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79)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79화(479/675)
제 479화
대학회, 엘 아브르.
엘하임에 존재하는 수많은 시설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역사를 보유한 명망 있는 학회였다.
그런데도 엘하임에서 엘 아브르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렇게나 꼭꼭 숨겨 뒀으니까.’
그 이유는 세운이 엘 아브르의 유일한 출입구를 찾아왔을 때부터 증명되었다.
증패를 소지하지 않은 자는 철저하게 거부하는 시스템.
이곳은 철저하게 증패를 받은 사람만이 소개받고, 드나들 수 있는 곳이었다.
그 증패는 엘하임에 존재하는 다양한 시설에서 뛰어난 실력이나 공로를 인정받는 등의 자격을 갖춘 자에게만 지급된다.
회귀 전에 엘하임의 모든 가지를 탐색하였던 세운처럼 말이다.
“그보다, 정말 어떻게 찾은 겁니까? 저희 학회의 보안은 철저한 편인데.”
“우연입니다.”
“인식 차단 같은 정신계 마법은 당연하고, 회귀성 원칙이 담긴 공간 마법까지 사용된 결계를 우연히 뚫고 왔다구요?”
“네, 우연입니다.”
“하필이면 모든 결계를 뚫고 들어와 도착한 숨겨진 계단 앞에서 공포의 정령을 불러내서 저 할아버지를 부른 것도요?”
“네, 우연입니다.”
“저희 학회 고양이 레옹도 안 믿겠네요.”
– 주인, 나 그냥 돌아가면 안 돼? 저 할아버지, 싫어!
“미안해, 튜리크. 잠깐만 있어 줘.”
– 으응…….
“공포의 정령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긴 하다만, 생각보다 지닌 힘이 강해 보이는구먼! 이 정도면 최소 중위 정령 이상. 상위 정령에 가까울 터인데.”
저 뒤에서 연신 중얼거리고 있는 할아버지는 학회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탑에서도 흔하지 않다고 알려진 정령사.
그중에서도 상위 정령과 계약을 맺은 강력한 정령사로, 젊은 나이에 탑에 들어왔다고 알고 있는데, 노인이 되었다니 나이가 그의 경력을 증명해 주었다.
아무튼, 정령에 한해서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 성격인 할아버지의 성격은 회귀 전부터 알고 있었다.
‘죄송하긴 하지만…… 아니, 그토록 원하던 정신계 정령을 만나게 해 주었으니 그럴 것도 없지.’
세운은 그의 성격을 이용하여 그가 직접 찾아 나오도록 계단의 앞에서 튜리크를 소환한 것이다.
상위 정령과 계약을 나눈 그라면 저 지하에서도 충분히 튜리크의 존재를 알아차리리라 생각했으니까.
“여기가 접대실입니다. 그쪽은 저랑 대화 좀 하시고, 할아버지는…….”
“오오, 부디 힘을 좀 써주면 안 되겠나? 공포의 힘이라니, 꼭 경험해 보고 싶다네!”
“……역소환 좀 시켜주면 안 될까요?”
“그러죠. 튜리크?”
– 으, 이 할아버지 정말 싫어!
“아, 안 되네!!”
쿵!
노인이 비명을 지르는 사이에 안내인이 재빠르게 문을 닫아 버렸다. 당연하게도 노인이 상황을 파악하고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자, 잠깐! 조금만 더 시간을 주게! 부디 일 년만! 아니, 이 년만 주게! 나한테 공격을 명령해 주면 안 되겠나? 제발 부탁이네!”
“하아…….”
안내인이 한숨을 내쉬며 손짓을 하자 문 주위로 마법진이 일렁거리더니 노인의 목소리가 뚝 끊어졌다. 문을 두들기던 소리 역시 마찬가지.
아무래도 방음과 관련된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었던 듯하다.
덕분에 세운은 느긋한 마음으로 안내인이 안내해 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이제 우연 타령 그만하고 본론이나 얘기하시죠?”
안내자가 손등에 턱을 괴며 세운을 올려보았다.
지금까지는 우연히 찾아온 거라며 넘어가고 있었지만, 이제부터 본론을 꺼내야 하니, 세운도 사실을 말할 필요가 있었다.
세운이 이곳에 찾아온 이유는 단 하나.
“엘 아브르의 최심층. 검은 뿌리에 출입하고 싶습니다.”
“하, 검은 뿌리의 존재까지 아시는 겁니까?”
