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59)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59화(459/675)
제 459화
“크롸라라락!”
“또 브레스예요!”
“우리가 막을게, 언니!”
쿠궁!
쌍둥이 자매가 축소된 성벽을 거대화시켜 히드라의 독액을 막아냈다.
지지대를 세우지는 못했어도 이런 상황을 대비하여 만들어 둔 대범위 공격 방어용 성벽이었는데, 그런 성벽이 히드라의 독액 앞에서 볼품없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언데드화가 불가능합니다. 아쉽지만, 샘플 수집은 어렵겠습니다.”
– 성좌, ‘죽음을 짓밟는 말’이 색욕의 터에서 뿜어져 나온 것들은 마신의 기운이 깊게 서려 있어 언데드화가 어려울 거라 말합니다.
어느새 도착한 백현이 시해(屍海), 시체의 바다라는 이명에 걸맞게 엄청난 수의 언데드를 소환하여 색욕의 터에서 뿜어나오는 몬스터를 상대했다.
유서아와 강한철 등의 주력 전투원은 히드라의 머리를 상대 중이었고, 쌍둥이 자매와 같은 생산계원은 옆에서 그 전투를 보조한다.
해리가 오세의 권능으로 길드원을 집결시킨 덕분에, 지금 이 시각에도 길드원들이 속속들이 색욕의 터 앞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런데 꼭 처리해야 합니까? 어차피 이곳에 찾아온 것부터가 길드장이 원하던 거였다면서요.”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어요. 아나 씨가 보기엔 어떤가요?”
“전 그냥 마음에 안 들어서요~”
“엑? 아나 언니, 그거 때문에 싸우고 있던 거였어?”
“그럼 우리 굳이 안 싸워도 되는 거 아닌가?”
“자세한 얘기를 모르는 이상 저희가 이러고 있는 게 방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열심히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있지만, 이 전투에는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
바로, 목적이 없다는 것.
세운이 그의 목표대로 색욕의 터에 진입했으니, 목표가 이뤄진 상황에서 굳이 버티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다만, 아나를 포함한 몇몇은 본능적인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렇게 몬스터를 내뿜으며 저희를 막아설 이유가 없지 않나요?”
“그건 그렇지만…….”
이유가 없다면, 상대 역시 이렇게 몬스터를 뿜어내며 길드원들을 막아설 이유가 없었다.
문을 두들기는 게 방해가 될 거라며 말하긴 했지만, 그거야 대화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만 해도 되는 사항이다.
애초에 세운이 원하던 상황이었으니, 그렇게 말해 두기만 해도 이 중에서 괜히 문을 건드리며 방해할 사람은 없었을 테니까.
그런데도 몬스터까지 뿜어내며 전투 상황을 만들어 냈다?
여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게 유서아의 생각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끝이 없습니다. 저 문을 막아야 할 것 같은데, 그러면 마스터한테 방해가 될 수도 있고요.”
“일단 후퇴하는 게 어떻습니까.”
“으음…….”
세운이 없는 지금, 부길드장인 유서아가 올바른 판단을 내려야 한다.
비록 몬스터를 뿜어내고 있는 문의 반응이 영 내키지 않았지만, 길드원의 말대로 지금의 전투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일단은 사람들의 말처럼 이곳에서 빠져나가 세운의 연락을 기다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쯤.
– 다들 열심히 싸우고 있니? 그래도 눈치는 있나 보네.
“이 목소리는?”
“릴리스예요.”
“색욕의 마신…….”
68층의 시련에서 세운이 찾으려 했던 목표.
릴리스의 목소리가 공동에 존재하는 모든 길드원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우선 이곳에서 후퇴할까 고민하던 차에 고민하던 차에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그럴 수 없는 위압감이 담겨 있었다.
– 설마 도망가려는 건 아니지? 그럼 조금 안 좋은 일이 벌어질 것 같은데.
“설마 길드장을!”
– 아, 길드장이라고 부르니? 그래, 너희 길드장. 마침 이곳의 정기도 다 빨아먹었고, 터를 정리할 생각이었거든. 그러니까, 너희들이 정리 좀 도와주겠니?
덜컥!
반쯤 벌려 있던 문이 완전히 열렸다.
그러더니 안 그래도 상대하기 어려웠던 몬스터들이 두 배가량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히드라 한 마리도 상대하기 힘든데 이렇게 만은 몬스터라니.
