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35)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35화(435/675)
제 435화
리엘 리프레인이 합류하자 우두머리 3마리 따위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전투가 쉬워졌다.
전투법은 간단하다.
직접적으로 나서기보다는 몬스터를 상대하고 있는 정령들을 도와주는 방식이다.
– 흑탑의 묘리에 따라 ‘토네이도’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후우웅!
– 나쁜 곰!
문 베어를 향해 불꽃을 쏘아내던 불의 정령을 도와 바람 마법을 사용한다.
그러자 두 원소의 시너지로 인해 두 배 이상으로 강력해진 불꽃이 문 베어 무리를 휩쓸고 지나간다.
파지직!
– 우와아! 번개다!
물의 정령이 흠뻑 적셔둔 늑대 무리에는 전기 마법을 내리꽂는다.
이런 식으로 하면 힘을 아끼면서 적에게 최대 효율의 피해를 줄 수 있다.
“……너무 강해진 거 아니에요?”
“겨우 이걸로?”
“자만은. 당신, 제가 안 나섰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요.”
“내가?”
옆에서 세운을 꾸짖고 있는 리엘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오해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긴, 오해할 만도 하다. 63층과 마찬가지로 레이드 사냥이 기본이 되는 64층의 시련에서 세운은 혼자서 세 마리의 우두머리와 그 무리에 포위되어 있었으니까.
세운이 뭐라 변명을 하기도 전에…….
콰앙!
– 앗, 미안! 무너졌어!
– 누구야?
– 동물 친구들이다!
– 나쁜 짐승들!
“꿰에에엑!”
땅의 정령이 펼쳐두었던 석벽이 무너지고, 새로운 몬스터들이 나타났다.
가장 먼저 보인 건 석벽을 깨트린 장본인. 두꺼운 어금니를 드러낸 채 씩씩거리고 있는 멧돼지 모습의 우두머리, 아이언 보어였다.
그리고 이게 끝이 아니었다.
“시이잇!”
반대편 거목을 둘둘 감은 채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있는 그린 맘바. 초식동물의 형태를 벗어나 창칼처럼 날카로운 뿔과 송곳니를 자랑스럽게 드러내고 있는 사슴 형태의 몬스터까지.
안 그래도 세 마리의 우두머리를 상대하고 있었는데, 새로운 세 마리의 우두머리가 추가로 등장한 것이다.
당연하게도, 수하의 몬스터 무리를 이끌고 말이다.
“아무리 소란스러웠다고 해도 이 영역은 저놈들 영역 밖이었을 텐데.”
세운은 회귀 전에 64층을 쏘다니며 몬스터들의 영역을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이동했었다.
그러니 녀석들의 영역 구조에는 빠삭했다.
세운의 기억으로 누군가 괜히 자극하며 유인이라도 하지 않는 한 우두머리 여섯이 한자리에 모이게 될 일은 없었다.
그때, 옆에서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요.”
“뭐?”
“죄송하다구요.”
“그러니까, 뭐가.”
“저 우두머리들, 아마 저를 따라온 것 같거든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세운을 꾸짖고 있던 리엘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웅얼거리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을 어떻게 찾아냈나 싶었는데. 딱히 찾으려던 게 아니라 저 세 우두머리에게서 도망치다가 우연히 발견했던 모양이다.
“분명 따돌린 줄 알았다구요! 한참이나 멀리 도망쳤는데. 저놈들은 영역이고 뭐고 없대요?”
“영역, 있지. 누군가 자신의 영역을 들쑤시지만 않으면 자기 영역을 벗어나지는 않거든.”
“제가 무슨…….”
– 어? 나 때문인가?
– 그러니까 내가 하지 말랬잖아!
– 나쁜 뱀!
– 이미 일으켜 버린 거 뭐 어쩌겠어.
“……얘들을 못 말린 게 잘못이긴 하죠.”
리엘의 정령들. 저 정도 무력이면 못해도 상급 정령 이상. 아니, 최상급 정령에 가까운 무력인데도 정신 연령은 하급일 때와 똑같았다.
라엘의 모습이 마치 네 쌍둥이를 보살피는 어머니의 모습 같았다.
뭐, 저런 악동들을 보살피다 보면 한두 명이 사고 치는 것까지 완전히 말릴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
“일단은 도망치죠. 아무리 그래도 여섯 마리는 무리예요.”
“괜찮아. 어차피 써보려고 했던 게 있으니까.”
