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43)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43화(443/675)
제 443화
리엘을 향해 검은 액체가 날아들고, 세운의 외침이 들려오는 순간, 사대 정령이 그 누구보다 먼저 그녀의 위험을 감지하였다.
– 리엘!
– 안 돼!
– 피해!
– 나쁜……!
아우터를 갈기갈기 찢었던 거대한 석검이 정령들이 빠져나감과 동시에 와르르 무너졌다.
너무나도 다급한 상황, 정령 마법을 일으키기도 촉박한 상황 속에서 그녀의 정령들은…….
철퍽!
“얘들아!”
자신들의 몸을 던져 리엘을 지키는 것을 선택하였다.
체구가 작은 정령들이었지만, 네 정령이 뭉치자 리엘을 지키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젠장!”
– 녹탑의 묘리에 따라 ‘윈드 스톰’의 속도가 빨라집니다.
– 자탑의 묘리에 따라 ‘윈드 스톰’의 시전 속도가 빨라집니다.
– 적탑의 묘리에 따라 ‘윈드 스톰’의 범위가 확산됩니다.
재빠르게 지팡이를 꺼내 든 세운이 파멸의 힘을 끌어 올려 마법을 발현하였다.
검붉은 기운이 담긴 폭풍이 리엘과 수호목 주변을 휩쓸며 그들에게 떨어지려던 검은 액체를 모조리 소멸시켰다.
하지만, 이미 침식이 진행되고 있는 상대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이전에 아우터에게 저항하고 있는 설룡을 구해 준 적이 있지만, 그건 설룡이 드래곤 하트의 풍만한 힘을 이용하여 아우터에게 저항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으으…….
– 아, 아으…….
“얘들아, 안 돼! 안 돼!”
“닿지 마!”
아우터를 처리한 세운이 재빨리 달려가 정령에게 접촉하려는 리엘을 말렸다.
아직 아우터에 대해 설명해 주지는 않았지만, 그녀도 아우터가 정령을 침식하려는 것을 알아챈 모양이다.
‘시도는 해 봐야지.’
세운이 정령을 향해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막 침식이 시작된 상태이니 운이 좋으면 아우터를 걷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공포의 힘까지 사용한다면 아우터를 완전히 물러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세운이 성흔을 빛내는 순간.
스르륵.
거짓말처럼 아우터가 가뿐하게 벗겨졌다.
방수 유리에 닿은 물처럼 검은 액체가 흘러내리며 정령들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운은 만족스러움보다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 감사해요!”
“아니, 내가 한 게 아니야.”
“네?”
아우터를 벗겨내려 하긴 했지만, 아직 시도도 해 보기 전이었다. 즉, 아우터는 세운이 벗겨낸 게 아니었다.
아우터가 절반쯤 흘러내리자 다행히도 멀쩡한 정령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 으으, 기분 나빠.
– 찝찝해!
– 운디네! 우리 샤워시켜 줘!
– 나쁜 물!
– 저거 물 아니야!
침식을 당하기는커녕 너무나도 멀쩡해 보이는 모습.
얼마 지나지 않아 아우터가 완전히 흘러내리고, 네 정령 중 그 누구에게도 침식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 성흔이 혈랑전설의 설화에 반응합니다.
– 성흔의 세 번째 능력, ‘파멸’이 깨어납니다.
치이익!
일단은 아우터를 처리하는 게 먼저.
세운이 목표를 잃고 바닥에서 꿀럭거리는 아우터의 중심에 검을 꽂아 파멸의 힘을 사용하였다.
혹시 몰라 주변에 감각을 퍼트려보았지만, 새로운 아우터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얘들아, 괜찮아?”
– 응, 괜찮아!
– 기분 나쁘긴 한데, 괜찮아!
– 윽, 입에 좀 들어간 것 같아. 퉤!
– 나아쁜!
‘어떻게 된 거지?’
너무 멀쩡하다.
단언컨대, 세운은 생명체 중에서도 이렇게 아우터에게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존재는 처음 보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보았던 이들과 눈앞의 이들의 차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설마, 정령에게는 침식이 안 통하는 건가?’
애초에 정령사는 탑에서도 극히 드문 존재였다.
때문에 아우터가 천장을 무너트리며 등장했을 때도 아우터가 정령을 덮치는 장면은 본 적이 없었다.
회귀 전의 기억을 통틀어도 알고 있는 정령사가 적긴 해도, 이는 충분히 유의미한 발견이었다.
“다행이다……. 진짜 깜짝 놀랐잖아.”
– 그치만, 리엘이 위험했는걸!
– 맞아.
– 다음부터는 항상 우리 중 하나가 지키고 있자.
– 나!
“정말 고마워, 얘들아.”
리엘이 정령들을 껴안으며 훈훈한 장면을 연출했다.
