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52)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52화(452/675)
제 452화
탑의 시련들은 대체로 모든 플레이어에게 공평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물론 실제로 모든 플레이어에게 공평할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형평성을 맞게 시련의 목표를 잡아준다는 말이었다.
이번 시련 역시 마찬가지다.
만약 세운처럼 날개를 가지고 날 수 있는 플레이어가 있다면? 그들은 이번 시련에서 판단하는 자질을 확인할 틈도 없이 금세 시련을 통과하게 될 것이다.
때문에 66층의 시련에서는 날개를 가진 자에게 ‘페널티’를 안겨주고 있었다.
휘이이잉!
‘하강기류라.’
지천목의 꼭대기에서부터 묵직한 하강기류가 내려오고 있었다. 덕분에 날개에 추를 달아놓은 것처럼 몸이 무거웠다.
마치, 폭포를 거슬러 유영하는 한 마리의 연어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 괜찮아, 나 할 수 있어.
“가자.”
– 응!
세운의 등에 펼쳐진 보랏빛 날개가 한층 더 커졌다.
단순히 크기만 커진 게 아니라, 튜리크의 날개가 가진 특유의 보랏빛이 더욱 진해지고 날갯죽지에 충만한 힘이 실려 왔다.
펄럭!
세운이 그 힘을 최대한 활용하여 힘껏 날개를 펄럭였다.
그러자 하강기류에 막혀 있던 세운의 몸이 놀랍도록 빠르게 위로 치솟았다.
타다닷!
속도가 빨라질수록 먼저 기둥을 타고 올라가던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선을 그리며 지천목의 기둥 위를 대각선으로 달려가던 유서아를 지나치고.
콰앙, 콰앙, 콰앙!
“큭…….”
한 번 도약할 때마다 지천목의 나무껍질을 하나씩 박살 내며 거칠게 뜀박질하던 강한철마저 스쳐 지나간다.
이전의 날개라면 절대 불가능했을 속도와 힘.
최근 정령계를 다가오며 튜리크의 힘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덕분에 가능한 비행이었다.
“그어어어-”
“얼른 쌓아 올리자!”
“응!”
“흠, 무기는 충분히 박혀 들어가는구먼. 그리 단단하지는 않아.”
잠시 아래를 내려보니 다른 길드원들도 슬슬 각자의 방법으로 기둥을 오르고 있었다.
백현은 언데드를 계단 삼아 여유롭게 걷는 중이었고, 쌍둥이 자매는 늘 그렇듯 기둥을 지지대로 계단을 건설 중이다.
고창석은 나무 기둥에 무기를 박아 넣어 그것을 밟고 올라가는 중이었고, 이하늘은 마르바스의 힘으로 나무껍질에 변형을 일으켜 지지대를 만들었다.
길드원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세운이 날갯짓에 더욱 속도를 붙였다.
“까아악!”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조류의 울음소리에 불쾌해합니다.
하강기류를 역행하며 얼마나 날아올랐을까? 세 마리의 비행형 몬스터가 거대한 날개로 하늘을 가리며 머리 위에서 나타났다.
‘여기부터가 진짜라 할 수 있지.’
66층의 시작점은 안전지대나 다름없지만, 일정 높이 이상 도달하면 이곳에도 역시 몬스터가 출현한다.
일반적으로 나무 기둥에 손발이 구속되어 있는 플레이어들과 다르게 날개로 하강기류 속을 자유롭게 비행하는 몬스터가.
플레이어에 따라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녀석들을 피하거나 무찌르는데.
– 흑탑의 묘리에 따라 ‘기가 라이트닝’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세운이 선택한 방법은 가장 효율적이면서 간단한 방법이었다.
마법.
손을 따로 움직일 필요도 없이 다수의 적을 단숨에 무찌를 수 있는 최고의 기술이었다.
파지직!
“까아아악!”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텅 빈 허공에서 번개가 번뜩이며 세 마리의 몬스터를 동시에 감전시켰다.
이곳의 몬스터들은 하강기류에 자유로운 대신, 전투 능력이 강한 편은 아니었다.
64층의 우두머리급 몬스터만 하더라도 이 정도 마법에 한두 번은 버티는 게 보통이었는데, 정작 66층의 몬스터라는 놈들이 번개 한 번을 견디지 못하고 우수수 바닥으로 추락했다.
콰앙!
“으악! 놀라라!”
몬스터가 추락하자, 세운의 민감한 청각으로 아래쪽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하강기류가 강력한 만큼이나 몬스터가 추락하는 데 가속도가 붙어 마치 대포가 떨어진 것 같은 충격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66층의 시련은 지금부터가 진짜지.’
