이 탑의 멸망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건 분명 사실이었다.
“그런가.”
문지기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어떤 감정도 드러나지 않으며 무심한 표정으로 사라져 가는 손을 들어 손끝으로 세운을 가리킨다.
“그대에게 망자의 기원을.”
스르르-
안개가 되어 사라져가던 문지기의 몸 일부가 세운에게 흘러왔다.
성흔이 기다렸다는 듯이 안개를 집어삼켰다.
다만, 이 안개는 여지까지 흡수해 온 힘들과는 결이 달라서인지 흡수를 하고 있어도 별다른 차이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대신.
– 대석문(大石門)의 시험에 통과하였습니다.
– 대석문의 문지기에게 인정받아 보상으로 500,000point를 획득하였습니다.
– 대석문의 문지기에게 인정받아 모든 능력치가 5 상승합니다.
– 대석문을 통과하여 시련으로 진입하십시오.
시험에 관련된 메시지들이 연이어 떠올랐다.
안개를 모두 흡수하고도 성흔에서 별다른 반응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거야 나중에 확인하면 될 일.
지금은 일단…….
‘가 볼까.’
잠시 멈췄던 등반을 재개할 때였다.
* * *
– 61층의 시련에 도전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 주제 : 몽환의 숲
– 당신은 생명의 시초에 도달하기 위해 그 누구도 도달할 수 없고, 빠져나올 수도 없다고 알려진 미지의 숲에 진입하였습니다.
– 목적은 간단합니다.
– 몽환의 숲에서 빠져나오십시오.
대석문에 진입하고 얼마 후, 피부에 축축한 감촉이 느껴지는 것을 시작으로 61층의 시련에 진입하였다.
‘몽환의 숲이라.’
사방에 안개가 자욱하다.
안개의 밀도가 얼마나 높은지 시야에 집중해도 기껏해야 몇m 앞이 내다보일 뿐이었다.
심지어는 지금 발을 내디디고 있는 대지의 상태도 확인하기 어려울 지경.
‘문제는 이게 단순한 안개가 아니라는 거지.’
평범한 안개였으면 시야 정도만 제한될 뿐이다.
다른 감각에 조금 더 집중하여 경계하거나, 마법을 사용하여 안개를 걷어내는 것도 가능했을 거다.
하지만, 이 안개는 그런 종류가 아니다. 자연환경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마법에 가깝다.
‘시각을 제외하고도 다른 감각들을 전부 절하시키고, 마법도 통하지 않지.’
뿐만이랴? 이 안개 속에서는 마나나 내공도 잘 응집되지 않아 기본적으로 힘을 발현하기가 어렵다.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랄까?
즉, 플레이어들은 저마다의 최악의 컨디션으로 이 시련을 돌파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물론, 가장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이번 시련에서는 목표 지점을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으니까.’
이번 시련의 목표는 몽환의 숲을 빠져나오는 것.
즉, 이 자욱한 안개 속을 탈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련은 숲을 빠져나오기 위한 방법이나 길을 알려주지 않는다.
저벅.
세운이 첫발을 움직였다.
안개 때문인지 질퍽하게 느껴지는 땅바닥이 발길을 붙잡는다.
“거기- 누- 없-?”
“살- 이제- 만-”
자욱한 안개 사이에서 누군가의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나마 세운이기에 이렇게 희미하게라도 들을 수 있는 거지, 평범한 플레이어라면 이 안개 속에 혼자 갇혀 있다고 생각할 거다.
시각도, 청각도, 촉각도 제한하는 이 안개 속에서 플레이어들은 외로움과 불안감에 사로잡히고 만다.
하지만, 이 모두 세운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얘기였다.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여정의 지침표.”
세운에게는 앞길을 환하게 밝혀주는 등불이 존재했으니까.
기잉-
여정의 지침표가 떠오르며 세운이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었다.
이 안개는 단순히 오감을 저하할 뿐만 아니라 방향감각마저 흩트려 길을 헤매게 만들지만, 여정의 지침표를 따라가면 그럴 일이 없었다.
