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90)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90화(490/675)
제 490화
트리톤의 외양은 세운의 기억과 같았다.
전신은 번뜩이는 상어 비늘로 뒤덮여 있었고, 귀 아래로 길게 내려온 아가미와 톱니 같은 이빨, 바다를 닮아 푸른 눈동자에 돌고래를 닮아 윤기 나는 꼬리까지.
한 가지 부족한 게 있다면, 바로 녀석을 처음 대면했을 때 느꼈던 위압감이 없다는 점이었다.
‘하긴, 이놈도 판이랑 다를 바 없으니까.’
자아나 외견을 유지하고 있어봤자, 놈은 어차피 세운에게 흡수당한 잔재일 뿐이다.
이미 신으로서의 격이 사라진 상태에서 전과 같은 위압감을 드러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니, 솔직히 그때의 위압감을 드러낸다고 하여도 지금의 세운은 녀석 앞에서 고개를 숙일 수준이 아니었다.
“그 폐허의 먼지에 파묻혀 있을 때부터 알아봤다. 겁쟁이의 천성은 어디 가지 않나 보네.”
“그, 그건…….”
트리톤의 비아냥에 판이 시선을 피했다. 그러고는 세운을 쳐다보는 게, 안내를 했으니 어떻게 좀 해 달라고 애원하는 듯했다.
판의 목숨은 붙여 놓았지만 완전히 우호적으로 보는 건 아니다. 하지만 세운 역시 트리톤을 가만히 둘 생각은 없었다.
“자기도 숨어 있는 주제에 말은 잘하네.”
“뭐? 숨어 있긴 누가……!”
“이놈이나 네놈이나 똑같지. 자신 있었으면 진작에 일을 벌였을 거 아냐? 그래도 명색이 전직 성좐데 그 방법을 모를 리도 없고.”
복수를 위해 단전에 찾아와 힘을 키우려고 했다?
판과는 다르게 그나마 뭔가 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 상태를 보니 뭔가 얻은 게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른손은 시뻘겋게 화상을 입었고, 왼손은 동상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보아하니 여기서 제법 오랫동안 단전의 힘을 탐하려 시도했나 본데, 결국 성공하지는 못한 모양.
어쩌면 판도 처음에 저렇게 힘을 탐하려 시도하다 실패하고 포기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결국 너도 똑같지. 여기서 기생충 노릇이나 하고 있는.”
“기, 기생충이라니! 이놈이!”
“괜히 시간 끌 필요는 없지. 어차피 처리하고 가려 했으니.”
세운이 검을 꺼내 들었다.
이미 죽은 놈의 잔재와 말을 섞어봤자 얻을 수 있는 건 없었다.
“흐하하하! 멍청한 놈! 설마 내가 이곳에서 아무런 소득 없이 숨어 있었다고 생각하는 거냐!”
뿌우우우!
트리톤이 소라고둥을 꺼내 힘차게 불었다.
소라고둥 특유의 낮고 웅장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소용돌이치던 바닷물의 움직임이 변하기 시작했다.
“난 성공했다. 비록 아직 미약하지만, 성공했다!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네놈이 직접 찾아왔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소용돌이에서 삐져나온 바닷물의 끝이 꽁꽁 얼더니 날카로운 창의 형상이 되어 세운을 노려왔다.
뒤랑달을 휘둘러 경로를 비틀었지만, 공격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단전의 아래에 위치한 수십 개의 소용돌이에서 동시에 수십 개의 해류가 삐져나오며 날카로운 얼음 창이 되어 크라켄의 촉수처럼 세운에게 쏘아졌다.
“도움이 필요한가?”
“아닙니다.”
단전의 힘을 얼마나 흡수했는지는 몰라도, 놈 역시 판과 마찬가지로 신격을 잃은 잔재일 뿐.
발버둥 쳐 봐야 세운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 흑탑의 묘리에 따라 ‘아쿠아 스톰’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 적탑의 묘리에 따라 ‘아쿠아 스톰’의 범위가 확산됩니다.
세운의 앞으로 물의 폭풍이 일어났다.
다만, 이곳은 바닷속. 본래 일어나야 할 거대한 폭풍 대신 거대한 소용돌이가 일어났고, 본래 일어나야 할 폭우 대신 주변의 바닷물이 소용돌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마법은 자신의 서클에 담긴 마나를 매개로 주변의 마나를 끌어당겨 현상을 일으킨다.
그런 만큼, 주변의 마나가 얼마나 풍부한지, 주변이 어떤 속성의 마나로 이루어져 있는지 등, 다양한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지금 세운의 위치는 바닷속.
트리톤이 소라고둥을 불어 바닷물을 다스리지만, 세운 역시 그에 못지않은 위력을 일으킬 수 있었다.
콰콰콰콰-!!
“호오, 놀랍군. 7서클 마법의 수준을 뛰어넘었어.”
바닷속이라는 이점을 고려하더라도 세운의 마법은 7서클의 수준을 한참이나 뛰어넘은 것처럼 보였다.
그 위력은 트리톤이 일으킨 수십 개의 얼음 창을 가뿐히 삼킬 지경이었다.
