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89)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89화(489/675)
제 489화
“그래서, 저게 정말 신이라는 말인가?”
“정확히는 신이었던 놈입니다.”
“허! 이거 원. 개인의 비밀은 지켜주고 싶어서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참고 있기가 힘들군. 시간도 남을 것 같은데 잠시 담소를 가지는 게 어떤가?”
“됐습니다.”
판의 정체를 들은 대현자가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심상 세계 내부라고 하더라도 신이라는 존재를 이렇게 코앞에서 볼 수 있다니.
그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이 판을 열심히 관찰하였지만, 녀석에게 있던 신의 격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그래, 앞장서.”
“히익!”
“말만 잘 들으면 안 건들 테니까 얼른 안내해.”
“아, 알겠습니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뿔 한쪽이 뜯겨 나가고 덩달아 그 아래의 동공도 맹해진 상태로, 오른쪽 눈만을 벌벌 떨며 앞으로 기어가고 있는 녀석. 저 모습을 보고 그 누가 성좌의 이미지를 떠올리겠는가?
지금 판의 모습은 영락없는 짐승의 모습에 불과했다.
“트, 트리톤은 이 아래에 있습니다.”
“아래라면, 라일락?”
“그 아래입니다. 바, 바다 안에 자리를 잡고 있을 겁니다. 그곳에서 히, 힘을 회복하겠다고 했습니다. 이곳에서는 그럴 수 없다고 말했지만, 듣지를 않았습니다.”
“그 아래라면…… 제헤튼이겠네.”
세운의 심상 세계가 탑과 같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면, 이 아래가 라일락. 그리고 그 아래는 항구도시 제헤튼일 터다.
바다의 신인 트리톤이 숨어 있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위치.
다만, 판의 말에서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힘을 회복하겠다고?’
대현자의 말처럼, 자신의 심상 세계도 아니고 남의 심상 세계에서 자신의 힘을 키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애초에 심상 세계에 존재하는 자들은 모두 실체가 아니었으니까.
지금 당장 세운과 대현자만 하더라도 실제의 모습과 똑같이 보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심상 세계에 걸맞게 구현화된 모습일 뿐이다.
이곳에서 마나를 흡수한다고 마나가 늘어나지도 않고, 근력 운동을 한다고 근력이 늘어나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건 판이나 트리톤 역시 마찬가지.
아니, 저들은 세운에게 먹혀버린 잔재에 불과하니 더더욱 그럴 가능성이 적었다.
저들도 한때는 성좌였으니 심상 세계에 대해 알고 있을 테고, 그걸 알고 있는 상태에서 힘을 키운다는 말을 했다니.
그것을 가능케 하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제헤튼에 단전이 위치한 건가.”
“그, 그렇습니다. 그곳에 기가, 기가 뭉쳐 있습니다.”
심상 세계에 존재하는 힘의 근원에 붙어 그 힘을 흡수하는 것. 그게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지금 트리톤은 세운의 단전에 붙어 그 힘을 빨아먹으려 하는 것이다.
“흐음, 자아가 남아 있다고 해도 이미 힘이 흡수된 존재가 심상 세계에 남아 주인의 힘을 흡수한다니. 불가능에 가깝긴 하다만, 그게 신이라면 말이 달라질 수도 있겠군.”
옆에서 세운과 판의 대화를 듣고 있던 대현자가 자신의 의견을 내뱉었다.
단전이나 서클 같은 힘의 근원은 심상 세계에서도 가장 엄중하게 보안이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 만큼, 그 벽은 심상 세계의 주인이 다가와도 쉽사리 풀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다만, 단전이 있는 위치가 바다라는 것과 힘을 흡수하려는 존재가 트리톤이라는 사실이 내심 불안했다.
“속도를 내지.”
“아, 알겠습니다! 메에에에!”
판이 다급하게 발굽을 굴리며 세운과 대현자를 아래로 인도하였다.
* * *
데스힐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예상대로 유혹의 도시, 라일락이었다.
다만, 밤의 도시라고도 불리는 그 찬란한 불빛은 전부 사라지고 라일락의 거리에는 어둠과 침묵만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나마 데스힐과 다른 점이라면 건물의 잔해가 큼직하게 남아 있다는 점이랄까?
