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56)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56화(456/675)
제 456화
“여기, 아는 길인가요?”
“나도 슬슬 모르겠는데.”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따라 앞으로 걸어가던 중에 실이 벽에 박혀 있어 고민하고 있었다.
아르카나의 행동에 새로운 변수가 생겨나고, 이에 따라 실타래가 새로운 길목을 향해 연결된다.
실타래가 먼저인지, 아르카나의 행운이 먼저인지 알 수 없다.
정확한 건, 점점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는 점이다.
‘하긴, 아래쪽이 제일 가능성 크다고 생각하긴 했었지.’
기본적으로 68층의 시련은 가장 위에 있는 통로를 통해 미로를 빠져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세운은 색욕의 터가 존재한다면 미로의 가장 아래쪽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었다.
다만, 세운은 회귀 전에 이미 미로의 가장 아래층을 샅샅이 뒤져보았다.
시련의 통과와 상관없이 가장 아래에 위치한 히든 던전이라면 그곳의 보상 역시 크리라 생각했으니까.
68층에서 가장 유심히 뒤져본 게 이 밑바닥일 정도였다.
‘하지만, 조금 달라.’
여정의 지침표가 당황한 것처럼 핑핑 돌고 있다.
실타래를 따라 이리저리 길을 꺾고, 아르카나의 행운에 의해 갖은 변수가 생겨나다 보니 혼란이 찾아온 것이다.
길이 달라지다 보니 세운도 주변의 환경이 낯설었다.
그러던 중, 길드원들의 새로운 보고가 속속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 유서아 : 세운 씨. 지금 지도 작성 중인데, 아래쪽이 조금 수상해요. 확실한 건 아닌데 지도상의 빈틈이 있는 것 같아요. ] [ 한아름 : 어? 우리도! 다른 곳에 비해서 구조가 조금 인위적인 느낌이야. ] [ 최수창 : 아직 확인하고 있지만, 최하층의 중앙 지점에 일부러 막아둔 것처럼 물이 막힌 곳이 있습니다. 섬유질로 이루어진 길목의 특성상 자연적으로 물이 빠지게 마련인데 말입니다. ] [ 강한철 : 여긴 벽이 더 질기군. ]모두가 확신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작은 정보가 쌓이고 쌓여 색욕의 터가 미로의 아래층에 있을 거라는 확신을 만들어 갔다.
“몬스터도 안 나타나네요~”
“네 힘 때문에 그런 거 아냐?”
“에이. 제가 감당하지 못할 몬스터를 피한다면 행운이라 할 수 있겠지만, 68층에서 몬스터가 안 나온다고 행운이라 할 수는 없답니다~”
언제부터였을까? 몬스터의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마치,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속삭이는 것처럼.
‘여기가 최하층인 것 같은데.’
주변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미로를 은은하게 밝혀주던 통로의 빛이 대부분 사라진 덕분에 통로에는 어둠이 가득하다.
눈앞에 보이는 거라고는 길을 따라 먼저 나아간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뿐.
마치 이제 길은 없으니 돌아가라고 외치는 기분이다.
이에 세운은 아랑곳하지 않고 라이트 마법을 띄우며 더 앞으로 나아갔다.
‘슬슬…….’
바람이 멈췄다.
수많은 던전과 미로, 미궁을 탐험해 본 세운이었기에 알 수 있었다. 이제 곧 길이 끝나간다.
만약 색욕의 터가 나온다면 그에 걸맞은 문지기, 가디언이 나타날 확률이 높았기에 감각에 날을 세우며 근육을 긴장시킨다.
그렇게 잠시 후.
“막다른 길이네요~”
세운의 예상대로 길이 끝났다.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역시 자신의 역할을 여기까지라는 듯이 끊겨 있다가 세운이 도착하자마자 빛을 잃고 스르르 사라졌다.
“근데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요?”
아르카나 다시 한번 카드 뭉치를 떨쳐보았다.
어두운 상황 탓인지 일부러 카드에 불을 붙인 덕분에 카드를 던지자마자 주위가 일순간 붉게 밝혀졌다.
다른 곳에 비해 넓긴 하지만, 별다를 바 없이 꽉 막힌 길목.