소용돌이는 그걸로도 만족하지 못했는지 트리톤을 향해 쭉쭉 나아갔다.
단전 아래에 존재하던 수십 개의 소용돌이를 포악하게 먹어 치우며 덩치를 더욱 키우더니, 마침내 기세등등하게 소라고둥을 불고 있던 트리톤까지 집어삼켰다.
“경로상의 소용돌이를 삼킨 것도 계획이었나? 주변 환경을 이렇게나 잘 이용하다니. 이게 바로 실전 경험의 차이인가 싶군. 그럼, 이제 끝난 겐가?”
“아닐 겁니다.”
비록 주변 환경까지 극도로 이용한 7서클 마법이지만, 이 일격으로 트리톤을 무찌르긴 힘들 것이다.
그런 세운의 말을 증명하듯이 거대한 소용돌이가 터져나가며 그 안에서 이전과 다른 모습의 트리톤이 등장했다.
“흐하하하! 네놈을 상대했을 때는 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었지. 탑이라는 빌어먹을 제약 탓에 말이다.”
소용돌이가 사라지자 완전히 드러난 트리톤의 모습은 처음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전신을 뒤덮은 상어 비늘은 전보다 훨씬 크고 단단해졌으며, 얼굴은 더 이상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다.
툭 튀어나온 주둥이에 상어의 이빨이 흉기처럼 튀어나와 있었다.
그 외에도 돌고래보다는 상어의 것을 닮게 변형된 꼬리나 수중생물과는 어울리지 않게 날카로워진 손톱 등, 어인의 형태였던 전과 달리, 지금은 괴수라는 표현이 더욱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계획과는 다르지만, 이 자리에서 네놈을 쳐부수고 네놈의 몸을 차지해 주겠다!”
트리톤의 주변에서 수십 개의 용오름이 일어났다.
살아 있는 생물체처럼 꿈틀거리던 그것들은 트리톤의 손가락을 따라 세운을 향해 쇄도한다.
‘루인.’
우웅-
세운과 함께 트리톤을 상대해 본 루인이라면 지금 전투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소환을 시도했지만, 루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저 성흔에서 뿜어진 맹렬한 빛이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며 허공을 가리켰다.
‘여기서는 소환할 수 없는 건가?’
성흔이 가리키고 있는 곳은 아마 심상 세계의 꼭대기.
멸망한 열 번째 쉼터이자, 세운의 성흔이 실체화되어 존재하고 있을 거라 예상되는 곳이었다.
루인의 도움을 빌릴 수 없는 건 아쉬웠지만, 상관없다.
– 청탑의 묘리에 따라 ‘리플렉션’의 안정성이 강화됩니다.
– 황탑의 묘리에 따라 ‘리플렉션’이 더욱 견고해집니다.
콰과과과!!
세운의 앞으로 생겨난 유리 장벽이 용오름을 막아냈다.
거기에 리플렉션이 가진 특유의 반사력에 의해 용오름이 무작위로 튕겨 나가며 다가오는 다른 용오름과 부딪치며 위력을 떨어트렸다.
“흐하하하! 그래봤자 임시방편! 이 바다에서 이 몸의 힘은 무한하다!”
용오름 중 하나를 타고 트리톤이 달려들었다.
그런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며, 세운이 뒤랑달을 낮추었다.
‘색욕의 권능은 쓸 수 없지만…….’
외부의 도움을 받을 수 없으니 세운이 자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탐욕의 권능 말고는 전투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능이 없었다.
하지만, 세운은 마신의 권능을 빌리지 않아도 충분히 강력했다.
슈르륵-
세운은 트리톤이 터트렸던 아쿠아 스톰의 잔재를 불러들여 검에 담았다.
그 덕분에 용오름을 막아주던 리플렉션이 빠르게 약해졌지만, 세운의 공격은 이미 준비되었다.
“네놈을 삼키고! 다시금 올림포스로 돌아가겠다!”
리플렉터가 거울 깨지듯이 산산이 조각나고, 그 사이로 수백 개로 늘어난 용오름이 날아든다.
그중 가장 큰 용오름 위에 탄 트리톤이 날카로운 삼지창을 치켜들고 세운의 심장을 노린다.
삼지창의 날카로운 창끝이 세운의 코앞까지 도달해 시큰한 냉기가 느껴질 때쯤에, 마침내 세운이 뒤랑달을 휘둘렀다.
– 내공을 통해 북해검결의 제삼 초식, 북해와류(北海渦流)가 강화됩니다.
– 빙백신공의 묘리에 따라 무공에 냉기가 더해집니다.
현재 세운이 펼칠 수 있는 북해검결의 가장 강력한 초식, 북해와류.
단전에 담긴 내공이 음공으로 바뀌어 세운의 팔과 손, 검을 타고 흘러나가 차가운 소용돌이가 되었다.
우우우웅-!!
‘반응하고 있다.’
세운의 공격에 트리톤의 뒤편에 존재하던 거대한 구가 진동하였다.
안 그래도 서늘했던 냉기가 한층 더 강해지며 구 아래의 바닷물이 꽁꽁 얼어가기 시작했다.
