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51)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51화(451/675)
제 451화
“루인, 산책할까?”
– 크릉!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는 디아블로 길드의 거주지.
그곳에서 유일하게 여유로운 자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아르카나였다.
뭐, 여유롭다고는 하나 그녀가 하는 일이 아예 없는 건 또 아니었다.
전직 랭커였던 노련함을 살려 적절한 조언이나 도움만으로도 디아블로 길드에게 큰 도움이 되었으니까.
실제로 그녀의 도움을 받은 이들도 많았고, 그녀가 얼마나 강한 실력을 갖췄는지도 알고 있었기에 디아블로 길드원 중에서 그녀를 무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머, 오늘도 바쁘시네요?”
“그렇지, 루인은…….”
“오늘은 좀 더 힘들게 놀아주려구요. 어제는 혀까지 내밀고 허덕였는데, 못 봤죠? 엄청 귀여웠는데.”
“루인이?”
루인이 혀를 내밀고 허덕였다니. 극한의 전투 상황이나 오랜 소환 상태에서도 그런 적은 없었는데.
그녀의 말이 진짜인가 싶어서 고개를 돌려보니 루인은 세운의 시선을 묘하게 피하는 중이었다.
저러고 있으니 오히려 더욱 그녀의 말에 신빙성이 생겨난다.
“뭐, 오늘도 부탁해.”
“부탁이라뇨, 저도 재밌어서 하는 건데요~”
루인을 그녀에게 맡기는 데에는 큰 이점이 있다.
루인 스스로가 다양한 행동을 하게 만들어 행동의 폭을 넓히고 자신이 행할 수 있는 일들의 한계를 느끼게 해 주는 등, 루인의 자아는 물론이고 신체 능력까지 상승하고 있었다.
거기에 또 하나.
‘최근에는 떨어져 지낼 수 있는 최대 반경까지 알아냈지.’
이건 지금까지 신경 쓰지 않아서 모르고 있었던 건데, 루인을 아르카나의 곁에 두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보니 거리에 따른 신성 소모량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따로 루인과의 최대 반경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일정 거리 이상 벌어지면 소모되는 신성의 양이 세운이 소지한 신성의 총량을 초월해 버려 강제 역소환이 되어 버린다.
결국, 신성이 허용만 한다면 루인과 아무리 떨어져도 소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질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루인이 세운과 가까울수록 소모되는 신성의 양이 줄어든다.
그중에서도 특히 루인이 세운의 무기에 깃드는 상황에서는 그 효율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었다.
아르카나와의 놀이 덕에 이런 다양한 것들을 얻고, 알아낼 수 있었다.
“이번에는 너무 오래 쉬는 거 아닌가요? 쉼터도 아니고 거주지인데.”
“그럴 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왜, 지겨워?”
“슬슬 지겹긴 하네요~ 시련에서는 혼자 다닐 거라 신신당부를 해 둬서 따라다니지도 못했잖아요?”
“어쩔 수 없었어.”
“그럼 다음 시련은 괜찮은 건가요?”
“딱히 상관은 없는데, 아마 못 따라올걸.”
“어머, 절 무시하는 건가요? 저, 그렇게 약하지는 않은데~”
“강하고 약하고의 문제가 아니야.”
다음 쉼터에 도착하기 전, 세운의 가장 큰 목적이자 계획은 색욕의 마신을 만나는 것이었다.
아직 색욕의 마신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아르카나를 끼고 만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아무리 그녀라도 동행은 무리일 거라 판단합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색욕의 정체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쉽니다.
“그래도 뭐, 만족해요.”
“뭐가?”
“이 생활이요. 뭔가, 다들 파릇파릇한 새싹 같아서 키우는 맛이 있달까요?”
“키우긴 누가 키운다고.”
“하나같이 잠재력도 쓸 만하고. 어디서 이런 애들을 데려왔나 신기할 정도라니까요?”
“딱히 데려온 게 아니야. 몇 명을 빼면 전부 튜토리얼 때부터 함께 시작한 동료들이니까.”
“그럼 잠재력이 높았다기보단, 늑대 씨가 잠재력을 잘 키워준 거네요. 그런 것처럼 안 보였는데, 육성에도 재능이 있나 봐요?”
