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86)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86화(486/675)
제 486화
세운의 몸에 들어와 스스로 관찰에 나서겠다는 대현자.
그 말이 이해 가지 않아 한 차례 되묻자, 대현자는 직접 보여주겠다며 세운을 어딘가로 안내하였다.
“얼른 따라오게. 내 최고의 걸작이라 할 수 있는 것이야. 우리 조수들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것이니,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건 이번이 처음이로구먼.”
무척이나 들뜬 모습.
말보다 직접 보여주는 게 낫다는 태도는 세운도 무척이나 공감하는 것이었기에 얌전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내가 8서클에 이른지 얼마나 된 것 같나?”
“……30년쯤 되신 것 같습니다.”
“허허, 정확하구먼.”
본래 7서클 마법사인 세운이 8서클인 대현자의 수준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란 불가능했다.
다만, 대현자는 지금 대놓고 정답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서클을 활짝 오픈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세운은 그의 서클을 정확히 읽어낼 수 있었다.
세운의 서클이 다양한 자재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신전 같다면, 그의 서클인 푸른 대해(大海)와도 같았다.
바다도 같은 바다가 아니라 태평양과 대서양, 인도양. 그리고 북극해와 남극해가 어우러져 거대한 오대양으로 불리듯이.
흑해를 포함하여 수많은 바다가 어우러져 40층의 시련 터가 이루어졌듯이.
그의 서클 역시 여덟 개의 푸르고 깨끗한 바다가 어우러져 거대한 세계를 이루고 있었다.
세운과는 전혀 다른 방향성. 그러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그렇다면, 내 문제점도 보이겠군.”
“마지막 서클이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허허, 역시 잘 보는구먼. 내가 서클을 개방했다고 하더라도 다다르지도 못한 여덟 번째 서클의 문제점을 알아보다니 말이네.”
다만, 그의 바다는 완벽하지 않았다.
마지막 여덟 번째 바다.
아니, 여덟 번째 서클이 절반쯤 나아가더니 지구의 끝에라도 도달한 것처럼 콸콸 흘러내리고 있었다.
더 이상 마나가 모이지 않고, 그 이상 정진하지 못했다.
즉, 현재 그의 문제점은.
“정체기…….”
“이 나이에 정체기라고 하는 것도 웃기지만 말일세. 허허.”
벽을 마주쳤다는 것이다.
마법사든 검사든 연금술사든, 누구든지 한 번쯤은 마주치는 거대한 성장의 벽. 더 이상 나아갈 방법이 보이지 않는 단단한 벽이었다.
“사실 8서클이라면 마법사들이 꿈에 그리는 경지다만…… 어떡하겠나? 천생이 마법사이자 학자인 몸인 것을. 내 죽더라도 이 마지막 서클만은 전부 채우고 싶었네.”
그의 목표는 9서클에 도달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현재 가지고 있는 여덟 개의 서클을 모두 채우는 것.
9서클에 도달하는 것이 싫은 게 아니라, 현재 자신의 수명과 상황을 총 종합하여 합리적으로 정한 목표일 것이다.
무작정 9서클을 향해 달려가기에 그는 너무 이성적이었다.
대현자에 도달하며 얻은 지식과 경험은 지극히 합리적인 단계까지만 꿈을 허락해 주었다.
“첫 십 년은 여태까지의 수련을 그대로 이어갔네. 8서클까지 도달해 온 내 길이 틀릴 리 없다 생각했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지.”
8서클이라 함은 탑에서도 보기 힘든 지고의 경지이다.
실질적으로 용을 제외한 이들이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 영역이라고도 불리는 경지.
그런 경지에 도달한 만큼, 당시의 대현자는 자신의 길에 한 치 의심도 없었을 거다.
“두 번째 십 년은 고민에 휩싸였네. 8서클 유저의 경지는 벗어났지만, 엑스퍼트의 경지 이후부터는 한 발도 움직이지 않았거든.”
8서클 엑스퍼트. 현재 세운이 바라본 대현자의 경지였다.
즉, 그는 8서클에 도달하고 10년이 지나는 동안 서클의 발전을 전혀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되었다.
“그때부터 다른 수를 생각해 보기 시작했네. 마법에 관한 모든 논문을 찾아보고,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힌트를 찾아보았네. 대현자로서 이름을 날린 것도 그 당시였지.”
