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27)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27화(427/675)
제 427화
62층의 시련, 흔들리는 숲.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이 시련에 도착하자마자 숲을 가득 채운 식물형 몬스터가 가장 큰 난관이라 생각한다.
잠깐의 휴식을 위해 기댄 나무 기둥이 몬스터였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이라면, 그 생각은 더욱 강해진다.
하지만, 아니었다.
62층의 시련에서 핵심이 되는 장소. 숲의 중심에 존재하는 가장 거대한 꽃, 자이언트 아룬.
그곳에 도착하는 순간 플레이어들은 이번 시련의 가장 큰 난관이 바로 이 장소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꽃가루?”
“꽃가루치고는 너무 굵지 않아?”
“뭐, 당연하지 않아? 저렇게 큰 꽃에서 퍼져 나오는 꽃가루인데 당연히 굵을 수밖에.”
“야, 근데 이거 막 몸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데?”
“자, 잠깐. 너 그거 얼른 떼!”
“아니, 떼려고 하는데 이게 잘 안 떨어진다니까?”
“얼른! 어떻게든 떼어내!”
“이, 이거 피부랑 달라붙어서! 으아악!”
“피부가 떨어지더라도 떼어내라고!”
“으아아아악!”
자이언트 아룬의 꽃가루는 강력한 접착력을 지녔다.
아니, 접착력과는 조금 다르다.
어딘가에 닿자마자 뿌리부터 단단히 내린 후 그 양분을 이용하여 빠르게 발아한다.
흙에 닿았을 때는 평범한 식물이나 다를 바 없는 속도로 자라지만, 생명체의 몸에 닿으면 그 속도는 괴이하게 빨라진다.
“이럴 수가…….”
“식물이…… 된 거야?”
그 결과, 아룬의 꽃가루에 당한 자는 양분이 되어 거대한 식물로 변모하게 된다.
그리고 이 식물은 그저 가만히 서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의 어머니라 할 수 있는 아룬을 지키기 위해, 주변으로 다가오는 생명체를 마구잡이로 공격하는 파수꾼이 된다.
“죽여!”
“하, 하지만!”
“길드창 확인해! 이미 죽었어! 좀비나 다름없다고!”
“다들 꽃가루 닿지 않게 조심하고, 로브 꺼내 입어! 그래도 크기가 크니까 주의만 하면 급소쯤은 피할 수 있을 거야!”
파수꾼의 수는 한둘이 아니다.
흔들리는 숲에 왜 벌레나 동물이 없나 싶었더니, 아룬에 의해 식물화된 벌레와 동물이 이곳에 끝없이 자리 잡고 있었다.
때문에 플레이어들은 파수꾼들과 전투하며 하늘에서 흩날리는 꽃가루를 끊임없이 피해야만 했다.
“목적지는!”
“누가 봐도 저기잖아. 확실히 안내를 해 주긴 하네.”
자이언트 아룬의 줄기.
그곳에는 나선형으로 길게 이어진 계단 같은 게 존재했다.
누가 보아도 저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심지어 밤이 되어 어두워지면 저 계단 주위가 미묘하게 반짝거리기까지 했다.
문제는 그 길 위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파수꾼들이었다.
“길을 안 열어줘서 문제지.”
“드드드득-”
두 명이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계단에 파수꾼들이 철벽처럼 길을 막아서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줄기에서 튀어나온 두꺼운 넝쿨이 사방에서 공격해 오니 마음을 놓을 틈이 없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실수로 줄기를 베면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산성 액이나 보라색 넝쿨에서 뿜어져 나오는 극독, 후각은 물론 정신까지 뒤흔드는 극심한 악취까지.
“이게 무슨 안내야!”
“안내는 무슨, 차라리 문전박대를 뿌리치고 들어가라 하지 그래!”
덕분에 플레이어들은 이 최대의 난관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버텨야 했다.
심지어 공략법을 찾아내느라 아론 외곽의 안전지대에서 진을 치고 캠핑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불행 중 다행히 아룬의 주위로는 숲의 몬스터가 접근하지 않은 덕분이었다.
그러던 중, 압도적인 실력으로 아론을 오르며 실력을 뽐내는 플레이어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다.
– 플레이어 유서아가 ‘타란튤라의 네 번째 다리’를 사용합니다.
타다다닷!
계단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자이언트 아룬의 줄기를 수직으로 달려 오르는 유서아.
수백의 넝쿨이 이곳은 길이 아니라며 앞길을 가로막았지만, 그 모두 유서아의 쌍검에 볼품없이 베여나갔다.
바알의 극독은 아룬에게까지 영향을 주어 잘린 줄기 주변을 새까맣게 썩혔다.
