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495)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495화(495/675)
제 495화
심상 세계와의 연결이 끊겼지만, 실질적인 소득인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청의 대현자, 몰 아르기닌.
그는 피부로 느껴지는 은은한 마나감에 현실로 들어온 것을 깨달았음에도 바로 눈을 뜨지 않았다.
차분하게 자세를 바로잡고 이번 경험으로 쌓은 깨달음을 정리하며 서클을 회전시켰다.
비록 마법진을 작동하기 위한 마나석은 모두 텅텅 비었지만, 이곳의 마나가 고갈되면 위의 실험실로부터 마나가 들어오게 되어 있었다.
‘산호 탑주. 실로 대단한 분이셨다.’
같은 8서클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식견. 아니, 본래는 그와 비슷할 수준일 수도 있다.
다만, 심상 세계에서 두 용과 대화를 나누며 깨달음이 깊어진 것이겠지.
그게 아니더라도 8서클에 도달한 이상, 같은 수준의 마법사와 이렇게 깊은 토론을 나눌 기회는 많지 않았다.
‘나와는 다르게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적이고 효율적으로 쌓아 만든 서클. 비록 따라 할 수는 없지만, 배울 점은 있지.’
산호 탑주와의 대화.
세운의 서클이 형상화되어 만들어진 신전.
‘거기에 마법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용의 마법까지 경험하였다.’
마지막으로 용의 마법.
고서클의 마법을 제대로 사용한 건 아니었지만, 용의 등에 타고 날갯짓을 느끼며 그 자연스러운 마법을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도움이 되었다.
그 모든 것들을 떠올리며, 대현자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가능하다. 아니, 과분하다.’
남의 심상 세계에서 이만한 경험을 할 수 있으리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그의 깨달음은 이미 8서클 엑스퍼트의 벽을 깨부수고 마스터의 단계로 다가섰다.
줄줄 흘러내리던 여덟 번째 서클이 새로 얻은 깨달음으로 깨끗하게 수복되었다.
“후우…….”
여덟 번째 서클을 가다듬은 대현자가 눈을 떴다.
지금부터는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다.
우선은 광활한 여덟 번째 서클을 가득 채우고, 마스터의 경지를 가득 채워야 한다.
그리고 어쩌면.
정말 어쩌면…….
이번 생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던, 9서클의 경지를 노려보아도 되지 않을까?
정말이지 꿈같은 꿈을 꾸며, 대현자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음? 이상하군. 분명 마나 순환 장치가 작동되고 있을 텐데.”
정신을 차린 대현자는 곧바로 방의 이상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리 자신이 벽을 깨트리며 마나를 흡수했다고는 하지만, 마나가 이 정도로 희박할 수가 있나?
공기가 건조하면 입술이 바짝 메마른 것처럼, 지금 이 방의 마나가 너무나도 희박하여 서클이 바짝 메마른 듯한 착각이 일었다.
우웅-
“음?”
하지만, 시설의 문제가 아니었다. 마나 순환 장치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다만, 마나 순환 장치를 통해 위에서 들어오는 마나가 모두 어딘가로 흡수되고 있었다.
“……!!”
대현자가 혹여나 소리를 낼까 싶어 저도 모르게 입가를 손으로 가리며 눈을 크게 떴다.
그가 관찰하며 깨달음을 얻어올 수 있었던 심상 세계의 주인. 세운이 자리에 앉아 주변의 마나를 모조리 흡수하고 있었다.
새롭게 생겨난 여덟 번째 서클.
인피니티 서클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서클은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마나를 요구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구나.’
깨달음을 얻는 도중에 방해를 받으면 깨달음이 무산되거나, 심하면 마나 역류로 인해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깨달음에 닿은 자의 옆에서는 숨소리 하나도 조심해야 한다.
대현자가 조용히 자리를 벗어나 마나 순환 장치를 가속하며 제자들을 불러 연구실에 남은 마나석을 찾아오라 했다.
‘이거, 연구실의 마나석이 전부 동날지도 모르겠군.’
그런 생각과는 다르게, 대현자는 입꼬리를 한껏 당긴 채로 방 안에서 눈을 감고 있는 세운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 * *
“후우…….”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그저 깨달음에 따라 숨을 쉬고 내쉬고, 본능이 이끄는 대로 서클을 회전하고, 단전의 내공을 순환시키다 보니 시간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흘러갔다.
‘얻은 게 많아.’
생각 이상으로 시간이 지났는지 뻐근한 눈꺼풀을 올리며 눈을 떴다.
세운의 심장에는 새롭게 생겨난 여덟 번째 서클이 단단하게 기반을 잡고 있었다.
거기에 서클의 전체적인 형태 역시 인피니티 서클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변해 있어, 당장에라도 마법을 사용해 서클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단전까지.’