단순한 등반을 넘어, 몬스터의 습격이 진행된다.
몬스터의 습격에서 살아남더라도 자칫해서 기둥에서 떨어지게 된다면?
일반적인 추락도 위험한 판에, 하강기류로 인해 가속도가 붙어 추락하게 되면 제아무리 신체 능력이 강한 플레이어라 해도 쉽게 버티지 못한다.
이는 등반한 높이가 높아질수록 더욱 크게 작용한다.
그런 상황에서 정작 시련의 목표인 ‘가지’는 보이지 않으니, 높게 올라갈수록 플레이어들은 불안감에 잠식당하게 마련이다.
‘뭐, 협동만 잘한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시련이지만.’
개인전처럼 보여도, 이번 시련은 협동에 의미를 둔 시련이었다.
디아블로 길드원이 같은 자리에서 출발하게 된 것도 바로 이 이유 때문이었다.
서로의 몸에 밧줄을 묶든, 스킬을 이용해서 서로를 보조하든, 수십 명의 플레이어가 한 몸처럼 뭉쳐 추락에 대비하고 나무를 등반하며 몬스터의 습격에 대비하는 게 정석적인 공략법이었다.
뭐, 세운을 포함하여 디아블로 길드원들은 그럴 생각이 별로 없어 보였지만 말이다.
부스스.
– 어? 방금 좀 흔들린 것 같지 않아? 혹시 밑에서 충격 때문에 흔들리는 건가?
“그것보단, 일종의 방어기제일 거야. 튜리크, 준비해.”
– 응!
회귀 전의 기억이 떠오른다.
나무를 오르고 몬스터의 첫 번째 공격을 견뎌낸 이후, 지천목이 떨려오며 무언가의 전조가 나타난다.
잠깐 강한철의 주먹질이 떠올랐지만, 녀석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지천목을 떨게 할 수는 없었다.
– 주인, 위에!
“알아.”
이번에는 머리 위에서 몬스터가 아닌 정체불명의 투사체가 떨어졌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라 수십 개의 투사체가.
후우웅!
아슬아슬하게 투사체를 피하고, 코앞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압을 느끼고 나서야 투사체의 정체가 썩은 나뭇가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뭇가지라고 해도, 지천목이 워낙 거대한 탓에 그 크기가 어지간한 통나무보다 크고 두꺼웠지만 말이다.
쿠궁, 쿵!
첫 번째 투사체를 시작으로, 뒤이어 수십 개의 투사체가 동시에 떨어졌다.
투사체는 단순히 세운을 저격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허공만이 아니라 나무 기둥을 타고 굴러떨어지는 것들도 있었다.
뭐, 수가 많긴 해도 피하긴 그만이지만.
‘아래쪽에서 조금 곤란해하려나.’
생각해 보니 저 나뭇가지들이 아래로 떨어지면 아래에서 열심히 등반하고 있을 길드원들이 곤란해할 것 같았다.
세운이 수직으로 비행하고 있는 만큼, 이 아래에는 바로 길드원들이 있을 테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세운이 일순간 비행을 멈추고 뒤랑달을 꺼내 들었다.
– 내공을 통해 자하검결의 제이 초식, 화우선형(花雨扇形)이 강화됩니다.
– 자하신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에 열기가 더해집니다.
화륵!
세운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자색의 불길이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나갔다.
맹렬하게 떨어져 내리던 나뭇가지들이 잿더미가 되어 하강기류에 흩날려 사라졌다.
– 녹탑의 묘리에 따라 ‘파이어 스톰’의 속도가 빨라집니다.
화르륵!
이번에는 반대편이다.
세운이 손바닥을 아래로 내려 마법을 발현하자, 이미 세운을 지나쳐 떨어져 내리고 있던 나뭇가지들 역시 재가 되어 흩어졌다.
‘이 정도면 되겠지.’
혹시나 같은 상황이 반복될까 봐 세운이 비행 방향을 꺾었다. 투사체가 떨어지더라도 길드원에게 떨어지지 않도록 진로를 전환한 것이다.
– 주인, 나 조금…….
“잠시 쉬어갈까?”
– 응, 미안해.
“아냐, 벌써 절반은 왔는걸.”
아무리 강화된 튜리크의 힘이라도 하강기류를 저항하며 비행하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튜리크의 힘이 다하고 있는 것은 물론, 정령력 대신 소모되고 있는 신성으로 인해 성흔의 빛도 조금씩 약해지고 있었다.
‘저쪽인가.’
여정의 지침표를 따라 비행하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 기둥에 난 구멍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람 하나. 아니, 사람 수십은 들어갈 수 있을 법한 크기의 구멍. 이는 나무를 오르는 플레이어들을 위한 휴식 공간이자.