늘어난 몬스터 때문에 공동이 숨 쉴 틈 없이 좁아지고, 바닥에는 질척한 양막이 가득 들어차 발목을 붙잡았다.
– 나도 신성을 오래 투자할 수는 없고. 대충 10분이면 되겠지?
10분 안에 몬스터를 완전히 처리해라.
그런 말이었다.
당장 기존의 몬스터도 상대하기 벅찼는데, 2배 이상 빠르게 늘어난 몬스터를 전부 상대하라니.
지금 이 순간에도 몬스터는 끊임없이 늘고 있었고, 저 문이 언제 닫힐지도 모르는 노릇인데 10분 만에 모든 몬스터를 정리하라니.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불공평한 제안이지만…….
– 만약 늦으면, 너희 길드장은 내가 데리고 갈 테니까 열심히 해 보렴~
“젠장!”
“전부 진형을 갖춰주세요! 해리 씨는 흩어진 길드원들 최대한 빨리 불러 모아 주시구요!”
“제가 최대한 넓게 디버프를 걸어둘게요!”
“한철 씨, 죄송하지만 혼자서 히드라 좀 상대하고 있어 주세요!”
“충분하다!”
콰아앙-!!
지금은 불평을 늘어놓는 것보다 몸으로 판단하고 움직일 때다.
디아블로 길드원이 새롭게 생겨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의를 다잡기 시작했다.
* * *
“거래를 하고 싶습니다.”
세운이 먼저 거래를 언급했지만, 릴리스의 얼굴에서는 일말의 표정 변화도 없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싱긋 웃으며 매혹적인 미소를 드러낼 뿐이었다.
“받고 싶은 건 알 것 같고. 내가 얻을 수 있는 건 뭐니?”
“없습니다.”
“으음? 건방진 게 너무 당당한 거 아니니? 나, 이래 봬도 마신인데.”
그녀가 들어 올린 손가락에서 손톱이 칼처럼 날카롭게 뻗어 나왔다.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스산한 예기.
피부에 닿은 느낌도 없었는데 목덜미에 긴 상처와 함께 핏방울이 살짝 흘러내렸다.
너무나도 부드럽고 가벼운 움직이었지만, 공격이 다가오는 것조차 느낄 수 없었다.
비록 제대로 강림한 것도 아니지만, 그녀는 말 그대로 마신.
아무리 강해졌다고 해도 지금 당장 세운이 어떻게 저항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강한 정신력과 루인, 튜리크의 도움으로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뿐이었다.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 기분 나쁜 것들이라면 봤지.”
“그럼 알 거라 생각합니다. 이대로 가면 탑과 플레이어만이 아니라 성좌들 역시 끝입니다.”
“그리고 그걸 막을 수 있는 게 너뿐이라는 거니?”
“맞습니다.”
세운이 처음부터 이런 제안을 내걸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다만, 색욕의 터에 들어오기 전, 문 안에서 들렸던 릴리스의 말에서부터 그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덕분이었다.
‘어머, 제 발로 찾아왔구나? 조금 더 먹음직스러워지면 내가 직접 찾아가려 했는데.’
그 말 덕분에 세운은 그녀가 이미 아우터에 대해 알고 있을 거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면 이야기하는 게 편하다.
그녀에게 거래를 제안할 때 가장 큰 문제점이 바로 아우터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었으니까.
아우터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면, 마신이라 하여도 결국 거래를 수락할 수밖에 없다.
아우터가 탑을 무너트리게 되면 성좌라고 해도 결국 소멸하게 마련이니 말이다.
“전 이미 관리소에서 신성(新星)으로 인정받아 아우터 처리에 관한 건을 부탁받았습니다.”
“흐음~ 역시, 관리소 애들. 플레이어에게 이런 중요한 일을 맡기고, 쓸모없는 애들이라니까.”
“아우터를 소멸시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지금으로서는 제 힘이 유일할 겁니다.”
세운이 성흔을 빛냈다.
세 번째 힘, 파멸.
거기에서 태어난 생명체인 루인.
아우터를 소멸시키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신성을 모아 성흔을 발현한 세운이었기에 만들어 낼 수 있었던 힘이었다.
아마 당장 성좌 중에 누군가가 아우터에게 대적하기 위해 새로운 사도를 받아들여도 이런 힘을 각성시키는 건 불가능하리라.
“알아, 알아. 물론 알지. 그런데, 그 힘이 있다고 해도 네가 그것들을 막을 수 있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니?”
