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61)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61화(461/675)
제 461화
‘강한철…….’
디아블로 길드의 패배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다.
세운이 알고 있는 그들이라면 어떻게든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양막의 모니터에서 벌어진 전투는 세운의 생각 이상이었다.
‘저렇게 강했었나?’
길드원이 보여준 무력은 모두 세운이 생각하고 예상했던 것을 한참이나 초월했다.
비록 하이라이트는 백현과 강한철이 맡았다지만, 그 하이라이트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 자체가 디아블로 길드 모두의 협동심 덕분이었다.
잘 짜인 톱니바퀴처럼, 한 명이라도 어긋났다면 이렇게 완벽한 승리를 거두는 건 불가능했으리라.
놀란 건 세운만이 아니었다.
“6분 17초. 이렇게 빨리 끝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릴리스는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세운의 옆에 서서 디아블로 길드의 승리 장면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패배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도대체 어떻게 키운 거니? 이건 나도 좀 배우고 싶을 정돈데?”
그녀가 무어라 중얼거리든 상관없다. 대답해 줄 필요도 없다.
세운 역시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지만, 지금은 그보다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제 승리입니다.”
그녀와의 내기에서 세운이 이겼다.
지금까지 만나보았던 그 어떤 마신보다 악마다웠던 그녀였기에 혹시나 약속을 번복하면 어쩌나 싶었지만…….
“나도 보고 있단다. 약속을 물릴 생각은 없으니까 걱정 말렴. 아니, 내기가 아니었어도 네 아이들에게 관심이 생겨 버렸달까?”
다행히도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비록 악마다운 모습을 보여주긴 했어도 그녀는 거짓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솔직히 회귀 전에 보았던 선신들이 자신의 이득대로 거짓말을 내뱉은 것들을 떠올리면 선악의 경계에 대해 다시 한번 떠올리게 만들었다.
“솔직히 아우터니, 세계의 멸망이니, 같은 건 관심 없어. 나는 미래보다 현재를 더 중요시하거든. 지금 당장이 재밌으면, 그걸로 그만이야.”
세운을 향해 들어 올린 릴리스의 손가락 끝에서 초록색 기운이 모여들었다.
그것은 이내 끈적하게 뭉치더니 액체의 형태로 변해 이슬처럼 반짝거렸다.
“그런 의미에서, 관심이 생겼단다. 너와, 네 아이들에게.”
뚝.
초록빛 이슬이 떨어져 내렸다.
세운의 손등에 이슬이 닿자, 묵직한 기운이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느낌과 동시에 성흔이 이슬의 색을 닮은 초록빛을 내뿜었다.
“다른 애들이 왜 너를 지켜보고 있는 건지 알겠어.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보다 너를 지켜보는 게 더 재밌을 것 같아.”
릴리스가 상체를 숙여 세운을 올려보았다.
그 매혹적인 눈빛이, 아니, 어딘가 위험해 보이는 눈빛이 세운을 향했다.
혀를 달싹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매혹적이라기보다는 어딘가 위험한 느낌이 들어 등골이 오싹해졌다.
“당장 가지고 싶지만, 참아야지. 아이가 엄마의 치맛자락에 둘러싸이면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법이거든.”
– 색욕의 마신, 릴리스에게 인정받았습니다.
– 색욕의 마신에게 인정을 받아 ‘색욕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색욕의 신성을 이어받아 육성과 관계된 행동과 스킬, 시스템에 추가 보정이 이루어집니다.
– 색욕의 신성을 이어받아 성흔에 매력이 깃듭니다. 성흔을 발휘할 시, 미약한 매혹의 기운이 흘러나옵니다.
지금까지 다른 마신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진득한 감촉이 느껴졌다.
백현의 시체 폭발로 인해 문이 손상되었기 때문인지, 세운에게 신성을 하사하며 색욕의 터를 유지할 힘이 부족해진 건지.
양막으로 이루어진 모니터가 무너지는 것을 시작으로, 주변의 양막이 녹아내리고 공간에 균열이 일어났다.
“아, 그리고. 만약 부탁할 게 있으면 언제든지 편하게 말하렴.”
릴리스가 세운을 똑바로 마주 보며 목에 팔을 둘렀다.
