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76)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76화(476/675)
제 476화
– 디아블로 길드와 청해 길드의 길드전에서 디아블로 길드가 승리하였습니다.
– 길드전의 계약서에 따라 청해 길드가 디아블로 길드의 산하 길드로 강제 소속됩니다.
– 길드전에서 승리하여 디아블로 길드의 유형 ‘등반(登攀)’이 강화됩니다.
– 길드전에서 승리하여 디아블로 길드의 성향 ‘파멸의 구원자’가 강화됩니다.
– 길드전에서 승리하여 디아블로 길드의 공격력 버프가 상승합니다.
…….
세운이 제논을 쓰러트림과 동시에 떠오른 메시지.
이에 디아블로의 길드원들은 전부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일대일 상황에선 상대가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세운이 진다는 것 자체가 상상이 가지 않았던 덕분이다.
반면에, 청해의 길드원들은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읽으며 쥐고 있던 무기를 떨어트리고 말았다.
“제, 제논 님이 지셨다고?”
“말도 안 돼! 이럴 리가!”
“뭐, 뭔가 착오가 있는 겁니다! 제논 님이 질 리가 없잖습니까!”
아무리 부정해 봤자 이미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를 고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미 수십 번이나 길드전을 경험해 온 그들이었기에, 아무리 부정해도 시스템이 오류나 착오를 일으키는 일이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스템은 냉정했다.
– 길드전에서 승리하여 청해 길드의 거주지를 획득합니다.
– 거주지를 합치는 동안 현재 거주지에 존재하는 플레이어들은 잠시 바깥으로 퇴장해 주시길 바랍니다.
– 강제 퇴장까지 5분.
– 4 : 59
…….
바다로 가득 찬 청해 길드의 거주지.
아마 그 어떤 거주지보다도 환경적이고 아름다워 보이지 않을까 싶은 이 거주지는 이제 디아블로의 것이 되었다.
냉혹하게 추방을 명명하는 시스템 메시지에 청해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머리를 쥐고 있을 때, 그들의 길드장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 제논 : ……죄송합니다. 여러분. ]“아아…….”
제논의 메시지를 보는 순간, 현실을 부정하던 이들이 현실 부정을 멈추고 고개를 숙인 채 묵묵하게 길드전에서 빠져나와 엘하임으로 돌아갔다.
방금까지 치고받으며 싸우던 사이였지만, 이번에는 목숨이 걸려 있지 않은 친선전에 가까운 길드전이었기 때문일까?
청해 길드원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디아블로 길드원 몇몇이 괜한 먹먹함을 느끼며 등을 돌렸다.
“……근데, 방금 위력……. 거주지에서 세운 씨가 자주 사용했던 그 기술 아닌가요?”
“그보다 더 강했던 거 같은데. 바다 아래에서 사용해서 그런가?”
“잠깐만요. 세운 씨, 그거 사용하고 가끔 정신 잃거나 하지 않았나요?”
“……어?”
“제가 내려가 보겠습니다!”
고민한 세도 없이 최수창이 곧장 바다로 뛰어드는 순간, 선수 교체하듯이 수면 위로 얼굴을 내민 세운이 머리카락을 털며 선박 위를 올려보았다.
“뭐 해? 얼른 안 나가고.”
* * *
디아블로 길드의 승리.
이는 엘하임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아니, 다른 길드도 아니고 청해가 패배한 소식이었기에 이는 엘하임만이 아니라 아홉 번째 쉼터에까지 소식이 전해질 정도였다.
“세상에, 진짜 신생 길드가 이겼다고?”
“청해가 고평가되고 있었던 거 아니야? 그게 아니고서야 신생 길드한테 질 리가.”
“너, 관람 안 했어? 너희 길드라면 바다 위에서 수백의 몬스터를 데리고 싸우는 청해를 상대로 이길 수 있겠어?”
“……좀 어렵겠지?”
“조금이 아니라고! 청해 길드의 전적만 봐도 모르겠어? 지형 덕분에 무승부로 돌아간 적은 있어도, 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단 말이야!”
“왜 이렇게 열을 내. 진정해, 누가 보면 청해 길드인 줄 알겠어.”
“요즘 청해 길드 분위기가 말이 아니긴 하더라.”
“그럴 만도 하지. 다른 것도 아니고, 신생 길드의 산하 길드로 들어가 버렸으니까.”
