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28)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28화(428/675)
제 428화
“이게 그 문인가요?”
“맞아.”
– 황탑의 묘리에 따라 ‘스톤 월’이 더욱 견고해집니다.
쿠궁!
세운의 뒤에서 튀어 오른 바위벽이 계단을 빈틈없이 막아섰다.
문을 열 동안 파수꾼들이 방해하지 못하도록 미리 처치해 둔 것이다.
이곳까지 내려오며 파수꾼을 전부 정리해 두었기에 새로운 파수꾼이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리겠지만, 이게 훨씬 마음이 편하다.
“줄기랑은 느낌이 다르네요.”
“그렇지. 아마, 이게 뿌리일 거야.”
“이게 자이언트 아론의 뿌리…….”
지금까지 보아왔던 아론의 줄기는 짙은 녹색이었다.
가끔 독액을 머금고 있어 보랏빛을 띠는 넝쿨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 원형이 녹색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문’은 달랐다.
녹 색깔은 완전히 사라지고 어두운 갈색으로 이루어진 문은 영양분을 탐하는 잔뿌리들로 가득 덮여 있었다.
“표면도 거칠어 보이는…….”
“만지지 마.”
“어어?”
이하늘이 손을 가져다 대려는 순간, 표면의 잔뿌리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일어났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뱀의 혓바닥처럼 말이다.
세운의 주의가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이하늘의 손이 잔뿌리에 닿을 뻔했다.
“자이언트 아룬은 탐욕스러워. 위에서 본 꽃가루처럼, 다가오는 생명체. 아니, 다가오는 양분은 전부 집어삼키려 들지.”
“……고마워요.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요.”
세운이 품속에서 열쇠를 꺼내 들었다.
아직 이 문을 여는 조건은 모르겠지만, 만능열쇠라면 그 어떤 문도 열 수 있었다.
세운이 열쇠를 꽂기 직전, 문을 유심히 살펴보던 이하늘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럼 문을 여는 조건은 간단하네요.”
“문을 여는 조건?”
“네. 세운 씨가 말했잖아요. 아룬은 탐욕스럽고, 다가오는 양분은 전부 집어삼킨다고요.”
“그게 어쨌다는 거지?”
“이 문의 구조, 무작위로 덮여 있는 것처럼 보여도 나름대로 규칙적인 결이 있어요.”
규칙적인 결이라.
잠시 열쇠를 든 팔을 내리고 문을 살펴보았으니, 그녀의 말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이전에 마몬의 보물 중에서 식물도감을 사용하며 식물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파악하고 있는 세운이었는데, 결국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젓자 이하늘이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이 부근을 보면 다른 쪽에 비해서 묘하게 규칙적으로 보이지 않나요? 마치, 세운 씨가 말한 ‘문’처럼요.”
“그런 것 같기도…….”
“양분을 흡수하면 뿌리도 두꺼워지겠죠? 제 예상이 맞다면, 뿌리가 두꺼워지며 이 부근이 벌어질 거에요. 대충 사람 하나 지날 수 있을 정도로.”
“그렇다면, 문을 여는 조건은…….”
“충분한 양분을 바치는 거겠죠. 그게 얼만큼인지는 저도 뿌리가 부푸는 정도를 보아야 계산할 수 있겠지만요.”
세운도 알아내지 못한 문을 여는 방법이 여기서 드러났다.
물론, 이건 이하늘의 추측일 뿐 확실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듣고 나니 세운도 그 추측에 확신이 생기는 중이었다.
‘결국 플레이어를 제물로 바치라는 말인가?’
그리 생각하던 세운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까지 쓰러트린 파수꾼 중에서는 플레이어나 동물, 벌레뿐만 아니라 식물 위에 식물이 자라나 파수꾼이 된 개체도 존재했다.
그 말은 즉, 숲에 존재하는 식물형 몬스터도 양분으로 흡수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숲에서 몬스터를 유인하든 납치하든 데려와 양분으로 제공한다면?
분명 엄청나게 어렵겠지만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어쩌죠? 일단은 돌아가야 할까요?”
쿵, 쿵!
“드드드드득!”
이하늘이 질문을 마치는 순간, 뒤의 바위벽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직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새로운 파수꾼들이 몰려든 모양이다.