“아아, 이건 좀비로 만들 수 없을까요? 일단 시도라도 해 보는 게 좋겠죠? 얼른 무십시오! 감염시키는 겁니다!”
“그어어어어-”
아래에서는 백현이 일으킨 수백의 좀비들이 아룬을 물어뜯고 있었다.
아룬은 평범한 몬스터도 아니고, 보스 몬스터도 아니다. 몬스터 그 너머에 있는 시련의 주축. 그것을 좀비로 만들겠다니.
말도 안 되는 시도였지만, 백현은 실험이 끝나기 전까지는 불가능을 불가능이라 인정하지 않았다.
혹시나 외피를 공격하는 것에 한계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시체 폭발로 외피를 걷어내고 내피를 물어 흑마법을 퍼트리기까지 했다.
그때, 반대편에서 무언가가 무너지는 듯한 위험한 소리가 들려왔다.
쿠구구구!
“넘어간다아!”
“다들 비켜! 비켜!”
자이언트 아룬의 바로 옆.
하늘에 닿을 듯이 거대한 자이언트 아룬의 높이에 맞먹을 정도로 거대한 탑이 아룬을 향해 쓰러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탑이라고 생각했지만, 건물이 기울면서 모두의 생각이 달라졌다.
그것은…….
쿠웅!
다리였다.
아룬의 꽃잎을 짓누르며 기울어진 다리를 통해 쌍둥이 자매가 그 위로 훌쩍 뛰어넘었다.
“저, 저것 봐!”
“우리도 저기로 오르자!”
“달려!”
“자, 잠깐! 으아악!”
다른 플레이어들도 쌍둥이 자매를 뒤따르려 하였으나, 아쉽게도 다리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다리가 튼튼하지 못했다기보다는 아룬이 다리의 존재를 용서하지 못한다는 듯이 넝쿨로 휘감아 무너트렸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디아블로 길드는 다양한 방법으로 아룬을 올라갔다.
아룬을 공략하기 위해 며칠, 또는 몇 주일을 고심하며 공략을 이어가던 플레이어들은 그 모습이 넋을 놓고 말았다.
* * *
“다들 화려하게 오르고 있네요.”
“그러게.”
디아블로 길드원들이 각자의 개성을 살려 아룬을 오르는 모습은 세운으로서도 감탄할 지경이었다.
아마, 62층의 시련을 통과한 역대 플레이어들의 공략법을 모아도 지금 보이는 공략법에 못 미치지 않을까?
그 정도로 디아블로 길드의 62층 공략법은 다양하고, 효과적이었다.
감탄하는 사이 벌써 절반에 해당하는 디아블로 길드원이 62층의 시련을 통과했으니 말이다.
“그럼 저희도 출발해 볼까요?”
“잠깐.”
“아, 혹시 여기도 채집할 게 남아 있나요? 저 아룬이라는 꽃 말고 다른 건 안 보이는 것 같은데. 아, 혹시 아룬의 일부를 채집할 생각이신가요?”
“아니. 아룬의 일부를 채집해 봤자 본체에서 떨어지는 순간 금세 시들어 버려. 제대로 채집한다고 해도 별다른 효과는 없고.”
“그럼요?”
“저기.”
세운이 검지를 내밀어 전방을 가리켰다.
그것은 모든 플레이어가 향하고 있는 아룬의 정상, 꽃이 활짝 피어 있는 목적지와의 반대 지점이었다.
지하.
아룬의 뿌리가 뻗어내리고 있을 지하를 향하고 있었다.
“저기에 뭔가 있나요? 아, 혹시 회귀 전에 발견하신…….”
“나도 몰라.”
“네?”
“회귀 전에는 들어가는 데 실패했거든. 간신히 몬스터를 피하고 발견했지만, 들어갈 방법이 없었어.”
사실 이번에도 그냥 넘어갈까 했던 던전이었다.
62층의 히든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보상 대부분은 던전의 공략을 끝내고 얻을 수 있는 추가 보상이 아닌 그 던전의 끝에 피어 있는 희귀 식물이었다.
그런데 이 이전에만 하여도 세운 혼자서는 채집하기 힘든 식물들이 대다수였다.
지금이라면 파수꾼을 뚫고 던전에 진입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결국 혼자서 마지막 식물을 채집하기는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하늘과 함께라면?’
말이 달라진다.
이하늘과 마르바스의 권능이라면 어지간한 식물은 채집이 가능할 터다.
뭐, 던전의 보상이 희귀 식물이 아닐 가능성도 있지만 가능하다면 도전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럼…….”
“네 힘을 믿고 시도해 보려는 거야.”
