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30)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30화(430/675)
제 430화
지금까지 보아온 뿌리 골렘들과는 차원이 다른 크기와 힘, 속도. 쩍 벌린 입 안으로 보이는 새까만 어둠을 보고 있자니 절로 소름이 돋았다.
“다아아앙자아아앙……!!”
녀석이 입을 벌릴 때마다 던전 내부가 웅웅 울려댄다.
그러고는 무언가 대처할 틈도 없이 곧바로 세운과 이하늘을 향해 뛰어든다.
녀석의 두 팔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던전이 흔들려 제대로 서 있기도 어려웠다.
“저놈은 내가 상대하고 있을게.”
“네? 그럼 이분의 부탁은…….”
“일단은 저놈부터 어떻게 해야 하지 않겠어?”
“그, 그렇겠네요. 일단은 저도 최대한 방법을 찾아보고 있을게요.”
저주로 인해 불사의 육체를 가진 환수와 영수의 영혼을 죽이는 방법이라.
세운으로서도 당장 떠오르는 방법이 없었다.
무엇보다, 세운이 고민을 하기 이전에 몸부터 움직인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더 크고 강하다고 해도, 결국에 약점은 똑같다.’
뿌리 골렘과 마찬가지다.
지금 움직이고 있는 보스 몬스터의 몸 곳곳에도 뿌리가 연결되어 있었다.
뿌리 골렘과는 다르게 그 수가 수십 개가 넘어갔지만, 결국 저것들을 모두 잘라내면 된다는 사실은 여전하다.
“나아아아의의의!”
콱!
“시끄럽네.”
세운이 망치를 휘둘러 녀석의 머리를 내려찍었다.
녀석의 거대한 팔이 세운이 있던 자리를 덮쳤지만, 세운은 이미 뒤랑달을 꼬나쥐고 그 등 뒤를 달리고 있었다.
– 내공을 통해 자하검결의 제일 초식, 자하개벽(紫霞開闢)이 강화됩니다.
일순간 세운의 주변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그 중심을 향해 검을 횡으로 휘두르니 보랏빛 풍경이 반으로 어긋나며 불길이 치솟았다.
“야아아아앙부우우운에서어어……!”
녀석의 등과 연결된 수십 개의 뿌리가 한순간에 모두 잘려 나갔다.
세운을 떨치기 위해 녀석이 몸을 굴렀지만, 이는 오히려 세운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될 뿐이었다.
– 내공을 통해 자하검결의 제이 초식, 화우선형(花雨扇形)이 강화됩니다.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나간 화염의 검기가 바닥을 뒹구느라 드러난 녀석의 뿌리를 집어삼켰다.
아룬에게는 화염이 통하지 않는다고 알려졌지만, 정확하게는 아니다.
아룬은 모든 속성에 대한 저항력이 뛰어날 뿐, 그중에서도 화염에 대한 저항력은 특히 낮은 편이다.
이렇게 뛰어난 절삭력과 함께 응용한다면.
“떠어어얼어져어어어……!!”
녀석에게 연결된 뿌리를 잘라내면서, 그와 동시에 뿌리가 다시 자라지 않게 불태우는 게 가능하다.
고작 몇 초 만에 녀석의 몸에 달라붙어 있는 뿌리가 모조리 잘려 나갔다.
이제 남은 건 마무리.
세운이 발도 자세를 취하더니 뒤랑달의 손잡이를 천장을 향해 뽑아 들었다.
– 내공을 통해 자하검결의 제삼 초식, 적하매장(赤霞梅藏)이 강화됩니다.
– 자하신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에 열기가 더해집니다.
세운이 검을 뽑아 들수록 천장에서 뜨거운 불길이 치솟았다.
검이 전부 뽑힐 때쯤에는 불길이 던전의 천장을 가득 뒤덮고 있었다.
이내 세운의 검이 아래로 휘둘릴 때.
화르르륵!
봄이 끝날 무렵, 매화꽃이 흩날리듯이 천장을 가득 채운 불길이 떨어져 내려 녀석의 몸을 뒤덮었다.
“라아아아아…….”
던전의 공기를 웅웅 울려대던 녀석의 목소리가 점차 줄어들었다.
녀석의 몸을 이루고 있던 굵고 단단한 뿌리가 타들어 가며 잿더미가 되어 무너졌다.
보스 몬스터치고는 허무한 죽음.
하지만, 이는 녀석이 약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녀석의 약점을 알고 압도적인 무력으로 그 약점을 철저하게 공략한 세운이 강했기에 이뤄낸 승리였다.
“세운 씨, 수고하셨어요.”
이하늘이 가슴을 짚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세운도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로 돌아가려던 중, 정신을 차린 환수가 무너지는 몸을 힘겹게 바로 잡으며 세운을 돌아보았다.