몬스터의 기척은커녕 그 어떠한 수상한 점도 발견할 수 없었다.
뒤에서 따라오던 루인이 앞으로 나서 코를 킁킁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돌아왔다.
“뭘까요~?”
아르카나의 행운 역시 이번에는 어떠한 이변도 불러오지 못했다.
혹시나 릴리스의 신성을 감지할 수 있을까 싶어 성흔을 더욱 크게 활성화해 봐도 느껴지는 건 없었다.
‘뭐지?’
아르카나의 행운.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길드원들이 찾아낸 정보.
거기에 세운의 추리까지.
그 모든 것들이 색욕의 터가 이곳에 있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부서지지도 않는 것 같네요.”
카드를 거대한 대낫의 형상으로 바꾼 아르카나가 전방의 벽을 향해 휘둘렀다.
살벌한 예기가 대기와 함께 벽을 갈랐지만, 벽에는 작은 흠집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비록 페널티로 인해 능력치 일부가 묶여 있다지만, 그것도 68층까지 올라오며 많이 풀린 상태다.
근력 하나만으로 강한철을 이기지는 못하겠지만, 그 예리함만은 충분했을 터다.
그런데도 흠집 하나 남기지 못했다는 말은, 적어도 이 벽이 부술 수 있는 종류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거겠지.
“어떡할까요?”
세운이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벽의 앞에 섰다.
그러고는 오른손을 들어 올려 지천목의 질기고 강한 섬유질로 이루어진 벽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막힌 길.
이런 상황을 처음 겪은 건 아니었다.
지금이야 여러 마신의 도움으로 막힘없이 68층까지 쭉쭉 올라왔지만, 회귀 전의 세운은 그러지 못했으니까.
‘약했으니까.’
넘어지고, 또 넘어졌다.
길이 막혀 다른 곳으로 돌아가 보니 또 막힌 길이 나왔었다.
성좌에게 배신당하고, 친구라 생각한 이에게 배신당하고, 동료라 생각한 이들에게 배신당했다.
그 역경의 상황 속에서 항상 세운의 편이 되어 앞길을 밝혀주던 건 언제나…….
지잉-
세운의 고유 스킬, 여정의 지침표였다.
여정의 지침표만은 언제나 세운을 배신하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에도 세운은 여정의 지침표를 믿었다.
– 성흔이 혈랑전설의 설화에 반응합니다.
– 성흔의 두 번째 능력, ‘광란’이 깨어납니다.
성흔을 밝히며 강화한 것은 육체가 아니었다. 여정의 지침표라는 고유 스킬을 강화한다.
솔직히 이게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믿을 수 있는 건 여정의 지침표뿐이었다.
지이잉-!
세운의 머리 위로 떠 올라 있던 여정의 지침표가 검붉게 물들었다.
목적지를 찾지 못하고 핑핑 돌아가던 지침표가 서서히 진정되며 세운의 생각을 읽었다.
‘색욕의 터.’
그 위치를 찾기 위해, 언제나 그래왔듯이 제 주인의 앞길을 밝혀주기 위해.
“어머, 멋있어라~”
집중하는 세운의 모습에 아르카나가 뒤로 한 걸음 물러서다.
그녀의 눈에는 여정의 지침표가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이 중요한 순간이라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터벅, 터벅.
세운의 발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오로지 여정의 지침표가 알려주는 감각을 따라 움직인다.
벽과 맞닿은 오른손에서 섬유질 특유의 매끈한 촉감이 느껴진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
여정의 지침표와 함께 세운의 발걸음이 멈췄다.
동시에 눈을 뜬 세운이 품속에서 열쇠를 꺼내 들었다.
눈앞의 벽은 아무리 보아도 문이라고 할 수 없었고, 열쇠 구멍이라고 할 만한 것 따위도 보이지 않았다.
세운은 그저 여정의 지침표가 알려주는 정보를 믿으며, 열쇠를 앞으로 내밀었다.
푹.
아르카나의 공격에도 흠집 하나 나지 않았던 벽에 열쇠가 부드럽게 들어갔다.
섬유질 사이의 빈틈을 뚫고 들어간 것도 아니고, 질긴 섬유질의 조직을 무시하듯이 부드럽게.
