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91)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91화(491/675)
제 491화
분명 구에서는 어떠한 의사 전달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세운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저 구가, 세운의 단전이 형상화된 저 거대한 구가 트리톤의 힘을 탐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안 그래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이었는데, 다행이네.”
탐욕의 권능은 회귀 전에 세운에게 양도된 보물창고를 통해 발현된다지만, 폭식의 권능은 다르다.
분명 세운의 권능으로 취급되지만, 결국 폭식으로 먹힌 먹잇감은 베엘제붑의 배 속으로 이동된다.
때문에 심상 세계라는 이 공간에서 폭식의 권능을 사용해 봤자 별다른 의미는 없었다.
기껏 해 봐야 죽은 적의 몸을 갈기갈기 찢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 때문에 비록 힘의 잔재라고는 하나, 아깝게 허공에 버려야 하나 고민했는데, 이러면 말이 달라진다.
“무,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안 된다! 판! 판! 거기 엎드려 있지 말고 일어나 봐라! 일어나라고!”
“나, 나는 이것 때문에 움직일 수가…….”
“거짓말 마라! 그따위 허약한 물줄기 때문에 네가 못 움직인다고? 이런 겁쟁이! 신이 고작 인간 따위에게 고개를 숙이는 거냐!”
“그만 닥치지 그래.”
“커헉!”
세운이 얼음 소용돌이를 더욱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러고는 검을 한 차례 털고, 구에 틀어박혀 있는 트리톤에게 다가갔다.
검을 거둠과 동시에 소용돌이의 위력이 점차 줄어들어, 트리톤이 기회를 노리고 반격을 이어가려 하였으나…….
“억!”
몸을 움직이기도 전에 트리톤의 목에 세운의 손아귀가 덮쳐왔다.
이게 정말 인간의 손아귀란 말인가? 분명 크기 차이만 해도 엄청날 텐데, 세운의 손아귀가 제 목을 쥐는 순간 몸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 엄청난 충격에 트리톤은 저도 모르게 최후의 반격을 위해 꼭 쥐고 있었던 삼지창을 놓고 말았다.
“한 번 졌으면 얌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어야지. 그러면 목숨은 건질 수도 있잖아? 저기 판처럼.”
“커, 커흑. 난, 난 신이다. 이 몸은 인간에게…….”
– 성흔이 혈랑전설의 설화에 반응합니다.
– 성흔의 첫 번째 능력, ‘공포’가 깨어납니다.
“크흑…….”
공포의 권능이 트리톤에게 깃들었다.
공포의 힘은 공포의 매개체가 있을 때 더 큰 빛을 발하는 법. 이미 세운의 공격에 밀린 상태에서 목까지 조여들고 있으니, 트리톤에게 스며든 공포의 힘은 대단했다.
‘신격이 남아 있었다면 불가능했겠지만.’
신도 뭣도 아닌 잠재 따위를 공포로 사로잡는 것은 아주 간단했다.
우우웅!
“네놈이 어지간히도 먹고 싶었나 보네.”
“커, 커흑. 안, 크윽. 그만…….”
트리톤과 맞닿은 구에서 파문이 일어났다.
마치 늪에 빠져드는 것처럼 트리톤의 거대한 몸체가 아주 천천히 단전에 빨려들어 가기 시작했다.
“모, 목숨…… 제발…… 허흑…….”
“그래, 어차피 너도 목숨 구걸할 거면서 말이야.”
신이라고 해 봤자 똑같다.
불사인 것처럼, 죽음 따위 무섭지 않은 것처럼 행동해도 결국 진짜 죽음을 눈앞에 두면 인간과 다를 바 없다.
심지어 이놈은 이제 신도 아니다. 신격을 잃었음에도 과거의 자신을 놓지 못해 허우적거리고 있었을 뿐이다.
“나는…… 커헉, 바다의…… 바다의.”
스륵.
결국, 놈은 말을 채 잇지 못한 채로 단전에 전부 흡수되었다.
세운은 아직도 부족하다는 듯이 공명하는 구를 느끼며 판에게로 시선을 돌렸는데, 저를 가두고 있는 물줄기를 꽉 붙잡은 채 몸을 떨고 있었다.
“히익!”
한심함에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이제 끝인 건가?’
라고 생각하는 순간, 구에서 이변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구가 당장에라도 부서질 것처럼 크게 진동했다.
