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4)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4화(44/675)
제 44화
-성좌, ‘혼란을 연주하는 산양’이 이건 말도 안 된다며 버럭 소리를 지릅니다.
-성좌, ‘혼란을 연주하는 산양’이 계약자에게 당장 일어서라며 악을 씁니다.
판의 심정을 증명하는 메시지가 연이어 떠올랐다.
하지만, 남자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니, 원래도 정신이 오염되어 제정신이 아닌 것으로 보였지만 지금은 거기에 세운의 ‘공포’까지 더해져 사고의 판단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히이익…….”
보물이라도 되는 양 팬플루트를 꽉 껴안은 채로 바닥에 드러눕는다.
애초에, 평범한 플레이어가 성좌의 힘을 여기까지 받아들인 것부터가 비정상적이었다.
처음 봤을 때만 하더라도 변형이 그리 심하지는 않았는데.
세운과의 전투에서 힘을 꽤 사용했던 탓인지, 지금은 피부에서 짐승의 털이 듬성듬성 자라나고 머리에 작은 뿔까지 돋아나 있었다.
성좌의 권능에 동화되어, 계약자의 생명력이 빨려 나가고 있다는 증거다.
저 정도까지 동화가 일어났다면, 이미 생명력 대부분이 소모되었을 것이다.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얼른 저 짐승을 죽이고 보검을 돌려주길 원합니다.
전투는 이미 끝났다.
세운 앞의 남자는 이성을 잃었고, 주변의 몬스터도 모두 정리되었다.
아버지의 위세를 등에 업고, 가진 격에 비해 한없이 높았던 판의 자존심도 짓밟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걸로는 안 되지.’
여기까지는 딱 이번 생에서의 복수일 뿐이다. 비록 판은 모르고 있겠지만, 세운은 이 정도에서 복수를 그칠 생각이 없었다.
“우습네. 신이라는 게 쪼잔하게 인간에게 붙어서 복수나 하려고 하고.”
-성좌, ‘혼란을 연주하는 산양’이 설마 지금 자신에게 얘기하는 것이냐며 황당한 표정을 짓습니다.
“그래, 너 말이야. 정작 마신에게 찾아갈 용기는 없으면서, 꼴에 자존심은 있다고 인간에게 빌붙어서 나한테 찾아온 거잖아?”
-성좌, ‘혼란을 연주하는 산양’이 감히 인간 따위가 자신에게 도발을 해 오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당신의 말에 비릿한 미소를 짓습니다.
“뭐, 틀려? 꼬우면, 지금 당장에라도 내가 아니라 마몬을 찾아가면 되잖아?”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만마전(万魔殿)은 언제든 열어 두고 있을 테니 올 테면 와보라며 검은 날개를 활짝 펼칩니다.
-성좌, ‘혼란을 연주하는 산양’의 얼굴이 터질 듯이 붉게 물듭니다.
“거봐, 정작 자기는 힘도 없으면서 아버지 등빨만 믿고 인간이나 괴롭히고. 아, 이런걸 ‘파파보이’라고 한다던가?”
-성좌, ‘혼란을 연주하는 산양’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뚝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파파보이.
세운이 탑을 올라가며 알게 된 일부 성좌들이 판을 조롱하기 위해 붙인 별명이었다.
사실, 거짓말도 아니다. 격도 낮은 주제에, 아버지의 휘광을 등에 업고 나대던 게 바로 판이었으니까.
이 사실은 세운이 아닌 그 누가 보아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본래 이러한 놈들에게는 그 어떤 선동과 날조보다도 팩트가 가장 큰 고통으로 느껴지는 법이다.
그 증거로.
-성좌, ‘혼란을 연주하는 산양’이 시링크스를 바닥에 내던지며 크게 울부짖습니다.
당장 세운의 눈앞에 판의 분노가 메시지의 형태가 되어 떠올랐다.
메시지가 아니더라도, 처음 마몬의 관심을 받았을 때 느꼈던 뜨거운 시선이 머리 위로 느껴졌다.
“히, 히익! 이이이익!”
판과 계약한 남자의 몸이 떨린다.
머리카락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뿔이 길게 뻗어나고, 전신에서 검갈색의 털이 마구 자라난다. 하관이 짐승처럼 툭 튀어나오고, 가로로 길게 찢어진 동공에서 붉은 기운이 번뜩인다.