수호목도 이를 흐뭇하게 지켜보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주위에 펼쳐진 참상에 침울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영원의 화원이 이렇게 손상되다니. 선조들에게 염치가 없구나…….”
처음 들어온 두 아우터에 의해 부러진 나무들과 짓밟힌 꽃들.
바로 이어서 세계수의 바로 아래에서 튀어나온 아우터에 의해 화원의 땅이 파이고 터지는 등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그 짧은 전투 순간에 화원의 꽃 1/5가량이 손상되었다.
‘회귀 전에 봤던 모습과 비슷해.’
회귀 전에 세운이 보았던 화원의 모습.
지금보다 훨씬 손상이 심한 상태였지만, 아우터가 만들어 낸 흔적을 보아하니 회귀 전에도 녀석들이 나타났던 모양이다.
그리고 아마, 그때는 지금과 다르게 수호목과 리엘 모두 아우터에게 당하고 세계수마저 부러졌을 것이다.
그 이후의 풍경이 바로 세운의 본 모습이었겠지.
“괜찮아요. 저도 화원의 재건을 도울게요.”
“고맙구나. 일족의 마지막 아이야.”
어쨌든, 화원을 지키는 데는 성공했다. 세계수도 지켜냈고.
성장 속도를 보아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새싹의 모습에서 벗어날 것 같았다. 세계수의 씨앗은 지금 이 순간에도 새싹을 넘어 작지만 단단한 기둥을 만들어 내고 있었으니까.
엄청난 성장 속도.
아무래도 영원화가 모은 힘이 꾸준하게 공급된 덕분인 듯싶다.
“저런 적이 다시 나타날 수도 있으니, 일단은 재건부터…….”
그렇게 훼손된 화원을 둘러보며 리엘이 입을 열던 중.
화아앗!
“……이 기운은!”
돌연 세계수의 바로 위에서 빛무리가 일렁이며 익숙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 * *
휘이이이잉-!!
모래 도시, 스카베.
그곳의 주민 모두가 두려워하는 사막의 재앙, 모래 폭풍.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날카로운 모래알이 피부를 헤집고, 눈을 멀게 하며, 모든 수분을 앗아간다고 전해진 그곳에, 검은 로브로 전신을 휘감은 남자가 서 있었다.
꿈틀.
“그래, 그래. 답답하겠구나. 조금만 기다려라. 굳은 몸을 풀고 기지개를 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남자는 눈앞에 묶여 있는 그림자를 향해 손을 내뻗으며 중얼거렸다.
관리소의 시선마저 닿지 않는 모래 폭풍의 중심에서 말이다.
그러던 중…….
– 꾸륵, 쿠르륵.
“예상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한 모양이군.”
남자의 어깨 부근에서 부글거리며 솟아 나온 검은 액체가 그의 귓가에 무언가를 말하듯이 뻐끔거렸다.
인간의 언어도, 신의 언어도 아니었다.
그 누구도 해석할 수 없는 불길한 음의 높낮이에 남자가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게 계획대로 흘러가는 듯이 인자하고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다만, 그 표정이 유지되는 것은 그리 길지 않았다.
– 꾸르르르륵…….
“뭐라?”
남자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러고는 귓가에서 뻐끔거리고 있는 검은 액체를 오른팔로 붙잡아 뜯어내 시선을 마주쳤다.
아니, 검은 액체에게 눈 따위는 없었으니 그저 노려본다고 하는 게 더욱 어울리리라.
“엘프X 따위가 그 공격을 막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정령은 꽤 까다로운 적이지만, 이전에도 분명…….”
– 쿠르륵, 쿠륵.
“……회귀자?”
남자가 미간을 더욱 찌푸렸다.
지금 이 순간에 들려서는 안 될 단어가 검은 액체를 통해 들려왔기 때문이다.
“대체 어떻게 된 놈인지 모르겠군. 회귀자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전의 굴레에서는 존재감조차 없던 놈이 이번 계획까지 막아서다니.”
대체 이게 몇 번째일까?
탑 곳곳에 숨겨져 있던 아우터의 흔적을 찾아 부수고 다니는 것을 넘어, 혹시 모를 변수를 막기 위해 남겨 두었던 함정마저 막고 있다.
이제는 자신의 계획을 전부 꿰뚫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남자는 곧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리 없지.”
만약 자신의 계획을 완벽하게 알고 있다면, 진작에 자신의 행보를 막으러 찾아왔을 것이다.
회귀자의 행보는 분명 날카로웠지만, 미래를 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지금 이곳에서 저지르고 있는 일을 가만히 두고 있는 게 가장 큰 증거였다.
– 꾸르르륵.
“더 큰 전력? 물론, 보낼 수야 있겠지. 하지만, 소용없다. 이미 세계수가 가지를 뻗은 시점에서 화원을 공격하는 것은 등불에 불나방을 보내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아쉽긴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남자는 상념을 지우고 눈앞의 존재를 처리하는 데 더욱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전 굴레에 비해 일이 많이 꼬이게 되었지만, 남자는 그 이상으로 거대한 변수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짜증은 감출 수 없었다.
