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2)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2화(42/675)
제 42화
‘판의 시링크스 소리가 왜 여기서 들리는 거지?’
혼란을 연주하는 산양, 판.
세운이 많은 성좌의 이명을 알고 있긴 했지만, 그 모두의 권능까지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니다.
그런 세운이 탑에서 큰 영향력도 가지지 못한 성좌인 판의 권능을 기억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회귀 전.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바닥을 구르던 세운에게, 처음으로 관심을 둔 게 바로 판이었기 때문이다.
으득!
세운이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처음으로 관심을 가져주었던, 잘 모르고 보면 고마운 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설마 또 저놈이랑 엮일 줄이야.’
주위 사람들이 하나둘 성좌의 관심을 받기 시작할 무렵.
세운은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준 판이라는 성좌에 대해 큰 기쁨을 느꼈다.
당연하게도, 이후에 판이 시키는 대로 구르고 또 구르며 온갖 고비를 다 넘겼었다.
이것만 끝내면, 힘을 하사하겠다고.
이것만 끝내면, 사도로 지정해 주겠다고.
이것만 끝내면, 권능을 내려주겠다고!
하지만, 다 거짓말이었다.
판은 그저 ‘여정의 지침표’라는 고유 스킬에 호기심을 느껴 잠시 고개를 내비쳤을 뿐이었고 자신의 말에 일희일비하며 따르는 세운을 보며 재미를 느꼈을 뿐이었다.
그렇게 세운을 이용해 즐길 대로 즐긴 후, 판은 이제 질렸다는 짧은 작별을 고한 채, 세운에게서 등을 돌렸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다.
세운이 자신들을 선신이라 칭하는 세력에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던 게 말이다.
“살려주십쇼-!!”
갑작스럽게 떠오른 나쁜 기억에 세운이 인상을 찌푸릴 때쯤, 박정필과 그 뒤를 따르는 몬스터들은 눈에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다.
“뭐, 뭐야! 저게 대체 몇 마리야!”
“수도 수지만, 저 몬스터는 너무 강해 보이잖아!”
“무슨 생각으로 저런 것들을 데려온 거야!”
다른 사람들도 그 존재를 알아챘는지, 여기저기서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더 상황을 파악하고 싶었지만, 이미 상황에 여유는 없었다.
세운이 여느 때처럼 팔을 들어, 몬스터 쪽을 가리켰다.
-흑탑의 묘리에 따라 ‘프리즌 웨이브’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꽈드드드득!
흑탑의 묘리에 따라 검게 물든 서리 바람이 차갑게 퍼져 나갔다.
뒤이어 날카로운 얼음송곳이 움직임이 둔해진 몬스터들의 몸을 꿰뚫었다.
그것만으로 전방의 몬스터 수십이 쓰러지고, 냉기 마법의 특성답게 달려 오던 몬스터들의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그사이, 이제는 익숙하게 세운의 마법을 피해 낸 박정필이 추위에 벌벌 떨며 세운의 뒤에 숨었다.
“으드드드! 혀, 형님. 차라리 불 마법을 써 주십쇼. 얼음 조각은 피할 수 있어도, 냉기는 못 피하겠습니다!”
“어떻게 된 거지?”
“제가 데려온 게 아닙니다! 저 앞까지 나가니, 저놈들이 떼를 지어서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흐음…….”
“정말입니다! 믿어주십쇼! 저 박정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형님에게는 절대 거짓말 안 합니다!”
세운이 대답 대신 머리를 굴렸다.
박정필이 억울하다는 듯이 항변하고 있었지만, 세운은 그 말을 못 믿고 있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박정필의 정보로 인해 추론을 확신할 수 있었다.
‘판의 계략이다.’
하지만, 어째서? 이번 생에서 판과의 접촉은 없었는데?
빠르게 머리를 굴리던 세운의 머릿속에, 하나의 시스템 메시지가 번뜩이는 듯했다.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자신보다 격이 낮은 성좌들의 통신을 전부 차단하였습니다.
세운이 단전을 개방하고, 서클을 생성했을 때, 여러 신의 관심을 귀찮다는 이유로 차단해 버린 마몬.