안내자는 괴고 있던 턱이 미끄러질 정도로 놀라며 목소리를 키웠다.
그도 그럴 게, 검은 뿌리라 함은 엘 아브르의 회원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알고 있는 곳이었으니까.
여기서 말하는 극히 일부라 함은…….
“관계자와 대현자님들만 아는 곳을 대체 어떻게 알고 계시는 겁니까?”
엘 아브르에서 가장 뛰어난 학자들. 전부 세어도 열 명이 넘어가지 않는 대현자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눈앞의 안내인 역시 가벼운 태도를 보이긴 해도 엘 아브르의 출입을 포함하여 각종 대소사를 관리하고 있는 관리인이었다.
그만큼 엄격하게 관리되고 보안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 바로 검은 뿌리였는데…….
그것을 세운이 안다고 하니 안내자의 눈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하, 대현자님들이 정보를 누출했을 것 같지는 않고. 정말 이해가 안 되네요. 당신, 지금 위험한 거 알죠?”
“입막음이라도 하려는 겁니까?”
“못할 것도 없죠. 검은 뿌리에 대해 알고 있다면 저희 엘 아브르가 단순히 범생이들이 모인 공부방이 아니란 건 알고 계실 텐데요.”
엘 아브르에 초청되는 이들은 책만 읽는 이들이 아니다.
애초에 세운이 모험가로서 업적을 인정받아 도착한 것만큼 마법사나 검사, 궁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최고의 업적을 인정받은 모두가 이곳에 초대받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본 목적은 지식의 교류와 탐구였기에 육체파가 선호하는 장소는 아니었지만, 학회의 절반 이상이 강력한 전사들로 이루어진 것은 분명하다.
“입막음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않습니까?”
“입막음비라도 달라는 겁니까?”
“아닙니다. 애초에 말하지 않았습니까, 제 목적이 검은 뿌리에 출입하는 것이라는 걸.”
“……설마, 그쪽을 대현자로 인정해 주라는 겁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검은 뿌리를 출입하기 위해서는 대현자가 되어야만 한다. 그게 엘 아브르에 존재하는 불변의 규칙이었다.
다만, 대현자라 함은 엘 아브르에서 수많은 논문과 실력을 인정받아 이른 최고의 권위자들.
아무리 안내자라 해도 세운을 권위자들 몰래 검은 뿌리에 넣어주는 건 불가능하고, 대현자로 만들어 주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했다.
하지만, 세운은 꼼수로 대현자의 반열에 오를 생각이 없었다.
“엘 아브르의 회원 자격만 만들어 주십시오.”
“공포의 정령을 선보인 시점에서 자격은 충분해요. 아니, 이곳을 찾아낸 것부터가 모험가로서의 요건도 충족할 수준이에요. 회원 자격은 어렵지 않지만…….”
“그 뒤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알아서? 설마, 알아서 대현자의 반열에 오르겠다는 겁니까?”
“네.”
“하…….”
안내자가 고개를 푹 숙이더니 머리를 쥐어뜯듯이 꽉 붙잡았다.
세운은 그녀가 왜 저러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엘 아브르에서 대현자가 된다는 건 이렇게나 쉽게 내뱉을 만한 말이 아니었으니까.
“당신, 대현자가 되기 위한 조건은 알고 있는 거 맞죠? 아니, 그 이전에 현자의 직위를 얻는 방법은 알고 있는 건가요?”
“당연하죠.”
“현자의 직위를 얻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에 존재하는 스무 명 이상의 현자가 인정하는 논문을 써야만 합니다!”
“네.”
“일반적으로 논문을 쓰려면 다른 현자의 아래에 들어가 수습 기간을 걸치며 논문을 배워야 한단 말입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논문을 배우기 위함일 뿐이지, 쓸 줄만 알면 바로 논문을 제출해도 되지 않습니까?”
회귀 전, 세운은 이미 엘 아브르에서 논문 쓰는 법을 익혀 두었다.
엘 아브르에 존재하는 ‘대도서관’을 이용하기 위하여 현자의 직위까지 갖춰 두었던 세운이었기에 다시 현자의 직위에 도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문제는 그 이후.
대현자의 자리에 도전하는 일이었다.
“논문을 쓸 줄 안다는 것도 이상하지만, 진짜 문제는 대현자입니다! S급 논문을 20개 이상 써내야 하는 것도 어렵지만, 이건 최소 요구일 뿐!”
