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49)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49화(449/675)
제 449화
“이러면 무승부로 봐야겠지?”
“……쳇.”
“아쉽네요. 조금 더 일찍 만났으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었을 텐데.”
세운과 유서아, 강한철은 거의 동시에 지천목의 기둥 위로 손을 내밀었다.
자격의 지천목이라는 그 누구보다 공평한 심판이 존재했지만, 지천목이 평가하는 내용은 누가 더욱 강한가, 따위가 아니었다.
심지어 세 명 모두 지천목의 코앞에 있었기에, 나아간 거리로 지천목의 평가 차이를 확인할 수도 없었다.
결국 잠재력을 인정받으며 세 명이 동시에 지천목 앞에 도달했고, 무승부로 결말을 지어야만 했다.
– 65층의 시련 ‘자격의 지천목(指天木)을 향하여’를 훌륭하게 완수하였습니다.
– 공적치 집계 중…….
– 히든 퀘스트 ‘영원의 화원’ 완료.
– 히든 퀘스트 ‘흔들린 지천목’ 완료.
…….
– 총 누적 공적치 1,000,000point
– 축하드립니다! 65층의 시련을 랭킹 1위로 통과하였습니다.
– 보상으로 100,000point를 획득하였습니다.
비록 도착하는 순간은 같았어도, 시련 자체는 세운의 1등으로 끝났다.
애초에 일반적인 플레이어라면 넘볼 수 없는 ‘영원의 화원’이라는 숨겨진 요소를 극복한 덕분이었다.
“이다음은 거주지에 들를 거라고 했었죠?”
“그래. 정비할 것도 있고, 다음 길드전을 대비해서 거주지를 다시 살펴보기도 해야 하니까.”
“다행이네요. 솔직히 좀 제대로 쉬고 싶었거든요. 어떻게 관리하고는 있는데, 벌레 체액 냄새가 안 사라져서…….”
“나약하군.”
“한철 씨는 좀 씻어요. 지금 꼴이 말이 아닌 거, 알아요?”
“어차피 씻어봤자 몬스터를 상대하면 또 더러워질 뿐이다.”
“그러니까 쉼터에서라도 좀 씻으라는 거죠.”
그러고 보니 둘의 꼴이 말이 아니다.
유서아는 어떻게 관리하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나름 깔끔한 편인데, 냄새나 사소한 부분까지는 신경 쓰지 못한 듯했고.
강한철은 전신에 벌레의 체액과 몬스터의 혈액, 먼지 같은 것들이 엉겨 붙어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세운이야 클린 샤워 마법으로 청결을 관리할 수 있다지만, 둘은 그게 아니었으니까.
“강한철, 넌 좀 심해 보이긴 하네.”
세운이 손을 뻗어 둘에게 클린 샤워를 시전해 주었다.
유서아는 냄새가 지워진 것 같다며 좋아했지만, 강한철은 쓸데없는 짓이라며 혀를 찼다.
“이건 임시방편이니까 거주지에서 제대로 씻어.”
이전에 흑십자 길드와 싸우며 거주지가 크게 훼손되었지만, 이후에 쌍둥이 자매가 노력한 덕분에 기본적인 시설은 전부 복구되었다.
그중에는 당연히 목욕 시설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니…….
“가자.”
“대련은?”
“일단 좀 제대로 씻어. 그러면 생각해 볼 테니까.”
세운을 포함한 셋은 잠깐의 휴식 시간을 가지기로 하였다.
* * *
당연하게도, 거주지는 텅 비어 있었다.
강한철이 대련을 재촉했으나, 컨디션부터 되찾자는 핑계로 휴식을 취하며 세운은 65층까지 일어난 일들과 앞으로의 계획을 떠올렸다.
‘영원의 화원에서 얻은 게 많아.’
정령왕의 지원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듬직한 아군이다.
비록 세계수가 성장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직접 대면한 정령왕들의 힘은 성좌들과 맞먹을 정도였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그들은 플레이어나 성좌들과 달리 아우터에게 침식당하지 않는다는 이점이 있었다.
‘그렇다고 아우터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화원에서 리엘은 네 정령의 힘으로 만들어 낸 거검으로 아우터를 갈라냈었다.
당시에는 너무 급한 상황이라 세운이 즉각 나서서 아우터를 마무리 지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아쉽기도 하다.
아우터는 언제든지 마주칠 수 없는 적이다. 그러니 당시가 정령의 힘으로 아우터를 처리할 수 있는지 확인할 기회였으니 말이다.
‘그때는 아우터가 정령을 침식할 수 없다는 것도 몰랐으니, 어쩔 수 없지.’
