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62)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62화(462/675)
제 462화
재정비까지의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하늘의 치료와 그녀가 미리 만들어 준 포션들 덕분에 외상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체력도 휴식을 통해 금방 회복할 수 있었다.
체력과는 별개로 피로가 많이 쌓였는지 강한철이 제법 오래 잠들어 있었지만, 눈을 뜨자마자 자리에서 일어서며 어깨를 붕붕 휘둘렀다.
그러고는 처음 내뱉은 말이.
“안 갈 건가?”
이것이었다.
정신을 차리기 전까지 반송장에 가까웠던 사람이라고는 전혀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에 다른 사람들이 고개를 저으며 질색했지만, 그 말에는 동감이었다.
이미 모두가 출발 준비를 마쳤으니까.
“최대한 지름길로 안내하겠습니다.”
“오, 길드장 따라서 시련 공략하는 게 얼마 만이야?”
“얼마 만이고 자시고, 10층 단위마다 있는 대시련 말고는 이런 적 처음 아닙니까?”
“……생각해 보니 그렇네. 같이 다닌 적이 있다고 해도 이렇게 다 같이 다니지는 않았으니까.”
세운이 여정의 지침표를 사용하며 앞장섰다.
시체 폭발로 인해 무너진 위층으로 폴짝 뛰어오른 후, 미로의 정상으로 향하는 가장 가까운 길을 향해 달렸다.
그럴수록 세운의 바로 옆에서 따라오던 해리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마스터. 길을 찾으면서 이런 속도를 유지할 수 있다니. 존경스럽습니다.”
– 성좌, ‘붉은 반점의 표범’이 아직 미숙해서 그렇다며 좀 더 자신의 권능을 갈고닦으라 명합니다.
– 성좌, ‘붉은 반점의 표범’이 시련은 얼마든지 준비되어 있다고 알립니다.
옆에서 해리의 감탄사가 들려왔지만, 세운 역시 오세와 같은 생각이었다.
아직 숙달되지 못해서 그렇지 해리의 탐사 실력은 회귀 전의 세운과 비견될 정도로 뛰어났다.
거기에 회귀 전의 세운과 다르게 57위의 마왕, 오세라는 성좌의 도움까지 받고 있으니, 앞으로의 잠재력은 충분하다 못해 넘쳐났다.
“절 따라오는 것도 좋지만, 후열 좀 받쳐주시겠습니까? 뒤처지는 인원도 있을 듯하니.”
“알겠습니다. 뒤쪽은 걱정 말고 속도를 내주십시오. 금방 따라가겠습니다.”
해리가 뒤따라오던 표범을 타고 방향을 꺾었다.
전투계 인원들은 걱정 없지만, 고창석이나 이하늘 같은 인원은 기본적으로 민첩성이 떨어진다.
누군가가 업어오지 않는 이상 해리가 끌어줄 필요가 있었다.
“크륵.”
서걱.
몬스터 따위는 세운의 발걸음을 늦추지 못했다.
유서아는 충분히 세운의 뒤를 따라올 수 있음에도 뒤따라오는 이들을 돕기 위해 중간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은 빨라도 일주일, 늦으면 한 달이 넘도록 미로를 헤매며 결국 길을 잃고 좌절한다는 68층의 시련을…….
– 68층의 시련 ‘지천목의 속에서’를 훌륭하게 완수하였습니다.
– 공적치 집계 중…….
– 히든 퀘스트 ‘색욕의 터’ 완료.
– 히든 퀘스트 ‘지천목의 최심부’ 완료
…….
– 총 누적 공적치 3,580,000point
– 축하드립니다! 68층의 시련을 랭킹 1위로 통과하였습니다.
– 보상으로 100,000point를 획득하였습니다.
고작 하루도 되지 않아 공략에 성공하였다.
그것도 세운 개인이 아니라 디아블로 길드 전원을 데리고 말이다.
* * *
다음으로 도착한 69층의 시련은 사방이 온통 지천목의 나뭇잎으로 뒤덮여 있었다.
시야가 전혀 확보되지 않아 언제, 어디서 어떤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이곳의 시련 명은 ‘하늘을 향하여’.
시련의 내용도 이름만큼이나 간단했다.
“하늘을 향하여, 라니.”
“젠장! 그래서, 그 하늘은 언제 나오는 건데?”
“65층에서 본 지천목의 크기 기억 안 나십니까? 특히 나뭇잎으로 둘러싸인 윗부분은 크기가 엄청났습니다.”
“거기를 끝까지 오르라고? 정말?”
“69층의 시련이니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시련의 내용이 쉬운 만큼 난도가 높아지는 것 정도는 알고 계시잖습니까.”
“그건 알지만…… 젠장, 젠장!”
클리어 길드의 길드장, 반 달칸이 욕설을 내뱉었다.
