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84)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84화(484/675)
제 484화
“어, 어떻게 칠 서클 마법사……님이.”
“이제야 자기 수준을 파악한 모양이네.”
세운은 연구실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라 할 수 있던 4서클 마법사에게는 존대하였지만, 연구실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셀데에게는 말을 낮추었다.
세운이 말을 낮추고 높이는 기준은 단 하나였다.
‘먼저 나를 하대하거나 깔보는 사람한테 존댓말을 쓸 필요는 없지.’
상대가 자신을 존중하느냐, 아니냐. 이게 가장 큰 기준이었다.
예를 들자면 같은 마신이라 하여도 마몬이나 베엘제붑 같은 이들이나, 루시퍼를 예를 들 수 있다.
베엘제붑이 아무리 생각 없어 보여도 세운은 항상 그에게 존대를 해왔다.
반대로, 그 강하다는 루시퍼 앞에서는 기세에 눌려가면서도 반말을 사용했다.
그 외에도 상대가 적이냐 아군이냐 등, 다양한 경우의 수가 있긴 하지만 결국 가장 큰 점은 바로 이것이었다.
“……어째서 정체를 숨겨 오셨습니까. 당신 정도라면…….”
“내가 언제 서클을 숨겼나? 멍청한 네가 혼자서 발광했던 거지.”
세운은 서클을 숨기지 않았다.
마음만 먹는다면 서클 주위에 마나를 둘러 마나 스캔으로부터 피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어차피 이 연구실의 대현자가 8서클이라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서클을 훤히 드러내고 있음에도 눈을 가린 채 아웅거렸던 건 바로 이놈이었다.
놈이 분한지 주먹을 쥔 채로 팔을 벌벌 떨었다. 그러나, 아직 자존심은 버리지 못했는지 재빠르게 말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하지만, 아무리 7서클이라 하셔도 이곳은 청의 연구실입니다. 저희 연구에 궤변을 논하실 자격은 없습니다.”
“궤변? 듣고 나서도 이상한 점을 파악하지 못하는 걸 보니 저 실험은 네 머릿속에서 나왔나 보지?”
“후우…… 그럼 말해 보시죠. 그 변수라는 게 무엇입니까?”
“속성별 충돌 효과를 분석하고 있나 본데, 그러려면 마법을 완전히 통일시키는 게 먼저 아닌가?”
원초적인 문제였다.
같은 마법사가 같은 마법을 충돌시키지 않는 이상 마법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게 세운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세운이 말한 변수를 들은 셀데가 한쪽 입꼬리를 잡아당기며 비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어이없다는 듯이 비웃음을 흘리며 반박을 시작하였다.
“하하, 제가 설마 그런 기본적인 변수조차 차단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까? 역시, 아무리 7서클이라 하여도 엘 아브르에서는 초짜나 다름없군요.”
“미리 고려한 게 저 정도란 건가?”
“저 정도라니. 이보다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거기, 둘!”
“네!”
“네, 셀데 님.”
셀데의 부름에 실험실 안에 있던 두 마법사가 다급하게 튀어나왔다.
길어진 실험에 둘 다 꽤나 지친 모습이었지만, 내색도 하지 못한 채 곧바로 자세를 다잡는다.
“아까도 말씀하셨다시피 이 둘은 거의 같은 시기에 4서클에 도달한 마법사입니다. 같은 스승에게 마법을 배워 수련법도 같고, 배운 마법도 같습니다.”
“그게 뭐 어떻다는 거지?”
“그게 끝이 아닙니다! 실험 전에 같은 마법을 사용하여 위력도 통일시켰고, 수식도 통일시켰단 말입니다. 이보다 완벽하게 변수를 차단할 수 있습니까?”
셀데가 자신만만하다는 듯이 두 팔을 활짝 벌렸다.
그 모습에 세운은 절로 한숨이 튀어나왔다.
“설마 이 실험, 청의 대현자님에게 검증을 맞고 시작한 건가? 그렇다면 실망이군. 대현자의 위치에서 이것도 파악하지 못하고 실험을 허락하다니.”
“제가 이 연구실에서 얼마나 오래 대현자님을 보조했는지 아십니까? 검증은 맞지 않았지만, 문제가 있을 리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그래도 대현자라는 분이 이런 변수도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라니 말이야.”
“당신, 대현자님을 모욕할 생각입니까!”
“검증도 안 받았다면서 무슨 소릴. 대현자님이 아니라 네 멍청함을 탓하는 거지.”
