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31)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31화(431/675)
제 431화
“저 때문에 잘못되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구요.”
“아니야. 덕분에 쉽게 조건을 만족할 수 있었어.”
보스 몬스터가 사라지고, 그 뒤로 가슴에 손을 짚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 이하늘이 보였다.
닫힌 병동이 풀리고 보스 몬스터를 놓치는 바람에 어지간히도 깜짝 놀란 모양이다.
“아무래도…… 이게 보상인가 보죠?”
보스 몬스터가 사라진 자리에 작은 꽃이 피어나 있었다.
애초에 이 공동에는 뿌리와 죄인 외에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터라, 저 꽃이 보스 몬스터가 남기고 간 보상이라는 걸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 아룬의 성화 ]아직 채집을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이름만 확인할 수 있었다.
‘성화?’
다만, 한 가지 짐작이 가는 게 하나 있었다.
죄인과의 대화 중에서 환수는 아룬을 ‘신을 찬양하기 위해 피어나는 꽃’. 즉, 성화(聖花)라고 표현했다.
굳이 그 성화라는 명칭이 들어 있는 걸 보니 이게 진짜 아룬의 본체인 게 아닐까?
세운이 더욱 자세한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성화를 집어 들려던 순간.
“잠깐만요.”
이하늘이 다급하게 다가와 세운을 막아섰다.
이에 세운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왜 그랬지?’
이만한 난이도의 던전에, 그렇게 강력하던 보스 몬스터가 죽고 남긴 보상이다.
아룬의 성화라는 이름을 가진 만큼, 어쩌면 이번 62층의 시련에서 핵심이 되는 아이템일 수도 있다.
그런 아이템을 제대로 관찰조차 하지 않고 무작정 뽑으려 하다니. 평소의 세운이었다면 절대로 하지 않을 실수였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만 같았다.
“……고마워.”
“아니에요. 저도 여러 식물을 채집하고 다니다 보니까 주의하는 버릇이 생긴 덕분에 알았거든요. 아무래도 주변의 생물을 유혹해서 뿌리처럼 힘을 흡수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방심했다.
방금까지 전투를 이어가느라 몸이 달아올라 감각이 조금 무뎌진 탓에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세운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서 차분하게 숨을 고르고는 이하늘에게 채집을 맡겼다.
세운도 처음 마주하는 꽃인 만큼, 이 경우에는 이하늘에게 완전히 맡겨야겠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이거, 역시 뿌리들이랑 특성이 비슷하네요.”
이하늘이 손에서 붉은 액체를 쏟아내자, 성화가 굶주린 것처럼 액체를 마구마구 흡수했다.
아마 세운이 함부로 손을 가져다 댔으면 바로 저렇게 힘이 흡수됐으리라.
“게다가 뿌리도 바닥과 연결되어 있어요. 이대로라면 뿌리와 떨어트리는 순간 바로 시들거나 소멸할 것 같은데…….”
– 성좌, ‘피투성이 사자’가 턱을 짚고 고민합니다.
– 성좌, ‘피투성이 사자’가 저 성화는 이 던전 그 자체나 마찬가지라 전체를 채집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렇다면…….”
이하늘이 본격적으로 채집을 시작했다.
다만, 마르바스와의 대화처럼 꽃 전부를 채집하려 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성화에서도 가장 많은 힘이 뭉쳐 있는 꽃잎을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스르르-
물론, 이마저도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붉은 액체를 두 손에 둘러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꽃잎이 바로 시들지 않게 특수한 작업을 거쳐야만 했다.
똑.
“후…….”
– 성좌, ‘피투성이 사자’가 생각보다 힘의 소모가 크니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야겠다며 조언합니다.
“네, 그래야겠어요.”
아룬에게 힘이 흡수되는 건 막을 방법이 없다.
때문에 이하늘은 저 붉은 액체를 이용하여 힘의 손실을 대체하고 꽃잎을 보존하며 채집했는데, 소모되는 힘의 양이 엄청났다.
꽃잎 하나를 떼어낼 때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할 정도.
아룬의 꽃잎이 6장이니,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그러니 그사이, 세운은 주변을 살펴보기로 했다.
‘이제 곧 무너지겠네.’
어두운 진갈색으로 이루어진 뿌리가 퍼렇게 죽어가고 있었다.
아마, 죄인들이 모두 사라지고 빨아들일 양분이 사라진 탓이리라.