69층의 시련을 오르기 시작한 지가 벌써 일주일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시련이 명하는 대로 하늘을 마주하기 위해 힘들게 나뭇잎을 오르고 있었는데, 정작 그 하늘은 보일 생각을 안 한다.
빼곡한 나뭇잎이 시야를 가득 가리고 있었기에 목적지까지 거리가 얼마나 남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참으십시오. 65층에서도 비슷하게 경험하셨잖습니까.”
“그때는 목적지가 보이기라도 했지. 지금은 목적지가 보이지도 않잖아!”
“그래도, 저거 보십시오.”
반 달칸을 보좌하고 있는 부길드장이 옆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유달리 작은 나뭇잎 하나가 바람에 살짝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만큼 바깥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니, 아마 분명 절반 이상은 도달했을 겁니다.”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하면 그런 거겠지.”
실질적으로 클리어 길드의 머리는 부길드장이 담당하고 있었다.
길드장을 맡고 있는 반 달칸은 오로지 강한 힘과 특유의 호탕한 성격으로 길드를 이끌고 있을 뿐이었다.
실제로 그들이 여기까지 도착할 수 있었던 것도 반 달칸의 강한 힘 덕분이 컸다.
“여기도 이 꼴인데 70층은 얼마나 어렵다는 거야. 다들 귀환석 잘 챙겨놨지?”
“물론입니다.”
“70층이 어떤 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위험해지면 내가 막고 있을 테니까 다들 알아서 귀환석 쓰고 튀어. 여기까지 올라온 거 아깝다고 버티다가 뒤지지 말고.”
“알겠습니다! 길드장!”
반 달칸이 길드장으로 남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비록 머리가 좋지는 않지만, 강한 힘과 책임감은 부길드장을 포함한 모두가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그렇게 그들은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나뭇잎을 올랐다.
지천목의 거대한 나뭇잎은 클리어 길드가 모두 올라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던 중, 오랜만에 새로운 몬스터가 등장하였다.
“피이이이-”
“더럽게 징그럽게 생겼네.”
클리어 길드원 모두가 올라타도 꿈쩍하지 않는 나뭇잎의 크기와 비슷할 정도로 거대한 나비 한 마리가 나타났다.
워낙 거대한 날개 때문인지, 힘이 대단한 건지 녀석이 날갯짓을 할 때마다 그 튼튼하던 나뭇잎이 들썩거릴 정도였다.
“모두 전투 준비!”
전투의 시작은 늘 그렇듯이 길드장인 반 달칸이었다.
그는 얼마 전 경매장에서 구한 희대의 대장장이 ‘마장’의 제작품으로 알려진 창을 휘두르며 나비를 상대하였다.
상태 이상을 초래하는 꽃가루나 움직임을 막아서는 강풍 등을 만들어 내 상대하기 까다로운 몬스터였지만, 반 달칸을 시작으로 모두가 힘을 합치니 그럭저럭 상대할 만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좌측에 한 마리 더 등장했습니다!”
“우, 우측에 두 마리!”
“젠장, 그럼 일단 후퇴하고…….”
“뒤쪽에도 나타났습니다!”
“포위당했다고……?”
지능이 높은 몬스터는 아닌 것 같았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포위를 당해 버렸다.
갖가지 노력을 해 보았지만, 아무리 반 달칸이 강하다 하여도 이런 불안정한 지형에서 저렇게 강력한 몬스터에게 포위당한 채로 싸울 수는 없었다.
“젠장, 아깝지만…….”
반 달칸이 창을 더욱 굳세게 쥐었다.
부길드장의 지휘에 따라 다른 길드원들이 품에 넣어 두었던 귀환석을 챙겼다.
수십 번의 도전 끝에 69층까지 올라왔지만, 그 아까움이나 귀환석의 가격보다는 목숨이 훨씬 소중하다는 것 정도는 전부 알고 있었다.
“저놈들이 나한테 집중되면 전부 꺼져! 나도 따라갈 테니까!”
“네!”
“간다!”
반 달칸이 앞으로 뛰어나갔다.
한 길드를 책임지는 길드장답게 믿음직한 뒷모습.
그리고 그 순간.
콰아아앗-!!
그들을 포위하고 있던 나비들의 날개가 갈기갈기 찢겨나가며, 순식간에 전투 상황이 종료되었다.
“어……?”
가장 먼저 보인 건 보랏빛 날개를 펼친 인간이었다. 그의 검고 흉포한 늑대가 나비를 거칠게 조각냈다.
뒤이어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도약한 여성이 바람처럼 빠른 속도로 나비들의 날개를 휩쓸었다.
세 번째로 튀어 오른 거한의 남성의 주먹이 마지막으로 남은 나비의 몸에 닿자, 나비의 몸통이 풍선처럼 터져나갔다.
하나하나가 강력하기 그지없는 69층의 몬스터들이 그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가, 감사합니다!”