“성공하든 실패하든, 제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 뭔가 착각하고 있나 보구나. 어차피 그걸 막을 수 있는 건 너뿐이니 내가 무조건 돕겠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릴리스가 긴 머리카락을 찰랑거렸다. 그러다가 바로 아래에서 기어 다니던 몬스터 하나를 콰직! 하고 짓밟았다.
이내 몬스터의 피육과 양막으로 이루어진 의자가 생겨났고, 릴리스가 그 위에 앉아 교태롭게 다리를 꼬더니 턱을 괴며 말을 이어갔다.
“아까 말했듯이, 난 마신이란다. 저기 구름 위에서 정의나 평화를 부르짖는 멍청이가 아니라는 뜻이지.”
릴리스가 주변을 넓게 둘러보았다.
그녀의 시선에 닿는 곳에서 아직 제 형태를 이루지 못한 몬스터들이 자신을 봐달라는 듯이 몸을 일으켰다.
마치 공간 전체가 그녀의 시선에 반응하듯이 꿈틀거리는 듯했다.
“멸망을 막을 수 없다면, 피해 있으면 그만이란다. 세상이 멸망하든 말든, 내 알 바 아니거든. 적당히 힘을 모아 이런 곳을 만들어 놓고 지루해 죽을 때까지 버텨도 된다는 말이지.”
이어지는 그녀의 설명에 세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여태까지 여러 마신을 상대했지만, 그녀만큼 현세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는 마신은 없었으니까.
마몬은 자신의 보물을 잃을까 걱정하며 세운을 도왔고, 베엘제붑은 먹이가 사라지는 걸 걱정하며 세운을 도왔다.
레비아탄은 세운에게 호감을 드러내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루시퍼에게 시기를 느끼며 복수를 부탁했으며, 베엘제붑은 평온한 수면을 누리기 위해 세운을 도왔다.
심지어는 루시퍼조차 탑을 뒤집는다는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탑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는가?
“그러니 멸망을 막아준다는 불확실한 말을 믿고 내 힘을 투자할 바에 새로운 터를 만들어 내는 데 힘을 투자하는 게 더 확실하다는 말이지.”
여기까지는 세운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그녀를 설득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포기해야 하나?’
최선은 그녀를 아군으로 들이는 것이지만, 그래도 그녀를 적으로 마주한다는 최악의 수는 피할 수 있을 거다.
만약 그녀가 자신을 놓아주지 않으려고 한다 해도 레비아탄의 도움을 빌리면 충분히 이 자리에서 도망칠 수 있다.
세운의 머리가 복잡하게 굴러가던 중, 그런 세운을 재밌다는 듯이 지켜보던 릴리스가 말을 이어갔다.
“하나, 거래 조건이 있단다.”
그녀의 조건.
세운의 힘이 불확실하다 했으니, 당장 이곳에서 힘을 증명하라는 것일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세운이 뒤랑달을 집었다.
이 자리에서 그녀를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쉽게 당해 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조건은 세운이 생각하던 것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나는 네가 아무리 대단해도 혼자의 힘으로는 그것들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
그녀가 의자 아래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불안정한 생명체가 양막을 뚫고 올라와 손바닥을 타고 기어올랐다.
“내가 보고 싶은 건, 네가 너의 아이들을 얼마나 잘 키웠느냐. 그것이란다.”
촤르륵!
그녀의 손가락이 의자의 한 부위를 짓누르는 순간, 옆의 양막이 높게 치솟았다.
반투명한 양막이 한순간 어두워지더니, 평평해진 면에서 무언가가 비치기 시작했다.
– 젠장, 얼마나 더 나오는 거야!
– 막아! 막아!
– 저 문부터 어떻게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잠깐 시간 좀 벌어주시겠습니까? 생각이 있습니다.
– 알겠습니다.
“저건……!”
양막 위로 비치기 시작한 건 수많은 몬스터와 싸우고 있는 디아블로 길드의 모습이었다.
색욕의 터로 들어오기 전에 쓰러트린 히드라는 물론, 그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많은 몬스터들이 바닥의 양막에서 헤엄치며 디아블로 길드를 공격하고 있었다.
“네 아이들과 내 아이들. 둘 중에 네 아이들이 이긴다면, 네 거래를 들어줄게. 어때, 마음에 드니?”
뒤랑달을 쥔 세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