“알고 있습니다. 대현자 중 절반 이상이 손을 들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걸 알면서 그러는 겁니까? 그 고집불통 영감들이! 하아…… 아무튼, 그 깐깐한 분들이 새파란 신인을 받아줄 것 같냐는 말입니다.”
“받지 않으면 곤란할 정도의 논문을 써내면 되지 않습니까?”
“진짜 말이 안 통하네…….”
안내자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도 그녀의 입장에서 세운의 제안은 그리 나쁜 것이 아니었다.
딱히 무리한 요구를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엘 아브르의 회원으로 받아주기만 하면 그 이후는 세운이 알아서 한다고 하였으니.
게다가 세운을 엘 아브르의 회원으로 받게 되면 정당한 방식으로 세운을 감시할 수 있다.
엘 아브르와 검은 뿌리에 대해 어떻게 알았는지 평화적으로 감시할 자격이 생긴다는 뜻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을 마친 그녀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할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지금부터 그쪽을 엘 아브르의 정식 회원으로 인정하겠습니다.”
“그럼.”
드륵.
“다만.”
세운이 의자를 밀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녀가 엄숙한 표정으로 세운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담겨 있는 것은, 자부심.
엘 아브르의 관리인으로서 엘 아브르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저희 엘 아브르와 이곳의 현자님들을 우습게 보지 않아야 할 겁니다.”
아마, 세운이 대현자의 직위를 별거 아니라는 듯이 입에 담아서 저런 말을 내뱉은 것이리라.
하지만, 세운은 대현자를 무시한 적이 없었다.
과거의 세운 역시 현자 중에서는 꽤 높은 자리에 도달하여 대도서관의 모든 구역에 출입을 허락받았지만, 결국 대현자의 자리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니까.
그런데도 세운이 대현자의 직위를 입에 담은 것은…….
“전 절대 엘 아브르를 무시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회귀 전에는 사용하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힘.
갖가지 무공과 마법, 정령, 신성 등의 힘을 직접 다루며 수많은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를 이용해 충분히 대현자의 직위에 도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덜컥.
세운이 방에서 나가고, 안내인만이 자리에 덩그렇게 남아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정보가 오고 간 탓일까?
그다지 몸을 많이 움직인 것도 아닌데 진이 빠지는 기분에 책상 위로 축 처져 엎드렸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마이크처럼 생긴 물건을 끌어당기며 중얼거렸다.
“지금 제 방에서 나간 사람한테 감시 인원 붙여주세요. 세 시간 단위로 행동 보고해 주시고, 긴급 사항 있으면 즉시 보고해 주세요.”
– 네.
그러곤 스위치를 바꿔 차분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대현자님.”
– …….
“대현자님.”
– …….
“청의 대현자님.”
– …….
“하, 지금 두 달째 논문 결과 안 나왔다고 기억하는데, 실험 자금 차단해 버릴…….”
– 오오, 우리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 안내양 아닌가!
“지금 설마 제 이름 잊은 건가요?”
– 하하, 그럴 리가 있는가! 내가 안내양의 이름을 잊어버릴 리가 없지 않은가! 그 아름다운 이름을 말일세. 그러니까…….
– 대, 대현자님! 아엔, 아엔이요! 저희 자금 끊기면 죽습니다!
– 아엔 양! 아엔 양이지 않은가! 하하!
“하아……. 됐고, 지금 검은 뿌리의 출입을 원하며 결계까지 뚫고 플레이어 한 명이 들어왔어요.”
– 음? 그걸 왜 나한테…….
“대현자님 아래에 전문가 많잖아요? 활동비 지급해 드릴 테니까, 몇 명만 빌려주세요.”
– 화, 활동비! 알겠네! 거기, 그…… 자네! 자네! 얼른 위로 뛰어가세!
– 알겠습니다! 어, 근데 대현자님. 설마 저희 이름도 모르시는 겁니까……?
– 무슨 소리인가! 내 사랑스러운 제자의 이름을 어찌 잊겠나! 그저 상황이 너무 급하니, 얼른 뛰어가게나!
– 네, 네!
“하아…….”
엘 아브르의 최고 관리인, 아엔이 지끈거리는 이마를 붙잡았다.
하여튼, 여기엔 정상인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비정상인으로 예상되는 플레이어가 또 한 명 추가되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관리인이라고는 해도, 그녀 역시 어엿한 엘 아브르의 회원이기 때문일까?
“정말,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한숨을 내쉬는 그녀의 입꼬리가 미약하게 올라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