“무리예요. 여섯 마리라구요! 일단은 도망쳤다가 한 마리씩 사냥하는 게…….”
역시 설명보단 행동이 답이다.
그렇게 생각한 세운이 리엘을 무시하고 잠시 넣어 두었던 쌍검을 다시 꺼내 들었다.
자이언트 헤라클레스의 위 뿔과 아래 뿔.
유서아가 사용하는 쌍검과 다르게 묵직한 느낌이 강한 쌍검이었다.
부디 이번 무기는 보구의 힘을 견딜 수 있기를 바라며, 세운이 탐욕의 권능을 발현하였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제왕의 쌍검, 쌍고검(雙股劍) ]– 동방의 무장인 유비가 사용했다고 알려진 두 자루의 검. 자웅일대검이라고도 불린 이 검은 만 명을 단번에 이길 수 있는 천하제일의 검이라고도 불렸다.
쌍고검의 힘이 깃든 위 뿔과 아래 뿔을 가볍게 휘둘러 보았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별 무리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사이, 석벽을 깨트린 멧돼지 우두머리가 탐색전 따위 필요 없다는 듯이 무작정 세운을 향해 돌진해 왔다.
“꿰에에엑!”
서걱-
멧돼지와 세운의 검이 부딪쳤지만, 이후에 들려온 건 둔탁한 타격음이 아니라 섬뜩한 절삭음이었다.
뒤이어 자신의 양쪽 어금니가 잘려 나간 것을 확인한 우두머리가 당황하며 발을 헛디디더니 반대편 거목에 부딪혔다.
콰앙!
“시잇-”
하필이면 멧돼지가 부딪힌 거목 위에 자리 잡고 있던 그린 맘바가 인상을 찌푸리며 아래로 떨어졌다.
여섯 마리의 우두머리가 세운을 가장 위험한 존재로 인식하며 순식간에 그 주위를 에워쌌다.
그리고 지금, 세운은 곧바로 보구가 가진 진정한 힘을 발현시켰다.
– 자이언트 헤라클레스의 위 뿔과 아래 뿔이 ‘쌍고검’에 잠든 영웅의 기운을 터트립니다.
– ‘쌍고검’을 통해 만인지적(萬人之敵)이 재현됩니다.
세운이 자세를 낮추자마자 위기감을 느낀 우두머리들이 일제히 세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각자의 특기를 내세워 뿔과 송곳니, 어금니를 자랑하며 여섯 방향에서 달려드는 모습은 실로 위협적이었다.
“피해.”
“자, 잠깐만요!”
휘이이익-
여섯 마리의 우두머리가 세운과 충돌하기 직전, 세운을 중심으로 숲에 정체 모를 산들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그 이후 철컥, 철컥하며 검이 잠기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꿰에에엑.”
“쉬잇-”
“크륵…….”
여섯 마리의 우두머리가 붉은 선혈을 뿜어대며 자리에서 쓰러졌다.
비단 우두머리뿐만 아니라 그들이 다스리고 있는 무리의 몬스터들 역시 푸른 대지를 시뻘겋게 물들며 숨을 잃었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여섯 마리의 우두머리와 함께 수백의 몬스터를 쓰러트린 것이다.
그 가운데에서 세운은 쓰러진 몬스터 대신 허리춤에 되돌려 넣은 쌍검을 내려보았다.
“쓸 만하네.”
쓰러진 몬스터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보구의 힘을 사용했는데도 부서지지 않은 쌍검을 칭찬하듯이 쓰다듬을 뿐이었다.
간신히 세운의 공격을 피하며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던 리엘과 네 정령이 멍해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당신…… 사람 맞아요?”
– 아닐 것 같은데.
– 드래곤 아냐?
– 착한 드래곤!
– 파충류였어!
이제는 익숙해진 반응이라 별다른 대꾸도 하지 않았다.
* * *
“대체 정체가 뭐예요?”
“기껏 뒷정리까지 해 줬더니 왜 이래.”
“아니, 말도 안 되잖아요! 저도 두 마리까지는 어떻게 상대하겠는데, 여섯 마리라뇨! 이게 말이 되냐구요!”
처음 세 마리야 원래 그런 거였고, 그녀를 뒤따라온 세 마리의 우두머리까지 처리해 줬는데, 감사의 인사는커녕 아까부터 그녀의 질문이 그치지 않고 있었다.
뭐, 그래도 이번에 얻은 무기가 보구의 힘을 버틸 수 있다는 것은 확인했으니 되었다.
