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37)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37화(437/675)
제 437화
“지금 말을 한 거예요? 저게?”
“저게라니! 침입자 주제에 저게? 저게?”
벌새가 놀란 다음은 리엘의 차례였다.
하긴, 고블린이나 오크 같은 이인종 몬스터도 아니고 벌새가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있으니 놀랄 만도 하다.
다른 몬스터도 그랬으면 모르겠지만, 64층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형 몬스터 중에서 언어를 구사하는 몬스터는 없었으니 말이다.
“저래 보여도 우두머리야.”
“이게요?”
“이번에는 이게? 이게? 어? 근데 어떻게 안 거야?”
사실 몬스터라고 하기는 애매하다.
눈앞의 우두머리를 포함하여, 녀석의 수하라 할 수 있는 꽃밭의 벌새들에게 공격 능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다만, 녀석에게는 공격 능력 이상으로 꽃밭을 지키기에 좋은 능력이 있었다.
“에이, 몰라! 뭔진 모르겠지만, 둘 다 사라져 버려!”
“피해.”
“네, 어?”
벌새의 우두머리가 일으킨 돌풍이 세운과 리엘이 있던 자리에 불어닥쳤다.
세운이야 진작에 바닥을 박차는 중이었고, 리엘 역시 숙련된 플레이어라는 것을 증명하듯 되묻기 이전에 몸을 내던졌다.
덕분에 둘 다 돌풍은 피할 수 있었지만.
파앗!
– 어? 어어어어어어!
– 노움!
– 나쁜 벌레!
– 벌레 아니야, 새야!
– 나쁜 새!
아쉽게도 리엘의 뒤에서 멍하게 서 있던 땅의 정령은 그러지 못했다.
정령답게 물리 공격에는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노움은 바람에 휘말려 순식간에 시야 밖으로 멀어졌다.
“노움!”
리엘이 다급하게 정령 마법을 펼쳤다.
노움을 불러들이려는 것 같은데,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것을 보아 마법이 잘 작동되지 않나 보다.
– 노움, 괜찮아?
– 어떻게 됐어?
“……거리가 너무 멀어져서 일단 역소환되긴 했는데, 상처를 입은 것 같지는 않아. 그래도 어지간한 거리로는 이런 적이 없었는데.”
“그럴 만하지. 저 녀석의 바람은 순수한 바람보다는 강제 이동 마법에 가까우니까.”
벌새의 돌풍에 제대로 당하게 되면 거의 시련의 시작 지점까지 날아가게 된다.
추락의 충격으로 죽거나 하는 일은 없지만, 다시 이곳까지 찾아올 의욕을 완전히 사라지게 하는 능력이다.
몸의 극히 일부라도 스쳐도 최소한 넝쿨 밖까지는 날아가니 말 다 했다.
회귀 전의 세운은 저 능력에 열 번도 넘게 당하면서 녀석을 찾아왔지만 말이다.
“뭐야, 어떻게 피한 거야! 뭐야! 뭐야!”
파앗, 파앗!
벌새가 돌풍을 연달아 쏘아냈다.
데미지는 없다지만, 적을 강제로 수백 킬로미터 밖으로 날려 보내는 돌풍을 이렇게 연달아 쏘아내다니.
새삼 회귀 전에 저 돌풍을 맞으며 억울해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 내공을 통해 호접활공(胡蝶滑空)이 강화됩니다.
세운이 본격적으로 보법을 밟으며 날아오는 돌풍을 피해 냈다.
호접활공 자체가 주변의 기류를 읽고 깃털이 흔들리듯이 적의 공격을 피해 내는 보법이라 벌새의 공격을 피하기에는 딱이었다.
“실프!”
– 응, 걱정 마!
리엘 역시 마찬가지였다.
실프를 몸으로 받아들이더니 산뜻한 바람을 흘리며 깃털처럼 가볍게 몸을 움직였다.
자신의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자 벌새가 당황하며 날갯짓을 더욱 빨리했다.
“좀 맞아라! 맞아! 맞아! 왜 이렇게 잘 피하는 거야!”
저 말도 안 되는 능력을 일 초에도 몇 번씩이나 사용해 댄다.
– 와, 날아간다아아!
그러다 애꿎은 물의 정령이 돌풍에 당해 노움처럼 멀리까지 날아가 역소환됐다.
팽팽한 접점이 이어진다.
리엘이 반격을 해 보려 했지만, 공격이 너무 빨라 피하기도 급급한 상황이다.
그때.
파앗!
“맞았다! 맞았어!”