덩달아 세운의 배 속에 존재하는 진짜 단전 역시 진동을 일으키며 내공을 흘려댔다.
“쿨럭!”
세운의 입에서 새까맣게 죽은 피가 흘러나왔다.
원인을 생각할 틈도 없이 세운이 양손을 뻗어 덜덜 떨리고 있는 거대한 구의 표면에 얹었다.
‘트리톤의 힘이 들어와 폭주라도 일으키는 건가?’
어떻게 해야 할까? 눈앞의 구를 무시하고 자리에 앉아 운기조식을 해야 할까? 그게 아니면 어떻게든 눈앞의 구를 억누르며 진정시켜야 할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너무 급박한 상황 탓에 세운은 가장 나은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대신 당장 떠오르는 방법을 모두 실행할 수밖에 없었다.
‘삼재공.’
우주의 세 가지 근원에 따라 삼라만상을 바라보는 삼재의 관법.
모든 심법을 통틀어 가장 뛰어난 안정성을 지니고 있다는 삼재공을 사용하여 단전을 진정시켰다.
세운의 몸속에서 폭주하려는 내공을 세 갈래로 나누어 질서를 바로잡았다.
‘연결되었다.’
삼재공을 통해 흘러가던 내공은 세운의 손에 연결된 구와도 반응하였다.
진동은 점차 줄어들었지만, 세운은 본능적으로 이 순간이 기회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의 단전은 너무 불안정하다.’
삼재공과 파극심공, 자하신공과 빙백신공을 사용하여 만들어 낸 단전.
그 안에서 어떻게든 조화와 질서를 이루고 있었지만,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깨달음이 부족한 이상, 이대로 내공을 더 모았다가는 단전이 깨지고 말 것이다.
그러니 더욱 온전한 형태를 만들어야만 한다.
‘어차피 본질은 내공이다.’
삼재공의 안정된 내공.
파극심공의 난폭한 내공.
자하신공의 뜨거운 양공.
빙백신공의 차가운 음공.
네 갈래로 서로 다른 특색을 띠고 있지만, 결국 그 본질은 하나다.
세운의 역할은 이 네 가지 내공을 서로 어우러지게 하는 것. 그러면서도 본연의 특색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이다.
‘비록 무공에 대해서 제대로 배우거나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엘 아브르의 대도서관.
그곳에는 수백, 수천 개의 무공서가 있었지만, 무공이라는 것은 본디 무공서만으로 완전히 깨닫기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대부분의 무공은 스승에게 직접 하사받으며 그 본질을 바로 옆에서 느껴야만 했다.
그렇기에 아무리 많은 무공을 익혀도 무공서만으로 모든 것을 깨닫기란 어려웠다.
그러나…….
‘이론은 완벽하다.’
세운은 ‘아무리 많은’ 수준을 벗어날 정도로 많은 무공서를 잃었다.
그리고 탐욕의 권능을 통해 자하검결이나 북해검결, 파극암검과 같은 상승무공까지 익히고 혼자만의 깨달음으로 여기까지 도달했다.
스승은 없더라도, 무공에 대한 개념만은 그 누구보다 충실하다.
‘이 모든 기운을 다스리는 방법. 이 모든 기운에게 질서를 세우고, 조화를 이룰 방법.’
세운의 머릿속에 수백, 수천의 무공서에 대한 지식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는 어느 순간.
감았던 눈을 부릅뜬 세운이 구 위에 얹었던 손을 교차하며 흐르던 내공을 좌우로 비틀었다.
“태극(太極).”
슈와아악!
음과 양. 두 개의 반구로 구분된 태양처럼 거대한 구가 세운의 손길을 따라 비틀어졌다.
음기와 양기가 서로 뒤섞일 것처럼 흘러갔지만, 그 둘은 결코 뒤섞이지 않았다.
다만, 처음 모습과는 달랐다.
처음 두 반구가 서로 대치하듯이 자신의 기운을 내세웠다면, 지금은 악수를 나누듯이 서로의 기운을 인정하였다.
세운이 뇌까린 것처럼 태극의 문양을 이루며 질서를 잡고 조화를 이루었다.
‘삼재의 의지로 기반을 잡고, 파극의 뜻으로 틀을 세워 올린다.’