바위벽은 어지간한 충격에는 끄떡없을 정도로 단단했지만, 저들은 평범한 몬스터가 아니다.
뿌드드득-
식물화가 된 파수꾼들은 바위벽을 단순히 힘으로 깨부수는 것이 아니라, 바위벽의 빈틈으로 넝쿨을 밀어 넣었다.
그러고는 씨앗이 발아하듯이 넝쿨을 두껍게 만들어 바위벽의 틈새를 벌리며 손쉽게 바위벽을 깨트리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1분도 버티지 못하고 바위벽이 부서지고 말 것이다.
“아니, 바로 들어가야지.”
“어떻게요? 파수꾼들은 양분으로 쓸 수 없잖아요. 설마, 주변의 플레이어들을 양분으로 바칠 생각은…….”
“날 뭐로 보는 거야.”
“그, 그렇죠?”
세운이 지금까지 아무리 냉정하게 굴었다고는 하나, 이유 없이 플레이어들을 죽이거나 한 적은 없었는데.
멋쩍게 뒤통수를 긁적이고 있는 이하늘을 보고 있자니 이미지를 잘못 쌓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더 이상은 시간을 끌 수 없는 상황.
기척을 느껴보니 바위벽 뒤에는 못해도 수십의 파수꾼들이 우글거리고 있을 터다.
“예쁜 열쇠네요.”
“만능열쇠야. 다른 사람한테는…… 아니, 박정필한테는 말하지 말아줘.”
“당연하죠. 최근에는 락픽 가지고 자물쇠 따는 연습도 하는 것 같은데, 그 열쇠 얘기 들으면 난리 날걸요?”
락픽이라니.
자물쇠 따기는 쉽게 들릴지는 몰라도 탑에서는 꽤나 어렵고 까다로운 일이었다.
당장 펠체스만 하더라도 자물쇠를 열기 위해 세운의 열쇠를 탐하며 말도 안 되는 조건에 길드전을 승낙하지 않았는가.
철컥.
세운이 뿌리의 사이로 열쇠를 집어넣고 반 바퀴 회전시켰다.
그러자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주변의 뿌리가 일순간 한껏 부풀더니 이하늘이 가리킨 틈새를 벌려 나갔다.
“정말이네.”
“아쉽네요. 이 뿌리도 조금 채집해 가고 싶은데.”
“가능할지도 몰라. 내 예상이 맞다면…….”
– 히든 던전, ‘아룬의 뿌리 감옥’에 입장하였습니다.
“이 앞은 아룬의 뿌리로 가득할 테니까.”
세운과 이하늘이 아룬의 숨겨진 지하에 진입했다.
* * *
회귀 전에 수많은 던전을 탐험한 모험가였던 세운.
무릇, 모험가라면 던전의 이름만 듣고도 그 던전의 특징이나 공략법을 연상할 수 있어야만 했다.
던전의 이름은 간단해 보여도 그 던전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담겨 있는 법이니까.
그런 의미로, 이번 히든 던전은…….
‘아룬의 뿌리 감옥이라.’
세운으로서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름이었다.
감옥이라니.
인위적인 손길 따위 전혀 없어 보이는 이곳, ‘흔들리는 숲’에서 누가 감옥 같은 단어를 예상했을까?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어째서 이 던전에 감옥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생각보다 밝네요.”
“그러게.”
지하인 만큼 어두울 거라 예상했지만, 이번 던전은 대낮처럼 환했다.
천장에서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빛은 햇볕처럼 따뜻했는데, 마치 아룬의 꽃잎이 햇빛을 듬뿍 흡수하여 뿌리까지 흘려보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일단 앞으로 나가 보지. 뿌리 조심하고.”
“네.”
그래도 주변의 지형은 생각하던 것과 비슷했다.
천장에서부터 뻗어 나온 굵은 줄기가 사방팔방으로 이어져 있었다. 어떤 곳은 기둥처럼, 어떤 곳은 벽처럼.
그 모두 잔뿌리가 수북하게 뒤덮여 있는 게, 조금만 방심하고 손을 짚어도 양분이 쭉쭉 빨려 들어갈 게 분명해 보였다.
“방향은…….”
“걱정하지 마.”
던전의 지형은 난해했다.
빈 공간에 뿌리가 무작위로 뻗어 있는 모양새라 앞이고 뒤고 구별이 되지 않았다.