트리톤의 힘을 흡수시켜 불안정함을 해소하기 위해 변형시킨 단전. 그로 인해 생겨난 합공, 태극신공.
심상 세계에서 보았던 것처럼 당장 아랫배에서 느껴지는 단전의 형태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단단하고 안정적이었다.
그러면서도 다양한 속성의 내공을 자유롭게 움직였으며, 사용할 수 있는 내공의 총량 역시 놀랍도록 늘어났다.
– 태극신공을 통해 단전에 십이 갑자의 내공을 쌓았습니다.
– 무공을 사용하지 않을 때도 내공이 혈맥을 순환하며 기본적인 신체 능력이 상승합니다.
– 상승한 내공의 수치에 따라 사용하는 모든 무공의 효율이 증가합니다.
– 태극신공의 묘리에 따라 사용하는 무공의 효율이 대폭 상승합니다.
– 놀라운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 보상으로 10,000,000point를 획득하였습니다.
무려 십이 갑자.
이전에 세운이 쌓았던 내공이 팔 갑자 정도였으니, 십이 갑자가 더해지면 이십 갑자에 해당하는 내공이 쌓인 셈이다.
한순간에 두 배가 넘는 양의 내공이 생겨나다니.
팔 서클이라는 경지도 대단하지만, 솔직히 이번에는 서클보다 단전이 더욱 크게 성장했다고 느껴졌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당신을 내려봅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무척이나 큰 성과가 있었던 것 같다며 축하를 보냅니다.
– 성좌, ‘암야의 올빼미’가 당신을 향해 눈웃음을 지어 보입니다.
우선은 시야를 가득 뒤덮은 성좌들의 메시지를 치우고, 길드챗을 올려보았다.
[ 해리 케인 : 저도 엘 아브르에 도착했습니다. ] [ 한아름 : 여기 엄청나! 건축 양식이랑 설계도가 쌓여 있는데? ] [ 한다운 : 여기 너무 좋아! ] [ 이하늘 : 이런 곳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그런데 길드장 본 사람 있나요? 소문은 무성한데 본 사람은 없네요. ] [ 한아름 : 맞아. 다른 사람들도 혈랑 오빠가 왜 새 논문 안 내는 거냐며 기다리고 있던데? ]‘음?’
유서아나 강한철이 엘 아브르에 들어온 건 알고 있었는데, 지금 분위기를 보아하니 디아블로 길드의 1/3 이상이 엘 아브르에 들어온 듯했다.
다들 실력이 출중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엘 아브르에 들어오다니?
그래도 명색이 한 분야에서 업적을 달성한 이들만 받아주는 숨겨진 학회인데, 이게 말이 되나?
세운이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방의 문이 열리고 대현자가 들어왔다.
“드디어 일어났구먼! 장장 이 주일 동안이나 마나를 끌어 담을 줄이야. 덕분에 내 연구실에 있는 마나석을 모두 썼다네. 그래도 부족하지 않아서 다행이지.”
“……이 주일이라 하셨습니까?”
이 주일이라니.
그 말은, 보름 동안 이곳에서 눈을 감고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확실히, 그 정도 시간이라면 디아블로의 길드원들이 엘 아브르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도 이해가 되었다.
“놀랐나? 나도 놀랐다네. 일단은 나오게. 아무리 환기 장치를 작동해 두었다고는 해도 청소 좀 해야 하니. 자네도 좀 씻고.”
“……그래야겠군요.”
익숙해져서 몰랐는데, 살펴보니 제 꼴이 말이 아니었다.
옷은 누렇게 젖어 있었고, 바닥에 고인 물에서도 악취가 날리고 있었다.
서클은 물론 단전의 수준까지 급격하게 올라가며 몸속의 노폐물이 빠져나와 벌어진 사태였다.
모를 때는 괜찮았는데, 듣고 나니 찝찝함이 몰려와 곧바로 클린 샤워 마법으로 몸을 씻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피니티 서클을 얻고 처음 쓰는 마법이 클린 샤워라니.’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배고프지 않은가? 서클의 기반이 슬슬 안정되는 것 같아서 내 미리 식사를 준비해 두었네. 같이 가지.”
“감사합니다.”
세운이 뒤를 돌아보았다.
8서클의 기반을 바로잡을 정도의 마나를 흡수하려면 엄청난 양의 마나가 필요했을 터.
이렇게 마나석을 많이 사용하는 곳에서는 보통 마나석을 재사용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큰 은혜를 입은 건 분명했다.
만약 마나가 부족했거나, 중간에 누군가 세운을 깨우기라도 했으면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기반을 잡지 못했을 테니까.
“모두 마나 회복에 좋은 것들이라네. 마음껏 들지.”