-성좌, ‘혼란을 연주하는 산양’이 강림을 시도합니다!
쿠르르릉!
남자의 몸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다.
강림.
자신을 따르는 신도의 몸에 깃들어, 탑에 영향을 끼치는 행동이다.
본래 성좌가 직접적으로 탑에 영향을 끼치는 건 금기되어 있는 만큼 그에 따른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른다.
첫째, 인과율을 어기며 성좌로서 가진 격이 낮아지고.
둘째, 시스템은 물론 다른 성좌들에게 경계의 눈초리를 받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사실, 앞선 두 가지 제약보다는 이 마지막 제약 때문에 성좌들이 강림을 주의하고 꺼리는 편이다.
그건 바로.
서걱-
“컥-”
강림을 한 상태에서 적에게 당했을 때 얻게 되는 페널티였다.
-성좌, ‘혼란을 연주하는 산양’의 강림 시도가 무산됩니다!
-성좌, ‘혼란을 연주하는 산양’이 강림에 들였던 힘이 사라져 갑니다!
-성좌, ‘혼란을 연주하는 산양’이 가진 격의 일부가 무너져 내립니다!
-성좌, ‘혼란을 연주하는 산양’이 비명을 지릅니다!
“그러게, 누가 대놓고 보는 앞에서 강신을 시도하래?”
이제는 완전히 산양의 모습으로 바뀌어 버린 남자의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게 바로 세운이 판을 도발한 이유였다.
회귀 전, 판에게 놀림당한 세운이었기에 다른 누구보다도 판의 성향이 어떤지 잘 알고 있었다.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 강림을 시도하리라는 것 정도는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크아아아악!”
바닥에 떨어진 남자의 머리. 아니, 산양의 머리가 비명을 내질렀다.
강림이 무산되긴 했지만, 이미 어느 정도 격이 깃든 만큼 본체의 감정을 이어받은 것이다.
“감히, 감히, 감히! 용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산양의 머리가 괴이한 모습으로 비명과도 같은 말을 내뱉었다.
무려, 성좌의 저주.
다른 플레이어였다면 듣는 것만으로도 공포에 몸부림치게 만드는 목소리겠지만, 세운에게는 아주 조금의 공포도 엿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회귀 후에 보인 모습 중에서도 가장 기분 좋은 모습이었다.
“그러든가.”
그도 그럴 게, 그토록 미워하고 저주하던 판의 격을 떨어트렸다. 회귀를 하고 처음으로 회귀를 한 보람과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뻥 뚫리는 기분!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게다가, 세운의 복수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세운이 손을 뻗었다.
그 모습에 산양의 머리는 일말의 불안감으로 인해 털이 바싹 올라왔다.
“무,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냐! 더 이상 나를 건드린다면, 아버지가 가만두지 않을…….”
“폭식의 권능.”
콰직!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이렇게 고급진 불량식품은 오랜만이라며 입을 쩌억 벌립니다.
폭식의 마신, 베엘제붑의 이빨이 산양의 주위로 떠올랐다.
산양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고, 그 바로 위로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막힌 듯 날카로운 이빨이 ‘콰직, 꽈직!’ 소리를 내며 가까이 다가왔다.
보이지 않는 벽. 그것은 곧, ‘격’이었다.
강신을 시도하며 신도에게 깃들었던, 이제는 미약한 힘만이 남아 주인에게로 되돌아가려 하는 판의 격.
그것이.
콰직!!
“크아아아악!”
단 몇 초도 견디지 못하고, 베엘제붑의 송곳니에 꿰뚫리고 말았다.
이빨은 멈추지 않고 산양의 머리를 탐해갔다. 날카로운 뿔을 잘근잘근 깨부수고, 몸체를 검갈색의 털과 함께 꿀떡 집어삼킨다.
“내, 내 격이! 이럴 수는 없다! 네놈!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두 마신의 권능을……!”
콰직-
말을 채 끝내기 전에, 가로로 찢어진 산양의 눈이 터져 나가며 그 존재 자체가 사라졌다.
이것으로, 판은 강림을 시도할 때 사용했던 격의 잔재마저 흡수하지 못하고 꼼짝없이 힘을 잃었다.
안 그래도 격이 높지 않은 성좌였으니, 거기서 격이 더 낮아진다면.
-성좌, ‘혼란을 연주하는 산양’이 가진 격이 기준 이하로 추락합니다.
