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47)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47화(447/675)
제 447화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갑작스럽게 당신과의 연결이 끊겨 불쾌감을 드러냅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당신에게서 풍겨오는 자연의 냄새를 알아챕니다.
– 성좌, ‘잠자는 산양’이 정령까지 끌어들일 줄은 몰랐다며 한층 더 커진 스케일에 감탄합니다.
가장 먼저 보인 건 마신들이 보내온 메시지였다.
차원의 틈새에서 나눈 회의답게 성좌들과의 연결이 끊겨 있었던 것 같았지만, 벨페고르만은 세운이 한 행동을 파악하고 있었다.
수면을 통해 탑에서 이루어지는 거의 모든 일을 파악하고 있는 그녀였지만, 차원의 틈새에서 일어난 일들까지 이렇게 즉각 반응하다니.
절로 감탄이 나오는 정보 습득 능력이었다.
“이렇게나 짙은 정령의 향기라……. 역시, 정령왕에게 불림을 받은 것이구나.”
눈앞의 메시지를 치우자 곧바로 수호목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아우터의 습격 사건 때문인지 세계수의 새싹 옆에 찰싹 붙어 대궁을 들고 언제든지 기습에 대비할 수 있도록 화살을 메기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운의 옆으로 뒤늦게 리엘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
그녀의 손에는 아직까지 사색의 빛무리가 남아 있었다.
정령왕과의 계약은 단순히 정령왕을 불러낼 수 있는 자격만이 아니라 정령사의 힘 그 자체를 올려준다.
아마, 그녀는 지금 네 정령왕과 계약하고 처음 느껴보는 방대한 힘에 적응하는 중이리라.
“대단하구나, 정령왕과의 계약이라니…….”
수호목 역시 리엘의 힘을 느끼고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잠시 후, 사색 빛무리를 완전히 흡수한 리엘의 옆으로 그녀의 네 정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 리엘!
– 와, 엄마가 직접 나올 줄은 몰랐어.
– 우리 아빠도. 고집 세기로 유명한데.
– 나도!
“어…… 어?”
그런데, 그녀의 옆에 나타난 정령들의 모습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힘은 강해도 하급 정령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 어? 너 날개 생겼어!
– 우와! 진짜다!
– 뭐지? 넌 갑자기 개가 됐는데?
– 착한 용!
이전에 보았던 꼬마 정령의 형상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물의 정령은 성숙한 늑대의 형상을 하고 있었고, 불의 정령은 작은 드래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바람의 정령은 멋들어진 독수리 같았고, 땅의 정령은 두더지처럼 날카로운 손톱이 생겨났다.
정령왕의 계약과 함께, 그녀와 계약을 맺은 네 정령 모두 계급이 오른 것이다.
“축하하네. 엘프의 마지막 후예여.”
“감사해요…….”
– 와, 축하해!
– 나도 축하해!
– 나 꼬리 생겼어!
– 오, 오오!
그녀의 정령들은 안 그래도 하급 정령답지 않게 강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거기서 한 번에 몇 단계나 승급해 버리다니.
당장 정령왕을 소환하지 못하더라도 그녀의 힘은 세운이 보았던 그 어느 정령사보다 뛰어날 것이 분명했다.
뭐, 다른 정령들과 달리 그녀의 정령들은 계급이 올라도 성격은 똑같아 보였지만 말이다.
힘이 얼마나 강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힘과 저 성격으로 사고라도 치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아마, 당분간은 정령들의 힘을 알아가고 제어하는 데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얘들아, 잠깐…….”
– 너무 신기해!
– 와, 이것 봐! 이렇게 날 수도 있어!
– 크앙!
– 와, 진짜 용 같아!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정령들이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새롭게 변한 모습과 새롭게 얻은 힘을 신기해하며 아무렇게나 써보고 있는 것이다.
당황한 리엘이 다급히 정령들을 말리려던 중, 세계수에서 새로운 이변이 시작되었다.
촤아앗!
세운과 리엘을 끌어당겼을 때처럼 세계수의 주변에서 사색 빛무리가 일렁였다.
그러고는 익숙한 기운이 흘러나오며 그 안에서 수십의 정령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 와!
– 밖이다!
– 신기해!
– 두근두근!
– 하늘 봐, 새파래!
본래 정령계에 있어야 했을 하급 정령들.
정령왕들이 리엘과 나누었던 계약대로 화원을 관리하기 위해 우선 하급 정령들을 이쪽으로 보내고 있었다.
