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45)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45화(445/675)
제 445화
“우리의 의도를 어떻게 알았지?”
“상식적으로 있어서는 안 될 정령 납치 사건. 거기에 사대 정령왕의 호출까지. 포저를 불렀으니 제게 물을 건 뻔하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잠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그렇군.”
다행히도 엘퀴네스가 상황을 잘 정리해 주었다.
튜리크가 벌벌 떨고 있는 포저의 손을 잡아 진정시켜 주었고, 엘퀴네스가 싱긋 미소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맞아요. 저희는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있어요. 정령이 납치당해 정령계와 강제로 연결이 끊기고, 고문까지 당한 것은 결코 가벼이 볼 수 없는 일이에요.”
“용서할 수 없다.”
“뭐, 엘퀴네스의 잘못도 있는 거 아니야? 자기 아이가 사라진 것도 모르고 있었잖아.”
“……네. 저도 제 부주의에 대해서는 사과하겠어요. 이번 일이 정리된다면 모든 책임을 지겠어요. 제 자리를 내려와서라도요.”
“아니, 뭐 그럴 것까지는.”
“우리였어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미네르바.”
“알지, 알지. 철없는 아이들이 현세로 나갔다가 정령사에게 눈이 멀어 계약을 끊는 일도 있으니까. 그렇지, 트로웰?”
“……난 계약을 끊지는 않았다!”
“그래, 끊긴 거지.”
“그건……!”
“조용.”
“크흠, 왜 내가 말할 때만…….”
트로웰과 미네르바의 소란에 엘퀴네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샐리온의 중재 덕분에 그녀는 말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니, 부탁드려요. 아는 게 있으면 저희에게 알려주세요.”
그녀의 정중한 부탁에 세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운의 예상이 맞다면, 미래의 계획에 사대 정령왕을 포함한 정령계의 도움을 얻을 수도 있으니까.
“폐왕. 또는 아우터라는 이름을 들어보셨습니까?”
“폐왕? 뭔지 몰라도 꽤 오글거리는 명칭인데.”
“아우터라, 나도 모르겠군.”
“저희 모두 정령계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귀가 어두운 편이라 잘 모르겠군요.”
당연하게도 정령왕 모두가 모르는 눈치다.
뭐, 현시점에서는 회귀를 겪은 세운이 아니고서야 아우터에 대해 아는 자가 없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도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에게 말로만 설명을 이어갈 수는 없는 노릇.
세운이 손을 올려 간단한 마법을 준비했다.
“대충 이런 느낌입니다.”
세운은 최근 마법을 검에 담기 시작하면서 마법의 수식 변화에 꽤나 익숙해져 있었다. 이번에도 그 방법을 인용하여 마법을 변환시켰다.
물 마법을 시커멓게 물들이고, 여기에 진득한 점성을 부여한다.
그렇게 만들어 낸 검은 액체를 변동 수식을 통하여 조작하면…….
꿈틀.
꽤나 아우터와 흡사한 모습의 액체가 탄생한다.
생각보다 잘 만들어지긴 했지만, 아우터에 대해서 모르는 자들이 이걸 본다고 갑자기 아우터를 깨달을 리가 없었다.
이에 세운이 아우터에 대해 설명을 이어가려던 중.
“히익!”
“포저! 괜찮아, 진정해. 내가 옆에 있잖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반응이 나타났다.
튜리크와 손을 잡고 떨림을 간신히 진정하고 있던 포저가 숨을 들이켜더니 손을 떨치고 벽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고는 자세를 바짝 숙여 팔로 머리를 감싸고는 몸을 벌벌 떨었다.
이로써 세운은 자신이 생각한 추측에 더욱 큰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저는 이 아우터. 아니, 아우터의 우두머리 격으로 짐작되는 폐왕이라는 존재가 포저를 납치했다고 생각합니다.”
제헤튼의 지하에서 처음으로 마주친 남자, 폐왕.
그는 그곳에서 레드피쉬 상단주를 이용하여 아우터와 운석을 이용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저 스스로도 ‘학습’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며 세운과 실험체의 충돌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그런 놈이라면 분명 정령에게도 관심을 가졌겠지.’
세운은 보지 못했지만, 회귀 전의 세상을 언급한 폐왕이라면 아우터가 정령을 잠식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헤튼에서와 마찬가지로 정령을 잠식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진행해 보지 않았을까?
방법은 모르겠지만, 포저를 납치하여 아우터를 억지로 주입하려 하지 않았을까?
“증거는 있나?”
“당사자에게 직접 확인하면 되겠죠.”
세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저 반대편의 한구석에서 몸을 웅크린 채 벌벌 떨고 있는 포저를 향해 다가갔다.
“주, 주인. 포저는 아직…….”