덕분에 이동이 더욱 불편해졌지만, 세운과 대현자의 발길을 막을 정도는 아니었다.
“이, 이쪽으로 가시면. 훨씬 빠릅니다.”
“그래.”
“역시 신은 신이로군. 심상 세계에서 이렇게 자아를 멀쩡히 유지하고 있다니. 정말 놀라워. 게다가 이는 힘이 완전히 삼켜진 상태였지 않나.”
대현자는 판을 관찰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심상 세계에 진입하는 마법진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역시 심상 세계에 대해 알고 있는 게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심상 세계에서도 특별한 존재라 할 수 있는 판의 존재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 이제 곧 나옵니다.”
방금 지나온 곳이 카지노였는지 바닥엔 건물의 잔해와 함께 갖가지 코인이 가득 쏟아져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색이 바래 실버 코인과 플래티넘 코인이 구별이 안 될 지경이다.
우웅-
판의 말을 들은 세운이 여정의 지침표를 사용해 보았다.
혹시나, 만에 하나 판이 세운을 속이고 함정에 빠트릴 상황에 대비한 것인데 여정의 지침표는 판이 움직이는 곳과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덕분에 세운은 의심 없이 판의 안내에 따라 아래 층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도, 도착했습니다.”
아래로 내려가자마자 예상했던 시원한 파도 소리와 짭짤한 바닷바람……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불쾌한 습기만이 피부 위로 안착하여 곧바로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그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다.
“……흑해?”
“이곳이 정말 제헤튼인가? 저 검은 게 제헤튼의 아름다운 바다라니. 믿기지 않는군.”
항구도시라 불리는 활기찬 제헤튼은 완전히 죽어 있었다.
라일락은 건물의 잔해라도 남아 있었는데, 이곳은 파도에 휩쓸려 나간 것인지 건물의 잔해 따위도 남지 않았다.
남은 건 땅마저 시꺼멓게 죽어 진흙처럼 축축해진 대지와 움직임 없는 잔잔한 해수면.
마치 제헤튼 주변의 모든 바다가 흑해로 이루어져 있는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지나쳐 온 쉼터들보다도 상황이 더하군. 설마, 여기 들어가야 하는 건가?”
“묻잖아.”
“그, 그렇습니다.”
꼴에 마지막 자존심이라도 남은 것일까? 대현자의 물음은 들은 척도 안 하고 인상을 찌푸리려 하는 판에게 세운이 되묻자마자 대답이 칼같이 돌아왔다.
딱 보아도 숨 막힐 것 같은 저 진득한 흑해에 들어가기는 싫었지만,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었다.
“안내해.”
“알겠습니다.”
“잠수, 가능하십니까?”
“날 뭐로 보는가. 내 비록 헤엄은 못 쳐도, 헤엄을 칠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네.”
판을 시작으로 세운과 대현자가 흑해를 향해 움직였다.
판은 검은 바닷물이 몸에 닿는 게 영 내키지 않는지 움찔거렸지만, 세운이 한 번 쳐다봐 주자 후다닥 들어가 개헤엄을 치듯이 네발을 열심히 휘저었다.
세운은 목의 아가미를 벌려 흑해 특유의 진득한 물길을 빨아들이며 인상을 구겼고, 대마법사는 그런 세운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주변에 물방울을 둘렀다.
“아가미라니, 효율적이긴 해도 너무 불편하지 않은가?”
“그 방울에 들어가면 몸을 움직이는 데 한계가 있잖습니까.”
“아, 그렇군. 자네는 순수 마법사가 아니었지. 그렇다면 그 모습이 움직이기 더욱 편하겠어. 발상의 차이로군.”
대현자의 물방울은 마법을 사용하기에는 최적이지만, 스스로 물방울 안에 갇혀 있다는 특성 때문에 몸으로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저건 어디까지나 상대의 공격을 마법으로 대응하기 위한 최적의 마법.
마법과 무공을 동시에 사용하는 세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마법이다.
“이, 이쪽입니다.”