잠깐 이 몽환의 숲 어딘가에서 길을 헤매고 있을 디아블로 길드원을 찾으러 갈까도 고민해 보았지만…….
‘아니야.’
디아블로 길드원 모두 어엿한 플레이어다.
최근 회귀에 대한 사실을 밝히며 그들에게 더 끈끈한 정을 느낀 건 사실이지만, 공과 사는 확실하게 구분하여야 한다.
힘들 것 같다고 챙겨주기만 한다면 그들이 성장하지 못한다.
지금 당장은 선의로 볼 수 있어도 나중에 가면 결국 스스로 성장하지 못한 결과가 드러나고 말 것이다.
그렇게 망설임 없이 앞으로 발을 내딛던 중.
“키릭-”
바로 뒤에서 목을 긁는 듯한 소리와 함께 섬뜩한 살기가 느껴졌다.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삼 초식, 혈랑습격(血狼襲擊)이 강화됩니다.
무언가 생각하기도 전에 검이 먼저 반응한다.
뒤랑달이 희뿌연 안개 사이를 훑고 지나가니 일순간 공간이 휜 것처럼 안개가 일렁인다.
“키릭, 키-”
다만, 그럼에도 기이한 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뒤랑달을 휘두른 손에서도 별다른 감촉이 느껴지지 않는다.
‘안개 습격자인가.’
안개 습격자.
신체의 절반 이상이 안개로 이루어져 있는 몬스터였다.
그 때문에 완벽한 타이밍을 잡지 않는 이상 물리 공격으로 사냥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다행이라면 물리 공격이라도 강한 힘으로 안개를 흩트리면 움직임을 멈추기도 하고, 의외로 속도가 느려 도망치기 쉽다는 점이랄까?
‘데스힐의 시험이 괜한 게 아니라는 거지.’
문지기가 소환하던 망령들을 상대하는 것과 비슷하다.
61층의 시련부터는 이렇게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상대하기 어려운 몬스터들이 대거 등장한다.
머리를 굴리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다.
그렇기에, 이곳은 더더욱 세운이 자신 있어 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 적탑의 묘리에 따라 ‘레인 샤워’의 범위가 확산됩니다.
쏴아아!
세운의 손에서 푸른 빛이 하늘 위로 쏘아지더니 마른하늘에서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레인 샤워.
그저 일순간 비를 내리게 할 뿐인 생활계 마법으로써 몬스터와의 전투에는 어울리지 않는 마법이었다.
장점이라면, 어지간한 고서클 마법보다 넓은 범위에 비를 뿌릴 수 있다는 점이랄까?
이렇게 살상력 따위 전무한 소나기를 맞은 안개 습격자는.
“키리리리릭! 키릭, 키리릭!”
목이 갈라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소리를 크게 내지르며 모습을 드러냈다.
반투명한 몸은 당장에라도 녹아내릴 것처럼 움찔거렸다.
필사적으로 소나기 밖으로 도망치려 발버둥 치고 있었지만, 몸이 말을 들어주지 않아 보였다.
‘웬만한 플레이어는 전혀 모르는 약점이지.’
물로 이루어진 안개 속에서 살아가며, 몸 역시 물의 형태 중 하나인 안개로 구성된 몬스터의 약점이 물이라니.
그 누가 이런 걸 예상할 수 있었을까?
안개 습격자는 몸 대부분이 안개로 구성된 만큼 체내의 수분 농도에 심각하게 민감하다.
비율이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금방 저렇게 무너져 내린다.
푹.
– ‘안개 습격자’를 포식하였습니다.
– 양분을 흡수하여 지력이 0.1 상승합니다.
오랜만에 사용하는 폭식의 권능.
이번 생에서는 처음으로 사냥하는 몬스터인데도 오르는 능력치의 양이 미약했다.
뭐, 모든 능력치가 300을 추월한 시점에서 이 정도의 능력치 상승으로도 놀라운 일이지만 말이다.