다만, 그들은 하급 정령답게 전부 어린애나 다름없었다.
네 아이의 보호자에서 순식간에 어린이집의 원장이 되어 버린 리엘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졌다.
– 저거 봐, 나무가 부러져 있어.
– 불쌍해.
– 우리가 일으키자.
– 저기, 꽃도 죽어 있어.
– 내가 땅을 메울게!
– 엄마가 화원을 잘 가꾸랬어.
– 나는 물을 줘야지!
다행인 점이라면 하급 정령들에게 명확한 목표가 있다는 점이었다.
하급 정령들이 목표 없이 날뛰어 혼란이 벌어질 것을 우려한 것인지, 정령왕들이 그들에게 미리 화원에 대해 언질을 준 것 같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세운이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냈다.
“리엘.”
“네…….”
“네 정령들에게 저 하급 정령들을 지휘하라고 하면 어때?”
“그, 어렵지 않을까요? 덩치는 커졌어도 성격은 여전한 것 같아서.”
“그러니까 더 그런 거지. 원래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잖아? 하급 정령들을 지휘하다 보면 책임감을 느끼지 않겠어?”
“아, 확실히 그렇네요. 좋은 방법이에요.”
정령들의 교육에 하급 정령들의 관리까지, 일거양득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이었기에 잠시 고민하던 리엘이 각오에 찬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바로 정령들을 불러 진지한 표정으로 의견을 내뱉었다.
다행히도, 정령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 와, 좋아!
– 그럼 내가 선배가 되는 거야?
– 선배? 나도 선배야? 우와!
– 착한 선배! 멋진 선배!
일은 리엘의 생각 이상으로 좋게 흘러갔다.
정령계는 철저한 계급 사회.
네 정령이 힘을 드러내자마자 화원 전체에 어지럽게 퍼져 있던 정령들이 속성별로 일사불란하게 모여들었다.
– 내가 선배야!
– 선배님!
– 지금부터 화원을 가꿀 거야!
– 네!
– 우선 우리는 땅을 메우고, 땅을 건강하게 해야 해. 알겠지?
– 네, 선배님!
– 좋아!
질서가 정리되자 하급 정령들이 화원을 가꾸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네 정령은 세운과 리엘의 생각보다 지휘자의 역할을 훨씬 잘 수행하고 있었다.
어린이집의 원장 격이 되어 고통받을 뻔했던 리엘은 네 명의 선생님을 부리며, 아니, 네 정령의 도움을 받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바로 반응이 오네.”
“네?”
“세계수.”
“아…… 와.”
비록 하급 정령들이라지만, 그들의 힘은 생각 이상이었다.
아우터의 습격으로 훼손되었던 영원의 화원이 빠르게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 갔다.
특히, 세계수의 씨앗이 충만한 정령의 기운을 받아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물론 아직 새싹이기에 그 효과가 극대화된 것도 있겠지만, 이 상태라면 엘퀴네스가 말한 것보다 시간을 더욱 단축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한동안은 화원을 지키고 있어야겠네.”
“네. 최소한 위급할 때 정령왕님 중 한 분이라도 현신할 수 있을 정도로 세계수가 자라야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시간은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정령왕님들도 확신을 못 했지만, 아마 빨라도 몇 달은 걸리지 않을까요?”
“그렇겠네. 그리고, 너도 여기 있는 게 힘을 기르기 더 좋겠지.”
“정령력이 이렇게 충만한 곳은 이곳 말고는 없으니까요. 제 아이들도 많이 성장해서 힘에 익숙해질 시간도 필요하니 시간을 꽤 보내야 할 것 같아요. 당신은요?”
“난 먼저 올라가야지.”
영원의 화원에서 생각 이상의 이득을 얻었다.
아우터가 정령에게 침식할 수 없다는 정보를 넘어 정령계 전체의 지원을 약속받게 된 셈이니까.
비록 세계수가 어느 정도까지 성장하여 정령계와의 통로가 확보되고, 문이라 할 수 있는 리엘이 함께해야 한다지만 만약 아우터와의 전투에서 네 정령왕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그만큼 든든한 아군이 또 없을 것이다.
“먼저 올라가 있어요. 계약이 아니더라도, 당신에게 입은 은혜는 꼭 갚을 생각이니까요.”
“기대할게.”
“일단 공적치라도 좀 드릴까요? 정보를 구하고 돌아다니느라 많이 남지는 않았어도 시련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느라 꽤 남아 있어요.”
