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58)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58화(458/675)
제 458화
독과 불꽃의 충돌.
불사에 가까운 육체와 부동명왕의 힘이 깃든 검.
두 충돌의 결과로 공동 전체에 뜨거운 열기와 독이 증발하여 생겨난 기류가 가득 채워진 결과.
쿠웅!
결국, 한 명의 승자가 가려졌다.
절대 끊어질 것 같지 않았던 히드라의 머리가 반으로 갈라지는 것으로 이미 수십 개로 늘어나 버린 히드라의 머리들과 함께 그 육중한 몸체가 쓰러진 것이다.
“생각보다 허무하네요~”
히드라가 쓰러지자 잔해에서 복제되어 날뛰고 있던 작은 히드라들 역시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더니 초록빛 아지랑이를 남기며 스르르 사라져갔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안 된다며 비명을 내지릅니다.
세운에게 베어진 머리를 포함하여 전투 중에 복제된 머리나 작은 히드라 등, 그 전부가 완전히 사라지더니 안쪽의 문으로 흡수되었다.
한껏 기대하고 있던 베엘제붑이 좌절하고 있었지만, 뭐 어쩌겠는가?
바닥에 착지한 세운이 떨리는 손을 억누르며 뒤랑달을 납검하였다.
‘무리긴 해도, 전보다는 나아졌어.’
거주지에서 수련한 보람이 있다.
마나와 내공, 그리고 체력은 꽤 소모했지만, 신성은 최대한 보존한 채 공격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색욕의 마신과 대면할 때도 큰 문제는 없으리라.
“이제 그 문으로 들어가면 되는 건가요?”
“아마도.”
“문이야 아까 그 열쇠를 사용하면 될 테고. 아, 기왕 붙어 있는 거 같이 들어가도 되지 않을까요?”
“추천하고 싶지는 않은데.”
세운을 걱정해 주던 성좌들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색욕의 마신이 대체 어떤 성격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같이 들어갔다가 어떤 짓을 당할지 모른다.
일단은 먼저 세운이 발걸음이 뒤의 문을 향해 움직였다.
문은 히드라의 뒤에 감춰 있을 때와는 다르게 초록빛 아지랑이를 일렁이며 자신의 존재감을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단단히 주의를 갖출 것을 요구합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자칫 위험한 상황이라고 생각되면 즉시 시기의 권능을 사용하여 자신을 호출하라고 조언합니다.
색욕의 마신, 릴리스.
과연 어떤 존재이기에 다른 마신들이 저렇게 걱정하는 것일까?
궁금증을 떠올리며 문의 주위로 일렁거리는 초록빛 아지랑이에 손이 닿는 순간, 세운의 머릿속으로 매혹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 어머, 제 발로 찾아왔구나? 조금 더 먹음직스러워지면 내가 직접 찾아가려 했는데.
순간적으로 세운의 몸이 경직된다.
그저 목소리만 들려왔을 뿐이지만, 성좌를 만났을 때 특유의 위압감이 어깨를 짓누른다.
– 주인!
– 크릉!
세운이 따로 명령하지 않았는데도 튜리크가 보랏빛 날개를 활짝 펼쳐 릴리스의 위압감으로부터 세운을 지켜낸다.
루인 역시 세운의 앞을 가로막으며 신의 위압감에 저항한다.
덕분에 세운은 위압감을 떨치고 정신을 차린 후, 들려온 목소리의 정체를 내뱉을 수 있었다.
“릴리스.”
– 귀여운 아이들인데? 아니,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초대라도 해야겠지?
덜컥!
만능열쇠를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문이 열리고, 주변에서 일렁거리던 초록빛 아지랑이가 한층 더 강해졌다.
거대한 인력에 의해 세운의 몸이 문 안으로 빨리듯이 들어갔다.
튜리크의 날개로도, 루인의 거대한 몸집으로도 저항할 수 없는 압도적인 인력.
애초에 문 안으로 들어가려 했던 건 맞아도 이렇게 억지로 끌려 들어가는 건 원치 않았기에 바닥에 뒤랑달을 꽃아 몸을 고정하려 했다.
가가가각!
하지만 땅에 박힌 뒤랑달에서 불꽃이 튀어 오르며, 끌려가는 방향 그대로 바닥에 긴 검흔이 생겨날 뿐이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저도 같이 들어가도 될까요?”
세운의 몸이 완전히 끌려들어 가기 직전, 아르카나가 달려와 거대화시킨 카드로 닫혀가는 문을 막아냈다.