리엘이 정령의 힘으로 만든 거검으로 아우터를 갈라낸 것부터가 아우터에게 평범한 공격 이상의 데미지를 입힐 수 있다는 증거긴 한데…….
그 이상은 알아낼 수가 없었다.
만약 정령의 힘이 아우터에게 침식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데미지도 입힐 수 있다면 완벽하겠지만, 그게 아닐 경우도 대비해 둘 필요가 있었다.
– 주인, 무슨 생각 해?
“아니야. 아, 정령계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좀 알려줄래?”
– 응!
그리고 당장 실험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튜리크도 정령이었으니 다음에 아우터를 만났을 때 튜리크가 아우터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는지 확인할 수도 있으니까.
당장 튜리크가 공포의 힘 말고도 아우터에게 타격을 입힐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지만, 그거야 차차 알아가면 될 일이었다.
– 처음 정령계에 도착하자마자 포저를 데리고 동쪽으로 향했거든. 그때 엘레스트라 분들이 찾아와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튜리크가 정령계에서 일어난 일들을 조잘조잘 읊어댔다.
그중에는 이번 포저 사건과 연관된 일 말고도, 튜리크가 성장하며 얻은 힘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원탁에서 진실의 정령과 거짓을 정령을 괜히 불러들인 게 아니었다.
그녀는 네 정령왕도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못하고 있는 정령계의 중앙에서 착실하게 자신의 구역을 넓히고 있었다.
그녀를 따르는 정신계 정령의 수가 벌써 수백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대견하네.”
– 응, 다 주인 덕분이야!
한층 밝아진 튜리크의 대답에 세운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보랏빛 날개가 작은 새의 그것처럼 파닥거렸다.
‘튜리크가 돌아왔으니 다음 계획도 바로 진행할 수 있겠어.’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앞으로 다가올 일에 한숨을 내쉽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습니다.
리엘과 함께 영원의 화원에 들러 세계수를 심는다는 계획은 성공했으니, 다음은 하나.
‘릴리스.’
칠대 마신 중 하나인 색욕의 마신, 릴리스를 만나러 갈 차례다.
마신들의 반응이 영 불안하긴 해도, 세운에게 적대적일 것 같지는 않으니 충분히 좋은 계약을 이뤄낼 수 있으리라.
그녀가 무슨 힘을 가지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상 마신들의 권능은 하나하나가 모두 상식 외의 것들이었다.
그게 무슨 능력이든지 아우터를 상대하는 데 큰 힘이 될 터였다.
“튜리크, 우리 같이 합 좀 맞춰볼까?”
– 좋아!
“루인, 너도.”
– 크릉.
그전에, 일단은 정령계에 다녀오며 더욱 성장한 튜리크의 힘을 확인해 볼 차례였다.
이 순간.
“강한철.”
“대련인가?”
강한철은 세운의 훌륭한 샌드백. 아니, 대련 상대가 되어주었다.
* * *
이제는 더 이상 지도할 필요성이 없어진 강한철과 유서아.
둘과의 대련을 이어가며 세운은 튜리크의 발전한 힘을 세세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튜리크는 물론이고 루인 역시 성흔이 강화된 여파로 전체적인 능력치가 올라 있었다.
“튜리크.”
– 성흔이 혈랑전설의 설화에 반응합니다.
– 성흔의 첫 번째 능력, ‘공포’가 깨어납니다.
“크윽!”
튜리크가 돌아온 덕분에 강화된 공포의 힘은 플레이어 중에서도 상당히 강한 편에 속하는 강한철의 움직임마저 일순간 경직시킬 정도였다.
물론 강한철은 무식하게 힘으로 공포의 힘에 저항하며 금방 경직을 떨쳐냈지만, 잠깐의 빈틈이 생기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무엇보다 특별한 점은.
“대단한데?”
– 고마워!
공포의 정령으로서 성흔이 가진 공포의 힘을 증폭시키거나 세운에게 날개를 주는 것 말고도 튜리크에게 새로운 능력이 생겼다는 점이었다.
그 덕분에 다음 아우터를 마주쳤을 때 ‘정령이 아우터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입힐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렇게 둘과의 대련을 이어가던 중.
“이 몸, 등장!”
“짜란!”
“형니이이임!”
“마스터, 계셨습니까.”
65층까지의 시련을 마친 디아블로 길드원들이 거주지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64층까지의 힘겨운 전투를 이어가느라 전부 꼴이 말이 아니었다.
신기한 점은, 길드원 대부분이 65층의 시련은 생각보다 쉽게 통과했다는 점이다.
‘원래는 65층이 가장 시간을 오래 잡아먹는 시련인데.’
자격의 지천목에게 인정받아 앞으로 나아간다.