제대로 된 표식을 해 두지 않으면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도 힘들 정도.
61층에서 들렸던 히든 던전인 ‘안개의 끝’과 비교해도 만만치 않은 미로형 던전이었다.
하지만.
“이쪽이야.”
여정의 지침표는 이번에도 던전의 끝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었다.
아직 던전의 관찰이 부족해 표침이 흔들거리고는 있지만, 이것도 던전을 나아가다 보면 점점 더 정확해질 것이다.
“잠시만요!”
“뭐라도 있나?”
“네. 이거, 채집할 수 있어 보여서요.”
“……감자?”
“확실하지는 않지만, 일종의 구황작물처럼 보여요. 아룬이 양분을 모아 만들어 낸 열매라면 꽤 풍부한 힘이 깃들어 있지 않을까요?”
아룬의 열매라.
생각지도 못했지만, 지금까지 그녀가 보여준 능력을 떠올리면 충분히 믿을 만한 이야기였다.
“내가 보조하지.”
“부탁드려요.”
이하늘이 본격적으로 채집을 시작했다.
혹시 모를 손상에 대비하여 전에 보여준 붉은 액체를 열매 주변에 흠뻑 씌우고는 채집용 칼로 조심스럽게 그 끝을 잘라내려 했다.
그때, 이변을 알아챈 잔뿌리가 바짝 일어나더니 곧바로 이하늘을 향해 쏘아졌다.
서걱!
“계속해.”
“네.”
이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세운이 뒤랑달을 휘둘렀다.
잔뿌리는 허무하게 잘려 나가 아쉬운 듯이 꿈틀거리더니 곧 움직임을 멈췄다.
하지만, 뿌리는 이것으로 저항을 끝내지 않았다.
잘려 나간 잔뿌리의 단면에서 더욱 많은 잔뿌리가 일어나 이하늘을 공격해 온 것이다.
심지어는 주변에 있던 다른 뿌리들도 잔뿌리를 일으켜 그물처럼 촘촘히 범위를 좁혀왔다.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사 초식, 혈랑포효(血狼咆哮)가 강화됩니다.
그럴 때마다 세운의 검이 빛살처럼 쏘아져 잔뿌리들을 잘라냈다.
다만, 아룬의 잔뿌리는 잘라낼 때마다 히드라의 머리처럼 더욱 그 수를 늘려댔다.
다행히도 세운이 다시 한번 잔뿌리를 잘라냈을 때쯤.
똑.
“끝났어요!”
“일단 자리부터 피하지.”
“네!”
이하늘이 수확을 마쳤다.
소중한 열매를 빼앗긴 뿌리는 더 이상 잔뿌리만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두꺼운 뿌리 자체를 통째로 움직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거대한 뿌리가 움직이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모양이다.
어느 정도 자리를 피하자 더 이상 해당 뿌리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분한 듯이 뿌리가 쿵쿵거리는 진동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내가 살펴봐도 될까?”
“물론이죠.”
[ 아룬의 열매 ]분류 : 열매
등급 : A+
설명 : 신을 향해 피어난다고 알려진 전설의 꽃, 자이언트 아룬의 뿌리에서 채집할 수 있는 열매로 아룬의 의지가 깃들어 있다.
능력 : ???
아직 가공도 거치지 않은 소재인 주제에 A+급이라니.
아직 제대로 된 감정을 거치지 못해 능력을 제대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가공만 거치면 충분히 S급 이상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어 보였다.
더군다나 한 번 채집하고 보니 세운도 주변에 열린 열매의 존재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잘만 하면 수십 개의 열매를 채집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쿠구구구-
“천장에서 무언가 나오고 있어요!”
“그래, 이만한 던전에 몬스터가 없을 리 없지.”
아룬은 감히 자신의 뿌리 사이에 숨어들어 자신의 열매를 탐하고 있는 침입자를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천장을 뚫고 나온 두꺼운 뿌리의 끝에서 열매가 열리듯 무언가 생기더니, 그 크기를 점차 부풀려 갔다.
“가아아아암히이이이이…….”
그것은 곧 뿌리로 얼키설키 엮여 만들어진 듯한 골렘의 모습으로 변했다.
쩍 벌어진 입에서 기괴한 목소리가 동굴의 메아리처럼 울려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