“키리리리릭!”
“키익, 키릭!!”
주변에서 들리는 비명은 이 하나가 아니었다.
레인 샤워의 범위가 워낙 넓었던 탓에 주변에서 세운을 노리고 있거나 방랑하고 있던 안개 습격자들이 동시에 드러난 것이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먼지 쌓인 포크를 집어 듭니다.
‘간만에 사냥 좀 해야겠네.’
안 오르는 것이나 다름없는 능력치를 보며 그냥 지나갈까도 생각했는데, 생각이 달라졌다.
지금은 미약하게 보여도, 네임드 몬스터 정도만 되어도 능력치 상승량이 꽤 괜찮다.
이제는 익숙해져 당연하게 느끼고 있지만, 폭식의 권능은 세운을 여기까지 키워준 일등공신 중 하나였다.
그런 만큼, 조금은 베엘제붑의 장단을 맞춰줄 필요가 있었다.
“키리-”
서걱.
생각을 마친 세운이 곧바로 몸을 움직였다.
가까이 있던 안개 습격자의 머리가 안개 사이로 붕 떠오르고, 그 머리가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삼 초식, 혈랑습격(血狼襲擊)이 강화됩니다.
붕-
새로운 안개 습격자의 머리가 떠올랐다.
소나기를 맞은 여파로 몸도 못 겨누고 있는 안개 습격자를 베는 것은 몬스터 사냥보다는 학살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캬릉.”
“취릿, 취르릇.”
수십의 안개 습격자가 쓰러져 가고, 폭식의 권능을 사용하고 있다지만 그 찰나의 순간에 퍼져 나간 피 냄새 때문일까?
세운의 주변으로 안개 습격자를 제외한 다양한 몬스터들이 다가왔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간만에 불룩한 뱃가죽을 내려보며 환호합니다.
세운으로서는 환영할 일이었다. 이렇게 몬스터들이 먼저 찾아와 주면 귀찮게 찾아갈 일이 없어지니 말이다.
화륵!
불 마법을 시작으로 다양한 속성의 마법들이 안개 속을 채워나간다.
“캬악!”
마구잡이로 공격을 난사하는 게 아니다. 회귀 전에 익혀 두었던 몬스터들의 약점을 철저하게 공략하는 방식이었다.
솔직히 지금의 세운이라면 이런 귀찮은 방법이 아니더라도 몬스터를 힘으로 찍어 누르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방법에 익숙해지면 안 돼.’
지금은 61층의 수준이었기에 가능할지 몰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 방법은 사용하기 어려워진다.
당장 회귀 전의 탑에서 그 많은 플레이어가 날고뛰어서 도착한 최종 층이 92층이었던 사실이 그걸 증명해 준다.
적이 약하다고 방심하지 않고 머리를 굴리며 싸우는 법에 익숙해져야만 한다.
푹.
“캬르…….”
땅바닥을 헤집으며 세운을 기습하려던 몬스터의 미간에 뒤랑달이 박혔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주변에서 몬스터의 기척이 사라졌다.
그 순간, 세운의 머리 위에서 여정의 지침표가 강렬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
정체 모를 언어를 내뱉으며 모습을 드러내는 몬스터 하나.
도저히 한 문장으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괴상한 모습을 한 녀석은 몸에서 안개를 자욱하게 뿜어대고 있었다.
덕분에 자욱하던 안개가 더욱 짙어지며 시야가 완전히 차단되었다.
소리를 전달하는 매질이 줄어들어 소리마저 사라지고, 숨을 쉴 때마다 물속에 있는 것처럼 속이 턱턱 막혀왔다.
“메인 메뉴 등장이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자신은 당신을 믿고 있었다며 쾌재를 지릅니다.
61층 몽환의 숲에 존재하는 강력한 네임드 몬스터 중 하나.
환상수이자 미스트 메이커라고도 불리는 녀석이 세운의 말에 일순간 몸을 경직시키며 안개 뿜어내기를 멈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