세운이 순간적으로 움직임을 멈춘 순간, 벌새가 날린 돌풍이 적중했다.
다급하게 두 팔을 올려 안면을 막아보지만, 애초에 이건 공격이 아니다.
세운의 몸이 돌풍을 따라 저 멀리 64층의 끝을 향해 날아갔다.
“아니! 피하라고 해 놓고 자기가 맞으면 어떡해!”
“너도 얼른 맞아! 같이 사라져! 여기 오지 말라구!”
세운이 날아간 방향으로 리엘이 억울한 듯이 외쳤다.
그나마 벌새의 돌풍이 두 명에게 번갈아 날아오고 있었던 탓에 수월하게 피하고 있었는데, 세운이 사라지게 되니 돌풍이 전부 리엘을 향해 날아오게 되었다.
두 배에 달하는 양의 돌풍이 날아오니 실프의 힘을 최대한 이끌어 발을 움직여도 피하기가 어려웠다.
이대로라면 위험하다 싶은 순간.
“……!”
리엘이 갑자기 눈을 크게 뜨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달렸다.
벌새는 리엘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모습에 조금 당황했지만, 곧 ‘그래, 얼른 가!’라고 외치며 두 갈래의 돌풍을 날려 보냈다.
그때, 벌새의 머리 위로 낯선 그림자가 드리웠다.
“잡았다.”
“어?”
덥썩.
벌새가 잡혔다.
그림자의 주인은 바로 돌풍에 휘날려 64층의 저 끝까지 날아갔어야 할 세운이었다.
리엘이 갑작스럽게 앞으로 달렸던 이유도 벌새를 잡으려던 세운을 확인하고 시선을 자신에게 돌리기 위함이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분명히 날아가는 걸 봤는데.”
“당연히 속임수지. 이 녀석, 겁이 많아서 그 정도가 아니면 방심을 안 하거든.”
아바타.
항구 도시 제헤튼에서 수련하던 중에 자신을 감시하던 흑익의 길드원을 속이기 위해 습득하고 사용했던 마법이었다.
세운은 분신을 만드는 즉시 자세를 숙여 꽃밭 아래로 숨은 후 은신술을 활용하여 모습을 속였고, 벌새는 분신을 날려 버린 것이다.
감각이 예민한 벌새였기에 평범한 상황이라면 쉽게 속지 않겠지만, 두 명에게 연이어 돌풍을 날려 보내던 상황이기에 생각보다 쉽게 속일 수 있었다.
“그럼 이제…….”
쑥!
“어어?”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할 무렵, 저 옆에서 오색 빛깔의 벌새가 하나 튀어나왔다.
“어, 어떻게 빠져나온 거지?”
“너만 분신 쓸 수 있냐! 날 속였어? 날?”
손에서 벌새의 감촉이 사라졌다는 것을 느낌 세운이 손바닥을 펼쳐보니 역시나 벌새가 사라져 있었다.
아니, 사라졌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방금 잡은 건 처음부터 놈의 분신이었으니까.
“분신은 이게 끝?”
“아니거든! 나 엄청 강하거든! 분신도 엄청 많거든!”
“저, 저거 다 분신이에요?”
벌새의 몸이 열 개로 쭈욱 늘어났다.
녀석은 히든 필드라고 할 수 있는 이 꽃밭의 보스 몬스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녀석의 능력은 공격을 완전히 배제하고 오로지 적을 피하는 종류뿐이었다.
거기에 신중하고 겁이 많은 성격까지.
‘저 녀석 하나 잡으려고 함정이고 아이템이고 전부 사용하며 겨우 몰아붙였지.’
회귀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리엘에게 보이지 않을 각도로 피식 웃던 세운이 대답 대신 몸을 움직였다.
그 순간, 벌새 역시 열 개의 분신을 각자 다른 방향으로 퍼트리며 도망쳤다.
리엘이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이다가 가장 오른쪽의 벌새를 향해 달렸다.
진짜일 확률은 1/10.
그렇게 생각하며 달린 것이지만, 세운은 달랐다.
“어딜 도망가려고?”
“으아악! 뭐야! 너 뭐야!”
세운이 정확하게 벌새의 본체를 향해 방향을 꺾었다.
여정의 지침표가 있는 이상 분신 따위는 세운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회귀 전에 녀석을 잡을 수 있었던 이유도 분신을 모른 체하다가 극적인 순간에 여정의 지침표로 녀석의 본체를 사로잡은 덕분이었다.
– 성흔이 혈랑전설의 설화에 반응합니다.
