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22)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76화(422/675)
제 76화
샥스와 바다를 가르며 성소를 향해 나아가던 중. 세운은 지느러미를 바짝 세우고 마나를 일으키는 샥스를 보며 눈치챌 수 있었다.
‘이 자식, 승부욕 돋았나 본데.’
속도를 내라고는 했지만, 딱 보아도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를 내고 있는 듯하다.
다른 이었으면 천천히 가자며 말을 바꿨겠지만, 세운은 달랐다.
‘재밌겠는데?’
천천히 바다 구경이라도 해야 하나 싶었는데. 경주라면, 성소에 도착할 때까지 제법 재밌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목에 걸린 장신구, 바다의 분노 덕분에 물속임에도 제약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게 빠르게 나아가다 보니, 암초 구역에서 마침내 샥스를 제칠 수 있었다.
“무사해서 다행이네, 이쪽 맞지?”
“……맞습니다.”
자신이 졌다는 사실 때문일까?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샥스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 모습에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세운이 전방을 바라보았다.
솨아아아!
마치, 결계처럼 전방을 완벽하게 가로막고 있는 수십 갈래의 소용돌이.
그 주변의 해류는 다가오면 무엇이든 찢어 버리겠다는 듯이 거칠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 정도의 해류라면, 주변에 영향을 줄 법도 한데. 소용돌이를 조금만 벗어나면, 해류가 거짓말처럼 평온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 말은 즉.
‘이 안이 목적지인가 보네.’
이 소용돌이가 레비아탄의 성소를 지키고 있다는 뜻이다.
“잘 따라오시길 바랍니다!”
“저기만 지나면 되는 거지?”
“그렇습니다! 제 뒤만 문제는 따라오시면…….”
드득!
드드득!
세운은 샥스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소용돌이 속에서 몸을 보호하기 위해, ‘리자드맨의 비늘’을 일으켜 몸을 보호하였다.
물의 저항력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창을 앞으로 내세웠다.
촤아아앗!
세운의 몸이 소용돌이를 향해 쏘아졌다.
뒤에서 샥스의 당황스러운 외침이 들려오는 것 같았지만, 한 귀로 대충 흘려보냈다.
‘기왕 시작한 거, 내가 이겨야지.’
승부욕은 샥스만 있는 게 아니었다.
세운은 암초 구역을 먼저 빠져나온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성소에 먼저 도착할 생각이었다.
콰아아아!
소용돌이 주변의 거친 해류가 갑옷을 때려온다. 그걸로도 모자라, 연약한 살점을 파내기 위해 갑옷 안의 속살까지 파고든다.
리자드맨의 비늘이 아니었으면, 소용돌이에 진입하기도 전에 살점이 떨어져 나갈 뻔했다.
푹!
거친 해류를 순식간에 통과한 직후, 창끝을 선두로 소용돌이 속으로 파고들었다.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소용돌이에, 세운은 눈을 감은 채로 감에 방향을 맡긴 채 다리를 내저었다.
들어온 가속도가 있었기에, 소용돌이쯤이야 가뿐히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세운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경우의 수가 하나 있었다.
-질투의 권능이 사방에서 출렁입니다.
-질투의 권능으로 인해 순간적으로 근력이 5 감소합니다.
-민첩이 5 감소합니다.
-체력이 4 감소합니다.
-지혜가 4 감소합니다.
…
‘질투의 권능?’
이 소용돌이. 그저 외부인을 막아주는 결계라고만 생각했는데, 레비아탄의 권능이 담겨 있었다.
질투의 권능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근력이 3 감소합니다.
-민첩이 3 감소합니다.
…
중요한 점은, 지금 이 순간에도 능력치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시스템만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 창을 쥐고 있는 손에서 힘이 점점 빠져나가고 있었다. 빠르게 나아가던 몸도 확실히 느려졌고.
비늘이 소용돌이의 거친 물결을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으며, 서클의 마나가 불안하게 일렁였다.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생각해 보니 이대로 당신이 죽으면 뒤랑달의 소유권은 자신의 것이 아니냐며 흥미롭게 상황을 지켜봅니다.
-성좌, ‘배고픈 왕자’가 남은 알을 아쉬운 듯이 천천히 깊고 감미롭게 음미합니다.