만약, 그 사이에 판이 섞여 있었다면?
세운이 아는 판의 성격이라면, 분명 앞뒤 가리지 않고 복수할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격이 낮다고는 하지만, 판은 올림포스의 최고 신인 제우스를 아버지로 두었다는 이유로 상당한 자존심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런 거였나.’
이렇게 생각하니 상황이 모두 맞아떨어졌다.
세운이 추론을 끝낸 사이, 프로즌 웨이브의 냉기로부터 벗어난 몬스터들이 더욱 크게 분노를 토해내며 달려왔다.
그 뒤로도 수백 마리에 달하는 몬스터 대군이 달려들고 있었다.
저 몬스터들이 모두 고블린 같은 하급 몬스터였어도 꽤 귀찮았을 텐데, 저들 모두 아울 베어나 워울프 같이 결코 쉽게 볼 수 없는 몬스터들이었다.
-흑탑의 묘리에 따라 ‘체인 라이트닝’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파지지직!
검푸른 번개가 몬스터를 휩쓸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처럼 수십의 몬스터가 쓰러져 나가는 위력은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상대는 더 이상 고블린처럼 약한 몬스터가 아니다.
처음 몇몇 몬스터는 내부가 타들어 가며 생을 잃었지만, 대부분의 몬스터는 몸이 경직되는 정도가 끝이었다.
게다가, 몬스터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파도처럼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이래서는 끝이 없을 텐데.’
원인을 몰랐다면 서클의 마나를 다 쏟아부어서라도 몬스터를 정리하려 했겠지만 원인을 알아챈 이상, 그게 의미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몬스터들은 지금 시링크스의 연주에 조종당하고 있다.
그러니 그 근원지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몬스터는 끝도 없이 밀려올 게 분명하다.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이곳에는 조종할 몬스터가 산더미처럼 존재했으니까.
하지만.
‘내가 빠져나가면, 사람들이 버틸 수 있을까?’
클랜이 무너질까에 대한 걱정이 들었다.
정을 붙이지 않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세운은 자신도 모르게 클랜에 정을 붙이고 있었다.
근원지를 해결하더라도, 돌아왔을 때 클랜이 무너져 있는 모습을 보기는 싫었다.
그때.
콰아아앙!!
고막이 떨어져 나갈 듯한 거대한 굉음이 들려왔다.
세운이 알기로, 이곳에서 이 정도의 굉음을 낼 수 있는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다.
-플레이어 강한철이 ‘개전(開戰)·진(震’)을 사용합니다.
쿠르르릉!
검푸른 기운이 넘실거리는 강한철의 주먹이 바닥을 내려찍었다.
전에 보았던 것보다 훨씬 넓은 범위에서 거친 지진이 일어났다.
땅이 갈라져 몬스터를 집어삼키고, 바위가 튀어나오며 몬스터를 꿰뚫는다. 쩍쩍 갈라진 대지의 틈새로, 강한철의 주먹에 깃든 내공과 같은 검푸른 기운이 넘실거린다.
“여긴 내가 어떻게든 막아 보겠다.”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건만, 강한철은 마치 세운과 텔레파시라도 통한 듯이 말을 내뱉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간 꾸준히 함께 몬스터를 상대하고 대련을 벌여왔기 때문일까?
강한철과는 대화하지 않아도 통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게다가, 앞으로 나선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플레이어 유서아가 ‘타란튤라의 두 번째 다리’를 사용합니다.
휘이이익-!!
앞으로 나선 유서아의 주위로 검붉은 바람이 태풍처럼 휘몰아쳤다.
바람에 닿은 적은 거짓말처럼 깔끔하게 신체가 절단되었다.
눈으로 좇을 수도,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바람과도 같은 공격.
카밀식 쌍검술을 익힌 이후, 그녀의 실력은 놀랍도록 발전해 있었다.
“막아!”
“이런 거, 한두 번이야?”
유서아가 나서자, 뒤이어 클랜 사람들도 진형을 이루고 앞으로 나섰다.