“어떻게 알고 가는 거지?”
“트리톤은 같은 올림포스의 동료였습니다. 기, 기운을 느끼는 건 간단합니다.”
열심히 개헤엄을 쳐가며 앞으로 나아가는 판.
비록 모습이 꼴사납긴 했어도 속도는 제법 빠른 수준이었기에 답답할 틈 없이 앞으로 쭉쭉 나아갔다.
‘여기도 아우터가 있는 것 같지는 않네.’
죽음의 바다. 또는 죽은 바다라 불리는 흑해.
해안 쪽의 바닥에는 사람의 것을 포함하여 다양한 해골들이 가라앉아 있었다.
바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흑해 특유의 악취가 느껴져 인상이 절로 구겨졌다.
만약 레비아탄이 이 모습을 보았다면 저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지 않았을까.
“거, 거리가 제법 있습니다.”
진득한 바닷물을 헤쳐가던 중, 세운은 주변의 바닷물이 점차 차가워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대현자에게 이를 말해 보니, 몰랐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가? 이게 온도까지 차단해 주는 거라 그것까진 몰랐군.”
“기의 주변이라 그렇습니다. 위는 따뜻합니다.”
“위?”
판의 말에 수면 위로 올라가 보자, 그 말뜻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흑해의 바닷물은 피부가 오싹해질 정도로 차가워지고 있었지만, 그와 반대로 수면 위의 공기는 뜨겁게 달궈 있었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상황.
“이제 거의 다 와 갑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운은 이 현상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저게 단전?”
시야의 끝.
수평선 중앙에 붉은 반구가 튀어나와 있었다.
그것은 마치 태양처럼 이글거리며 열기를 내뿜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주변의 공기가 뜨겁게 달궈지고 있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붉은 반구의 아래도 보였다.
“신기한 형상이로군. 자네의 단전, 마나 서클 못지않게 독특해.”
붉은 반구와는 정반대로 푸른색을 띠고 있는 반구가 아래쪽에 있었다.
색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차가운 한기가 바닷물을 차갑게 식히는 중이었다.
그 상반되는 온도 때문인지 주변의 공기가 휘몰아치며 태풍을 만들었고, 바다 역시 소용돌이치며 거대한 난류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심상 세계의 특성상 시각적으로 구현된 모습이라지만, 이런 건 생각지 못했는데.’
아마, 세운이 익힌 자하신공과 빙백신공의 특성이 겉으로 드러난 게 아닐까?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사방으로 열기와 냉기를 퍼트리고 있는 건 파극심공의 특성일 테고, 그러면서도 굳건하게 맞물려 구의 형상을 띄는 건 삼재공의 안정성이 아닐까 싶었다.
“자네가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다만, 꽤나 불안정해 보이는군.”
“……그렇네요.”
대현자의 의견에 세운도 동감하였다.
서클을 가꾸는 데는 집중하고 있었지만, 단전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어 그리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못했다.
서클을 수련법과 달리 무공은 ‘조화’라는 개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삼재공을 기반으로 파극심공의 내공을 받아들이고, 그 위로 음양의 내공을 모두 받아들인 세운의 단전은 무공을 익힌 플레이어 중에서도 손에 꼽힐, 아니, 어쩌면 유일할지도 모르는 구조를 띠고 있었다.
‘자세히 한번 살펴보고 싶은데.’
서클을 관찰하기 위해 찾아왔지만, 막상 마주치고 나니 단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어쩌면, 저 거대한 형상의 단전을 관찰하는 것으로 최근 찾아온 단전의 정체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차가운 냉기를 버티며 단전을 향해 다가가던 중.
“……판.”
“트, 트리톤.”
이미 한 번 들어보았던,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단전의 아래에 생겨난 거대한 소용돌이에서 어인의 모습을 한 성좌. 아니, 한때 성좌였던 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겁쟁이처럼 숨어 벌벌 떨고만 있더니, 이번에는 결국 복수도 잊고 인간 놈의 개가 되어 찾아온 거냐?”
세운이 먹어 치운 두 번째 성좌이자 포세이돈의 아들.
바다의 신, 트리톤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