상황을 보아하니 두 마신에게 도움을 받는 건 무리였다.
이대로 모든 능력치가 내려가 힘이 빠지기 전에 소용돌이를 빠져나가야만 했다.
‘그렇지만, 어떻게?’
이미 가속도는 완전히 사라졌다. 힘을 내려고 해도, 벌써 1/3 이상 내려간 능력치로는 속도를 내기가 어려웠다.
마법을 사용하려 하여도, 지혜가 떨어지며 제어력이 떨어진 서클로는 마법의 발현 자체가 어려웠다.
그렇다면.
‘권능을 사용할 수밖에.’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황천의 뱀, 역천신모 ]– 남송의 명장 악비가 사용했던 창. 악비가 물리친 역천동의 뱀 요괴가 창의 모습으로 둔갑한 형태라고 한다.
능력치가 낮아진 지금. 권능을 발현한다고 하여도 신체적, 마법적인 힘을 사용하기는 어려웠다.
그 때문에 선택한 것이 바로 이것. 무기에 ‘자아’를 심어주는 것이다.
꿈틀!
역천신모의 힘이 깃든 창대에서 매끈한 비늘이 느껴졌다.
단단하고 얇았던 창이 흐물거리며 크기를 불려 나갔고, 창끝은 날카로운 두 개의 송곳니가 되었다.
뱀.
악비가 물리쳤던 역천동의 뱀 요괴가 본연의 모습으로 변한 것이다.
“이곳에서 빠져나가!”
“샤아아-!”
세운의 명령을 알아들은 요괴가 몸을 앞으로 내뻗었다.
물뱀이 헤엄치듯이 몸을 양옆으로 구불거리니, 거친 소용돌이 속에서도 착실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세운은 그런 녀석에게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비늘을 힘껏 붙잡았다.
근력 수치가 1/2 이하로 내려가 손이 덜덜 떨려왔지만, 비늘을 놓치는 순간, 소용돌이에 잡아먹혀 갈가리 찢겨나갈 게 분명했기에 없는 힘도 쥐어짜 냈다.
슈르륵!
그러나, 애석하게도 부족한 근력은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말았다.
-근력이 3 감소합니다.
-근력이 2 감소합니다.
…
이미 세운의 근력은 1/5 이하로 떨어진 상태.
거친 소용돌이 속에서 미끄러운 비늘을 붙잡고 있기에는 너무나도 약해졌고.
‘젠장, 이제 다 와 가는데…….’
하얗게 물거품을 일으키고 있는 소용돌이의 끝자락을 바라보며, 비늘을 놓칠 수밖에 없었다.
재빠르게 다음 수를 생각하던 중.
콱!
창끝처럼 날카로운 독니가 세운을 덮쳤다.
어미 짐승이 새끼를 물 듯이, 상처 나지 않게 조심히.
“샤아-”
역천신모.
뱀으로 변한 창이 세운이 떨어진 것을 깨닫고 급히 고개를 돌려 주인을 문 것이다.
그러고는, 급하게 머리를 돌려 소용돌이의 바깥으로 몸을 던졌다.
콰아앗!
거친 소용돌이가 뱀의 비늘을 마구잡이로 쥐어뜯고, 가죽을 찢어발겼다. 그런데도 녀석은 세운을 문 입을 끝까지 열지 않았다.
이걸 단순히 ‘무기’라고 볼 수 있을까?
소용돌이는 녀석의 비늘과 가죽에서 그치지 않고, 근육을 넘보기 시작했고, 녀석의 근육이 찢어지며 어쩔 수 없이 입이 벌어지는 순간.
솨앗.
거짓말처럼 소용돌이가 잠잠해졌다.
아니, 소용돌이가 잠잠해진 게 아니었다. 그 거친 소용돌이를 모두 통과한 것이다.
“……고맙다.”
“샤아-”
세운이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 녀석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단순히 역천신모라는 보물에 깃든 요괴일 뿐인데, 자신의 목숨을 걸고 주인을 보호해 주다니.
보물들을 단순히 ‘도구’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쩌면, 그 속에도 무언가의 의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천신모는 세운의 손길을 느끼며 혓바닥을 길게 날름거리더니, 창이었던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그마저도, 창으로 돌아오는 즉시 내구력이 바닥나며 거품으로 변해 사라져 갔다.