플레이어들이 자이언트 아룬이라 불리는 그 거대한 꽃은 대지의 양분이 아니라 불사의 죄인들에게서 흡수한 양분으로 유지되고 있었던 거였다.
‘이런 형태여서야 보물상자 같은 게 있지도 않을 것 같고.’
아룬의 뿌리라는 자연적 특성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이곳까지 도달하며 채집하였던 아룬의 열매처럼 자연적으로 생성된 것을 제외하면 인위적인 보상이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렇게 공동 내부를 둘러보던 중, 세운의 눈에 들어온 것들이 있었다.
‘이건?’
죄인들이 양분을 빨아 먹히고 있던 자리.
그 불안정한 신체가 무너지고 뿌리로 이루어진 땅이 얼룩져 있는 그 자리에 무언가가 반짝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질척거리는 액체를 치우자 그 정체가 금방 드러났다.
[ 유니콘의 뿔 조각 ]유니콘.
탑에서도 보기 힘든 환수종 중 하나다.
비록 뿔의 형태가 완전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만 하더라도 충분히 높은 값어치를 지니고 있는 소재였다.
‘혹시?’
공동에 있던 죄인의 수는 총 열.
데스 사이드로 인해 영혼이 베이고 불사의 육체가 무너진 흔적도 열 개였다.
세운이 그 열 곳에 흘러내려 질척거리는 액체를 뒤지자, 그 속에서 각각 본래의 주인이 남긴 흔적이 발견되었다.
‘무지개 비늘, 불타는 깃털, 영호(靈虎)의 송곳니…….’
전부 알아주는 환수나 영수에게서 얻을 수 있는 핵심 소재들이다.
비록 신체가 불안정했던 탓에 전부 상태가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환수나 영수가 지니고 있는 그 특유의 기운은 선명하게 머금고 있었다.
‘이러면 생각보다 수확이 큰데.’
당장 이 중 하나를 목걸이로 만들어 걸고 다녀도 상당한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런데 이걸 고창석에게 맡긴다면? 모르긴 몰라도 최소 S급 이상의 아이템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심지어 최근에 고창석이 제작의 분야를 넓혀 액세서리를 포함하여 더욱 다양한 아이템들을 만들어 보고 있으니, 충분히 기대되는 사항이었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홀리 라이트(Holy light) ]– 성스러운 불꽃을 일으키는 백탑의 화염 마법. 화염 마법이라고는 하지만 그 형상이 화염에 가까울 뿐, 선한 존재에게 그 어떠한 해도 입히지 않는다.
세운이 일으킨 순백의 불길이 죄인들의 흔적에 날아들었다.
죄인들이 남긴 혼탁한 액체가 성스러운 불꽃에 타들어 가며 점점 그 크기를 줄여갔다.
아무리 불사의 육체였다고는 하나, 이미 육체의 주인이 사라져 버린 몸이다.
그 흔적은 이미 부정에 가까운 터라 성스러운 불꽃은 장작을 만난 것처럼 활활 불타올랐다.
이게, 죽어 버린 환수와 영수들에게 세운이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였다.
“뭐하고 계세요?”
“그냥. 소재 중에서 연금술에 도움이 될 만한 것도 있으니까 쉼터에서 줄게. 채집은?”
“다행히 생각보다 일찍 끝났어요. 덕분에 기진맥진이긴 한데, 위험해도 세운 씨가 지켜주실 거잖아요?”
“위험한 일은 없을 거야. 이제 끝났으니까.”
“그럼…….”
쿠구구구-
이하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던전 전체가 덜덜 떨려왔다.
주변을 살펴보니 안 그래도 퍼렇게 시들어 있던 뿌리들의 절반 이상이 검게 죽어 있었다.
던전을 이루고 있던 뿌리가 죽고 있으니 던전이 무너지는 건 당연한 일.
“어, 어쩌죠?”
“저기, 출구 열리네.”
당연하지만, 던전을 성공적으로 공략한 이상 무너지는 던전 속에 갇혀 죽는 일은 없다.
공동의 반대편, 보스 몬스터가 등장한 부분의 벽이 무너지며 환한 햇빛이 스며들어 왔다.
“챙길 건 다 챙겼지?”
“물론이죠.”
“그럼, 가자.”
세운과 이하늘은 성스러운 불꽃에 의해 완전히 사라진 죄인들의 흔적을 뒤로한 채 던전을 빠져나갔다.
* * *
그 시각.
쿠구구구!
62층의 시련에서는 대혼란이 일어나는 중이었다.