잠재력이라.
생각해 보면 튜토리얼에 참가한 모든 플레이어가 높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물론 현세에서 높은 잠재력을 가진 이들이 선발되어 탑에 초대된 걸지도 모르지만, 애초에 그런 식이라면 낙오되는 플레이어가 없어야 정상이다.
세운의 의도는 길드원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려는 게 아니라 ‘의지하지 않게’ 또는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길드원 모두의 잠재력이 자극받아 드러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 그리고 말이에요.”
“또 뭔가 있어?”
“이제 사람들한테 좀 기댈 때도 되지 않았어요?”
“……기대다니?”
아르카나가 카드 한 장을 멀찍이 날려 보내며 말했다.
루인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카드를 물어오기 위해 먼지를 풍기며 앞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이제 슬슬 늑대 씨도 사람들에게 의지해도 될 거 같다구요. 여기 새싹들도 다 그러길 원하고 있고.”
“나름대로…….”
“예전보다 나아졌다고는 들었지만, 그래도 이번 계획 역시 혼자서 진행할 생각이잖아요?”
“말했잖아. 어차피 나 혼자밖에 못 하는 일이야.”
“색욕의 마신을 찾는다는 거, 알고 있어요. 같이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함께 찾아가는 건 가능하잖아요?”
“……어떻게 알았지?”
– 성좌, ‘예언의 귀공자’가 뜨끔합니다.
– 성좌, ‘예언의 귀공자’가 당신의 눈을 피합니다.
예언의 귀공자.
72 마왕 중 서열 3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대마왕 ‘바사고’를 모를 리가 없었다.
바알이나 아가레스가 즉각 나타난 것과 다르게 바사고는 디아블로 길드원과 계약하지 않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아르카나를 눈독 들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는 중에 마신들에게 엿들은 세운의 계획을 불었을 테고 말이다.
“방해될 거라고, 귀찮을 거라고 생각하나 본데.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자신들의 길드 마스터가 언제쯤 자신들을 믿어주고 명령을 내려줄지.”
“그건…….”
“아, 근데 궁금하긴 하네요.”
아르카나가 저 멀리서 카드를 물고 힘차게 되돌아오는 루인을 보며 읊조렸다.
“색욕의 마신. 늑대 씨가 그토록 찾아가려는 성좌의 얼굴이요.”
* * *
“전부 준비 끝났지?”
“네. 아직 아름이 다운이가 아직 덜 만족하긴 했는데, 당장 급한 건 아니니까요.”
“아, 조금만 더 하면 끝낼 수 있을 텐데!”
“그러니까! 아쉬운 대로 다음 층에서 재료나 더 찾아보자. 쓸 만한 목재가 많지 않을까?”
“그러자!”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사이 세운과 디아블로 길드는 수많은 결과물을 얻었다.
길드전을 대비한 방어 시설 구축이나 고창석의 새로운 장비, 이하늘의 다양한 포션 등.
고작 다섯 개의 층을 등반했을 뿐이지만 그동안 모두 아이템을 많이 얻었고, 많이 성장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이번에도 70층까지는 한 번에 올라갈 생각이십니까?”
“그래. 다만…….”
세운이 단상의 아래에서 카드로 입가를 가리고 있는 아르카나를 내려보았다.
얼마 전에 그녀와 나누었던 대화가 머릿속에 떠오른 탓이었다.
짧게 숨을 고른 세운이 고민하던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혹시 가능하다면, 68층에서 날 좀 도와줬으면 좋겠어.”
“네?”
“강요는 아니야. 다만, 가능하다면. 68층에서 수색을 조금 도와줬으면 해.”
세운의 말에 디아블로 길드원들이 경직됐다.
튜토리얼이 시작된 이후, 세운은 시련의 공략이나 몬스터 처치는 물론, 시련 내에서의 일들까지, 어지간하면 대부분의 일을 혼자서 전부 해결해 왔다.
이에 도움이 되기 위하여 길드원들이 발 바쁘게 움직이긴 했지만, 세운이 직접적으로 이를 부탁한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렇게 단상에서 대놓고 직접 부탁을 하다니.