-질투의 권능으로부터 빠져나왔습니다.
-순간적으로 감소하였던 능력치가 빠르게 회복됩니다.
다행히도 질투의 권능으로 인한 능력치의 감소는 일시적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운의 모든 능력치가 회복되었고, 주먹을 쥐며 돌아온 능력치를 느낄 수 있었다.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멀쩡한 당신의 모습에 아쉬워합니다.
-성좌, ‘배고픈 왕자’가 이곳에는 먹을 게 없어 보인다며 아쉬워합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자.
“여기가 레비아탄의 성소인가.”
마침내 목적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세운이 알고 있는 신전의 형태와는 전혀 다르게 생긴 성소.
거대한 몬스터의 해골이 입을 벌린 채 바닥에 반쯤 묻혀 있었다.
아마, 저 안이 샥스가 말한 성소겠지.
그의 앞에는 여성형으로 보이는 어인들이 눈을 크게 뜨며 세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인간……?”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아가미나 지느러미가 나 있는데. 누구지?”
“그것보다, 저분 방금 소용돌이를 뚫고 나오지 않으셨나요?”
“소용돌이는 샥스 님도 뚫을 수 없을 텐데, 대체 어떻게…….”
갑작스러운 외지인의 등장에 다들 당황하는 중이었다.
애초에 전투가 가능한 어인들은 대부분 산란장에 남아 현장을 복구하고 있었으니, 이곳의 어인들은 전투가 불가능한 이들.
남성형 어인들도 크기가 작거나 형태부터가 전투가 어려워 보였다. 그중에는 어린아이의 모습도 꽤 많이 있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망설이던 중…….
저 멀리에서, 상어의 지느러미를 한 어인 하나가 빠르게 다가왔다.
“괜찮으십니까!”
“빨리 왔네?”
“갑자기 무슨 짓입니까! 질투의 권능이 깃든 소용돌이를 뚫고 들어가시다니!”
“생각보다 위험하더라고. 미리 말 좀 해 주지.”
“그러니까 저만 따라오라고 했잖습니까! 아니, 그것보다 대체 어떻게 소용돌이를 뚫고 나오신 겁니까?”
샥스. 어찌나 급하게 도착했는지 목 양옆의 아가미로 숨을 가쁘게 내쉬고 있었다.
“권능을 사용했지. 질투의 권능이라고 해도, 나한테는 다른 마신의 권능이 두 개나 있으니까.”
“……그렇군요. 무의식적으로 그대를 얕보았던 제가 후회스러울 지경입니다.”
“그럼, 내가 이긴 거지?”
“제가 졌습니다. 분명 두 마신님의 계약자에 어울리는 힘이었습니다. 당신이라면, 분명 믿어도 되겠지요.”
권능까지 사용하여 소용돌이를 지나쳤으니 레비아탄이 세운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세운의 앞에는 레비아탄의 메시지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샥스를 통해 금방 알 수 있었다.
“성소에 들어가면 성좌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 겁니다. 탑 바깥으로 밀려난 탓에, 시스템의 간섭 범위가 한정적이거든요.”
“그런 거였구나.”
“피곤하시면 조금 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인간의 입맛은 잘 모르지만, 저희 요리는 탑에 있던 시절에도 진미로 뽑힐 정도였습니다.”
-성좌, ‘배고픈 왕자’가 진미라는 단어에 반응하여 즉시 식기를 붙잡습니다.
“아니.”
질투의 권능으로 내려간 능력치는 모두 돌아왔기에, 굳이 쉴 필요는 없었다.
얼른 레비아탄과 계약을 나눈 후에, 지상으로 올라가 튜토리얼을 마치고 탑에 들어가야만 했다.
튜토리얼이 끝났음에도 탑에 진입하지 않는 플레이어에게 탑의 시스템이, 그런 플레이어에게 어떤 처분을 내릴지 모르니까.
얼른 일을 해결하고 최대한 빨리 지상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바로 가지.”
“후우……. 알겠습니다. 따라오시지요.”
잠시 숨을 고른 샥스가 자세를 바로잡으며, 레비아탄의 성소를 향해 걸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