루인이 섣불리 끼어들지 못한 상태로 더욱 크게 으르렁거렸고, 튜리크 역시 날개를 최대한 활짝 벌려 그녀에게 저항하였다.
“사소한 ‘보답’만 들어준다면, 나도 얼마든지 도와줄 테니까. 알겠지?”
주르륵-
릴리스의 모습을 구축하고 있던 슬라임의 몸이 무너지고, 공간 전체가 무너지듯이 흘러내리는 것으로 색욕의 마왕과의 독대가 끝났다.
* * *
“세운 씨!”
무너진 벽 사이에 우뚝 서 있던 문에서 세운이 걸어 나왔다.
그 순간 자신의 임무를 다한 문이 무너지며, 68층에 존재하던 색욕의 터가 완전히 사라졌다.
이제 막 전투가 끝난 터라 다들 정신이 없는 와중에 유서아가 가장 먼저 세운을 발견하였다.
그녀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길드원 모두가 세운을 발견하고는 각자의 모습으로 환영을 해 주었다.
“정말 다행입니다!”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갑자기 10분 안에 몬스터를 전부 정리하라고 하더니…….”
“목적은 이루셨나요?”
다수의 질문이 쉴 새 없이 쏟아진다.
입이 하나인 이상 그들의 질문 하나하나에 모두 대답해 줄 수는 없었기에, 세운은 밝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흔하게 볼 수 없는 세운의 미소에 길드원 모두가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 정말 다행입니다.”
“폭발이 너무 커서 하마터면 세운 씨까지 잘못되는 줄 알았다니까요?”
“하하…….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백현 오빠, 가끔 좀 무섭다니까?”
“무섭다니…….”
“그래도 멋졌어. 그치?”
“응!”
다들 지치긴 했어도 큰 상처는 없는 모습.
굳이 이하늘이 나서지 않아도 각자 미리 나눠 받았던 포션으로 응급처치를 한 덕분에 상처 대부분은 회복되어 있었다.
물론, 겉모습이 멀쩡해 보일 뿐이지 그 안은 그렇지 않다.
이번 전투에서 지닌 힘 대부분을 쏟아낸 덕분에 속은 텅 비어 있는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저렇게 웃고 있어도 지금은 가만히 서 있는 것부터가 제법 힘겨우리라.
“강한철은?”
“아, 지금 하늘 씨가 치료하고 있어요. 저기.”
양막의 모니터로 보았던 강한철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기절하는 순간까지도 무릎을 꿇지 않았던 놈이지만, 시체 폭발을 견뎌내고 아가레스의 권능을 최대로 발현해 주먹을 휘둘렀던 놈이다.
겉이건 속이건 멀쩡할 리가 없었다.
유서아가 가리킨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이하늘이 강한철을 바닥에 눕혀 치료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응급처치는 끝났나 보네.’
강한철의 몸 전체에 반투명한 붉은 액체가 둘러싸여 있었다.
시체 폭발을 맨몸으로 견뎌내며 전신에 생겨난 그을음이 사라지고, 손상된 뼈와 근육이 조금씩 치료되고 있었다.
그래도 겉으로 보이는 게 끝이 아닐 것을 알기에, 가까이 다가가 이하늘에게 강한철의 상태에 관해 물었다.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해요. 솔직히 처음에는 살아 있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어요. 무슨 생각으로 그 폭발 속에 들어가 있었는지…….”
세운의 예상대로였다.
설명을 들어보니 근육이 찢어진 것은 물론이고 인대 절반가량이 끊어졌다고 한다.
힘줄도 대부분 너덜거리고, 심장이나 폐 같은 주요 장기도 화상을 입거나 내출혈이 일어난 상태였다.
이하늘이 곧바로 달려가 마르바스의 권능으로 치료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를 정도였다.
‘강한철답네.’
뒤를 보지 않고 오로지 앞만 보고 전진하는 그의 성격과 딱 어울렸다.
만약 주먹을 휘두르기 전에 지금의 상황이 될 거라는 걸 알려준다고 해도 녀석은 주먹을 멈추지 않았으리라.
마르바스의 권능으로도 치료가 더뎌 보이는 이하늘을 거들기 위해, 세운이 지팡이를 꺼내 들며 탐욕의 권능을 발현하였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의술의 상징, 아스클레피온 ]– 태양의 신 아폴론의 아들이며, 당시 의술과 의학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존재로 알려진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사용하던 지팡이.