너무나도 주관적인 시련 목표이기도 하고, 자격을 증명한다고 한 번에 시련에 통과하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는 온갖 방법을 총동원하여 앞으로 나아가고도 무슨 잠재력으로 인정받은 것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65층에 다다른 플레이어들은 지천목의 앞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며 오랜 시간을 고통받게 된다.
그에 반해.
“엥? 거기 뭐 없던데요? 옆에서 한 명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기어가고 있길래 슬쩍 주머니 좀 털었더니 앞으로 나가지던데. 흐흐, 뭐 털었는지 보시겠습니까? 이게 아주…….”
–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가 주머니가 털리고도 시련에 의해 계약자를 따라오지 못하고 바락바락 소리 지르던 인간의 모습을 떠올리며 웃음을 터트립니다.
“저도 딱히 어렵지는 않았어요.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조금 도왔는데, 나가지더라고요.”
“우리도!”
“우리가 가는 게 아니라, 지천목이 알아서 다가와 주는 거 같던데?”
“아쉬웠습니다. 샘플이 하나도 없다니. 아쉬운 대로 시간을 절약할 김에 얻어온 샘플을 분석하다 보니 금방 도착했습니다.”
모두 방법은 달라도, 각자의 개성을 통해 지천목에게 쉽게 인정받은 듯하다.
게다가 많은 몬스터를 사냥한 덕분인지, 다섯 개의 시련을 돌파했을 뿐인데 전체적인 전투력이 크게 강해진 느낌이다.
모두의 얘기가 흥미로웠지만, 세운이 가장 먼저 찾아간 대상은 디아블로 길드의 대장장이. 이제는 마장이라 불리게 된 고창석이었다.
“어르신.”
“허허, 오랜만일세. 자네는 어째 볼 때마다 더욱 강해지는 것 같아.”
“시련은 어렵지 않으셨습니까?”
“망치질을 하다 보니 힘 하나는 자신 있어서 말일세.”
기본적으로 생산계라 불리는 고유 스킬과 능력을 가진 플레이어들은 탑을 등반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탑이 아무리 모든 능력을 골고루 평가한다고 해도, 결국 메인이 되는 시련은 대부분 전투와 관련이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디아블로 길드원들은 그러한 약점이 전혀 티 나지 않았다.
고창석이나 쌍둥이 자매 등, 모두가 어지간한 플레이어 이상으로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며 시련을 통과하고 있었다.
특히 고창석은 디아블로 길드에서 세운을 빼면 강한철 바로 다음으로 근력이 강한 편이었다.
“사실, 아무리 공평하게 해 주어도 내 장비가 가장 좋은 덕도 있지 않겠나.”
고창석의 전투 장비는 기본적으로 전신 갑옷과 전투 해머.
최고의 소재를 이용하여 자신에게 딱 맞는 장비를 만들어 낼 수 있으니, 힘이 넘쳐나지 않더라도 약할 수가 없다.
다시 보아도 놀라울 정도로 잘 만들어진 그의 장비를 바라보며, 세운이 본격적으로 본론을 거론하였다.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도와야지. 말만 하게.”
와르르.
“흠, 나름 튼튼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미안하구먼.”
“아닙니다. 그래도 한 번은 힘을 발휘할 수 있었으니까요.”
세운이 꺼낸 건 부서진 무기의 잔해였다.
히든 던전, 아룬의 뿌리 감옥에서 죄인들의 영을 베어내기 위해 탐욕의 권능을 사용해 데스 사이드를 깃들게 했던 대낫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고창석이 만든 건 아니지만, 최근 자주 사용하던 무기인 배반자의 양날 도끼도 부서졌다.
뒤랑달이 놀라울 만큼 튼튼한 덕분에 체감되지 않을 뿐이지, 어지간한 무기는 탐욕의 권능이 가진 힘을 버티기 버거워했다.
“이거 문제구먼. 내 실력도 실력이지만, 기본적으로 강한 소재가 없으면 그 이상의 내구력을 가진 장비를 만들어 낼 수 없다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와르르.
세운이 다시 한번 아공간 주머니의 물건들을 쏟아냈다.
61층부터 65층까지 도달하며 각종 히든 던전을 휩쓸고, 해충과 우두머리 등의 강력한 몬스터를 쓰러트리며 얻은 소재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사실 저게 제일 맛있는 부위가 아니었냐며 침을 줄줄 흘립니다.
“허어……!”
“아낌없이 써도 되니, 튼튼한 무기들 좀 만들어 주시겠습니까?”
과연, 대장장이라는 것일까?
고창석은 경매장에서도 보지 못했던 희귀하고 강한 소재들을 바라보며 눈을 크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