“우리가 죽지 않는 이상, 아룬은 시들지 않는다.”
“설마……!”
“가아아아암히이이이……!!!”
까맣게 타 버려 잿더미가 되어 버린 녀석의 죽음 속에서 스산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내 그 잿더미로 아룬의 뿌리가 연결되더니 잿가루가 떨어지고, 불사조가 태어나듯이 그 속에서 녀석의 형체가 재생된다.
“젠장…….”
이래서 녀석을 빨리 쓰러트릴 수 있었나?
아니다.
녀석의 무력은 세운이 아니었다면 동층의 그 누구도 제압할 수 없을 정도였다.
즉, 저 녀석은 쓰러트리라고 만들어진 몬스터가 아니라는 뜻이다.
‘가끔 이런 던전이 있지.’
보스 몬스터를 죽이기 위해서 보스 몬스터가 아닌 주변의 다른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 던전.
예를 들자면 리치가 나오는 던전이 그랬다.
리치가 아무리 강하다고 리치에게 정신이 팔리면 안 됐다. 찾아야 하는 건 리치의 라이프 베슬.
지금 역시 마찬가지다.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지금 집중해야 하는 건 저 보스 몬스터가 아니라 이 공동에 존재하는 불사의 죄인들을 소멸시키는 것.
하지만, 어떻게?
“제가 맡을게요!”
“뭐?”
“혹시나 싶어 마르바스 님의 권능이나 여러 가지 독초도 사용해 봤지만, 제힘으로 이분들을 죽이는 건 불가능했어요.”
“그럼 뭐를…….”
“제가 저 몬스터를 막고 있을게요. 그동안 세운 씨가 저들을 해결해 주세요.”
이하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절대 가볍게 내뱉은 말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단단하게 굳은 표정.
솔직히 세운의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았다.
이하늘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녀가 힘을 발하는 무대는 수많은 적을 상대로 후방에서 견제할 때이다.
이렇게 강한 하나의 적을 상대할 때 그녀의 힘은 극심히 약해진다.
그런 그녀가 세운도 까다롭다고 평가한 저 보스 몬스터를 막을 수 있을까?
여러 의문이 들었지만, 세운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데스힐에서 회귀에 대한 사실을 말했을 때, 디아블로 길드원들이 세운의 과거에 머리를 끄덕이는 순간, 세운 역시 다짐하였다.
길드원을. 아군을. 동료를 믿겠다고.
“부탁할게.”
“네!”
이하늘이 앞으로 나섰다.
그 순간, 적절하게 보스 몬스터의 몸이 완전히 회복되어 몸에 묻은 잿가루를 떨치고 있었다.
“마르바스 님.”
– 성좌, ‘피투성이 사자’가 졸지에 예의 바른 제자를 얻게 되었다며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푸홧!
보스 몬스터의 위에서 붉은 액체가 터져 나왔다.
바로 이어서 초록색 액체와 보랏빛 액체가 터져 나와 보스 몬스터의 몸을 흠뻑 적셨다.
“이까아아아지이이잇……!”
보스 몬스터의 몸이 물러지고, 몸의 곳곳이 썩어갔다.
곰팡이가 피기도 하고, 시꺼멓게 색이 변하며 부식되는 곳마저 생겨났다.
하지만, 곧바로 바닥과 천장에서 새로운 뿌리가 상처에 연결되더니 상처를 회복하고 독을 빨아들였다.
처음에 아주 잠깐 움직임이 둔해졌을 뿐, 그녀의 공격이 통하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하늘에게는 그 ‘아주 잠깐’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 플레이어 이하늘이 ‘문 닫힌 병동’을 사용합니다.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리던 붉고, 푸르고, 퍼런 액체들이 무형의 벽에 닿은 듯이 각지게 흘러내렸다.
그것들은 이내 거대한 정사각형의 형상을 이루며 보스 몬스터의 주변을 막아섰다.
끼이이익.
“내에에게에에에……!”
쿠웅!
세 가지 색으로 뒤섞여 검붉게 변한 병동의 문이 닫혔다.
안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연신 울려 퍼졌지만, 그럼에도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래는 버티지 못할 거에요!”
이하늘이 붉은 지팡이로 자신의 왼팔을 그었다.
붉은 선혈이 지팡이를 타고 흘러내리니 지팡이에 새겨진 정체 모를 문양이 붉게 빛을 발하며 보스 몬스터를 가둔 병동을 더욱 단단하게 굳혔다.
“충분해.”
이하늘의 활약을 지켜보던 세운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보스 몬스터를 가두던 사이, 세운은 이미 이 던전의 공략법을 깨달았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사신의 낫, 데스 사이드 ]– 죽은 자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사신, 그림 리퍼가 들고 다닌다고 알려진 칠흑의 대낫.
