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74)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74화(474/675)
제 474화
제논과의 전투는 생각보다 길게 이어졌다.
그는 세운이 처음부터 본격적으로 힘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처럼, 전투를 길게 끌어가고 있었다.
“괜찮겠습니까? 당신의 길드원들, 꽤나 고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아, 당장 배 한 척이 침몰하고 있는데. 보셨습니까?”
“혀를 나불거릴 여유가 있나 보지?”
카앙!
제논의 푸른 갑옷에 굵직한 검흔이 남겨졌다.
폭식의 권능으로 강해진 능력치와 탐욕의 권능으로 익힌 기술들, 회귀 전부터 쌓아온 전투 경험 등.
비록 그가 엘하임에서 제일 알아주는 청해 길드의 길드장이라고는 해도, 순수한 전투 실력은 세운이 한 수 위였다.
실력이 밀릴수록 제논은 자신의 길드가 이기고 있다는 것을 나불거리고 있었다.
아마, 자신은 전투 실력보다 길드장으로서의 힘을 중시한다는 것을 드러내며 세운에게 실력으로 밀리고 있는 치욕을 지워내고 있는 것이리라.
“그래봤자, 그쪽 길드원들은 자기네 길드장이 이렇게 밀리고 있는데도 여유가 없나 본데?”
“모르시겠습니까?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청해의 승리입니다. 디아블로의 길드원이 전부 정리되면, 수백 개의 창이 당신을 노릴 것입니다.”
캉, 카앙!
자위라고는 해도 그의 말이 거짓인 건 아니다.
이대로 디아블로가 밀리고 청해 길드가 전부 세운을 향해 공격을 쏘아내면 아무리 세운이라고 하더라도 버티기 어려울 터다.
그 상태로 흑익 길드의 제안을 지킬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다만, 세운에게도 생각이 있었다.
‘이제 슬슬 때가 되었을 텐데.’
라고 생각한 순간.
“그어어어-”
뒤쪽에서 음울한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한둘도 아니고, 바다를 가득 채울 정도로 수많은 망자의 울부짖음이.
그와 함께 제논의 표정이 처음으로 거칠게 일그러졌다.
“반대로 우리가 이기면, 궁지로 몰리는 건 네가 되겠지.”
콰직!
까드득.
“으아아아악!”
뒤쪽에서 들려오는 굉음과 비명, 피비린내가 바닷바람을 타고 날아들었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그 정체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박정필이 거점에 한아름을 데려다주고 불러온 백현. 그가 전장에 합류한 것이다.
“더러운 수를…….”
“애초에 네 배의 전력 차로 신생 길드에게 길드전을 건 주제에, 그런 말이 나오나?”
백현의 참가에는 단순히 수적 우위를 맞추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는 최근 한 달 동안 다양한 수중형 언데드를 제작해 냈다. 공격할 용도뿐만 아니라 기존의 좀비들을 개조하여 발판으로라도 쓰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러니 그의 참가는 곧 지형의 변화에 가까운 의미가 있었다.
게다가 청해 길드 역시 갑작스럽게 수면 위에 생겨난 엄청난 양의 장애물에 어찌할 바를 몰라하고 있었다.
“이런……! 스켈!”
“뿌우우우우-”
제논의 외침과 함께 발판이 거칠게 흔들렸다.
고래가 입에서 물을 뿜어내길 멈추고 고개를 내려 바다 안으로 잠수를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세운과 제논, 거점 역시 바다 아래로 빨려 들어갔다.
“몬스터들을 관리하기 위해 떠올라 있었지만,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제논의 삼지창에서 휘몰아치던 해류가 한층 더 강해졌다.
물속에 들어왔는데도 그는 수압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세운을 향해 빠르게 달려왔다.
아니,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을 넘어 수면 위에서 싸울 때보다 확연히 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당신은 제가 직접 처단하겠습니다!”
“진작 그렇게 나왔어야지.”
최근 한 달 동안 세운 역시 물에서의 전투를 대비한 수련을 거쳤다.
색욕의 권능을 수련할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수련을 물속에서 했을 정도였다.
심지어 마지막 한 주 동안에는 물속에서 색욕의 권능을 사용하는 연습까지 하였다.
비록 움직이는 고래의 등 위에서 전투를 벌일 줄 몰랐지만, 대비는 충분하다.
– 내공을 통해 북해검결의 제삼 초식, 북해동절(北海冬節)이 강화됩니다.