다들 벙쪄 있는 모습에 세운이 고개를 흔들며 말을 번복했다.
“아니다. 방금 들은 건…….”
“알겠습니다. 마스터!”
의외로 가장 먼저 대답한 건 해리였다.
해리 케인.
디아블로 길드에 가장 뒤늦게 들어온 인물이지만, 그 이상으로 세운에게 충성심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 대답은 일종의 신호탄이 되었다.
“당연히 도와야죠!”
“대체 언제 명령을 내려주나 기다렸잖습니까!”
“맨날 혼자 연락도 없이 돌아다녀서 쫓아다니기 바빴는데, 이제야 행선지를 알려주시네!”
“자, 다들 들었죠? 최대한 빨리 등반해서 68층에서 모입시다.”
쉼터에서 마음을 바로잡고 출발을 외칠 때보다 더욱 사기가 증가했다. 그 활기찬 모습에 세운마저 당황할 정도였다.
그 모습에 옆에 있던 유서아가 세운에게만 들릴 정도로 조용히 속삭였다.
“고마워요. 다들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그런가.”
아래를 보니 아르카나 역시 카드로도 가려지지 않는 눈웃음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분위기가 너무 밝아지자 세운도 뭐라 대응하기 어려워졌다.
이럴 때는, 역시…….
“……그럼,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나 방금 뭔가 본 것 같은데.”
“우리 길드장 얼굴 좀 빨개지지 않았어?”
“형님이? 설마!”
“나도 본 것 같은데?”
“도망간다. 도망간다!”
상념을 지우고 맡을 일을 하러 출발하는 게 최고다.
세운이 사라지는 것을 시작으로, 디아블로 길드원들이 66층의 시련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 * *
– 66층의 시련에 도전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 주제 : 지천목의 위로
– 자격의 지천목에게 인정받은 당신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있는 지천목을 마주하였습니다.
– 이제는 그 위로 올라갈 차례입니다.
– 첫 번째 가지에 도달할 때까지 지천목을 오르십시오.
시련에 도착하자마자 마주한 것은 65층의 시련의 목표로 존재했던 지천목의 기둥이었다.
바로 코앞에 기둥이 존재했던 터라, 시야엔 지천목의 기둥만 들어올 뿐이었다.
시련의 내용은 간단하다.
그저 지천목을 오르기만 하면 된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어떻게 오르라는 거야?”
이전의 시련에서 아룬의 위로 올라가야 했을 때 그 줄기에 친절하게 계단이 존재했던 거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계단은커녕 사다리나 통로도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붙잡을 만한 거라면 나무껍질이었는데, 나무가 워낙 거대한 탓에 나무껍질도 너무 크고 두꺼웠다.
이래서야 나무를 올라간다기보다는 절벽을 오르는 것과 비슷해 보였다.
“간단하군.”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강한철이었다.
콰앙!!
그는 지면을 부술 듯이 땅을 박차고 위로 뛰어올랐다.
그러고는 최대한 위로 떠 올랐을 때쯤, 주먹을 앞으로 내뻗어 나무껍질 하나를 부술 듯이 팔을 박아넣었다.
바로 이어서 그 지지력을 이용하여 다시 한번 나무 기둥을 박차고 그 위로 뛰어오른다.
“그렇네요.”
타다닷!
그다음은 유서아였다.
쌍검을 꺼내 든 그녀는 짧은 심호흡과 동시에 나무 기둥을 밟고 나선을 그리며 빠르게 내달렸다.
강한철처럼 나무껍질을 부수어 지지대를 만드는 것이 아닌 직각으로 솟아 있는 나무 기둥을 평평한 바닥처럼 밟고 뛰어갔다.
그야말로 신기에 가까운 모습.
그녀의 보법이 이미 절정에 올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둘의 모습을 지켜보며 디아블로 길드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방법은 상관없다. 어떻게든 이 나무를 오르기만 하면 된다.
몬스터를 상대하는 게 아닐 뿐이지, 지금까지처럼 각자의 개성을 활용하여 기둥을 오르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서.
“쉽지.”
펄럭!
세운이 보랏빛 날개를 펼치며, 수직으로 허공에 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