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81)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81화(481/675)
제 481화
“튜리크가 지내는 곳은 어떤 곳이야?”
– 처음에는 작고 어두운 곳이었어. 바로 옆이 세오가 살던 곳이어서 조금 우울하기도 했고.
“세오?”
– 지금은 친해! 슬픔의 정령이긴 한데, 걸핏하면 울긴 해도 아주 착하거든.
“그렇구나.”
세운의 연구는 튜리크와의 대화를 통해 진행되었다.
기본적으로 튜리크는 세운과의 대화 자체를 즐기고 있었고, 특히나 정령계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이나 새롭게 넓힌 영역에 관해 얘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니 복잡한 연구 과정이 필요 없이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 논문을 작성할 수 있었다.
“오오, 슬픔의 정령이라니! 비애의 정령과는 다른 느낌인 건가?”
“미묘하게 다를 거예요. 저도 메를로와 계약할 때 느꼈던 감정이 슬픔과는 조금 달랐거든요.”
“그렇구먼! 비슷하면서도 다른 감정이 여러 개로 나뉘어 있으니, 감정계 정령들이 무소속으로 나뉘어 있었던 게야.”
그리고 여기에는 노인의 도움이 컸다.
논문에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세운도 정령계 논문은 서술 방식이나 근거 작성법 등이 꽤 많이 달랐으니까.
세운의 논문 작성을 지켜보던 노인과 두 조수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네! 이건 이렇게 서술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며 자선하여 도와주었다.
다른 연구실에서는 조수의 논문거리를 뺏어 쓰는 현자들도 있다고 기억하는데, 노인은 논문이나 실적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새로운 지식의 탐구와 논문의 완성도에 집중하고 있었다.
새삼 노인을 따라 이곳에 먼저 도착하여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순간이었다.
“정말?”
– 응! 헤헤, 나 너무 즐거워! 주인이랑 이런 얘기 하는 거, 좋아!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튜리크와 더욱 친해질 수 있었다.
정령과 친해진다는 건 곧 그만큼 정령의 힘을 더 자유롭게 다룰 수 있게 된다는 뜻이었으니 세운에게도 나쁠 게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이번 대화를 통해 깨달은 점이 꽤 많았다.
그중에서는 당장 전투에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은 것들도 있었고 말이다.
예를 들자면…….
“그럼, 지금 부를 수도 있어?”
– 음, 여기라면 될 것 같아! 잠깐만, 지금 해 볼게!
우웅.
튜리크의 영역에 포함된 무소속 정령을 불러오는 일 같은 것 말이다.
튜리크가 눈을 감고 집중하자, 실험실의 벽 쪽에 원탁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형태의 문이 생겨났다.
크기가 작긴 해도, 꽤 힘든 작업이었는지 문이 덜덜 떨리며 힘겹게 열렸다.
그리고 곧, 그 안에서 작은 정령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 튜리크 님. 부르셨습니까.
– 퓨리, 오랜만이야!
분노의 정령, 퓨리.
실험실의 정령력으로 소환한 것인지, 실험실의 정령력이 낮아진 게 느껴졌다.
“오오, 정령이 정령을 소환하다니! 이건 정령왕만이 가능한 기술 아닌가!”
“정말인가요? 그럼 저 공포의 정령은…….”
“정령왕은 아닐세. 그 정도는 아니야. 아, 애초에 명제가 잘못됐을 수도 있구먼. 정령왕만이 정령을 소환할 수 있는 게 아니었던 게야.”
“그럼…….”
“그저 자신의 아래 소속되어 있는 정령을 불러낼 수 있는 간단한 조건이었던 거지!”
“그럼 사대 정령들도 하위 정령을 불러낼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니지. 사대 정령들은 모두 해당하는 속성의 정령왕 소속일세. 그러니 정령왕만이 그들을 부를 수 있는 거지.”
“그렇군요. 감정계 정령들에게는 소속된 정령왕이 없으니…….”
“그래. 그렇기에 영역을 넓히면 곧 해당 영역의 정령들을 다스리게 되는 걸세.”
“잠깐, 그런 방식으로 영역을 계속 넓히다가 무소속 정령들을 모두 소속시킨다면요?”
“그러기 위해서는 엄청난 힘이 필요하겠지. 하지만,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정령계에 새로운 왕이 생겨나는 거 아니겠나?”
“와아…….”
세운은 옆에서 중얼거리는 노인과 조수의 대화에 집중했다.