마찬가지로 수중전을 대비하여 더욱 단련한 북해검결이 세운의 손에서 펼쳐졌다.
지상에서보다 더욱 강력한 해류를 머금고 있던 제논의 삼지창이 세운의 검과 충돌했다.
거대한 두 줄기의 해류가 서로를 잡아먹기 위해 충돌했다.
“발악해 봤자 소용없습니다! 바다에 들어온 이상, 주변의 모든 것은 제 편입니다!”
분명 세운이나 제논이나 똑같이 고래의 위에서 버티며 수압을 견디고 있을 텐데, 세운에게만 해류가 특히 거칠게 몰아치는 듯했다.
게다가 선박을 무너트리기 위해 열중하던 몬스터들이 전장을 버리고 이곳을 향해 들이닥치고 있었다.
그사이, 뒤쪽에서 느껴지는 스산한 살기에 세운이 고개를 숙였다.
촤륵!
머리 위로 무언가가 스쳐 지나가는 기분이었지만, 시야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재빨리 뒤랑달을 휘둘러보니 살갗을 베는 촉감 대신 희미한 몬스터의 형체가 드러났다.
‘아쿠아 스피릿.’
주로 바다의 생물이 목숨을 잃고, 그 영혼이 응집하여 생성된다는 몬스터였다.
영혼형 몬스터답게 물리 공격이 통하지 않아 상대하기가 무척이나 까다로운 적이었다.
“감은 뛰어난 것 같지만, 승리하는 건 바로 저입니다!”
– 내공을 통해 북해검결의 제이 초식, 북해빙랑(北海氷浪)이 강화됩니다.
달려오는 제논의 공격을 쳐내고, 아쿠아 스피릿을 포함한 적들은 루인에게 맡겼다.
광란의 힘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바닷속에서 제논의 움직임은 세운과 동등. 아니, 그 이상으로 재빨랐다.
‘포세이돈의 성흔.’
능력치는 분명 세운이 더 높을 것이다.
레벨을 넘어서, 폭식의 권능을 사용해 온 세운의 능력치는 이미 어지간한 랭커의 수준에 돌입했으니까.
제논이 저토록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건 목에서 푸르게 빛나고 있는 성흔의 힘 때문일 것이다.
포세이돈 역시 이번 전투를 제대로 지켜보고 있음이 분명했다.
– 내공을 통해 북해검결의 제삼 초식, 북해와류(北海渦流)가 강화됩니다.
– 빙백신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에 냉기가 더해집니다.
세운이 이번 수련 기간에 습득한 북해검결의 새로운 초식. 북해와류가 발현되며 뒤랑달을 따라 차가운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활약하던 제논이 처음으로 발을 멈추고 소용돌이를 막아냈다.
북해검결 특유의 한기 덕분에 제논의 팔이 하얗게 얼어가기 시작했다.
“바다는 저의 편입니다!”
파앙!
제논의 성흔이 더욱 강한 빛을 내뿜었다.
삼지창을 휘감고 있던 해류가 그의 팔을 타고 흐르더니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해류는 제논의 팔을 뒤덮어 가던 한기를 날림과 동시에 세운의 검을 떨쳐냈다.
하지만, 세운의 손에는 이미 검이 아닌 새로운 무기가 들려 있었다.
휘릭!
새까만 사슬이 삼지창의 날 바로 아래를 휘감았다.
해류가 거칠게 들썩이며 사슬을 떨쳐내려 하였지만, 그보다 세운이 힘을 발현하는 게 먼저였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물과 바다, 비를 관장하는 신인 바루다가 지닌 여러 물건 중에서도 유일하게 무기로써 사용되는 뱀 모양의 포승줄.
콰직!
“이건 또 무슨 능력입니까!”
폐왕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슬인 ‘부정의 족쇄’.
포저가 갇혀 있던 방에서 발견한 그 사슬에 나가파사의 힘이 깃들며, 사슬 끝에서 나타난 뱀의 머리가 삼지창을 물고 놓지 않았다.
해류가 아무리 몰아치더라도 먹이를 문 이빨에서 힘을 빼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대치 상황에서 제논을 돕기 위해 아쿠아 스피릿을 포함한 몬스터들이 세운을 노려왔지만.
콰과괏!
“키악…….”
뱀의 꼬리처럼 변한 부정의 족쇄가 길게 늘어지고, 세운이 반대쪽 손으로 그것을 휘두르자 몬스터들이 단번에 나가떨어졌다.