그러고는 팔을 뻗어 세운을 잡아내려 했지만, 세운과는 다르게 그녀에게는 인력이 아닌 척력이 작용했다.
– 실례란다, 얘야.
투웅!
그녀의 몸은 물론, 문 사이에 끼어 있던 카드 역시 저 멀리 튕겨 나갔다.
날아가는 도중에도 카드를 변화시켜 만들어 낸 대낫을 던졌지만, 그조차도 척력에 의해 천장으로 튕겨 나가 깊게 박혔다.
“바, 방금 세운 씨였나요?”
“아나 언니!”
“어떻게 된 겁니까? 혹시, 저희가 한발 늦은 겁니까?”
타이밍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아르카나가 척력에 의해 강제로 튕겨 나갔음에도 깃털처럼 가볍게 착지하고, 문이 닫히자마자 디아블로 길드원들이 도착했다.
세운의 길드챗을 읽고 미로의 가장 아래층으로 내려온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세운과 아르카나 덕분에 최하층까지의 길이 일직선으로 쭉 뚫려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리아드네의 실타래가 남긴 미약한 빛의 흔적이 남아 있기도 했었고 말이다.
– 손님이 왔는데 계속 밖에서 문을 두들기고 있으면 귀찮을 거 같기도 하고.
그때, 막혀 있던 문이 다시 한번 열렸다.
아르카나가 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기 위해 재빨리 도약했지만, 이번에 열린 문은 입구가 아닌 출구였다.
“캬르르르-”
“켁! 께엑! 켁!”
“츄으으으.”
문 안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몬스터가 뿜어져 나왔다.
하나하나 세기 힘들 정도로 튀어나온 많은 수의 몬스터들은 본래 한 몸이었던 것처럼 뒤엉켜 있어서 마치 문 안에서 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만 같았다.
문에서 나온 몬스터들은 갓 태어난 것처럼 끈적한 양막 속에서 고개를 들고 천천히 일어나 디아블로 길드를 향해 초록빛 동공을 번들거렸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는.
“크롸라라라락-!!”
세운이 쓰러트렸던 몬스터이자 본래 색욕의 터를 지키고 있던 괴물.
히드라가 아홉 개의 머리를 치켜들며 아르카나를 쏘아보았다.
– 얘들이랑 잠깐 놀고 있겠니?
공동 전체에 울려 퍼지는 릴리스의 매혹적인 목소리와 함께, 아르카나를 포함한 디아블로 길드원들이 무기를 꺼내 들며 전투를 준비하였다.
* * *
릴리스에게 초대받아 색욕의 터에 들어오는 순간,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아래에서 느껴지는 물컹한 촉감이었다.
아니, 이걸 초대라고 할 수 있을까?
애초에 들어오고 싶었지만, 이렇게 강압적으로 납치당하듯 빨려 들어오니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이건…….’
다행히 주변을 은은하게 채우고 있는 초록빛 아지랑이 덕분에 굳이 마법으로 시야를 확보할 필요는 없었다.
우선은 이 정체 모를 촉감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고개를 내리니, 무언가가 세운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있는 게 보였다.
“으에…….”
“구르르…….”
아직 형체가 완전히 정해지지 않은 몬스터들이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세운의 바지를 잡고 있던 몬스터 역시 아직 몸의 절반 정도밖에 자라나 있지 않았다.
세운을 잡고 있는 것도 공격을 위한 것보다는 호기심에 의한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보였다.
‘새끼 몬스터?’
아니, 아니다. 이들은 새끼 몬스터라기보다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몬스터라는 표현이 더욱 어울려 보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직 어미의 배 속에 있어야 할 녀석들.
이 물컹거리는 촉감 역시 몬스터들을 뒤덮고 있는 양막 같은 것에서 느껴지는 촉감이었다.
“얘들도 네가 마음에 드는 것 같지? 어때, 귀엽지 않니?”
귓가에 들려오는 매혹적인 목소리.
세운이 바닥의 몬스터들에게 관심을 끄고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초록색의 슬라임이 있었다.
간단하게 설명하기 위해 슬라임이라 표현했지만, 실상 그것은 바닥의 양막과 몬스터들이 엉키고 뭉쳐 만들어진 물풍선 같은 형태의 무언가였다.
“네가 죽인 애도 여기서 태어난 애인데, 어땠니? 조금 쓸 만했니?”
슬라임의 형태가 변하기 시작했다.