“아까 보았던 마나 정제수도…….”
“당시의 결과물 중 하나였네. 마나 회로가 정화되어 마법의 효율이 높아졌지만, 결국 서클의 성장을 이륙하지는 못하였지.”
대현자를 따라 걷다 보니 처음 그의 연구실로 들어왔을 때 보았던 것과 비슷한 텔레포터에 도착했다.
물론, 그 아래에 적힌 마법진의 수식은 훨씬 복잡했다. 발동 수식 역시 마찬가지.
대현자인 그만이 발동할 수 있도록 수식이 짜여 있었는데, 그의 개인실로 이동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그때 생각했네.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무리라고. 나 스스로 나의 서클을 보며 직접 부족함을 채우든지, 다른 마법사의 서클을 보며 부족함을 깨우쳐야겠다고.”
대현자가 지팡이를 내려치자 마법진이 발동하며 시야가 흔들렸다.
수식이 얼마나 정교하게 짜였는지 공간 이동을 할 때마다 느껴지던 특유의 현기증 역시 거의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남은 십 년간 이 세상 모든 지식을 총망라하여 만들어 낸 결과물이 바로 이것이라네.”
이동이 끝나자마자 사방이 밀폐된 거대한 방이 드러났다.
아니, 이곳은 방이라고 하기 어려웠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마법진 안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바닥과 벽은 물론, 천장에도 빼곡하게 적혀 있는 마법진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장엄함이 느껴졌다.
특히, 마법진 곳곳에 박힌 거대한 마나석들은 딱 보아도 평범한 것들이 아니었다.
“대상의 힘을 분석하고 심상 세계(心象世界)로 구축하여 진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마법진이라네.”
“저것들은 최상급 마나석…… 아니, 그 이상으로 보입니다만.”
“허허, 그렇다네. 최상급 마나석으로는 이 마법진을 유지, 발동할 수 없기에 내가 직접 고안해 낸 마나석이지.”
“최상급 마나석 이상의 마나석을 직접 만들어 내신 겁니까?”
“마음 같아서는 드래곤 하트라도 만들고 싶었지만, 도저히 구할 수가 없더군. 그래서 만들어 낸 것인데, 하나당 최상급 마나석 3개 이상의 마나를 지니고 있다네.”
최상급 마나석이라 함은 실질적으로 드래곤 하트를 제외하고서 획득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마나석이었다.
마나가 풍성한 곳에서 오랜 시간 농축되어 만들어진 마나석은 마치 다이아몬드와 같아서 인위적으로 그 성능을 따라잡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그런데 그런 마나석의 세 배 이상의 마나를 지닌 마나석이라니.
만약 양산만 가능하다면 마법계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업적이지만.
“이 재료, 하이제나 크리스탈(High-jena crystal) 아닙니까?”
“호오. 다방면에 능통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만, 이쪽으로도 능통할 줄은 몰랐구먼.”
하이제나 크리스탈.
회귀 전의 세운도 몇 번 보지 못했던 희귀 광석이었다.
주로 드래곤의 레어와 같이 마나가 극도로 풍부한 곳에서 마나 그 자체가 석화되어 만들어진다고 알려진 광석.
마나석과는 다르게 마나를 품고 있지는 않지만, 극강의 마나 친화도를 지닌 광석이었다.
‘경매장에서도 한 해에 한두 번 나올까 말까 한 광석인데.’
그런 광석으로 만들어진 마나석이라니.
그것도 당장 이 방에 보이는 마나석의 수만 해도 열 개에 달하니, 사용된 하이제나 크리스탈의 양도 엄청나 보였다.
이렇게 구하기 어려운 재료로 만드는 마나석을 양산하는 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이것도 구하기 꽤나 까다로웠네. 다행히 대현자라는 자리가 이럴 때 도움이 되어서 이나마 구할 수 있었지.”
“마나석 내부는 마나 정제수로 채우신 겁니까?”
“아까 자네에게 준 건 식용으로 희석한 것이라네. 저기 채워진 것들은 사람이 식용할 수 없을 정도까지 극한으로 정제한 것들이지.”
“그렇군요.”
“허허, 내 노하우가 전부 까발려지는 기분이구먼.”
“아, 불편하시다면…….”
