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38)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38화(438/675)
제 438화
“놔, 놔! 이거 놓으란 말이야! 날 대체 어떻게 하려는 거야!”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침을 줄줄 흘려댑니다.
“방금 그 눈빛! 다 봤어! 날 구워 먹으려는 거지! 삶아 먹으라는 거지!”
“아니, 먹을 생각 없다니까.”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어째서냐며 아쉬움을 토로합니다.
“방금 그 표정! 거짓말 마! 지금 나 먹으려고 하고 있잖아!”
베엘제붑의 메시지를 읽고 드러난 표정을 알아챈 건지, 아니면 혼자 오해에 빠진 건지, 벌새는 세운의 손아귀에서 연신 버둥거리며 쉴 새 없이 입을 놀려댔다.
안내자라고 해서 굳이 협력을 구할 생각은 없었지만, 괜한 오해를 산 것 같아서 기분이 찜찜했다.
– 와, 돌아왔다!
– 나 또 해 줘!
– 나도 해 보고 싶어!
그사이 리엘이 정령들을 재소환했는지 돌풍에 휩쓸렸던 정령들이 다시 나타났다.
정말 그 돌풍이 재밌었다고 느낀 건지 다시 해 달라며 벌새를 조르고 있으니 벌새도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정말 이게 안내자예요? 뭔가 안내해 줄 것 같지는 않은데.”
“걱정 마. 일단 올라가면 자기가 살기 위해서라도 안내를 해 줄 테니까.”
“그런데, 어떻게 데리고 올라가려구요? 당신이 테이머도 아니고. 아이템도 아닌 우두머리급 몬스터를 데려갈 수는 없잖아요?”
그녀의 말대로다.
테이머가 아닌 이상 시련에서 포획한 몬스터를 산 채로 다음 시련까지 데려가는 방법은 없었다.
백현처럼 언데드로 만들어 데려갈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면 안내자로서의 힘이 사라져 버린다.
다만.
“아이템으로 만들면 되지.”
– 탐욕(眞)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마아트의 새장 ]– 태양신 라의 딸이며 진실과 정의의 신이라고 알려진 마아트가 지니고 있던 새장 중 하나.
이미 회귀 전에 경험한 만큼, 세운에게는 안내자를 위층으로 데려갈 방법이 있었다.
“뭐야! 뭐야 그 고급스러워 보이는 조리 도구는! 안 돼! 안 돼!”
세운이 새장 속에 벌새를 집어넣었다.
신의 물건답게 화려하기 그지없는 새장의 철장은 내부의 새를 관찰하기 위해 제법 넓은 틈을 지니고 있었다.
새 중에서도 특히 크기가 작은 벌새라면 날개를 편 상태로도 철장 사이를 빠져나갈 수 있어 보였지만.
“빼에에엑! 뭐야! 뭐야 이거!”
벌새가 철장 사이에 닿는 순간, 몸이 탄력적인 무언가에 부딪힌 것처럼 튕겨 나왔다.
실용성보다는 외관에 집중되어 만들어진 것처럼 보여도, 명색이 신의 물건이다.
그러니 새장이라는 본래의 목적은 그 어떤 물건보다 충실하게 이행할 수 있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자신의 새장에 들어가 있기에는 너무 경박해 보인다며 마음에 안 들어 합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혹시 키워서 줄 생각이었냐면서 당신의 계획에 크게 만족합니다.
“이렇게 하면 데려갈 수 있는 거예요?”
“그렇다니까.”
“그건 어떻게 아는 거예요? 아, 분명 경매장에서 이거랑 비슷한 형태로 작은 몬스터를 파는 걸 본 것 같기도 한데…….”
당연하게도 이는 세운이 회귀 전에 깨달은 방법이었다.
경매장에서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게 아니라 모험가에게 직접 무언가를 의뢰하는 경우도 있다.
그때 새장은 아니지만, 작은 채집기에 벌레를 수집하라는 의뢰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 기억을 되살려 벌새를 포획한 세운이 새장에 벌새를 넣고 다음 층으로 이동하였던 것이다.