둘은 저도 모르게 머릿속에 떠오른 정보들을 중얼거리고 있는 거겠지만, 세운에게는 하나같이 주옥같은 정보들이었다.
단순히 논문에 기록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라, 튜리크의 미래나 성장 방향에 관한 것들까지 말이다.
‘정령왕이라…….’
문뜩, 원탁에 앉아 있던 네 정령왕의 사이에 튜리크가 앉아 있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그러기에는 아직 튜리크가 너무 어린 것 같았지만, 지금의 성장세라면 문제없지 않을까?
정령계의 중심. 정신과 현상, 행위와 관련된 무소속 정령들을 아우르는 정령왕의 탄생이라…….
그 중심에 앉아 있는 튜리크를 떠올리니 어깨가 절로 으쓱거릴 정도였다.
– 퓨리, 그쪽은 요즘 어때?
– 다들 바쁩니다. 특히, 외각이.
– 정령왕님들 모두 바쁘게 움직이고 계시나 보구나.
튜리크와 하위 정령을 대화를 보고 있자니,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지금 소환된 퓨리라는 정령.
분노의 정령이라면, 튜리크가 공포의 권능을 강화한 것처럼 광란의 권능을 강화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튜리크, 혹시 이런 것도 가능할까?”
– 응? 으음, 해 볼게! 퓨리, 도와줄래?
–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퓨리가 세운의 앞으로 다가왔다.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자, 퓨리가 빨려 들어가듯 성흔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곧바로 성흔에서 느껴지는 저항감.
이물질이 들어온 것처럼 불편하고, 뜨겁지는 않아도 타는 듯한 작열감으로 인해 절로 주먹이 쥐어졌다.
그 모든 거부감을 억누르며, 세운이 성흔의 힘을 발현하였다.
– 성흔이 혈랑전설의 설화에 반응합니다.
– 성흔의 두 번째 능력, ‘광란’이 깨어납니다.
평소와는 다른 뜨거운 감정이 성흔을 통해서 가슴으로 치오른다.
꽉 쥔 주먹을 당장에라도 휘두르고 싶었고, 얼른 날카로운 날붙이를 쥐어 들고 싶었다.
광란의 권능을 발현할 때도 투쟁심과 비슷한 뜨거운 감정을 느꼈지만, 이 감정은 그것과 다르다.
분노.
퓨리의 힘이 광란의 힘에 어우러져 있었다.
광란의 힘이 평소보다 더욱 뜨겁게 타오르는 게 선명하게 느껴졌다.
당장에라도 이 힘을 시험해 보고 싶었지만…….
터엉!
“큭.”
“자네! 괜찮나? 갑자기 무슨 일을 벌인 건가? 아파도 조금만 참고 지금 느껴지는 감각을 말해 보게! 이런 건 바로 안 말하면 금세 잊는다네! 고통보다는 지식이 우선이라네!”
그 와중에 노인의 반응이 조금 짜증 났지만, 예상한 결과였기에 금방 침착을 되찾을 수 있었다.
비록 그리 오래 유지할 수는 없었지만.
‘가능해.’
퓨리의 힘으로 광란의 힘을 강화하는 데 성공했다.
아직 정령력이 없으면 퓨리 같은 하위 정령을 불러낼 수 없다는 문제점과 계약되지 않은 정령이 들어왔을 때 특유의 거부감 등.
다양한 문제가 있었지만,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소득이었다.
‘이거 괜찮은데?’
단순히 논문을 작성하여 아우터를 찾아가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다.
회귀 전에 이미 플레이어로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거의 대부분 습득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굳이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연구와 실험을 통해서도 힘을 발전할 방법이 남아 있었다.
오히려 최근 수련을 생각해 봤을 때,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 이렇게 새로운 것들을 알아가는 게 발전에 더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 몇 가지만 더 확인해 볼까?”
– 응!
“자, 잠시. 그전에 이것부터 확인해 보는 게 어떻겠나? 분명 자네에게도 도움이 될 걸세! 부디!”
엘 아브르에서의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또 즐겁게 흘러갔다.
* * *
“르르바돈 님, 갑자기 이게 무슨 일입니까?”
“갑자기 호출이라니. 평소에 저희 연락에는 귀를 닫고 살던 양반이 눈치도 없이.”
“바쁘니까 얼른 용건만 말씀하시죠.”
“아, 혹시 저번에 제가 말한 연구에 거들 생각이 드셨습니까? 정말 잘 생각하셨습니다!”
엘 아브르의 세미나실.