“이놈이……!”
셀데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얼굴까지 시뻘게진 상태지만, 전형적인 여유토강.
즉,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인물답게 7서클인 세운에게 감히 화를 내지는 못한다.
간신히 화를 억누르고 나서야 놈이 떨리는 입술을 벌렸다.
“이 이상 무슨 변수를 잡아야 한단 말입니까?”
“아무리 같은 시기에 성장하고 같은 수식을 배웠다고 해도 마법사마다 마법의 차이가 존재하게 마련이지.”
“그런 미묘한 차이 따위!”
“그 미묘한 차이로도 이런 실험의 결과는 변하게 마련이지. 그 사소한 차이로 논문의 유의성이 달라진다는 것도 모르는 건가?”
“마법의 유의값은 일반 논문보다 여유롭습니다. 그만큼 다루기가 어려운 게 바로 마법입니다!”
“아, 그런 변명으로 실험을 대충하고 있었던 건가?”
“대충이라니! 후우……. 좋습니다. 그럼, 그런 변수까지 차단할 방법이 있다는 겁니까?”
결국 세운의 말에 이기지 못한 채, 셀데가 거들먹거렸다.
하지만, 세운은 그 해답을 알려줄 생각이 없었다.
“내가 왜 그런 방법까지 알려줘야 하지?”
“네?”
“내 조언 하나로 유의값이 변할 수도 있는데? 난 너 같은 놈의 실험을 도울 생각은 없단 말이지.”
논문은 이 유의값에 따라 그 정확도가 달라진다.
유의값에 따라 사람들이 인용하는 수가 늘어나고, 그 수준을 인정받아 더욱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여기서 세운이 잘난 척하며 그 방법을 알려주면 당장은 시원할지 몰라도 결국에는 놈에게 도움 되는 꼴밖에 안 된다.
“하! 결국 자기도 모르니까 그런 거 아닙니까!”
“만약 알면 어쩔 거지?”
“이 논문을 가지시면 됩니다. 지금까지 나온 결괏값은 물론, 논문 작성을 위해 모아둔 자료나 첨언들까지 모두 드리겠습니다.”
“그 정도면 괜찮네.”
세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실험실 위로 올라갔다.
이미 논문의 수가 충분하다지만, 높은 평가를 받은 논문은 많을수록 좋다.
나중에 대현자들이 세운을 판단할 때 그 논문들이 세운의 기준을 높여줄 테니까.
“이번 실험의 변수가 마법사끼리의 차이라면, 답은 간단하지.”
세운이 오른손을 들어 불을 만들어 냈다.
파이어 볼.
2서클의 불 속성 공격 마법으로써, 세운이 튜토리얼에서 유용하게 사용했던 마법이기도 하다.
그저 원소를 발현시키는 1서클 마법과 달리 2서클 정도가 되면 이런 공격 마법을 사용할 수 있으니 실험용 마법으로써 가장 어울리는 마법이었다.
반대로.
파직!
왼손 위로는 전기로 이루어진 공, 라이트닝 볼을 떠 올렸다.
같은 서클로, 같은 수식으로 만들어진 서로 다른 속성의 마법이 충돌했다.
쾅!
2서클 마법끼리 부딪쳤다고는 상상하기 힘든 위력.
이 정도면 3서클의 두 마법이 충돌한 것과 비슷한 위력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느낀 것은 세운의 착각이 아니었다.
“파, 파이어 볼의 위력 411. 라이트닝 볼의 위력 398입니다! 어떻게 이런 수치가.”
“통상적인 이 서클 마법의 두 배에 해당하는 위력 수치입니다. 이 정도면 거의 3서클 마법에 가까운…….”
“과연 7서클 마법사!”
“충돌값 나왔습니다. 파이어 볼이 4.5% 더 유리한 속성값이 나왔습니다!”
“이 방식이라면 정말 논문 점수를 높일 수 있는……!”
쾅!
실험실의 데이터를 측정하던 두 마법사가 신이 나서 중얼거리던 중, 뒤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셀데가 마나까지 활성화하며 분노를 터트렸다.
학구심을 활활 불태우던 두 마법사가 화들짝 놀라며 입을 다물었다.
“이건 마법 전투 시에 두 마법사가 두 마법을 충돌하는 경우를 대비한 실험입니다! 그런데 혼자서 마법을 사용해서 실험을 진행한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실전 경험을 쌓으려면 밖에 나가서 하지? 아까부터 네가 말하지 않았나? 이곳은 엘 아브르라고. 실전보다는 정확한 수치가 우선이다.”