다행히도 마침 히든 던전의 공략을 통해 새장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굳이 마몬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반대편 히든 던전을 찾으면 새장을 얻을 수 있지만.’
여기서 시간을 더 끌었다가는 리엘이 정말 폭발할지도 모른다.
뭐, 폭발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세운을 따라올 확률이 더 높지만 말이다.
“의심되면 바로 실험해 보면 되지.”
“드디어 가는 거예요?”
“왜, 히든 던전 몇 개만 더 찾아보고 갈까?”
“아뇨! 아뇨, 아뇨! 얼른 가요! 그치, 얘들아?”
– 아니! 난 방금 그걸로 좀 더 놀고 싶어!
– 나도!
– 여기 예쁜데 좀 더 보고 가자!
“으으! 안 돼! 빨리 가요!”
전부터 느꼈는데, 그녀와 네 정령은 주인과 부하 같은 상하관계가 아니었다.
친구, 또는 가족과도 같은 관계.
전투 상황에서는 조금 비효율적이지 않나 싶었지만, 어쩌면 저런 관계 덕분에 그녀와 정령들이 이렇게나 빨리 성장할 수 있지 않았을까?
잠깐 그런 생각을 가지며.
“먼저 가지.”
세운이 새장을 꽉 잡은 채로 다음 층으로 올라갔다.
* * *
– 65층의 시련에 도전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 주제 : 자격의 지천목(指天木)을 향하여
– 고난과 역경이 도사리는 시련의 숲에서 벗어난 당신은 마침내 자격의 지천목을 발견하였습니다.
– 목적은 하나. 자격의 지천목의 앞에 도달하십시오.
– 당신의 자격을 증명하면, 지천목은 당신에게 길을 열어줄 것입니다.
시야가 급변하며 65층으로 풍경이 전환되었다.
층을 이동할 때마다 느껴지는 이 감각은 여전히 적응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미 몇십 번이나 느껴보았기에 세운과 리엘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에는 이 기묘한 감각에 익숙하지 않은 생명체도 하나 추가되어 있었다.
“우웨에엑! 우웩, 우웨엑!”
“……진짜 같이 이동됐네요.”
64층의 꽃밭에서 잡아 온 벌새.
녀석이 세운이 들고 있는 새장 안에서 멀미를 요란하게도 호소하고 있었다.
녀석도 기본 상식은 있는 건지 구토가 나오기 직전에 철장 밖으로 머리를 내밀려 하였지만, 새장은 이조차도 용납하지 않았다.
결국 벌새는 새장의 중간으로 튕겨 나온 채 아름다운 무늬가 새겨진 바닥에 구토를 내뱉었다.
‘그래도 효과는 좋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자신의 보물이 더럽혀지는 것을 보며 인상을 크게 찌푸립니다.
겨우 새장이라고는 해도 역시 신의 물건이라는 것일까?
새장의 바닥에 벌새의 구토물이 닿자마자 물처럼 깨끗하게 정화되며 스르르 사라져 갔다.
그러는 사이, 세운과 리엘은 고개를 들어 65층의 풍경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저게 ‘자격의 지천목’인가 보네요.”
“그래.”
“지천목이라……. 하늘을 가리킨다는 뜻 같은데, 그보다는 이미 하늘에 닿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나요?”
“그러게.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하늘과는 의미하는 바가 다를지도 모르지.”
자격의 지천목.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아 보이는 곳에 거대한 나무가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무성한 가지와 나뭇잎 덕분에 하늘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가지의 높이와 기둥의 두께로 유추해 보았을 때 충분히 하늘과 맞닿아 있어 보였다.
최소한 저 꼭대기 위에 오르면 구름 정도는 가뿐히 넘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너무 쉬운 거 아닌가요?”
“65층의 시련이 쉬울 리 없지.”
“하지만, 그냥 나무에 닿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요. 그렇게 멀지도 않고.”