아쿠아 스피릿은 물리 공격이 통하지 않는 존재였지만, 부정의 족쇄의 능력 중 하나인 ‘환상부정’ 덕분에 어김없이 몸이 터져나갔다.
“이제 어쩔 거지?”
세운이 삼지창을 물고 있는 사슬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이제 제논의 선택지는 둘로 좁혀졌다.
삼지창을 버리고 반격에 나서거나, 끝까지 삼지창을 놓지 못한 채로 세운의 접근을 허용하거나.
아쉽게도, 제논은 자신의 성좌가 내려준 신물이라 할 수 있는 삼지창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 내공을 통해 빙백신장의 제일 초식, 빙격(氷擊)이 강화됩니다.
터엉!
“컥!”
세운의 손바닥은 분명 제논의 갑옷 위를 타격하였지만, 그는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피를 토해 냈다.
장법의 특징이 바로 상대의 내부로 충격을 밀어 넣는 것이니, 당연한 일이다.
피를 토하는 순간까지 무기를 손에서 놓지 않은 건 분명 대단한 일이었지만, 세운에게는 어리석게 느껴질 뿐이었다.
텅, 텅, 터엉!!
제이 초식, 빙장.
제삼 초식, 빙극.
세운의 공격이 물 흐르듯이 쭉쭉 이어지고, 그럴수록 제논의 몸을 휘감고 있던 해류가 점차 약해졌다.
결국 그는 세운의 마지막 공격이 도달할 때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 내공을 통해 빙백신장의 제오 초식, 빙산(氷山)이 강화됩니다.
– 빙백신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에 냉기가 더해집니다.
터어엉!!
갑옷은 멀쩡해 보여도, 내부는 엉망이 된 채로 저 멀리 날아갔다.
“뿌우우우우-”
주인을 지키기 위함인지 고래가 꼬리를 세워 날아가는 제논의 신형을 받아주었다.
이어서 그가 피를 한 움큼 더 토해 내더니, 정신을 차리고는 삼지창을 강하게 쥐어 잡았다.
날아가는 그 순간까지 삼지창을 쥔 손에서 힘을 빼지 않고, 결국에 세운의 사슬로부터 삼지창을 빼낸 것이다.
“지금이다. 스켈!”
“뿌우우우우-!”
– 주인!
갑작스럽게 고래의 몸에서 터지듯이 물을 뿜어져 나왔다.
고래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게 몸을 딱 고정하고 있던 세운은 이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제법 피해를 입고 말았다.
루인 역시 피해를 입고 세운의 곁으로 붕 떠올랐다.
그러는 사이 고래는 재빠르게 꼬리를 흔들며 저 위로 떠 올랐다.
“쿨럭! 크, 하하. 이제 끝입니다. 크흑. 심해에 다다를수록, 제가 받아들일 수 있는 포세이돈 님의 힘 역시 커집니다.”
제논의 목의 성흔이 심연처럼 검푸르게 빛났다.
그의 몸을 에워싸던 해류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더니 그의 몸에서 분리되어 새로운 형체를 이루었다.
열 마리의 돌고래와 연결된 푸른 마차.
그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수천 마리의 물고기와 다양한 수중 생물들이 세운을 노려본다.
마차에 타고 있는 건 올림포스의 삼대 주신 중 하나인 포세이돈을 연상시키듯이 삼지창을 당당하게 쥐고 있는 제논이었다.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 바다에서 저를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습니다!”
콰아아!
제논이 고삐를 잡아당기자, 열 마리의 돌고래가 일제히 세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주변의 물고기들이 마차 주변을 나선형으로 헤엄치자, 마차의 앞으로 창처럼 날카로운 나선형의 해류가 생겨났다.
그나마 바닥이라 할 수 있는 고래의 등판이 사라져 자세가 불안정한 상황에서도 세운은 숨을 깊게 들이쉬며 사슬을 강하게 붙잡았다.
– 부정의 족쇄가 ‘나가파사’에 잠든 물의 기운을 터트립니다.
– ‘나가파사’를 통해 마카라가 재현됩니다.
마카라.
일곱 마리의 백조가 끄는 마차로써, 바루나가 타고 다닌다고 알려진 마차였다.
제논이 구현해 낸 포세이돈의 마차에 비하면 너무나도 작고 볼품없는 마차가 겁 없이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렇게 빛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깊은 심해에서 두 마차가 충돌하고.
콰아아아아앗-!!
심해에서부터 거친 해류와 함께 소용돌이가 몰아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