엘하임에서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고 있던 청해 길드가 신생 길드의 산하 길드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는 엘하임의 길드 생태계에 혼란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단순히 청해 길드가 패배한 게 아니라, 신생 길드의 아래로 들어갔다는 것은 그 신생 길드가 엘하임의 새로운 머리가 되었다는 뜻이니까.
“솔직히 그냥 청해가 멍청했던 거 아니야? 신생이라고는 해도 이미 제헤튼이나 데스힐에서부터 이름났던 길드였다면서.”
“청해가 무슨 잘못이 있겠냐. 그냥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거지.”
“그게 무슨 말이야?”
“신탁이었다잖아. 청해에 바다의 신을 따르는 사도와 신도들이 많은 건 알고 있지? 그중에서도 길드장의 성좌가 직접 신탁을 내렸나 봐.”
“길드장이라면……. 설마, 포세이돈?”
“너라면 따르는 성좌의 신탁을 거절할 수 있겠냐?”
“……못하지.”
“그래도 청해의 길드장 정도라면 질 가능성이 있는 패에 손을 대진 않았을 거야. 신탁이라고는 해도, 이길 자신이 있었던 거겠지.”
“뭐야, 그럼 내 말이 맞잖아?”
“달라.”
그렇게 엘하임이 한창 시끄럽던 중,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두 길드의 길드전을 관람하였던 검은 로브의 여성이 디아블로 길드가 머물고 있는 숙소로 향했다.
흑익의 깃털로서. 흑익의 전령으로서.
세운의 합격 소식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그녀는 깊게 눌러쓴 후드 안에서 미약하게 미소 지었다.
* * *
길드전이 끝난 후, 세운은 어떻게든 쓰러지지 않기 위해 정신을 붙잡고 있었지만,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기절하듯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힘을 사용하자마자 쓰러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리 전투가 끝난 상황이라고 해도, 전장에서 쓰러지는 건 자칫 목숨을 내놓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동이었으니까.
‘이틀 정도는 잠들어 있었나.’
특히나 후유증이 큰 편에 속하는 나태의 권능과 색욕의 권능을 동시에 사용했다.
그러고도 이틀 만에 깨어났다는 건, 나름대로 큰 발전이었다.
똑똑똑.
“세운 씨, 들어갈게요.”
상체를 일으킨 지 얼마 되지 않아 밖에서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세운을 감시하기라도 하는 듯한 타이밍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정말 감시한 건 아니었는지, 문을 열고 들어온 이하늘이 눈을 뜬 세운을 보고 조금 놀라는 모습이 보였다.
이내 그녀가 안도의 숨을 내쉬더니 싱긋 웃으며 세운의 곁에 다가와 앉았다.
“이틀 만에 일어나셨네요? 워낙 자주 쓰러지셔서 이제는 예전처럼 못 일어나실까 봐 걱정되거나 하지도 않는다니까요.”
“그렇다기엔 주변에 빈 병이 너무 많은데.”
“아, 들켰나요?”
농담을 내뱉던 이하늘이 빈 병을 옆으로 치우고 새 포션을 꺼내 들었다.
처음 보는 색깔로, 이번에 새롭게 조합한 포션인 듯했다.
“효과가 있었는지 모르겠네요. 권능의 후유증이라는 게 영 까다로워서요. 세운 씨의 실신 기간이 정해져 있던 것도 아니구요.”
“뭐로 만든 건데?”
“아룬의 꽃잎이요. 정제법을 찾아내서 여러 방법으로 고민해 봤는데, 역시 세운 씨에게 쓰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았거든요.”
아룬의 꽃잎.
얼마 전까지 세운과 함께 그 사용법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혼자서 그 용도를 찾아낸 모양이다.
‘그래서 일찍 일어난 건가?’
어쩐지, 나태의 권능과 색욕의 권능을 동시에 사용하여 후유증이 심하게 쌓여 있을 텐데 그에 비해 일찍 일어났다 싶더니.
나름대로 장족의 발전을 이룬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이하늘이 정제한 물약 덕분이었나보다.
그래도 아룬의 꽃잎같이 귀중한 소재를 이렇게 사용한다는 건 조금 아까웠다.
“남은 건 다르게 사용해. 어차피 며칠 차이지, 결국 난 일어났을 테니까.”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요. 물론, 회복에도 도움이 되지만 이 물약의 효과는 다른 데 있거든요.”
“어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성흔의 활성도를 올려줘요. 신성이 더 원활하게 흐를 수 있도록 해 주는 능력을 지니고 있거든요.”
“좋은데?”