“그럼 저 사람들은 괜히 저러고 있겠어?”
리엘이 세운이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곳에는 지천목을 향해 달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누구는 조깅을 하듯이 여유롭게, 누구는 이를 악문 채 필사적으로, 누구는 체력이 다했는지 바닥을 기고 있었다.
저 모두가 시련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천목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들의 위치가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
“어떻게 된 거죠?”
“궁금하면 정령이라도 보내 봐.”
“음, 실프?”
– 응! 갔다 올게!
그녀가 다루는 바람의 정령이 몸을 길게 늘어트리며 산들바람처럼 빠르게 지천목을 향해 날아갔다. 아니, 날아가려 하였다.
“어…… 실프?”
– 응? 왜? 어? 리엘, 왜 나 따라오고 있어?
“아니, 내가 따라가는 게 아니라 네가 안 움직이고 있잖아.”
– 아닌데, 나 지금 엄청나게 빨리 움직이고 있는데?
처음 몇 미터쯤 이동하더니, 실프는 제자리에 멈춘 채로 바람을 닮은 머릿결을 휘날리고 있었다.
그제야 리엘은 이번 시련의 목적을 알 수 있었다.
“자격의 지천목. 자세히는 몰라도 자격을 드러내야만 지천목에 도달할 수 있나 보네요.”
“맞아.”
– 나도 해 볼래!
– 나도!
– 와, 신기해! 움직이는데 안 움직여!
– 뭐지? 이상한 기분이야!
65층의 시련에서 플레이어는 자격의 지천목을 향해 이동한다.
분명 몸은 땅을 걷고 달리고 있으며, 감각 역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느끼지만 실질적으로 플레이어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나아가는 방법은 단 하나. 지천목에게 자신의 자격을 증명해야만 한다.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다. 검술이든, 마법이든, 정령술이든.
심지어는 시련에 별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은 기술로 자격을 인정받아 지천목에 도착하는 이들도 있었다.
너무나도 쉬우면서도 어려운 시련.
그게 바로 65층의 시련이었다.
‘여기서는 여정의 지침표도 지천목만 가리키니까.’
세운이 여정의 지침표로 65층에서 화원을 찾을 수 없다고 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히든 던전이고 뭐고, 65층에서 세운의 지침표는 오직 지천목만을 가리킨다.
이미 화원에 다녀온 세운이기에 혹시나 싶어 화원을 떠올리며 여정의 지침표를 작동시켜 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런 시련이라면 이곳에 무언가 다른 요소가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뒤가 있잖아.”
“뒤요?”
세운이 지천목을 등지고 뒤로 돌았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분명 방금 막 숲을 빠져나왔고, 시련의 설명에서도 숲을 빠져나왔다는 설명이 있음에도 둘의 뒤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 내가 가 볼게!
– 나도!
– 나도!
둘의 말을 듣고 있던 정령들이 눈을 반짝거리며 뒤편을 향해 날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 어?
– 여기, 이상해.
– 뭐지?
이번에도 역시 지천목을 향해 날아갈 때처럼 제자리에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다만, 지천목을 향할 때와는 감각이 다른지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짜 저기가 맞는 거예요?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건 둘째 치고, 아예 필드가 아닌 느낌인데.”
“나도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지.”
“누가 들으면 이미 와본 줄 알겠어요?”
솔직히 영원의 화원은 세운의 의도해서 찾아낸 게 아니다.
64층에서 잡아 온 벌새가 새장에서 탈출해 버려 도망쳤던 게 바로 화원을 찾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다.
당시에 세운이 가지고 있던 새장은 지금의 것과 달리 히든 던전에서 얻어낸 보상일 뿐이어서 우두머리급 몬스터인 벌새를 가둬두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역시.
“자, 네 차례다.”
세운은 안내자의 힘을 빌리려 하였다.
마아트의 새장, 그 화려한 문이 열리자마자 오색 빛깔의 벌새는.
“웨에에에에엑!”
다시 한번 속을 비워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약간의 휴식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