고창석에게 부탁해 만들어 두었던 대낫에 데스 사이드의 힘이 깃들었다.
애초에 약점을 알고 있는 보스 몬스터를 먼저 공략하는 게 빠를 거라 생각했기에 보스 몬스터를 먼저 상대했을 뿐이지, 시간만 주어진다면 죄인들을 죽이는 방법 정도야 금방 떠올릴 수 있었다.
이 데스 사이드가 바로 그것.
육신이 아니라 영혼을 베어가는 데스 사이드라면 환수들의 정신과 영혼을 죽일 수 있으리라.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고맙다.”
서걱.
세운의 데스 사이드가 휘둘러졌다.
사신의 낫이라는 이름답게, 환수의 불안정한 육체를 베었음에도 그 육체 어디에도 상처는 생겨나지 않았다.
그 대신.
– 정말…… 고맙다.
환수의 영혼이 육신을 빠져나가는 게 희미하게 보였다.
지금의 육신으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희고 아름다운 몸으로 날개를 펄럭이는 모습은 서적에서 읽은 것처럼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아마, 영혼이 보이는 것 역시 데스 사이드를 쥐고 있는 덕분에 보이고 있는 일시적인 효과이리라.
“세운 씨, 조금만 더 서둘러 주시면!”
“알겠어.”
이하늘이 만들어 낸 문 닫힌 병동이 쿵쿵 울려댄다.
완전히 밀폐되어 있었기에 들려오지 않았던 보스 몬스터의 목소리도 희미하게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그녀의 힘이 부족하다기보다는 보스 몬스터의 힘이 그만큼이나 강력하다는 뜻이다.
문 닫힌 병동의 힘으로 뿌리가 끊긴 상태에서도 저런 힘을 발휘하다니 말이다.
– 칠흑암의 대낫이 ‘데스 사이드’에 잠든 죽음의 기운을 터트립니다.
– ‘데스 사이드’를 통해 죽음의 수확이 재현됩니다.
세운이 몸을 한 바퀴 회전시키며 데스 사이드를 그었다.
검은 궤적이 원형을 그리고는 주변을 향해 넓게 퍼져나갔다.
서걱, 서걱.
잘 여문 이삭을 수확하듯, 검은 궤적이 공동의 죄인들을 베어나갔다.
비명을 내지르며 불사의 저주에 고통받던 환수와 영수들이 죽음의 축복을 받아들이고 육신을 버리며 날아올랐다.
‘아름답네.’
마치 천국에서 살아가는 짐승들을 보는 듯했다.
영혼이 끊어지자마자 슬라임처럼 꿈틀대던 죄인의 육신이 물처럼 형체를 잃고 바닥을 축축하게 적셨다.
양분을 빨아들일 대상을 잃어버린 뿌리들이 당황하며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콰앙!
“내에에에에- 양부우운으으으을……!!”
“세운 씨!”
이하늘의 병동이 견디지 못하고 깨져나갔다.
보스 몬스터는 이하늘을 무시한 채로 자신의 양분을 모두 무너트린 세운을 향해 돌진했다.
그사이, 세운이 들고 있던 낫은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는 듯이 파스스 부서져 사라져갔다.
‘그래도 어르신이 신경 써서 만들어 주신 건데. 데스 사이드를 버틸 정도는 아니었나 보네.’
하긴, 신화급 무기라 할 수 있는 아펠리온도 보구의 힘이 담기면 버거워했다.
어르신이 아무리 무기를 잘 만들어도 아직 보구의 힘을 완벽하게 견디기는 무리였다.
아니, 한 번 쓰고 부서지기는 했어도 이렇게 보구의 본질을 끌어 올릴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했다.
“주우욱여 버리게에엤…….”
낫이 완전히 소멸하고, 세운은 가만히 서서 다가오는 보스 몬스터를 바라보았다.
새로운 무기를 꺼내 들거나 마법을 발현하지도 않았다. 그저 가만히 서서 녀석을 바라볼 뿐이다.
순식간에 세운의 앞으로 다가온 보스 몬스터가 입을 크게 벌렸다.
뿌리가 얽히고설켜 이루어진 아가리 속에서 뿌리가 소용돌이치며 세운을 노려왔다.
그리고.
“다아아아…….”
누군가 정지 버튼이라도 누른 것처럼 보스 몬스터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이내 높게 들어 올린 왼팔부터 시작해 몸이 급속도로 시들기 시작했다.
애초에 양분이 모두 사라지고, 뿌리가 제 역할을 못 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승패는 결정 나 있었다.
“이하늘, 고생했어.”
히든 던전의 공략이 끝이 났다.
이제는 보상을 얻을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