“됐어. 공적치는 나도 많으니까 나중에 제대로 갚아.”
“아쉽네요. 부담감 좀 덜어내려 했는데.”
“이런 걸로 덜면 안 되지.”
“장난이에요, 장난.”
이로써 세운이 할 일은 끝났다.
굳이 시간 끌 필요 없이 돌아서려던 중, 세계수의 성장 촉진에 도움이 될 만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잠깐 지팡이 좀 빌려주겠어?”
“네? 지팡이는 왜요?”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 잠깐이면 충분해.”
“음, 알겠어요. 당신이니까 빌려주긴 할 텐데, 소중히 다뤄주세요.”
리엘이 자신의 지팡이를 건네주었다.
위그드라실의 가지.
그녀가 튜토리얼의 보상으로 획득한 무기이며, 세운이 제헤튼에서 상위 정령 마법인 ‘근원의 바람’을 인챈트한 무기였다.
‘이 정도면 충분히 버티겠지.’
무려 세계수의 가지로 만들어진 지팡이다.
리엘이 소중하게 다뤄달라고 신신당부했지만, 이 정도 지팡이라면 검사를 상대로 맞대결을 펼쳐도 어지간하면 손상되지 않을 거다.
그 튼튼한 내구력을 믿으며, 세운이 탐욕의 권능을 발현하였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싱그러운 봄, 이스터 ]– 봄의 여신으로서 생명과 출산, 새벽을 관장한다고 알려진 에오스트레가 봄의 첫 나뭇가지와 꽃잎을 엮어 만들었다는 지팡이.
리엘의 지팡이 끝에서 갖가지 꽃이 피어났다.
지주 부근에서는 파릇파릇한 새싹이 피어나고, 본래의 밝은 갈색에서 갓 올라온 새싹처럼 푸른색으로 물들었다.
“위그드라실의 가지가…….”
리엘이 놀라워하며 손을 뻗으려던 찰나, 세운이 이스터의 힘이 깃든 지팡이를 눈앞의 대지에 힘껏 꽂았다.
그러자 지팡이와 대지의 연결 부근에서 살아 있는 나무처럼 뿌리가 자라났다.
– 위그드라실의 가지가 ‘이스터’에 잠든 봄의 기운을 터트립니다.
– ‘이스터’를 통해 봄의 입춘의 새벽녘이 재현됩니다.
지팡이의 위에서 자색의 꽃이 활짝 피었다. 그러더니 꽃잎이 폭발하듯이 터져 올라 하늘을 뒤덮었다.
일순간 반투명한 자색의 꽃잎에 햇빛이 통과되어 화원을 새벽녘처럼 어슴푸레하게 물들였다.
“아름답네요…….”
– 와, 예뻐!
– 뭐야, 뭐야?
– 어두워졌어!
– 신기하다, 왜 어두워지지?
하급 정령들이 신기한 듯이 방방 뛰어다녔다.
그들의 반응을 보니 정령계에는 낮, 밤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가 싶었다.
하늘을 수놓았던 꽃잎은 이내 나풀거리며 지상으로 떨어졌고.
스스스-
지면에 닿자마자 또 한 번의 변화를 일으켰다.
세계수에게 힘을 제공하느라 시들어 가던 영원화에 이슬이 맺히더니 다시금 본래의 생생한 모습을 되찾았다.
정령들이 재건하고 있던, 짓밟힌 영원화가 있던 자리에서도 새로운 영원화가 피어났다.
무엇보다 세계수의 새싹이 기쁜 듯이 살랑거리며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한 건가요?”
“아마 힘이 다할 때까지는 계속 유지될 거야. 웬만하면 그다음에 빼.”
“네, 감사해요! 정말로.”
“지팡이한테는 이상 없을 거야. ……아마도.”
“네?”
“나 먼저 간다.”
“네? 아니, 잠깐. 방금 아마도라고.”
“다음에 봐.”
세운이 등을 돌리기 전, 리엘이 지팡이 앞에 서서 당황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불안한지 당장 지팡이를 뺄까 싶다가도, 세운의 말이 마음에 걸려 중간에 뺐다가 오히려 이상이 생길까 봐 섣불리 건드리지도 못한다.
‘버티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세운은 세계수의 가지가 이거 하나 못 버티겠냐는 생각으로 완전히 등을 돌렸다.
만족스러운 성과를 얻었으니, 이제 65층의 시련을 마무리 지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