“이번에도 채집이라면…… 네. 해 볼게요. 할 수 있을 거예요.”
– 성좌, ‘피투성이 사자’가 당신의 실력이라면 채집하지 못할 식물 따윈 없다고 자신합니다.
이하늘까지 자신을 보인다.
이에 고개를 끄덕인 세운이 곧바로 아룬의 영역으로 발을 내밀었다.
“따라와.”
“네!”
방향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여정의 지침표를 재촉하지 않아도, 이곳은 이미 회귀 전에 발견했던 장소였으니까.
심지어 이곳은 굳이 세운의 능력이 아니라도 충분히 의구심을 가지고 찾을 수 있는 곳이었다.
바로…….
‘계단의 최하단.’
아룬의 꽃 위까지 나선형으로 뻗어 있는 계단의 역방향. 즉, 아래 방향으로 타고 내려가다 보면 도달할 수 있는 곳이었다.
물론, 이곳이 플레이어들에게 발견되지 못하고 알려지지 못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드드드득!”
그 첫 번째, 파수꾼들의 저항.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위로 올라가는 계단의 두 배에 가까운 파수꾼들이 존재한다.
계단이라는 협소한 장소에서 파수꾼을 상대하는 것 자체도 까다로운데, 파수꾼의 수가 늘다니.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여기서 벌써 지하에 관한 호기심을 접게 된다.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이 초식, 혈랑아(血狼牙)가 강화됩니다.
푹!
다만, 세운에게 파수꾼을 상대하기란 숲의 다른 식물형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었다.
파수꾼의 약점은 꽃가루가 닿아 식물이 자라나기 시작한 발아점.
세운이 할 일은 여정의 지침표로 그 위치를 찾아 정확하게 검을 내지르는 것뿐이다.
“드득, 득-”
그 일검만으로도 파수꾼은 허수아비처럼 가볍게 쓰러졌다.
얼마나 큰 파수꾼이 나타나건, 무슨 생명체로부터 식물화된 건지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모습의 파수꾼이 나타나건 상관없었다.
그저 공평하게 일검만으로 끝.
세운의 앞길을 막아서던 파수꾼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두 번째.
– 흑탑의 묘리에 따라 ‘인페르노’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바로, 통로를 가득 메우고 있는 아룬의 꽃가루였다.
본래 이 꽃가루는 시간이 지나면 눈처럼 녹아 사라지지만, 지하로 향하는 계단만은 그렇지 않았다.
꽃가루가 쌓여 길을 뒤덮고 있어 여기서 움직임이 자유로운 건 파수꾼뿐이었다.
화르륵!
“내 뒤만 따라와. 벽에 남은 꽃가루에 닿지 않게 조심하고.”
“네. 음, 그래도 이건 조금 채집해 둬도 괜찮겠죠? 파수꾼들을 보니 꽃가루보다는 씨앗에 가까운 것 같은데. 조금 확인해 보고 싶어서요.”
그러나, 다행히도 아론의 꽃가루는 불에 약하다.
세운이 뿜어낸 화염에 닿자마자 꽃가루가 사르르 녹아 사라진다.
그 밖에도 길을 막아서는 넝쿨이나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리는 극독 등,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갈 때보다 몇 배는 어려운 난이도의 공격들이 세운을 막아선다.
“독은 걱정 마세요. 제가 바로 치료해 드릴게요.”
촤앗.
이하늘이 품에서 포션을 하나 꺼내 세운과 자신의 머리를 적셨다.
해독. 아니, 방독 포션.
그녀가 직접 만들어 낸 만큼 어지간한 독은 전부 방지해 주는 마법에 가까운 포션이었다.
– 플레이어 이하늘이 ‘피에 젖은 병동’을 사용합니다.
“이제 조금 베기 수월할 거예요.”
아래로 내려갈수록 단단한 특성을 가진 파수꾼이 등장하는 걸 알아본 것일까?
이하늘이 자신의 권능을 사용하여 파수꾼들을 붉은 액체로 흠뻑 적셨다.
그러자 바위처럼 단단하던 파수꾼들의 외피가 두부처럼 물러졌다.
세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 더 수월하게 그 약점을 꿰뚫어 냈다.
‘회귀 전에는 그렇게 어려웠는데.’
열지도 못하는 지하를 발견하기 위해 과거에 했던 고생들이 떠올랐다.
그 고생을 하고도 결국 문을 열지 못해 얼마나 허무하고 억울했던가?
고생 끝에 결국 세운을 좌절시켰던 아룬의 계단, 그 최심부에 위치하는 문이.
“여기다.”
이번 생에는 너무나도 쉽고 빠르게, 세운의 앞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