“그게 말이 됩니까!”
“당연히 말이 되지. 아, 물론 이것도 완벽하지는 않아. 이것보다는…….”
“허허, 이거 참. 초면부터 내 제자가 실례를 끼쳤구먼.”
“대현자님…… 헙!”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
그와 함께 셀데의 주위로 푸른 마법진이 그려졌다.
순식간에 그려진 마법진에서 수정처럼 매끄러운 결석이 올라오더니 셀데가 얼음에 갇힌 것처럼 굳어 버렸다.
‘봉인 수식인가?’
얼음 마법의 일종으로 보이지만, 한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최근 수식 변환에 익숙해지며 어지간한 마법은 보는 것만으로도 수식 유추가 가능했던 세운도 그 원리를 파악하기 힘든 마법이었다.
그와 함께 다가온 인영을 보며, 세운은 그가 청의 대현자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역시, 8서클 마법사였어.’
청의 대현자라는 이명이 딱 어울리는 모습의 노인.
심지어 머리까지 올라오는 긴 지팡이에서도 푸른 나뭇잎이 자라나고 있었다.
상황을 일단락시키기 위함인지 서클을 개방하고 존재감을 마음껏 드러내고 있었는데, 그 위압감에 절로 성흔이 반응할 지경이었다.
“마지막 기회를 주었던 것인데, 자만이 도를 넘었구먼. 안타깝게 되었어.”
노인이 손을 휘젓자 굳어버린 셀데의 몸이 마법진 아래로 사라졌다.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몰라도, 말하는 투로 보아 놈은 다시는 엘 아브르에 출입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이어서 듣고 싶구먼. 내가 보기에도 그 방법마저 완전하지는 않아 보이니 말일세.”
노인이 사라진 셀데에게서 눈을 떼고 세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궁금하다는 어투이지만, 세운이 보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그저, 세운을 실험하고 있을 뿐이었다.
“같은 서클과 같은 수식을 사용하더라도, 제 서클로는 실험이 부적합합니다.”
“허허, 자신의 특성을 잘 알고 있구먼. 모든 서클을 서로 다른 속성으로 채우고 있다니, 무모하기 그지없는 발상이야. 목숨이 두 개가 아니고서야.”
현재 세운의 서클들은 각각 다른 마탑의 수련법을 사용하여 단련해 왔다.
그러니 같은 서클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다른 속성의 마법을 사용하면 그 위력에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즉, 그 해답은…….
“이곳의 마법사들은 전부 같은 수련법으로 성장해 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이들이 더블 캐스팅을 사용하여 실험을 진행하면 완벽한 값이 도출될 것입니다.”
세운이 아닌 다른 사람이 실험을 진행하면 된다.
물론, 더블 캐스팅은 일반적인 마법 수련과 별개의 일이었기에 이 중에 그를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의 열정을 보아하니 실험을 위해서라면 어떻게 해서라도 더블 캐스팅을 배워낼 것 같았다.
꿀꺽.
세운의 대답에 주변의 마법사들이 침을 삼켰다. 그들도 대현자가 세운을 시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주 잠깐, 짧은 침묵이 이어진 후, 대현자가 지팡이를 짚으며 세운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왔다.
그의 지팡이가 바닥에 닿을 때마다 연구실의 마나가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허허, 정답이네. 자기 자신에 대한 객관화도 완벽해. 이런 인재가 어디서 갑자기 뚝 떨어진 것인지 모르겠구나.”
실험실이 열리고, 대현자가 그 안으로 들어왔다.
세운과 나란히 선 그의 체구는 세운보다 약소했지만, 앞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거인의 그것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반갑다네. 이곳을 맡고 있는 청의 대현자, 몰 아르기닌이라고 한다네.”
대현자가 건네는 악수.
단순한 악수라기에는 실험실의 마나 전체가 그의 손을 따라 움직이며 세운의 어깨를 짓누르는 듯했다.
말은 저렇게 해도 제자의 잘못을 세운의 탓으로 생각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단순한 기선제압일까?
이유가 무엇이든, 세운은 그의 위압감에 무릎을 꿇을 생각이 없었다.
튜리크의 힘을 빌릴 필요도 없이 성흔을 미약하게 밝히는 것만으로 위압감을 가볍게 떨치며, 세운이 손을 뻗었다.
“세운입니다.”
엘 아브르의 첫 번째 대현자를 대면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