“감히 바다의 신에게 그딴 흐느적거리는 물방울로 공격하려는 거냐!”
“누가 바다의 신이라는 거야?”
콰과과과괏!!
“흐윽?”
세운의 공격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북해와류로 인해 생겨난 소용돌이의 위를 아쿠아 스톰이 뒤덮었다.
아쿠아 스톰은 음공 특유의 냉기로 인해 부분부분 얼어가며 날카로운 얼음 조각을 만들었다.
이는 처음 소용돌이를 삼켰던 것처럼, 트리톤의 용오름을 집어삼키며 크기를 더욱 크게 부풀렸다.
“신격 따위, 진작에 잃어버린 주제에.”
“지, 지금은 그렇지만! 네놈의 몸만 집어삼키면, 신성을 회복하는 것 정도는 금방이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분명!”
“아, 포세이돈 말인가?”
“아버지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지 마라!”
“얼마 전에 포세이돈과 화해를 나눈 참인데. 너 따위 진작에 잊지 않았을까?”
“무, 무슨!”
세운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비록 직접 대화를 나눠 화해한 것은 아니지만, 애초에 청해 길드와 길드전을 치를 때 내세웠던 계약 조건에는 포세이돈의 용서가 포함되어 있었다.
조만간 이것도 제논과 제대로 대화를 나눠 봐야겠지만, 실질적으로 공식적인 포세이돈의 용서는 받아낸 셈이다.
“거, 거짓말이다! 그럴 리가 없다! 아버지가……!”
“신이었다면 거짓말 정도는 구분할 수 있을 거 아냐?”
“아니다! 그, 그럴 리가!”
부정하고 있지만, 트리톤은 알 수 있었다.
세운의 말대로 신 정도가 되면 인간의 거짓말을 꿰뚫어 보는 것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으니까.
비록 신격을 잃은 상태라지만, 세운이 제 감정을 허물없이 모두 드러내고 있었기에 그 진실성은 훤히 눈에 들어왔다.
“젠장, 젠장! 흐아아아악!”
트리톤이 창을 앞으로 밀어내며 용오름을 더욱 강하게 쏘아 보냈다.
얼음 소용돌이와 용오름의 대치 상황.
팽팽한 접전이 이어졌지만, 당사자인 세운과 트리톤은 느낄 수 있었다. 심리 상태에 맞게 흔들리고 있는 용오름이 곧 무너질 거라는 걸.
“다 필요 없다! 아버지 따위, 애초에 필요 없었다! 네놈을 삼키고, 올림포스고 아버지고 전부 쳐부수겠다!”
트리톤의 눈이 벌겋게 물들었다. 세운처럼 성흔의 기운이 몰려든 게 아니라, 복수에 눈이 멀어 실핏줄이 오른 눈이었다.
그렇다고 용오름이 다시 중심을 다잡은 건 아니었다.
흔들거림을 넘어 나사가 빠진 것처럼 휘청거리기 시작하더니 점차 세운의 소용돌이에 집어삼켜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트리톤이 시선을 바꿔 판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판! 이 빌어먹을 놈아! 계속 그렇게 개같이 있을 거냐? 지금이 기회다! 저놈을 먹고, 우리가 탑을 정복하는 거다!”
“그, 그렇지만…….”
“이 멍청한 놈아! 내가 다 책임질 테니까!”
“허허, 그건 좀 곤란하다네.”
물방울 속의 대현자가 지팡이를 흔들었다. 그러자 바닷물이 철장처럼 솟아오르더니 판의 전신을 속박하였다.
트리톤의 언행에 고민하고 있던 판은 몸이 속박당했음에도 오히려 편안해 보였다. 그러고는 자신은 이 철창 때문에 도와줄 수 없다는 듯이 트리톤을 향해 앓는 소리를 흘려보냈다.
“이 쓸모없는 놈이! 그래도 내가 네놈의 복수를 해 주겠다고 탑까지 내려와 이 꼴이 된 건데!”
“거, 거짓말 마라. 네가 그럴 리가…….”
“이놈이 끝까지!”
“잡담은 거기까지 하지.”
콰아아아앗!!
“흐아아악!”
세운이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자 트리톤의 몸이 뒤로 쭉쭉 밀려났다.
용오름이 완전히 삼켜지고, 배가 부른 것처럼 얼음 소용돌이가 처음에 비해 훨씬 커진 덩치로 트리톤을 밀어붙였다.
괴수처럼 거대해진 몸뚱어리 따위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그저 두꺼운 상어 비늘이 얼음 조각을 간신히 막아 주고 있을 뿐이었다.
쿵!
“커헉!”
트리톤은 밀리고 밀리다 곧 밀려날 자리가 없어 단전에 등이 부딪혔고, 인상을 찌푸리며 침음을 내뱉었다.
그러자 거대한 구가 크게 공명한다.
처음 보는 반응이었지만, 역시 자신의 단전이 실체화된 모습이었기 때문일까? 그게 아니라면, 저런 식으로 세운에게 항상 ‘먹이’를 요청하는 누군가의 존재 때문일까?
세운은 구의 공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네가 맛있어 보이나 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