예전이었으면 공황 상태에 빠져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을 텐데, 이제는 모두 이 ‘튜토리얼’이라는 비현실적인 상황에 완벽히 적응해 있었다.
“세운 씨! 무언가 생각이 있는 거죠? 얼른 가세요!”
유서아가 몬스터에게 눈을 떼지 않으면서 크게 외쳤다.
다른 사람들 역시, 그 말에 긍정하듯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신뢰.
회귀 전, 온갖 사기와 배신을 겪으며 살아온 세운에게는 다소 낯선 감정이었다.
“고맙다.”
타앗!
세운이 대지를 박차고 달려 나갔다.
이렇게 된 거, 최대한 빨리 근원지를 해결하고 오는 게 답이다.
“크아아악!”
“크오오!”
그러나 몬스터들은 세운이 움직이도록 가만두지 않았다.
몇몇 몬스터들이 애초에 세운을 목표로 했다는 듯이 다른 사람들을 무시한 채 세운에게로 달려들었다.
마법으로 정리를 한 번 하려던 중,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님! 급하시지 않습니까? 이거 타고 가십쇼!”
“넌?”
“에이, 전 원래 이 두 다리로 먹고 살았지 않습니까? 대신, 다음부터는 그 얼음 마법 말고 다른 거로! 아, 그리고 마법 쓰기 전에 신호 좀 주십쇼!”
“……알겠다.”
“그럼, 금방 돌아오리라고 믿습니다! 형님!”
박정필이 백랑에서 내리고, 자연스럽게 세운이 탑승하였다.
흑마석으로 박정필의 말을 따르게 해 두었지만, 애초에 백랑의 주인은 세운이었기에 다루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처음으로 박정필이 걱정되어 고개를 돌리니, 녀석은 도발까지 해가며 몬스터들을 유인하고 있었다.
“어이, 거기 빡빡머리들! 뭘 먹고 자라면 그렇게 머리가 다 빠지냐? 어익후, 너는 이제 한 가닥 남았나 보네? 후 불면 날아가겠다!”
“크어어어!”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가 계약자의 도발을 듣더니 불편한 감정을 표합니다.
본래라면 말도 통하지 않는 몬스터에게 저런 하찮은 도발이 먹힐 리 없겠지만.
-플레이어 박정필이 ‘용용 죽겠지’를 사용하였습니다.
몬스터들은 거짓말처럼 방향을 돌려 박정필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시링크스로 조종을 당하고 있는 몬스터들을 도발하다니, 정말 보면 볼수록 예상을 뛰어넘는 녀석이다.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적토마의 갈기 ]– 하루에 천 리를 달린다고 알려진 희대의 명마(名馬). 희대의 영웅 여포(呂布)와 함께 적진에 돌진해 승리를 거두었다는 말, 적토마의 갈기.
백랑의 몸으로 보물의 힘이 깃들었다.
새하얗던 몸이 붉게 물들며, 몸 주위로 붉은 기류가 스쳐 지나갔다. 속도가 점차 빨라지더니, 이내 몬스터를 가볍게 제칠 정도가 되었다.
빠직!
다만, 백랑에게 가해지는 반작용 역시 엄청났다.
급격하게 강해진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백랑의 뼈 이곳저곳에 작은 금이 일기 시작했다.
세운이 만들었다지만, 박정필이 제법 아끼던 녀석인데. 미안하긴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유서아와 강한철, 그리고 박정필이 노력한다고 하여도 끝이 없는 몬스터의 파도를 영원히 막아 내지는 못할 것이다.
클랜이 힘을 다하기 전에, 빌어먹을 판의 계약자를 쓰러트려야 한다.
“크어어!”
대체 연주의 영역이 어디까지 영향을 미친 것인지, 세운이 달리던 와중에도 여러 몬스터가 공격을 해 왔다.
다만, 녀석들이 아무리 손을 뻗어봐도 적토마의 힘이 깃든 백랑을 따라잡지는 못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부우- 우우웅-
‘코볼트의 짝귀’로 강화된 청력을 따라, 연주의 근원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