“아니네. 다 자네 안목이 뛰어나서 그런 것이지. 나도 부탁하는 입장에서 무엇을 숨기겠는가?”
세운은 마나석을 포함하여 방의 마법진 전체를 최대한 눈에 담았다.
당장은 수식을 전부 해석할 수 없지만, 대현자가 십 년이라는 세월을 투자하여 온 지식을 모아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완전히 해석하고 이해할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성장과 앞길에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하다.
“사실, 만드는 중에 나 자신의 내면을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네.”
“이 마법진을 발동하려면 최소 8서클 이상의 마법사여야만 가능하겠군요.”
“허허, 벌써 수식의 초입부를 해석한 겐가? 그렇다네. 애초에 심상 세계를 구현하는 것 자체가 나도 이 마법진과 마나석들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불가능한 수준이니 말이네.”
심상 세계의 구현화.
이는 주로 신들이 사용하는 영역의 행위였다.
그런 행위를 인간의 몸으로 마법을 사용해 재현하려고 하니 어려운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마, 이런 마법진과 마나석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면 최소 9서클의 수준에는 올라야 할 것이다.
“그 때문에 나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서클을 지닌 마법사. 그중에서도 7서클 이상의 마법사를 찾고 있었네.”
“그래서 저를 선택하신 겁니까?”
“허허, 나로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행운이었지. 처음으로 운명이라는 것에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다네.”
“제 서클을 본다고 벽을 뚫을 수 있을지…….”
“뚫지 못해도 자네를 탓할 생각은 없다네. 다만, 자네를 보자마자 확신했네. 나에게 자네를 뛰어넘는, 자네 이상의 기회는 없을 것이라고 말일세.”
솔직히, 세운이라도 그의 생각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세운 역시 8서클에 도달한 적은 없었으니까.
솔직히 벌써 7서클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만 하더라도 탐욕의 권능뿐만 아니라 폭식의 권능을 포함한 여러 기연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대현자의 허락하에 마법진을 둘러보던 세운은 곧 문제점을 하나 발견했다.
“……심상 세계에서 관찰 대상에게 간섭할 수도 있는 겁니까?”
“그렇다네. 애초에 이 마법진의 가장 큰 목적은 내 서클을 직접 확인하고 문제점을 고치는 일이었으니 말일세.”
“그럼 만약 잘못 건드리거나.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관찰 중에 문제가 생기면 제게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정확하네. 서클을 잘못 건드리기라도 하면 최악의 경우에 마나 폭주나 역류가 일어나 서클이 부서질 수도 있지.”
대현자는 굳이 세운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운이 묻지도 않은 최악의 상황을 나열하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그다음. 세운의 생각을 읽고 있는 것처럼, 거부하기 힘든 장점을 언급하였다.
“다만, 심상 세계에 관여할 수 있다는 것은 자네에게 이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네.”
“이점이라면 무엇 말입니까?”
“뭐든 가능하지. 마나 회로를 정리하거나 마나를 정화할 수도 있네. 단순히 서클만을 구현하는 게 아니라 자네의 모든 힘을 구현하는 것이니, 단전의 혈로 역시 뚫을 수 있겠지. 무엇보다.”
대현자가 세운의 왼쪽 가슴을 지켜보았다.
“자네 역시 7서클의 마지막 벽에 막혀 있지 않나?”
세운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얼마 전, 세운은 이미 7서클을 가득 채우며 7서클 마스터의 수준에 올랐다.
쉼터에서 여유가 있을 때 곧바로 탐욕의 권능을 일으켜 다음 수련법을 찾아보았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8서클의 벽.
이는 탐욕의 권능으로 부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나마 7서클까지 바로 올라올 수 있었던 것도 마법은 아니었지만, 회귀 전에 얻었던 다양한 깨달음의 도움이 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가능하다면, 내가 도와주겠네. 아까도 말했듯이, 내 마나라면 자네가 만들려는 여덟 번째 서클에도 도움이 될 것이네.”
무척이나 달콤한 제안. 하지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는 제안이었다.
“저에게 아무런 해가 없을 거라고 어떻게 믿습니까?”
“허허, 그거야 간단하지.”
대현자가 마법진 중앙에 놓인 가장 큰 마나석을 활성화하며 푸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네가 옆에서 직접 날 감시하면 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