어차피 회귀에 대해 말할 것도 아니니 대충대충 대답하며 그녀의 말을 흘려 넘겼다. 아니, 흘려 넘기려 했다.
– 드래곤이야.
– 근데 파충류 냄새가 안 나는데?
– 착한 드래곤!
– 꼬리는 숨기고 있는 건가?
그녀의 꼬마 정령들이 세운의 주위를 둘러싸기 전까지는 말이다.
리엘도 정령들이 이렇게까지 나설 줄 몰랐는지 당황한 듯했지만, 자기도 궁금했는지 적극적으로는 안 말리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이에 작게 한숨을 내쉰 세운이 성흔을 밝히며 말했다.
“루인.”
– 크릉…….
– 늑대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세운의 생각을 읽은 루인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사나운 표정을 지어 보인다.
정령들이 일순간 뒤로 물러나는 것을 보고 귀찮음을 면했다고 생각했지만.
– 오랜만이야!
– 반가워!
– 착한 늑대!
– 얼마 만이지?
– 크릉……?
정령들은 무서워하기는커녕 두 팔을 활짝 벌린 채 루인에게 달라붙었다.
털을 매만지거나 이마를 쓰다듬거나 꼬리에 매달리는 등, 심지어 바람의 정령은 루인의 콧등에 앉아 송곳니를 매만지며 부드러운 촉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이에 루인이 곤란한 표정으로 세운을 돌아보았다.
“…….”
끄덕.
– 주인이시여…….
미안하지만, 여기서 루인을 역소환해 버리면 정령들이 다시 세운에게 달라붙을 게 분명하다.
그렇게 생각한 세운이 어쩔 수 없이 루인의 시선을 외면하였다.
“하아, 끝까지 제대로 대답할 생각은 없나 보네요.”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알겠어요. 자세한 건 묻지 않을게요. 화원의 위치는 정확하게 알고 있는 거죠?”
“당연하지.”
모를 리가 없다. 회귀 전에 세운은 그곳을 이미 한 번 다녀왔으니까.
물론, 세계수의 씨앗이 없었던 세운으로서는 그곳에서 얻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지만 말이다.
“보답은 어떻게든 해 드릴게요.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드릴 수도 있고, 그걸로 부족하면 어떻게든 그 이상을 마련해 볼게요.”
그래도 아무런 대가 없이 화원을 안내해 주겠다는 세운에게 고마움은 느끼고 있는가 보다.
어차피 세운도 탑에 세계수가 심기는 것 자체에 관심을 두고 있는 거였지만, 준다는 보답을 굳이 무시할 생각은 없었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앞장서니 그녀가 쪼르르 달려와 말을 이어갔다.
“그럼, 지금 화원을 향해서 가고 있는 건가요?”
“아니, 화원은 다음 층이야.”
“네? 아니, 그럼 아까부터 어딜 가고 있는 거예요? 어차피 시련 통과 조건은 다 채웠는데, 바로 다음 시련으로 가야죠!”
리엘이 달려와 세운의 앞을 가로막았다.
지금까지는 시간의 제약 없이 최대한 꼼꼼히 모든 시련을 돌아다니며 화원을 찾고 있었을 텐데, 막상 화원의 위치를 알고 있는 세운이 곁에 있으니까 시간 개념이 급해졌나 보다.
“지금은 안 돼.”
“어째서죠? 설마, 사실은 화원의 위치를 모른다거나…….”
“그럴 리가.”
“그럼!”
답답했는지 목소리를 높이는 리엘. 정령들도 화들짝 놀라고, 루인 역시 세운의 옆에 달라붙어 이빨을 드러낸다.
자기도 자기 목소리에 놀랐는지 입을 막으며 물러서는 리엘을 뒤로 하고 세운이 루인의 이마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진정시켰다.
“영원의 화원은 그저 길을 잘 찾는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거든.”
“네? 그럼…….”
이는 세운 역시 해당하는 말이었다.
영원의 화원은 여정의 지침표로도 찾을 수 없는 장소였다.
이미 한 번 다녀온 경력이 있는 지금 역시 이는 마찬가지였다.
세운이 그런 장소를 찾을 수 있었던 건 이번 64층의 시련에서 만난 ‘안내자’의 도움이 컸다.
“지금부터 안내자를 잡으러 갈 거야.”
“……잡으러요?”
“그래.”
그리고 지금, 세운은 회귀 전에 마주쳤던 그 안내자를 다시 한번 찾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