– 성흔의 두 번째 능력, ‘광란’이 깨어납니다.
광란의 힘을 사용하여 일순간 신체 능력을 대폭 늘린다.
지금까지 광란의 힘을 적당히 조절하며 신성을 아끼는 법을 터득한 세운.
그런 만큼, 그와 반대로 일순간 광란의 힘을 대폭 끌어 올려 평소보다 신체를 더욱 강화하는 법 역시 습득하고 있었다.
– 황탑의 묘리에 따라 ‘스톤 월’이 더욱 견고해집니다.
– 적탑의 묘리에 따라 ‘스톤 월’의 범위가 확산됩니다.
쿠구궁!
“으앗! 앗!”
벌새가 자리를 피하려는 순간, 주변의 세 방향에 바위로 된 벽이 솟아올랐다.
이 순간을 위해 세운이 미리 영창하고 있었던 마법이다.
심지어 비스듬하게 솟아오른 바위벽 세 개가 마주치며 천장을 이루어 하늘로 향하는 도주 경로까지 완전히 막아냈다.
도망갈 공간이 사라지자 벌새는 최후의 수로 온 힘을 쥐어짜내 세운을 향해 돌풍을 날려 보냈다.
날개가 쥐 날 정도로 힘을 준 덕분에 돌풍은 지금까지 날려댔던 그 어느 돌풍보다도 크고 빨랐다.
저 돌풍에 직격당하면 64층의 시작점이 아니라 63층 아래까지 날아가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떠오를 정도였다.
‘저것도 베어지려나.’
세운은 날아오는 돌풍을 바라보며 검을 쥐어 올렸다.
일단 시도해 보고 안 되면 경로라도 비틀어 검을 포기해서라도 돌풍을 피해 낼 생각이다.
어차피 만병지함의 효과 덕분에 날아간 무기는 금방 회수할 수 있으니까.
그때.
“카사!”
– 나쁜 바라으암어아아아!
리엘의 지시를 받은 카사가 몸을 내던져 돌풍을 막아냈다.
불길을 최대한 끌어올린 탓에 기류가 뒤바뀌어 세운에게 날아오던 돌풍이 급격하게 기울어지며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노움이랑 운디네에게서 재밌다는 감정이 느껴졌어요. 카사도 문제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잡아요!”
재밌다라.
확실히, 벌새의 돌풍은 강제 이동 효과가 있을 뿐이지 적에게 피해를 입히는 힘은 없다.
어린 정령들의 입장에서는 돌풍을 타고 이동하는 게 재밌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재소환해서 이곳으로 돌아오는 것도 가능할 테고.
이에 세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집어넣은 채 앞으로 손을 뻗었다.
“안 잡혀! 절대 안 잡혀! 절대!”
벌새가 주변의 꽃이 휘청일 정도로 날갯짓을 가속하며 세운에게 돌진했다.
어차피 주변의 길이 막혔으니 세운 쪽을 향해 정면 돌파하여 피할 생각이다. 자신의 속도에 자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이에 세운 역시 성흔을 빛내며 광란의 힘을 더욱 끌어 올렸고.
쿠당탕!!
그 충돌 지점에서 꽃잎이 나풀거리며 흩날렸다.
세운이 온몸을 내던져 바위벽까지 깨부수며 구른 탓이다.
“자, 잡았어요?”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둘의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시야에 잡히지 않을 만큼이나 빨라진 탓에 리엘도 결과를 예측할 수가 없었다.
다행이라면 벌새의 깐죽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는 정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제 포기해.”
“놔! 놔! 놔! 이거 놓으라구!”
수북이 쌓인 꽃잎 사이에서 세운이 불쑥 튀어나왔다. 오른손에 오색 빛깔의 벌새를 꽉 쥔 채로.
다행히 이번에는 분신이 아닌지 옴짝달싹 못 한 채 긴 부리를 뻐끔거리고 있었다.
“휴, 놀랬잖아요…….”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리엘이 자리에 풀썩 주저앉는다.
실프가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와 ‘잡았다아!’라며 탄성을 내질렀다.
“날 어떻게 할 셈이야! 나쁜 인간!”
“그거야 당연히…….”
– 성좌, ‘배고픈 왕자’가 크기가 작긴 하지만 맛있는 한 끼가 될 것 같다며 입을 크게 벌립니다.
“맛있는 한 끼…….”
“으아아앗! 으아앗! 나쁜 인간! 나쁜 인가아아안!”
“아니, 방금은 실수…….”
실수로 베엘제붑의 메시지를 읽어 버린 세운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