-성좌, ‘혼란을 연주하는 산양’의 격이 기준에 미치지 못해, 시스템의 권한이 박탈당합니다.
더 이상 성좌로서의 힘을 떨치지 못할 게 분명하다.
이렇게 되면, 세운으로서는 후환을 걱정할 필요도 없게 된다.
걱정이라면 판의 뒤를 바쳐주는 든든한 후광, 올림포스의 왕 제우스인데. 실상, 세운이 탑을 오르며 알게 된 둘의 관계라면 이 역시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야, 제우스는 판의 말과는 달리.
-성좌, ‘번개를 다스리는 독수리’가 인상을 한껏 찌푸리며 자신의 못난 아들을 내려봅니다.
-성좌, ‘번개를 다스리는 독수리’가 추락한 아들의 다리에 번개를 꽂고, 올림포스의 한구석으로 집어 던집니다.
판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늘 망나니처럼 사건, 사고를 저지르고 다니며 자신의 권위를 깎아내리는 모습에 나중에는 올림포스의 감옥에 처박아 두었다고 한다.
그런 아들을 대신 정리해 주었으니, 세운을 원망하기는커녕 내심 좋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뭐, 그렇다고 해도 표면적으로는.
-성좌, ‘번개를 다스리는 독수리’가 앞으로 당신의 행보를 주시하겠다며 경고를 내뱉습니다.
왕으로서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게 정상이겠지만 말이다.
특이점이 없는 이상, 앞으로도 제우스가 이 일로 세운을 건드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튜토리얼 중에 성좌를 떨어트린 플레이어는 당신이 처음일 것이라며 혀를 내두릅니다.
-성좌, ‘배고픈 왕자’가 산양의 고기를 물어뜯으며, 잡내가 느껴지긴 하지만 깊은 풍미 하나만큼은 일품이라고 외칩니다!
솔직히, 반쯤은 도박이었다.
폭식의 권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과연 세운의 손에서 펼쳐진 권능이 성좌의 격까지 씹어먹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으니까.
그래도 역시 마신의 권능은 뭔가 다르다는 것일까?
베엘제붑은 먹잇감의 정체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즐겁게 그 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근데 왜 능력치 흡수가 안 되는 거지?’
평소 같았으면 진작에 포식과 관련된 메시지가 떠올랐을 텐데, 이번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성좌의 격을 포식한 만큼, 세운이 흡수하기는 무리인가 싶었다.
아쉽지만, 세운이라 하여도 시스템에 간섭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괜한 기대를 하는 대신, 산양이 사라진 자리에 외로이 떨어져 있는 팬플루트를 주워들었다.
판이 자신의 성물인 시링크스를 하사했을 리는 없겠지만 남자가 몬스터를 다루던 모습을 떠올렸을 때, 미약하게나마 판의 힘이 깃들어 있을 확률이 높았다.
[ 요정을 닮은 악기 ]분류 : 악기
등급 : B
설명 : 갈대 나무를 엮어 만든 악기로써 미약하게나마 성물의 힘을 이어받아 목신의 힘이 깃들어 있다.
능력 : 1. 목신의 구애 – 연주의 수준에 따라 동물형 몬스터를 조종할 수 있다.
2. 공포의 비명 – 연주의 수준에 따라 적을 ‘공포’에 빠트린다.
3. 혼란의 울음 – 연주의 수준에 따라 적을 ‘혼란’에 빠트린다.
“오호.”
요정을 닮은 악기.
판의 악기인 시링크스의 힘이 깃든 만큼, 그 능력 역시 세운이 아는 시링크스의 능력과 흡사했다.
아이템 등급 역시 뒤랑달과 같은 B급에 달했다.
물론, 뒤랑달 같은 경우에는 봉인으로 인해 등급과 능력치가 전부 하향된 것이지만 말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연주의 수준에 따라서’라…….”
능력이 뛰어난 만큼, 그 기준 역시 상당할 것이다.
또한, 자세히 살펴보니 연주를 시작할 때 저 세 가지 중에서 단 한 가지 연주만 사용할 수 있었다.
능력이 뛰어난 만큼, 사용하기가 무척이나 까다로운 아이템이라는 거다.
그래도 언제 어떻게 쓸모가 있을지 모르는 일.
세운은 팬플루트를 아공간 주머니에 집어넣고, 등을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판의 격’을 포식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세운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메시지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