세운의 지팡이 위로 뱀 한 마리가 똬리를 틀며 기어올랐다.
죽은 사람조차 되살릴 수 있는 수준의 의술을 펼쳤다 일컬어지는 아스클레피오스. 그의 지팡이에 감긴 뱀의 형상은 부활과 재생을 상징한다고 전해진다.
그 힘을, 온전히 강한철을 위해 사용한다.
– 그로잉 헤츨링이 ‘아스클레피온’에 잠든 재생의 기운을 터트립니다.
– ‘아스클레피온’을 통해 의술의 상징성이 재현됩니다.
세운이 지팡이를 강한철의 몸을 향해 내렸다.
지팡이에 감겨 있던 뱀이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붉은 액체를 뚫고 들어가 강한철의 팔에 닿았다.
콱.
뱀의 이빨이 강한철의 피부를 꿰뚫었다.
자칫 위험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아스클레피온에서 나온 뱀은 독사가 아니다.
재생과 부활을 상징하는 만큼, 그 뱀의 이빨에서는 어마어마한 재생력이 흘러나와 강한철에게 전달되었고.
꿈틀.
이는 곧바로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강한철의 육체를 재생시켰다.
“엄청나네요. 치료 수준이 아니에요.”
“그래도 네 응급처치가 아니었다면 큰일 날 뻔했어.”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걸요.”
강한철의 몸이 빠르게 회복되자,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길드원들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색욕에게 홀리지는 않았냐며 당신의 상태를 유의 깊게 살펴봅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 성좌, ‘잠자는 산양’이 색욕에게서 용케 멀쩡하게 빠져나왔다고 안도하며 또다시 깊은 잠에 빠져듭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성좌들의 메시지도 나타났다.
정작 세운을 지켜본다고 말했던 릴리스의 메시지는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몰라도 세운에게 신성을 제공하고 색욕의 터 하나를 손실하여 잠시 힘을 회복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던 중, 성좌들의 메시지 아래로 못 보던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 색욕의 신성이 발현되어 권속을 향한 치료 효과가 증가합니다.
‘권속?’
메시지가 떠오름과 동시에 성흔에서 미약하게 초록빛이 흘러나왔다.
안 그래도 보구의 힘 덕분에 빠르게 회복되고 있던 강한철의 몸에 눈에 띌 정도로 더욱 빠르게 회복되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세운은 릴리스의 신성을 받았을 때 보았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색욕의 신성을 이어받아 육성과 관계된 행동과 스킬, 시스템에 추가 보정이 이루어집니다.’
아마, 지금의 상황은 그때 보았던 내용과 연관된 것이리라.
메시지를 떠올려 보자면 단순히 치료뿐만 아니라 수련을 시키거나 버프 마법을 사용하는 등, 모든 방법에 추가 보정이 이루어질 것 같았다.
신성 소모량도 그리 크지 않은데 이런 효과라니.
아직 색욕의 권능을 사용해 보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색욕의 신성이 가진 힘에 눈이 크게 뜨였다.
“……나왔나.”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거의 반죽음 상태에 놓여 있던 강한철이 겉으로는 멀쩡해 보일 정도로 회복하곤 눈을 떴다.
“고생했어.”
“알면, 대련 시간이나 잡아둬라.”
저 꼴로 눈을 뜨자마자 하는 말이 대련이라니,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다.
지금 눈을 뜬 것도 겨우 회복한 체력을 쥐어 짜낸 것이었는지, 말을 끝내자마자 고개를 돌리며 숙면에 빠져든다.
슬슬 보구의 힘이 사라져 가며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가 흐릿해 가지만, 이 정도로 치료됐으면 뒤는 이하늘에게 맡겨도 충분하리라.
‘색욕의 권능이라…….’
당장 새롭게 얻은 힘을 시험해 보고 싶어 몸이 근질거린다.
그리고 이 힘을 어디서 처음으로 실험해야 할지는 이미 답이 나와 있었다.
여덟 번째 쉼터에 들어가기 전에 공략해야만 하는 마지막 시련.
70번째 시련, ‘날아드는 어둠’.
그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