“어차피 극복해야 할 문제야. 이걸 극복하지 못하면, 평생 예전의 모습을 찾지 못할 거야. 그래도 괜찮아?”
“그건…….”
세운을 말리려 그의 옷깃을 잡아당기던 튜리크의 손에서 스르르 힘이 빠졌다.
그녀도 이대로라면 포저가 영원히 예전의 모습을 찾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말해 봐. 무슨 일이 있었지?”
“히익! 아, 안 돼! 오지 마…….”
세운이 포저에게 다가가 검은 액체를 앞으로 내밀었다.
더 이상 도망갈 공간이 없음에도 포저는 벽을 뚫을 기세로 몸을 꿈틀거리며 검은 액체에게서 도망치려 했다.
이내, 세운이 만들어 낸 끈적한 검은 액체가 포저의 몸에 닿았고.
“흐아아아아아악!”
포저가 몸을 버둥거리며 비명을 내질렀다.
과거의 악몽을 직접 극복하게 해 주는 게 가장 빠른 돌파법이라 생각했는데, 저 모습을 보니 조금 과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포저가 이성을 되찾을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이대로라면 포저가 망가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법을 취소하려던 중…….
“포저, 힘내. 내가 옆에 있잖아. 내가 지켜줄게.”
“튜, 튜리크…….”
튜리크가 다가와 포저의 왼손을 잡아주었다.
버둥거리던 포저가 일순간 움직임을 멈추더니 아주 조금씩 진정하기 시작했다.
“나의 아이야. 걱정하지 말렴. 이제 다시는 널 놓치지 않겠단다.”
“어머니…….”
물의 정령왕 엘퀴네스가 포저의 오른손을 잡으며 그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양쪽에서 전해지는 따스한 온기에 포저의 떨림이 완전히 사라졌다.
포저는 입술을 질끈 물고 자세를 바로잡아 세운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당당히 검은 액체를 마주하며 손을 들어 올렸다.
“기, 기억나요…….”
포저의 손이 검은 액체에 닿았다.
이걸로 과거의 트라우마는 극복했을 거라 생각한 세운이 마법을 취소하자, 검은 액체가 주룩 하고 쏟아져 거짓말처럼 사라져 갔다.
마치, 포저의 트라우마가 사라지듯이 말이다.
“폐왕…….”
포저의 입에서 세운이 내뱉은 것과 같은 이름이 들려왔다.
이에 원탁을 둘러싸고 있던 정령왕들의 눈이 크게 뜨이고, 엘퀴네스가 장하다는 듯이 포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기를 폐왕이라고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으으…….”
“괜찮단다. 천천히 말하렴.”
“네, 네……. 새까만 것들이 절 둘러쌌어요. 제 몸에 들어오려고 했어요.”
“세상에…….”
“검은 욕조에 절 빠트리기도 하고, 가시로 제 몸을 찔러서 새까만 걸 집어넣기도 했어요.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너무 무서웠어요.”
“이런, 감히! 우리 아이를!”
“진정해라, 트로웰.”
“우리도 참고 있는 거 안 보여?”
세운의 추측이 맞았다.
회귀 전에도 진행되었던 일인지, 이번에 새롭게 진행된 일인지는 모른다.
회귀 전의 세운은 정령과 연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아우터가 탑의 천장을 무너트리기 전까지 그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도망치고 싶었어요. 저 사슬 때문에 몸이 움직이지 않았지만, 너무 괴로워서, 너무 힘들어서, 도망치고 싶었어요.”
포저가 세운의 손에 들린 부정의 족쇄를 가리켰다.
어쩐지 영 찜찜하다 싶었는데, 이게 폐왕의 물건이었을 줄이야.
“그렇게 세기 어려울 정도의 시간이 지났어요.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다…… 기억을 잃게 되었어요.”
“기억나는 게 전혀 없니?”
“네. 그 이후로도 괴롭고 불쾌한 감정이 남아 있긴 하지만, 떠오르는 기억은 없어요. 바로 다음으로 기억나는 게 절 구하러 와준 튜리크의 목소리였는걸요.”
아쉽게도 포저가 기억하고 있는 내용은 별로 없었다.
세운이 생각해 낸 추측이 정답이라는 것은 증명할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의 정보는 알아낼 수 없었다.
포저의 말이 끝나자, 자리에 앉아 가만히 화를 억누르고 있던 트로웰이 참지 못하고 일어섰다.
그러고는 세운을 향해 거칠게 다가와 양쪽 어깨를 붙잡으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폐왕, 아우터! 그놈들은 뭐냐! 어디 있는 놈들인가!”
“트로웰!”
“진짜, 언제 철들려고 저러는지.”
“죄송해요. 하지만, 저희도 묻고 싶은 질문이에요.”