이어서 세운이 열쇠를 돌리자,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역시 여기가 맞았네요~”
벽을 구성하고 있던 섬유질이 성장을 역행하듯이 줄어들었고, 석벽 전체가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갔다.
그리고 석벽이 사라지자마자, 세운은 그 안에서 어쩐지 익숙하면서도 처음 느껴보는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역시 자신의 보물이 잘못된 곳을 향했을 리 없었다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이토록 정교하게 숨겨진 터를 찾아낸 당신의 능력에 감탄하면서도, 풍겨오는 색욕의 기운에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위기를 알립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코를 벌렁거리며 진미의 향기를 맡습니다.
성좌들이 그 기운의 정체를 알려주었다.
예상대로 색욕의 터는 미로의 지하에 존재하고 있었다.
다만, 그러는 사이에 세운은 잠시 다른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방금 이 기분…….’
평소와는 달랐다.
여정의 지침표가 너무 극한으로 활성화되었기 때문인지,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여정의 지침표에 감정이 동화된 듯한, 아니, 여정의 지침표가 세운에게 말을 걸어온 듯한 느낌.
그 느낌을 충분히 파고들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앞에서 들려온 굉음이 세운을 방해하였다.
“크롸라라라락!”
“카아아아악!”
“캬락, 캬르륵.”
절로 무기를 잡고 근육을 긴장하게 만드는 섬뜩한 굉음.
기척은 하나였지만,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여럿이었다.
번쩍!
세운이 라이트 마법에 마나를 불어 넣으며 범위를 확장시키자, 그제야 벽의 안에 도사리고 있던 몬스터의 정체가 드러났다.
“……히드라(Hydra).”
아홉 개의 머리를 지닌 뱀. 아니, 뱀이라기보다는 용종(龍種)에 가까운 괴물이었다.
송곳니에서는 신조차도 두려워한다는 극독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고, 아홉 개의 머리는 각자의 자아를 가진 채 침입자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 거대한 몸으로 똬리를 틀고 있는 히드라의 뒤로는 히드라의 극독처럼 불길한 초록빛을 띠는 문이 있었다.
‘아마, 저 안이 바로 색욕의 터.’
위치상 저 문이 향하는 곳은 정확하게 68층의 중심부다.
히드라의 정체는 색욕의 터를 지키기 위한 가디언이겠지.
“대단하네요~ 히드라라면 듣기만 했지, 저도 직접 보는 건 처음인데. 생각보다 귀여운데요?”
히드라는 절대 평범한 몬스터가 아니다.
몸은 그 어떤 광물보다 단단하여 결코 다치는 일이 없고, 아홉 개의 머리는 잘릴 때마다 새로운 두 개의 머리가 자라난다.
무엇보다 녀석의 독니에서 흘러나오는 독이나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포이즌 브레스는 손끝에만 닿아도 즉사에 이른다고 전해진다.
‘릴리스가 만들어 낸 가디언인 만큼, 신화에 나오는 히드라의 힘을 완벽하게 재현해 내지는 못했겠지만…….’
진짜 히드라는 회귀 전에 92층까지 도달한 세운조차도 발견한 적이 없다.
히드라는 말 그대로 신화 속 괴물.
소문으로 올림포스의 아래에 머리가 깔린 채 봉인되어 있다고 한다.
지금 눈앞에 있는 괴물은 그 괴물의 신화를 본떠 릴리스가 만들어낸 가짜일 뿐.
그렇다고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 정세운 : 발견했다. ]문을 찾아낸 이상, 길드원들이 고생할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길드챗에 사실을 알린 세운이 곧바로 전투를 준비했다.
아르카나 역시 마찬가지.
새로운 카드 다발을 집어 들더니 어떻게 알았는지 히드라의 최대 약점이라 할 수 있는 불꽃을 피워냈다.
“기왕이면 조련해서 데리고 다니고 싶은데, 안 되겠죠?”
“할 수 있으면 해 보든가.”
“에이, 장난이에요. 전 우리 귀여운 루인으로 만족하거든요~”
– 크릉…….
아쉽게도 전투의 시작은 히드라의 몫이었다.
용보다는 뱀을 닮아 흉악하게 벌어진 아홉 개의 머리가 일제히 아가리를 벌려 극독을 쏘아내는 것으로 전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