제법 넓은 공간에 르르바돈을 포함한 다섯 명의 현자가 모여 있었다. 그들은 모두 엘 아브르에서 정령과 관련된 연구를 행하는 현자들이었다.
다른 직군에 비해 정령사는 유독 수가 적었기에 그들의 관계는 제법 끈끈했다.
단 한 명, 르르바돈을 제외하면 말이다.
“허허, 다들 닥치게. 헛소리 좀 작작 하고.”
“기껏 와줬더니, 이 노망난 할배가……!”
그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성격은 더러워도 같은 정령사의 요청에 자리에 모여준 것인데, 다짜고짜 저런 말투라니.
못 참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선 현자의 앞으로 종이 뭉치 하나가 툭 떨어졌다.
다른 현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우리 연구실의 조수…… 아니, 우리 연구실 소속은 아니지. 아무튼, 새롭게 쓴 논문이라네.”
“정령계의 계급에 대한 새로운 고찰?”
“이게 다 몇 개야.”
“무소속 정령의 성장 가능성, 정신계 정령의 특수성 분석……. 이게 다 뭡니까? 정세운? 당신이 쓴 논문도 아니고.”
“말도 많네. 이래서 닥치라고 했던 거라네. 일단 그냥 입 닫고 읽어보지. 얘기는 그 후에 하세.”
“하, 진짜 이 영감탱이가!”
탁!
자리에서 일어났던 현자가 화를 내면서도 의자를 끌어당겨 자리에 도로 앉았다.
그러고는 재빠르게 눈앞에 놓인 논문들을 펼쳐보았다.
아무리 화가 나도 지식욕을 참을 수는 없었다.
엘 아브르에서 현자로서 자리하고 있는 이상, 그들의 지식욕은 생리적인 욕구를 뛰어넘는 욕구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
한동안 독서 시간이 유지되었다.
세미나실에서는 노인의 자신감 넘치는 흘흘거리는 웃음소리와 논문 넘어가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러다 점차…….
“허……!”
“무소속 정령들이 성장을 할 수 있다고?”
“아니, 이게 무슨! 이런 궤변이! 아니, 결과는 충분히 유의한 결과로 보이는데.”
“자네, 이거 맞나? 이 중에서 정령계의 계급에 대해 제일 빠삭한 게 자네잖나.”
“……충분히 가능성 있습니다. 저도 가서 확인해야겠지만, 충분히…….”
조금 전까지만 해도 투덜거리며 논문을 넘기고 있던 현자들이 논문에 고개를 박아 넣으며 진지하게 수군거렸다.
아니, 투덜거리던 현자가 가장 깊숙이 빠져들어 있었다.
그들의 토론은 끊이지 않았다.
세 개의 논문을 가지고 장작 다섯 시간이 넘게 토론이 이어졌다.
노인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그러던 중, 토론이 끝난 현자들은, 아니, 토론으로 나눌 수 있는 정보에 한계를 느낀 현자들이 논문을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이거! 정세운? 대체 누굽니까!”
“허허, 말하지 않았나. 우리 연구실에 새로 들어온 이라고.”
“지금 당장 만나볼 수 있겠습니까? 아니, 우리 연구실에 정식으로 초청하겠습니다!”
“무슨 소리입니까! 제가 먼저입니다!”
“어림도 없지!”
“아까는 제가 이 분야의 전문가라 하지 않았습니까! 확인 작업도 거칠 겸…….”
“확인은 무슨, 이 정도면 이미 유의미하지! 바로 다음 연계 논문부터 준비해야 해!”
“재검증은 항상 필요한 법입니다!”
“허허, 다들 진정하게.”
노인이 다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현자들을 진정시켰다. 그러고는 네 개의 펜을 현자들에게 각각 나누어 주었다.
해당 논문의 가치를 평가 내리는 작성지와 함께였는데, 여기서 해당 분야의 현자들이 내리는 평가에 의해 논문의 등급이 정해진다.
“일단은 평가부터 해 주게. 혹시 아나? 평가가 좋은 순으로 자네들에게 협력할지.”
“그래도 일단은 검증을 거친 후에 점수를 매기는 게…….”
“에스! 제가 제일 먼저입니다!”
“혀, 현자로서 너무 무책임한 평가 아닙니까!”
“객관성은 충분하다니까! 저도 적어냈습니다! 한 시간 후에 시간 되십니까? 제가 영감님. 아니, 현자님 연구실로 찾아가겠습니다!”
세운이 본격적으로 엘 아브르에 파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