그녀의 말에 바로 성흔을 활성화해 보았다.
방금 후유증을 떨치고 일어난 참이라 평소대로라면 특유의 뻑뻑한 느낌이나 달구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야 보통인데, 이번에는 오히려 평소보다 수월하게 성흔이 빛을 발하는 느낌이다.
그녀에게 설명을 들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성흔의 활성이 수월해진 게 체감될 정도였다.
“몇 개나 만들 수 있어?”
“한 병당 아룬의 꽃잎 한 장이요.”
“꽃잎이 여섯 장이었고. 하나는 실험에, 하나는 나한테 썼으니까 네 장 남은 건가?”
“네, 어쩔까요?”
“전부 이걸로 만들면 되겠네. 누구한테 사용할지는…… 유서아랑 얘기해 보고 결정할게.”
“네.”
세운이야 자체적인 성흔을 가지고 있어 효과가 더욱 뛰어나지만, 다른 사람들 역시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유서아나 강한철 같은 이들이 이걸 마신다면 성흔을 통해 성좌의 힘을 더욱 많이, 빠르게 내려받아 각자의 권능 효율이 곧바로 상승할 것이다.
문제는 네 병밖에 못 만드는 포션을 누구에게 먹이냐는 것인데…….
‘어차피 성흔까지 개방한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정예 중에서 추리면 될 테니 그리 결정이 그리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았다.
아마 유서아와 강한철, 백현 정도가 확정적이지 않을까.
아르카나 역시 충분한 대상자가 되겠지만…… 아직 디아블로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길드원들이 동의할지는 의문이다.
세운도 아직 그녀를 완전히 신뢰하지는 않고 말이다.
“아, 그리고 이거.”
이하늘은 빈 포션들을 정리한 뒤 세운에게 웬 쪽지 한 장을 건네주었다.
흔히 사용하는 흰 종이가 아니라, 새까맣고 질긴 재질의 종이쪽지였다.
“세운 씨에게 전달해 주라고 부탁받은 쪽지예요.”
“나한테?”
“네. 쪽지를 받자마자 사라져서 누군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검은 로브를 입고 있는 여성이었어요.”
“검은 로브…….”
길드전 전에 찾아온 흑익의 깃털이 떠올라 쪽지를 뒤집어 보자 반대편에 붉은 날개 한쪽이 그려 있었다.
쪽지의 주인이 누군지 알아챈 세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용을 읽어보았다.
[ 괴물 ]‘……?’
쪽지를 펼치자마자 정중앙에 쓰여 있는 단 두 글자에, ‘설마 이게 끝인가?’ 하며 당황하였는데, 다행히도 뒷면에 제대로 된 내용이 담겨 있었다.
[ 잘 봤습니다. 그 언변은 아직까지 마음에 안 들지만, 실력 없는 자만심이 아니었다는 건 확인했습니다. ]간부에게 바로 보고를 넣기 위해 자신은 바로 엘하임을 떠나겠다.
대충 그런 내용이 담겨 있는 짧은 쪽지였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는…….
[ 자세한 내용은 추후에 따로 전달되겠지만, 저희 마스터는 80층 대의 시련을 수색 중입니다. 그러니 저희 마스터를 뵙고 싶다면, 일단은 아홉 번째 쉼터에 먼저 올라오셔야 할 겁니다. ]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루시퍼가 찾고 있는 ‘탑을 뒤집는’ 것과 관련된 무언가가 80층 대의 시련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모양이다.
제논과의 마지막 전투가 이루어진 심해는 아무리 길드전의 관람 시스템이라 하여도 어둡고, 화려한 기술들 때문에 제대로 방영되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는데.
알아서 잘 파악하고 결정을 내렸나 보다.
“아, 그리고 서아 씨가 남긴 말이 있어요.”
“……청해에 관한 건가?”
“네. 산하 길드로 들어오게 된 청해 길드의 처분에 관해서 상담하고 싶다더라구요. 청해의 길드장도 대면을 신청해 왔구요.”
“일단 유서아 먼저 봐야겠네.”
“조금 더 쉬고 있어요. 서아 씨는 제가 불러올게요.”
“고마워.”
“뭘요. 혹시라도 어디 더 아픈 데 있으면 불러주세요.”
청해 길드의 처분이라…….
흑익의 제안을 생각하느라 거기까지는 생각 못 하고 있었는데.
기왕 얻게 된 믿음직한 산하 길드를 어떻게 굴려야 할지 생각해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