“퀘에에에에엑!”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삼 초식, 혈랑습격(血狼襲擊)이 강화됩니다.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휴식에 눈이 멀어 방심한 채로 다가오는 플레이어들의 목을 노린 함정이었다.
서걱!
구멍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애벌레의 몸통이 세운의 검격에 반으로 갈라졌다.
저 거대한 몸통을 가득 채우고 있던 체액이 물풍선처럼 터져나가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애초에 저 구멍은 플레이어를 위한 쉼터 따위가 아니라, 저 벌레의 구멍이니까.’
다행인 점이라면 보통 구멍 하나에 벌레 하나가 살고 있다는 점이랄까?
벌레 한 마리만 죽이면 플레이어들이 원하는 대로 벌레 굴을 안락한 쉼터로 사용할 수 있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이쪽 몬스터들은 덩치가 커서 씹는 맛이 있다며 진득한 체액의 맛을 음미합니다.
게다가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여기에는 숨겨진 보상이 하나 있다.
툭툭.
“여기네.”
콰앙!
뒤랑달의 손잡이로 벽면을 두들기던 세운이 일순간 달라진 타격음에 곧바로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벽면이 크게 무너지며 숨겨져 있던 통로가 나타났다.
지천목의 벌레들은 기본적으로 혼자서 생활하지만, 교배를 위하여 다른 벌레 굴과 통로를 연결해 둔다.
교배가 끝나면 통로를 다시 막아두지만, 잘만 찾아내면 이어진 다른 통로까지 쉽게 이동할 수 있었다.
‘다행히 위로 올라가는 통로네.’
신성도 회복할 겸, 다음 벌레 굴까지 걸어서 이동하기로 하였다.
히든 던전까지는 아니더라도 벌레 굴에서 얻을 수 있는 아이템도 몇 개 있었으니, 가는 길에 쓸 만한 건 채집해 둘 생각이다.
‘그렇다고 너무 여유 부리는 건 안 되겠지.’
지금쯤 맹렬하게 세운의 뒤를 쫓아오고 있을 강한철과 유서아를 떠올리며, 세운의 발걸음에도 속도가 붙었다.
* * *
66층의 시련은 어렵고 위험한 만큼 시련 통과까지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세운의 기준에서 말하는 것일 뿐.
수직으로 높게 솟은 나무를 기어오르는 플레이어들의 입장에서는 ‘첫 번째 가지’까지의 거리가 그 어떤 시련보다 멀고 험하게 느껴졌다.
‘이번에는 수액인가.’
나무 기둥의 벽면은 물론 하강기류를 타고 지천목의 진득한 수액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슬슬 튜리크가 다시 힘들어하는 게 느껴졌지만, 세운은 그녀를 독려하며 날갯짓을 이어갔다.
‘이제 끝나간다.’
저 멀리에서 시련이 언급한 ‘첫 번째 가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가지라고 하기에는 너무 커서 나무 옆으로 자라난 또 하나의 나무라고 하는 게 어울릴 정도로 거대한 나뭇가지.
그 위에, 흐릿하게 무언가의 형상이 보였다.
“크롸아아아아-!”
귀를 윙윙 울려댈 정도로 시끄러운 포효.
나뭇가지 위로 솟아 있던 형상이 날개를 활짝 펼쳤다.
나무를 오르며 보았던 조류형 몬스터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매끈한 날개.
크기는 물론이고 박쥐처럼 얇은 피막으로 이루어진 날개의 위에는 날카로운 손톱까지 달려 있었다.
‘66층의 보스 몬스터.’
사냥하라고 만들어진 몬스터가 아니었다.
피하라고 만들어진 보스 몬스터.
멀쩡한 평지에서 상대해도 66층의 플레이어가 사냥하기 불가능에 가깝다고 알려진 하늘의 제왕.
용종 중에서도 비행 능력에 특화되어 있다는 검은 비늘의 비룡(飛龍).
‘블랙 와이번.’
보스 몬스터답게 일반적인 와이번보다 덩치도 크고 아직 브레스를 내뿜지 않았는데도 입가에서 초록색 불길 같은 게 넘실거린다.
세로로 쭉 찢어진 파충류 특유의 동공과 눈이 마주치자, 성흔이 절로 반응하며 녀석의 공포에 대항한다.
‘이번에는 피할 이유가 없지.’
– 성좌, ‘배고픈 왕자’가 기대에 부풀어 포크를 힘차게 들어 올립니다.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낀 블랙 와이번이 초록색 브레스를 뿜어내는 것으로, 둘의 전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