“지금 화원을 공격해 봤자 그놈들이 나타날 게 분명하니.”
콰직!
남자는 손에 쥐고 있던 검은 액체에게 애꿎은 화풀이를 한 이후에야 미간의 주름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었다.
* * *
세계수의 위에서 터져 나온 사색 빛깔.
각각 불과 물, 흙, 바람을 뜻하는 그 빛무리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세운 역시 알고 있는 것이었다.
“정령?”
“어째서 정령의 기운이……. 그것도, 이 정도의 기운이라면.”
“어느 정도지?”
“저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정령왕이라 생각될 정도로 강한 기운이에요.”
“정령왕이라…….”
정령왕이라면 세운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리엘이 존재하지 않았던 회귀 전의 탑에서도 가장 유명한 정령사가 다루는 정령이라 해 봤자 최상급 정령이었으니까.
그것도 리엘처럼 사대 정령 모두를 다루는 게 아니라, 단 하나의 최상급 정령과 계약을 한 게 최고였다.
시련에서도 타락한 정령들이 모습을 드러내기는 해도 정령왕이 모습을 드러낸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으니, 지금 눈앞의 상황이 얼마나 번외 격의 일인지 알 수 있었다.
“혹시 아는 게 있으신가요?”
“이 몸은 그저 화원을 지키고 있을 뿐. 염원을 이어받았지만, 이 몸이 아는 건 세계수가 심기는 것까지뿐이라네.”
수호목이 모르고 있다면 화원에 의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리엘이 모르고 있는 것을 보니 엘프들 사이에서도 정령왕이 모습을 드러내는 게 흔한 일은 아닌 것 같고.
다만, 세운의 머릿속에 예상되는 경우의 수가 하나 있었다.
‘세계수에 대해 알려진 건 많이 없지만, 차원과 차원을 연결하는 힘이 있다는 말이 있었지.’
어쩌면, 세계수가 심김으로써 탑과 정령계가 연결이라도 된 게 아닐까?
물론 그렇다고 해도 정령왕이 이곳에 모습을 드러내는 이유는 설명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 아직은 힘이 부족한가.
그때, 빛무리 부근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신을 영접한 것처럼 장엄한 목소리에는 신과는 다른 청량한 자연의 기운이 담겨 있었다.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맑아지고 피부가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 그럴 수밖에 없지요. 세계수라고는 하나 이제 막 잎을 펼친 새싹이니까요.
– 곤란하군. 그렇다고 아이들을 보내기에는 너무 중요한 요건이다만.
– 그렇다면, 저들을 초대하면 되지 않을까요?
– 저자는 인간이다. 엘프는 믿을 수 있지만, 믿는 것과 규율을 어기는 것은 다른 일이다.
– 규율은 저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규율을 따질 거면 공포의 아이 역시 처벌 대상이 아닌가요?
– 그건…….
– 그 아이는 제 아이를 구해 왔어요. 그럼, 규율에 따라 정령계와 떨어진 제 아이 역시 버려야 하나요?
– 그것과 이건 다른 문제지 않나. 규율에 금이 갔다고 규율을 완전히 무너트린다면 혼란이 도래하게 될 뿐이다.
– 그러니 최대한 규율에 금 가지 않게 해 보자는 거죠.
빛무리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대화를 이어 나갔다.
세운도 리엘도 함부로 그 목소리를 끊고 의문을 제기할 수는 없었다. 그저 가만히 귀를 기울이며 둘의 대화에 집중하고, 결론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 방법이 있나?
– 차원의 틈새에 저희 원탁을 옮기는 건 어떤가요?
– 원탁을?
– 틈새는 엄밀히 말하면 저희 정령계가 아니니 괜찮을 거라 봐요.
– 틈새가 무너질 수도 있다.
– 그거야 저희가 붙잡고 있으면 되죠. 저희 넷의 힘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잖아요?
– ……잠시라면, 가능하겠군.
드디어 결론이 난 것일까?
빛무리에서 흘러나오던 대화가 일순간 멈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수 위의 빛무리가 처음보다 더욱 강력하게 반짝이더니 세운과 리엘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 자연의 일족이 남긴 마지막 후손이여. 그리고 안개의 아이를 구해 준 인간이여.
빛무리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세운의 피부를 뜨겁게 달구었다.
주변에 불길이 생긴 것도 아니고, 온도가 올라간 것도 아니었다.
그저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뜨거운 불길이 전신을 둘러싸이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다만, 세운이 알고 있는 뜨거운 불길과는 다르게 무척이나 따뜻한 불길이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들려온 목소리에…….
– 그대들을 저희의 원탁에 초대하겠어요.
피부에서 느껴진 열감이 폭포에 쓸린 것처럼 차갑게 식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