정령왕들이 트로웰의 과한 행동을 말렸지만, 그 마음만은 같아 보였다.
여기부터는 세운의 설명이 필요한 타이밍이다.
‘정령왕을 아군으로 들일 수 있다면, 충분히 남는 장사지.’
세운은 정령왕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아우터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그럼, 그것들의 목표는…….”
“탑의 지배. 또는 멸망입니다. 아마, 탑뿐만이 아니라 모든 차원을 대상으로 하는 목표겠죠.”
세운의 설명이 끝났다.
회귀를 포함하여 말하기 어려운 부분은 빼고, 최대한 간결하게 설명을 이어갔는데도 설명하는 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다행히도 설명하는 동안 트로웰이 말을 끊는 일은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트로웰이 입을 열려고 할 때마다 미네르바가 나서 그 입을 막아주었다.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군.”
“잠깐. 물의 아이가 당한 일은 믿지만, 저놈이 말한 말은 검증할 필요가 있지 않나? 우리를 이용하기 위해 거짓말을 섞었을지도 모른다.”
“트로웰, 너 아직도…….”
“괜한 신경질을 부리는 게 아니다. 중요한 일인 만큼 확실하게 하자는 말이다.”
심각한 사안이기 때문일까? 트로웰은 더 이상 세운을 향한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흙의 정령왕이라는 명칭답게 무겁고 단단한 눈빛으로 진중하게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네르바가 의외라는 듯이 트로웰을 바라보았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하지만, 증명할 방법이 없지 않나.”
“정령은 거짓말을 하지 못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으니.”
“시간도 별로 안 남았고.”
인간의 거짓말을 판별할 방법이 뭐가 있을까?
정령왕들이 난색을 보이던 중, 포저를 쓰다듬어 주고 있던 튜리크가 돌연 대화에 끼어들었다.
“허락해 주신다면, 제 동생들을 데려와도 될까요?”
“동생?”
“네. 제 동생들이라면 주인의 말을 증명할 수 있어요.”
“그게 무슨…….”
“그렇게 하여라.”
“엘퀴네스. 이 이상 정령을 불러온다면 원탁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더욱 짧아진다.”
“그러니 더욱 확실히 해야죠. 이대로 어영부영 시간을 끄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동의하지.”
“나도.”
“……크흠. 알겠다.”
네 정령왕이 동의하기가 무섭게 튜리크가 들어왔던 수정문이 열렸다.
튜리크가 그 앞에 서서 날개를 펼치더니 사색의 빛무리에 보랏빛을 섞어 넣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언니.”
“누나.”
수정문의 빛무리를 통해 두 정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둘이 남매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각각 하나씩 왼쪽 날개와 오른쪽 날개를 가지고 있는 두 정령.
둘은 마치 일반 정령이 정령왕에게 고개를 숙이듯 튜리크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하긴, 튜리크는 상위 정령이니까.’
얼마 전, 쌍둥이 자매와 함께 시련 내에 건축물을 지으며 튜리크의 공포가 인정받아 상위 정령으로 승급한 적이 있었다.
덩달아 정령계에 공포의 영역이 확산한다는 메시지도 떠올랐었는데, 아무래도 그 덕분에 정신계 정령 중 일부를 받아들인 게 아닌가 싶었다.
“진실의 아이와 거짓의 아이라.”
“확실히, 둘이라면 인간의 말을 증명할 수 있겠군.”
“정령은 거짓말을 할 수 없으니까. 설사 거짓의 정령이라 하더라도.”
정령왕들의 대화를 통해 튜리크가 데려온 두 정령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튜리크가 상황을 설명해 주자 두 정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세운의 앞에 섰다.
“오빠는 진실을 말하고 있었나요?”
“그래.”
세운의 대답과 함께 오른쪽 정령의 한쪽 날개가 반짝였다.
“형은 거짓을 말하지 않았나요?”
“전부 사실이다.”
이번에는 왼쪽 정령의 한쪽 날개가 반짝였다.
손을 잡고 있는 두 정령이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네 정령왕 모두 세운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대단한데? 중앙의 정령들은 완전히 중립이잖아. 우리도 특별한 일이 아니면 건드리지 않는데.”
“그만큼 불안정한 곳이고, 불안정한 아이들이니까.”
“그 아이들을 완벽하게 다루고 있다는 거잖아?”
“확실히, 대단하군.”
네 정령왕이 튜리크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정령을 데려온 게 세운의 생각 이상으로 대단한 일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애초에 적은 시간에 새로운 정령들까지 데려왔으니 시간이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지금 당장만 하더라도 주변의 수정 벽이 점점 흐릿해지고 있으니.
이에 엘퀴네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럼, 결론을 내리도록 해야겠죠.”
원탁의 회의에 마침표가 찍힐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