몸 일부분이 찌그러지더니 괴로운 것처럼 꿀럭거리며 점점 더 작게 압축되었다.
색이 더욱 짙어지고, 높이가 세운과 비슷할 정도로 줄어들며 인영의 형상을 갖추었다.
그 형상은 채 완성되기도 전에 매혹적인 걸음걸이로 세운에게 다가오며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그래도 여기서 태어난 애들 중에서는 가장 강한 애였거든. 같이 태어난 애들을 전부 먹어 치우고 내 힘을 가장 많이 머금은.”
슬라임의 변화가 멈추고 색이 정해지며 색욕의 마신, 릴리스의 형태가 드러났다.
“그게 본 모습입니까?”
백옥처럼 새하얀 피부에 찰랑거리는 갈색 머리칼.
색욕의 마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단아하고 수수한 모습의, 그러면서도 눈을 떼기 힘든 매력을 지닌 여성이었다.
본체가 아니라 슬라임으로 형체를 바꾸어 대면했기 때문인지, 본래 그런 모습일지는 모르겠지만 옷 역시도 제대로 된 의복이 아닌 헤진 천 같은 걸로 전신을 두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천 위로 드러나는 굴곡진 몸에서는 정신을 아찔하게 만드는 향기가 올라왔다.
루시퍼와는 다르게 그녀에게서는 적대감이 느껴지지 않았기에, 우선은 존댓말로 그녀를 대응하였다.
“글쎄. 넌 어떤 모습을 좋아하니? 원하는 스타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바꿔줄 수 있는데.”
“없습니다.”
“흐음, 없을 리가. 이 모습은 어떠니? 아니면, 이거? 아. 혹시 밖에 있던 애가 취향인 거니?”
릴리스의 모습이 수시로 바뀌었다.
머리의 색이 바뀌거나 스타일이 바뀌기도 했고, 천 조각 같은 옷이 고급스러운 옷으로 바뀌기도 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찾은 모습은 붉은 드레스를 입고 한 손에 카드 다발을 들고 있는 아르카나의 모습이었다.
릴리스는 그 모습 그대로 상체를 숙이며 세운의 턱선을 쓰다듬었다.
‘색욕의 마신, 릴리스.’
그녀의 이명을 곧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굳이 상대를 유혹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이, 그녀의 모습이나 그녀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감당하기 힘든 매혹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 매력은 아주 조금씩, 천천히 세운의 머릿속을 파고들려 하고 있었다.
– 안 돼!
– 크앙!
“어머, 지금 나한테 이빨을 드러낸 거니? 정령과 환수라. 아, 이건 환수라고 하기 어렵겠네. 신수? 그렇다기에는 느껴지는 기운이 애매한데.”
튜리크의 날개가 릴리스의 손길을 떨치며 세운의 시야를 가렸다.
바로 이어서 루인이 세운과 릴리스의 사이에 끼어들어 거리를 벌리게 했다.
세운은 릴리스에게서 조금 떨어지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단순한 유혹이 아니다.’
차라리 세뇌나 최면 같은 정신계 마법이나 저주에 가까운 무언가.
마지막 순간, 튜리크와 루인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레비아탄이 말했던 것처럼 질투의 권능을 사용하여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다.
그녀의 유혹은 세운 혼자의 힘으로 떨쳐내기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귀여운 친구들을 많이 가지고 있구나?”
실체가 아니다.
그저 저 슬라임을 닮은 무언가를 이용하여 탑에 강림한 모습. 아니, 힘의 극히 일부만 내려보내 의지만 전달하고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도 저 정도의 힘이라니.
과연, 색욕의 마신다웠다.
‘마몬과 레비아탄이 괜히 걱정한 게 아니네.’
튜리크와 루인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대로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불가능했으리라.
성흔으로 위압감을 떨치는 동시에 그녀의 유혹으로부터 정신을 보호해야만 했으니까.
다행인 점이라면, 튜리크와 루인이 난입했음에도 릴리스에게서 별 반응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둘에게 관심을 가지면서도 굳이 거리를 좁혀오지 않는다. 즉, 지금이 그녀와 대화를 나누기 가장 적절한 순간이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길래 여기까지 직접 찾아왔니?”
릴리스가 교태를 부리며 세운에게 물어왔다.
옆에서 ‘주인! 안 돼! 정신 차려!’라며 외치고 있는 튜리크의 머리를 누르듯이 쓰다듬은 후, 세운이 입을 열었다.
“거래를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