서로 다른 음양의 기운을 바치고 있던 삼재의 기운이 구에서부터 빠져나와 새로운 모습을 이룬다.
하늘을 뜻하는 건괘(乾卦)와 땅을 뜻하는 곤괘(坤卦). 물을 뜻하는 감괘(坎卦)와 불을 뜻하는 이괘(離卦)까지.
삼재와 파극이 건곤감리의 틀을 이루어 태극을 감싼다.
– 삼재공(三才功), 파극심공(破極心功), 자하신공(紫霞神功), 빙백신공(氷白神功). 네 개의 심공이 조화를 이룹니다.
– 네 심공의 새로운 묘리를 깨달아 무공의 효율이 증가합니다.
– 합공(合功), 태극신공(太極神功)을 창조하였습니다.
“후우…….”
네 개의 심공을 섞어 새로운 합공을 만들어 내다니.
이는 이전에 보법이나 검법을 섞어 합공을 만들어 내는 것과는 달랐다.
보법이나 검법은 실패하면 사용하지 않으면 되고, 실수해도 관절이나 근육을 다치는 정도가 끝이다.
하지만, 심법을 잘못 만들어 냈다가는 단전이 깨지고 목숨을 잃을 위험도 있었다.
세운은 그 위험을 깨고, 음양의 기운은 물론이고 사괘의 기운마저 다스릴 수 있는, 전혀 새로운 신공을 만들어 낸 것이다.
‘힘이 좀 빠지긴 하네.’
눈앞의 구가 태극의 문양으로 변하고, 세운의 단전에서부터 힘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다르게 심리적 피곤함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고생했네. 피곤할 테니 좀 쉬고 있게.”
“감사합니다.”
대현자가 세운을 위해 물방울 하나를 더 만들어 냈다.
잠깐이라도 휴식을 취하고 싶었기에, 세운은 거절하지 않고 그 안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푹신한 물방울이 등을 받쳐주니 조금 살 것 같았다.
솨아아아-
그러는 사이에도 태극의 형상으로 변한 구는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뜨겁게 달궈진 공기를 위로 빨아들이고, 차가운 얼음 바닷물을 아래로 빨아들였다.
시꺼멓게 썩은 흑해의 불순물은 태극 주변의 건곤감리로 인해 정화되었다.
“단순히 벽을 넘은 것 이상의 소득이군.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아직 서클에 도착하지도 못했는데 이런 소득이라니. 어쩌면 심상 세계를 빠져나가기 전에 자네가 나를 추월할지도 모르겠어.”
세운이 고개를 들어 태극 문양의 구를 바라보았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하여도 대단하지만, 배 속의 단전을 통해 차오르는 힘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대현자의 말처럼 심상 세계를 빠져나가면 단전의 내공이 얼마나 차올라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잘은 몰라도, 지금까지처럼 일 갑자나 이 갑자 정도의 양이 아니라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판, 안내해.”
“어, 어디로…….”
“최하층. 서클이 있는 곳으로.”
“시, 신전 말씀입니까?”
트리톤이 사라진 걸 보아서일까? 판은 처음보다 더욱 온순해진 모습으로 세운에게 말을 높였다.
신전이라.
세운과 대현자가 그렇게 느꼈듯, 서클은 심상 세계에서도 신전의 모습을 띠고 있나 보다.
“그래, 안내해.”
“알겠습니다! 저, 저기 혹시…….”
“뭐?”
“시, 신전에 도착하면 설마 저도 트리톤처럼 신전에 흡수시킨다든가, 하는 건 아니시겠지요……?”
“음…….”
세운이 잠시 망설였다.
신전도 이 단전과 비슷한 상태라면, 판의 힘을 흡수시켜서 8서클의 벽을 무너트릴 수 있지 않을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망설임 없이 녀석을 신전에 박아넣을 것 같기는 한데…….
“일단 출발해.”
“그, 그럴 수가! 목숨은 살려주신다고……!”
“아니면, 당장 여기서 죽을래? 일단은 아래에서 상황을 보자고.”
“크흐으윽…….”
“안 출발해?”
“메에에에-!”
물방울을 매단 판이 눈물을 글썽이며 흑해를 헤엄치기 시작했다.
부디, 신전이 자신의 힘을 탐하지 않도록 최대한 몸에 흑해 특유의 비린내를 묻혀가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