“뭐, 뭐야!”
“어떻게 된 거야?”
갑작스럽게 숲 전체가 덜덜 떨려오고, 몬스터들 역시 불안한 듯이 이리저리 도망 다니고 있었다.
흔들리는 숲에서 식물형 몬스터의 비중이 엄청나다 보니, 꼭 숲 전체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이에 플레이어들 역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혹여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일까 싶어 가까운 나무를 꽉 붙잡거나 바닥에 납작 엎드린다.
그러던 중, 플레이어 몇 명이 갑작스럽게 머리 위에서 비치는 햇빛에 의문이 들었다.
“여긴 아룬의 밑인데, 어째서 햇빛이……?”
소위 아룬의 영역이라 불리는 시련의 중심.
자이언트 아룬의 꽃잎이 워낙 거대하다 보니 야영지를 꾸린 이곳에는 최근 한 달 동안이나 제대로 햇빛이 들어온 날이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남자가 호기심을 못 참고 고개를 들어 올려 햇빛이 비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경악하고 말았다.
“아, 아룬이! 자이언트 아룬이!”
“소란 떨지 말고 아무거나 꽉 잡고 있어!”
“아룬이 시들고 있어!”
“무슨 개소리…… 뭣?”
남자의 말에 주위의 플레이어 모두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들의 표정 모두 경악으로 물들었다.
언제나 드넓은 꽃잎으로 하늘을 뒤덮고 있던 자이언트 아룬이 남자의 말처럼 급격하게 시들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식물이라도 몰라도, 아룬은 62층의 시련의 핵심이자 주축이었다.
그런 아룬이 시들고 있다니?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당장 아룬의 줄기를 통해 위로 오르며 시련에 도전하고 있던 이들은 이를 더욱 크게 체감하고 있었다.
“이것들 갑자기 왜 이래?”
“넝쿨도 안 나와.”
아룬의 꽃가루에 의해 식물화되어 플레이어의 앞길을 막아서던 파수꾼들 역시 급격하게 생기를 잃어가며 쓰러지고 있었다.
줄기에서 연신 튀어나오던 넝쿨 역시 튀어나오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희소식이지만, 이에 못지않게 안 좋은 소식 역시 존재했다.
“주, 줄기가 시들고 있습니다!”
“계단도!”
“젠장, 달려! 어떻게든 달려!”
꽃잎만이 아니라 아룬의 줄기 역시 시퍼렇게 물들며 시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줄기 옆으로 길게 자란 계단 역시 외곽부터 시작하여 흐물거리며 무너져 가고 있었다.
아직 초입인 자들은 등반을 포기한 채 내려오고, 끝에 다다른 이들은 파수꾼의 방해가 사라졌으니 이를 악물고 위를 향해 달렸다.
중간에 낀 자들은 당황하며 어떻게든 살 방법을 궁리해야만 했다.
그래도 아룬이 시드는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는 않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위기를 피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쪽으로!”
“충격 흡수 마법을 펼쳐두었습니다! 안심하고 뛰어내리세요!”
62층의 시련.
그중에서도 아룬의 앞에는 특히나 많은 플레이어가 시련을 공략하기 위해 진을 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같은 길드가 아니라도 서로 공략법을 공유하고 도와주기도 하며 정을 나누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이 힘을 합쳐 서로를 도와준 덕분에 아룬의 무너짐으로 인한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쿠웅!
마침내, 아룬이 쓰러지고 말았다.
시들었다고는 하지만, 그 크기가 워낙 거대했던 터라 아룬이 쓰러진 자리에 있던 숲이 아룬으로 완전히 뒤덮이고 말았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그럼 이제 시련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62층에 존재하는 플레이어 모두가 멍한 표정으로 무기를 놓았다.
닭 쫓던 개가 되어 버린 셈.
하지만, 그중에서 몇 명. 아직 62층의 시련을 등반하고 있던 디아블로 길드원만은 아룬이 쓰러진 이유를 금방 유추할 수 있었다.
– 62층의 시련, 흔들리는 숲에 존재하는 ‘흉화(凶花) 아룬’을 무너트렸습니다.
– 디아블로 길드의 성향 ‘파멸의 구원자’가 강화됩니다.
– 강화된 길드 성향 ‘파멸의 구원자’로 인해 길드의 모든 버프가 강화됩니다.
“우리 길드장이 또 한 건 저질렀나 보네.”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도 메시지지만, 애초에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