귀환석을 사용한다 하여도 길드장의 목숨은 장담할 수 없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도움을 얻게 되었으니, 클리어 길드 모두 영웅들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
하지만.
“세운 씨, 어쩔까요?”
“무시해.”
“……약해 보이는군.”
그들은 클리어 길드를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그들은 클리어 길드를 도와준 게 아니라, 경로를 방해하고 있는 몬스터를 처단했을 뿐이었다.
그들이 시야 밖으로 사라지자, 뒤이어 앞의 사람들과 같은 문양을 새긴 이들이 연이어 올라왔다.
“어, 안녕!”
“다른 플레이어는 엄청 오랜만에 본다.”
“다들 왜 저렇게 넋이 나가 있지?”
“혈랑 오빠 마주친 거 아냐?”
“아, 그럼 그럴 수 있지. 인정!”
“다들 조금만 더 속도를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벌써 거리가 많이 벌어졌습니다.”
“으악, 형님! 같이 좀 갑시다아! 나도 날개 좀!”
“허허, 알겠네. 얼른 올라가세.”
각자 개성 넘치는 방법으로 나뭇잎 사이를 오르는 그들의 모습은 결코 약해 보이지 않았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평범한 길드원처럼 보였는데, 그들 모두의 힘은 클리어 길드의 길드장, 반 달칸과 비슷할 정도.
아니, 그중 몇 명은 반 달칸의 무력을 가뿐히 뛰어넘을 정도로 강력해 보였다.
“이게 대체…….”
반 달칸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강력한 몬스터를 상대할 때도 느끼지 못했던 힘의 차이를 느끼고 말았다.
자신 정도면 동층에서 충분히 알아줄 만큼 강한 플레이어일 거라 자신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자신은 그저 우물 안의 개구리였을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건 그의 길드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 정도는 되어야 70층에 도전할 수 있는 건가……?”
나름대로 길드장을 따라서 잘 해쳐 올라왔다고 생각했는데, 자신들은 그저 길드장에게 업혀 왔을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만약, 이대로 70층에 도달했다면 귀환석이고 뭐고 사용할 틈도 없이 죽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드니, 앞서 사라진 이들에게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에 잠시 생각을 정리한 반 달칸이 빠른 결정을 내고는 길드원들을 향해 외쳤다.
“등반은 멈춘다.”
“길드장…….”
“아직은 실력이 부족하다. 모두 깨달았겠지? 일단은 69층의 하단으로 내려가 몬스터를 상대하며 다시 실력을 쌓는다.”
“알겠습니다!”
힘차게 대답한 클리어 길드가 아쉬움을 뒤로 하고 69층의 아래로 내려갔다.
그사이, 반 달칸은 이제 눈앞에서 사라진 자들의 방어구에 새겨져 있던 늑대 문양을 떠올렸다.
그들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반 달칸의 은인이었으니 말이다.
* * *
“드디어 70층이네요.”
“드디어라고 할 것도 없지. 이렇게나 빨리 도착했는데.”
– 70층의 시련에 도전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 주제 : 날아드는 어둠
– 지천목의 끝에 도착한 당신에게 어둠이 도래하고 있습니다.
– 하늘을 가득 뒤덮은 어둠을 처단하고, 지천목을 지켜내십시오.
70층의 시련, 날아드는 어둠.
디아블로 길드가 지천목의 꼭대기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둠이라는 단어가 대체 왜 나왔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화창한 하늘. 정말 구름 하나 보이지 않는 깨끗한 하늘이었다.
“근데 어둠을 처단하라는 게 무슨 말이지?”
“곧 알게 될 거야.”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자리가 바뀌는 십 층마다의 시련은 모두 엄청난 난이도를 지니고 있다.
지천목을 지켜내야 하는 이번 시련 역시 마찬가지.
하나의 길드를 넘어, 몇 개의 길드가 뭉쳐서 힘을 합쳐야만 공략이 가능한 시련이었다.
그러나, 세운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우리끼리 충분해.”
색욕의 터 앞에서 무기를 휘두르는 디아블로 길드의 모습을 보고 느꼈다.
세운은 디아블로 길드를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그들은 강하다.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원래 세운은 자신 혼자 길드원 전부를 지키며 시련을 진행하는 게 힘들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 저기 어두워진다.”
“어둠이라. 대체 뭐길래…… 어?”
“잠시만, 저거.”
“설마, 전부 몬스터야?”
하늘을 빼곡히 뒤덮으며 다가오는 어둠.
그것들의 정체는 태양 빛을 가릴 정도로 많은, 큰 날개를 펼친 비행형 몬스터였다.
사방형으로 다가오는 몬스터의 수는 못 해도 천 마리가 넘어 보인다.
이번 시련의 목표는 저 수많은 몬스터를 죽이고 지천목을 지키는 것.
그리고 저들은…….
‘이제 써먹어 볼 수 있겠네.’
색욕의 권능의 첫 번째 실험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