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26)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26화(426/675)
제 426화
무릎을 꿇은 채로 신중하게 흙을 파헤치며 식물을 채집하고 있는 모습.
디아블로 길드에서 저렇게 신중하게 식물을 채집할 만한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이하늘?”
서열 5위의 마왕, 마르바스의 계약자. 그녀였다.
식물을 채집하는 동안 몬스터에게 기습이라도 당할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그녀의 주위에는 무슨 짓을 당했는지 말라비틀어지거나 곰팡이가 가득 피어 죽어 있는 몬스터가 잔뜩 널브러져 있었으니까.
다만, 너무 집중하고 있어서일까?
그녀는 세운의 부름은 듣지 못한 듯 식물의 채집에 집중했다.
호기심이 일은 세운이 가까이 다가가 그 모습을 관찰해 보았다.
‘버블 리허브?’
그녀가 채집하고 있는 약초의 이름이었다.
히든 던전을 돌고 있는 세운도 아직 채집하지 못했을 정도로 희귀한 것은 물론이고 채집 난이도가 심각할 정도로 높아 매우 고가로 거래되는 약초였다.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뿌리가 터질 건데.’
이게 바로 버블 리허브를 채집하기 어려운 이유였다.
거품처럼 부풀어 있는 뿌리는 미약한 충격만으로도 터져 나가며 안에 들어 있는 진액이 쏟아지고 만다.
이 진액은 공기에 닿는 순간 약효 대부분을 잃기 때문에 저 거품을 터트리지 않게 조심조심 채집하는 게 핵심이다.
때문에 회귀 전에 버블 리허브의 채집 방법을 알고 있는 세운도 저 약초 하나를 수집하느라 진땀을 빼곤 했었다.
그렇게 버블 리허브의 뿌리가 반쯤 드러났을 무렵.
“마르바스 님.”
– 성좌, ‘피투성이 사자’가 권능을 사용할 때마다 일일이 허락받을 필요 없다고 고합니다.
“제가 편해서 그래요. 부탁드려요.”
– 성좌, ‘피투성이 사자’가 쑥스러움을 애써 감추며 권능의 발현을 허락합니다.
이하늘의 손에서 붉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액체는 버블 리허브에 닿자마자 뿌리를 코팅하듯이 감싸고, 반대로 뿌리를 덮은 흙을 녹이듯이 소멸시켰다.
‘마르바스에게 저런 능력도 있었나?’
이하늘은 그 상태에서 버블 리허브를 조심스럽게 뽑아 들었다.
아직 뿌리가 완전히 드러난 상황이 아니라 저렇게 뽑으면 민감한 뿌리가 터져 버릴 가능성이 컸지만.
“휴…….”
– 성좌, ‘피투성이 사자’가 고생했다며 당신의 노고를 칭찬합니다.
– 성좌, ‘피투성이 사자’가 이거라면 새로운 포션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며 안경을 들어 올립니다.
끝까지 뽑아 올린 그녀의 손에는 잔뿌리 하나 손상 없이 완벽하게 채집된 버블 리허브가 들려 있었다.
세운조차도 저렇게 완벽한 채집은 해 본 적이 없었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하늘은 그제야 세운의 존재를 화들짝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어? 혹시 저 기다리고 계셨어요?”
“방금 건 무슨 기술이지?”
“아, 제가 만든 포션이랑 마르바스 님의 힘을 응용해 본 거예요. 예민한 식물들이 많아서 여러 가지로 시도하다 보니 깨닫게 된 방법이에요.”
“잠깐 봐도 되겠어?”
“물론이죠. 아,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뿌리 쪽에 예민해서 코팅만 새로 해 둘게요.”
그녀의 손에서 다시 한번 붉은 액체가 흘러내렸고, 버블 리허브를 감싸던 코팅이 덧씌워지며 한층 더 두꺼워졌다.
이어서 자세히 관찰하던 세운은 한 번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디서 따로 배운 것도 아닐 텐데.’
세운이야 모험가 생활을 하느라 여러 지식을 탐구하며 다양한 정보를 익히고 다녔다 치더라도 그녀는 아니다.
탑에 들어온 이후 이전의 쉼터로 되돌아가는 일 한번 없이 세운과 함께 쭉 탑을 올라왔다.
당연히 그녀가 이 약초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을 리가 없다.