“마나석을 포함해서 받은 은혜는 전부 갚겠습니다. 명세서라도 적어주시면…….”
“허허, 명세서는 무슨. 필요 없다네.”
대현자가 그리 말하며 자신의 심장을 가리켰다.
7서클일 당시에는 한 수준 높은 그의 서클을 제대로 읽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다르다.
8서클. 정확하게는 8서클 마스터의 단계를 밟기 시작한 그의 서클이 보였다.
“오히려 부족하나마 내가 입은 은혜에 대한 보답이라 할 수 있네.”
신전을 빠져나갈 때, 얻은 게 많다고 했던 말은 빈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보아하니 간신히 도달한 것도 아니고, 서클이 제대로 뚫려 있어 마스터의 수준까지도 문제없이 올라갈 듯이 보였다.
“게다가, 자네에게 은혜를 입은 건 나뿐이 아니라네.”
“네?”
“괜찮다면 잠깐 조수들을 불러도 되겠나?”
“저야 상관없지만, 어째서…….”
“보면 알걸세.”
대현자가 껄껄 웃으며 손가락을 횡으로 그었다.
마나가 작게 일렁이며 바깥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보니 어떤 신호를 보낸 듯했는데, 그 순간 문이 열리며 현자급의 조수들이 방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8서클에 오르는 순간을 이 눈으로 직접 목격하다니! 그것만으로도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괘, 괜찮으시면 제가 보았던 부분을 논문으로 작성해도 되겠습니까?”
“장장 이 주일 동안 마나를 흡수하다니! 기반이 그 정도라면 총용량은 대체 어느 정도일지!”
“아! 말이 나온 김에 총용량을 추측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저희 시설이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세운의 주위를 둘러싸는 조수들.
이곳에서는 조수라 불려도, 대현자의 연구실 특성상 조수들 모두 현자 이상의 자격에 도달한 이들인데, 행동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한 명의 학생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학생보다는 호기심에 눈을 반짝거리는 어린아이가 더 어울린다.
“자네가 기반을 닦고 있을 때, 자네를 위해 마나석을 조달하고 각종 장치를 관리해 주었던 이들이네.”
“아, 혹시라도 신경 쓰진 않으셔도 됩니다!”
“상황을 듣고서는 저희가 자선한 일입니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요!”
“아…… 감사합니다.”
방해한 것도 아니고, 세운을 도와주었던 이들이니 관찰 좀 했다고 꾸중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 어렵지 않은 부탁이라면 들어주기로 하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물론, 슬슬 분위기가 과열되자 부담을 느끼는 듯한 세운의 모습에 대현자가 조수들을 물리며 상황을 정리하였다.
“보다시피 마나석 따위 아깝지 않을 은혜를 입었네. 저 중 한 명은 자네의 깨달음을 보는 것만으로 벽을 깨고 다음 단계를 밟았지.”
“그렇습니까.”
세운이 식탁 위에 차려진 여러 음식 중, 죽순을 닮은 조림 요리를 집어 들었다.
엘 아브르의 특성 때문인지 과일이나 줄기 같은 채식 요리가 대부분이었는데, 맛이 꽤나 좋았다.
이 주일이나 굶은 터라 알게 모르게 허기가 깊었는지 음식이 술술 들어갔다.
대현자가 그런 세운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세운의 젓가락질이 느려질 때쯤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 이제 자네의 다음 목표에 관해서 얘기를 해 보아야겠군.”
“도와주시는 겁니까?”
“당연하지. 솔직히, 도와주는 문제가 아닐세. 자네가 대현자가 되지 않으면, 누가 대현자가 되겠는가?”
세운의 눈앞에 앉아 있는 대현자, 몰 아르기닌.
그의 수준은 이제 막 8서클 마스터의 수준에 진입하였고, 그 이전에도 8서클 유저의 수준에서 대현자의 자리에 올랐다.
반면에 세운은 현재 8서클 유저에 돌입한 것은 물론이고, 단전에는 이십 갑자의 내공이 잠들어 있다.
그 외에도 지리나 연금, 몬스터학 등, 다양한 곳에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니 대현자가 되고도 남을 이력을 지니고 있었다.
“솔직히 나보다 자네가 더 대현자의 자리에 어울려 보인다네.”
“그래도 넘어야 할 산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 그러니, 산을 넘을 방법을 모색해 보자는 말일세.”
“방법이야 별거 있겠습니까?”
본래는 다른 계획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8서클에 도달하고 이십 갑자라는 내공을 얻은 이상, 굳이 빙빙 돌아서 대현자의 자리에 찾아갈 이유가 없었다.
“산이 길을 가로막고 있으면, 뚫고 지나가면 그만입니다.”