게다가 그녀가 지닌 바구니를 보니 버블 리허브 말고도 다양한 희귀 약초가 있었다.
“채집에도 일가견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더 좋은 포션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당연한 일이죠. 사람들이 제 포션으로 낫는 걸 보면 얼마나 뿌듯한데요.”
“음…….”
놀랍도록 완벽한 상태의 버블 리허브.
이거라면 세운이 기존에 알던 포션보다 훨씬 뛰어난 효과를 가진 포션을 만들 수 있을 게 분명하다.
그녀의 바구니에 들어 있는 다른 약초들 역시 마찬가지.
‘원래는 조금만 더 돌다가 가려 했지만…….’
경로상의 히든 던전들은 거의 다 찾아냈다.
다만, 62층의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보상은 대부분 식물과 관련된 소재라 크게 눈에 띄는 게 없어 욕심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실력이라면 다르다.
저렇게 완벽한 상태로 약초나 독초를 채집할 수 있다면.
아니, 세운조차도 채집하지 못했던 식물들을 채집할 수 있다면, 62층의 시련은 그야말로 보물 창고나 다름없었다.
“이하늘.”
“네?”
“혹시 약초 찾기 힘들지 않았어?”
* * *
이하늘을 돕겠다고 마음먹은 후, 세운은 곧바로 회귀 전의 지식과 여정의 지침표를 이용해 각종 희귀 식물의 위치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와, 여긴 대체 어떻게 찾은 건가요?”
그렇게 길을 나선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희귀한 약초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햇빛이 전혀 들지 않는 곳 중에서도 특정 환경에서만 살아간다는 그늘 이끼였는데, 다른 플레이어라면 며칠을 찾아 나서도 찾기 힘든 것이었다.
“말했잖아, 찾는 건 맡겨 두라고. 어때, 캘 수 있겠어?”
“물론이죠! 정말 특이해 보이는 이끼네요. 마치 땅이 아니라 그늘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 같아요.”
– 성좌, ‘피투성이 사자’가 관심을 가집니다.
그늘 이끼는 평범한 이끼가 아니다.
방금 이하늘이 말한 것처럼 그늘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식물로, 함부로 채집하면 뿌리가 끊겨 생기가 사라지고 만다.
“음, 이건 보관부터 신경 써야겠는데요? 무조건 뜯기 보다는 그늘과 함께 채집한다는 느낌으로…….”
‘역시.’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관찰과 분석을 통해 채집법을 파악하는 이하늘.
재능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상황에 세운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완벽한 건 아니다.
처음인 만큼 그늘 이끼의 외곽이 조금 뜯겨 나가긴 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그녀의 채집 수준은 놀랍도록 뛰어났다.
‘정말 가능하겠는데?’
그 모습을 지켜본 세운은 점점 높은 난이도의 약초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세운이 채집해 본 식물들이었다면, 점점 세운도 채집하지 못했던 식물을 찾아 나섰다.
“저, 정말 괜찮을까요? 너무 많은데 저도 도와야…….”
“빨리 채집하는 게 돕는 일이야. 시간이 지날수록 몬스터가 많아질 테니까 좀 서둘러 줄래?”
“아, 알겠어요! 금방 해 볼게요!”
다음으로 찾아간 건 허니 이카시아라는 꽃이었다.
침입자를 감지하는 순간 특유의 향을 퍼트려 주변의 몬스터를 불러들인다.
문제라면 그 향의 효과가 엄청나다는 것과 향의 범위가 시간이 지날수록 km 단위로 늘어난다는 점이었다.
“드드드드득-”
이하늘이 채집을 시작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주변에서 몬스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런 방식 때문에 회귀 전에는 혼자서 시련을 쏘다니던 세운의 특성상 절대 채집할 수 없었던 식물 중 하나였다.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사 초식, 혈랑포효(血狼咆哮)가 강화됩니다.
콰과과괏!
붉은 검기가 사방으로 뻗쳐나가며 다가오는 몬스터들을 썰어나갔다.
단순히 몬스터만 불러들인다면 빨리 채집하고 떠나면 되겠지만, 허니 이카시아는 채집 방법도 극히 까다로운 식물이었다.
“대단하네요! 이거라면 단순한 포션이 아니라 유인제, 또는 역으로 기피제를 만들 수도 있겠어요. 으음, 그러니 일단은…….”
마치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척척 수집해 나간다.
몬스터가 아무리 많이 나타나도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이하늘까지 완벽하게 보호하기는 힘들 수도 있었다.
순식간에 팔방을 가득 채워나간 몬스터를 루인까지 불러내 막아내던 중, 5분이라는 예상 시간을 가뿐히 무시하고, 3분도 채 되지 않아.
“끝났어요!”
이하늘의 채집이 끝났다.
세운이 공포의 권능을 사용하자마자 몬스터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꼬랑지를 말고, 아니, 잎사귀를 말고 도망쳤다.
그다음 역시 난이도는 더욱 높아졌다.
“쿠우우우우어-!!”
“이, 이거 맞는 건가요?”
“맞아.”
언덕만 한 몬스터의 정수리 위에 피어나 있는 작은 독초를 채집하거나.
“빨리.”
“알겠어요!”
“쿠르르르르르륵!”
수백 개의 넝쿨로 똘똘 뭉쳐 군집을 이루고 있는 몬스터의 체내 중심에 있는 씨앗 같은 걸 채집하는 등.
세운은 62층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희귀 식물들을 찾아냈다.
그럴 때마다 이하늘은 완벽하게 그것들을 채집했다.
심지어 채집을 거칠수록 실력이 늘더니 이제는 처음 보는 식물도 손상률이 거의 없이 채집할 정도였다.
[ 히든 던전, ‘안개 폭포’를 완벽하게 공략하였습니다. ] [ 보상으로 개인 공적치가 140,000point 상승합니다. ] [ ‘여정의 등불’을 획득하였습니다. ]…….
채집지는 62층의 필드만이 아니었다.
본래 그냥 넘어가려 했던 던전이나 조금 멀리 떨어져 있던 던전 등, 생각이 나는 대로, 여정의 지침표가 가리키는 대로 몸을 움직였다.
어차피 어떤 식물이 걸리든지 이하늘은 그것들을 완벽하게 채집했으니까.
그러다 보니.
“이게 다…….”
“벌써 이렇게 찼네.”
“그럴 만하죠. 희귀한 약초나 독초들을 잡초 캐듯이 캐왔으니까요.”
둘은 어느새 엄청난 양의 식물을 짊어지게 되었다.
이하늘의 바구니는 가득 찬 지 오래고, 세운의 아공간 주머니도 상당량 들어찼다.
식물 중에는 작은 풀뿌리나 꽃이 아닌 나무껍질을 뜯어오거나 진액을 보존하기 위해 기둥을 통째로 베어낸 등 부피가 큰 것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대단해요. 이렇게 다양한 식물들이 있었다니. 세운 씨가 아니었다면 절대 이렇게까지 채집하지 못했을 거예요.”
“아냐, 나도 관심 가는 것들이 있었거든.”
“거주지에 들어가면 바로 여러 가지를 만들어 보려고요. 아, 혹시 괜찮으시면 조금 도와줄 수 있으실까요?”
“당연하지.”
세운은 절대 이하늘을 괜히 도와준 게 아니다.
이하늘이 채집한 식물 중에서는 세운이 회귀 전에 채집하지 못한 것들도 상당했고, 그걸 활용할 방법들도 가지고 있었다.
탐욕의 권능이 가진 가장 큰 약점인 개수의 제한.
그것을 이것들로 조금이나마 대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세운도 기대가 되었다.
물론, 이 생각을 마몬이 읽었다가는 당장 자신의 보물을 무시하는 것이냐며 난리를 치겠지만 말이다.
“이제 도착이네요.”
세운과 이하늘이 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높였다.
62층의 시련, 흔들리는 숲에서 언급한 가장 거대한 꽃이 자세한 모습을 드러냈다.
수백 개의 두꺼운 넝쿨이 꼬여서 만들어진 줄기.
아니, 줄기라기에는 거대한 나무 기둥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그것의 끝에는 거대한 꽃잎이 하늘을 가득 뒤덮고 있었다.
실로 장엄한 모습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그나저나, 꽃의 안내에 따르라는 게 무슨 말일까요?”
이하늘이 시련의 내용을 떠올렸다.
시련의 목적지는 꽃의 어딘가로 가라는 게 아니라, 꽃의 안내를 따라 이동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하늘은 세운의 설명을 듣기도 전에 그 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악!!”
하늘 위, 아니, 꽃잎 위에서 꽃가루에 뒤덮인 채 아래로 추락하고 있는 한 플레이어 덕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